테트리스 이펙트, 루미네스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단어가 세 가지 있다. 미조구치 테츠야, 빛과 소리, 그리고 레즈. 미조구치의 최고 흥행작은 스페이스 채널 5: 파트 2일 테지만, 게임 인생의 전환점이자 페르소나가 된 게임은 레즈라고 생각한다. 레즈야말로 미조구치의 지향점 '간단한 규칙, 빛과 소리, 게임플레이와의 융합'을 보여준 첫 번째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2021.12.02 - [게임 비평] - 테트리스 이펙트 (2018)
2021.12.07 - [게임 비평] - 루미네스 (2004)
레즈는 겉보기에 평범한 레일슈터다. 레일슈터는 정해진 선로를 따라 이동하며 적을 쏘는 장르.
아케이드에선 <스페이스 해리어, 1985> <버추어 캅 2, 1995> <하우스 오브 데드, 1996>, 콘솔에선 <스타폭스, 1993> <팬저 드래군, 1995> 등이 유명세를 떨쳤다. 이 장르는 낮은 확장성 탓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하락세를 겪었다. 레즈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장르 중에 레일슈터를 택한 걸까?
2021.07.10 - [게임 비평] - 스타폭스 (1993)
2021.07.10 - [게임 비평] - 팬저 드래군 (1995)
시점을 전후좌우 4방향만 지원하는데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당시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한 게 흠.
2001년, 레일 슈터 장르는 저물고 있었고 VR 기술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3D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시절의 3D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6세대 콘솔이 출시되면서 <새크리파이스, 2000> <그란투리스모 3, 2001> 같은 비주얼 쇼크급 게임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있었다. 처음엔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모호했던 것이, 어느새 눈, 코, 입, 동작, 음영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표현되었다.
시장엔 아직 2D와 3D가 혼재되어 있었다. 3D 기술은 해를 거듭하면서 급격히 발전했다. 때마침 6세대 콘솔이 등장하면서 기기의 한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3차원 공간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고 조작 방식도 그에 걸맞게 발전했다. 기술의 변혁기에서 누구나 '무엇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3D 그래픽의 태동기~성장기에는 <그란투리스모>가 있었다.
지금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빛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정재는 3DO 광고 속에서 "이거 영화야 게임이야?"란 대사를 내뱉는다.
이 굴욕적인 대사는 21세기가 되어서야 현실화되고 있었다.
<레즈>는 정밀한 묘사보다 단순함을 택했다. 조작법 역시 간단하다.
A를 꾹 누르면 적에게 록 온이 걸리고, A 버튼을 떼면 유도 빔이 나간다.
록 온 도중 max 표시가 나오면 버튼에서 손을 떼자.
더 이상 대미지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신호다.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적을 드래그하듯이 쭉 긁자.
한꺼번에 록 온이 되며 유도 빔의 먹잇감이 됐다.
목캔디를 먹으면 입 안에 기분 좋은 화함이 맴돌듯,
적이 빛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이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그란투리스모 3>가 빛의 음영에 주목해 리얼함을 추구했다면,
<레즈>는 빛의 집중효과와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췄다.
요즘 게임처럼 시점변환이 능숙하다.
무엇을 먼저 격추하느냐에 따라 시각적 효과가 달라진다.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간단한 비트에, 내가 어떻게 적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덧씌워진다.
<레즈>는 시각, 청각, 촉각 세 가지 삼중주를 한 데 묶어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레즈>의 게임플레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이자 무언가를 소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메커니즘은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미디어아트를 <레즈>만큼 잘 표현한 게임은 없을 것이다.
기존 버전에 그래픽 개선, Area X, VR 모드를 추가한 16년작 게임.
<레즈>가 추구한 것을 요즘 눈높이에 맞게 풀어냈다.
<레즈>의 아트 스타일은 현세대 게이머에도 충분히 먹힐만한 것이었다. 그런 <레즈>조차 <레즈 인피니트> 앞에서는 쭈구리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세련된 게임디자인에 걸맞는 세련된 껍질, 그것이 <레즈 인피니트>가 맡은 역할이다.
<레즈 인피니트>는 VR 기기가 없어도 멋진 게임이다.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과정, 빌드를 짜서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즐거움. <레즈>의 모든 게 그대로 구현됐다. 여기서 끝나면 단순한 리마스터작이겠지만, <레즈 인피니트>는 한 발 더 나아가 VR 전용 스테이지 Area X를 추가했다.
미조구치 테츠야가 추구했던 <레즈>는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체감형 건슈팅으로의 변화. <레즈>를 현시대에 맞게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mobygames.com/game/dreamcast/rez/mobyrank
* <레즈>
평가점수 ★★★★★
미조구치 테츠야의 최고 걸작. 선과 도형으로 구성된 단조로운 그래픽은 게임플레이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 플레이어가 직접 무언가를 채워나간다는 것이 여백이 가득한 <레즈>의 세계에 창조성을 더해주었다. 기술적 한계는 레일슈터라는 장르를 선택하여 보완했다. 레일 슈터는 자유도와 거리가 먼 장르, 이런 장르라면 시점을 제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을 느끼기 쉽다.
<레즈>는 VR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 너무 앞서간 아이디어는 이상하게 구현되거나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VR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레즈>를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게임으로 탄생시켰다. 텅 비어보였던 그래픽은 모던하게 느껴지고, 다양한 특징들이 한 데 모여 현실감을 자아낸다. VR 게임을 즐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드림캐스트의 수많은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작품이며, 드림캐스트를 대표하는 게임으로서, 레일 슈터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으로서 손색이 없다.
* <레즈 인피니트>
평가점수 ★★★★★
<레즈>는 20년이 흘렀는데도 낡은 기색이 없다. <레즈>는 다가올 VR 시대를 예언하는 듯한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에 VR을 추가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특별하다. 이미 특별한 게임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레즈 인피니트>가 빚어낸 마술이다.
'게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레이지 택시 (1999) (0) | 2022.01.18 |
---|---|
겟 배스 (1997) (0) | 2022.01.06 |
루미네스 2 (2006) (0) | 2021.12.08 |
루미네스 (2004) (1) | 2021.12.07 |
테트리스 이펙트 (2018) (0) | 2021.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