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의 성공은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은 테트리스를 답습하는 카피캣에 불과했지만, 컬럼스나 뿌요뿌요 같은 게임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테트리스 같으면서도 독창적이었다. 위에서 블럭이 내려오고, 블럭을 회전시켜 쌓아 터뜨리는 장르의 게임. 이를 한 데 묶어 낙하물 퍼즐이라고 부른다.
닌텐도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획득. 가정용 게임기의 독점 라이센스를 이용해 패미컴, 게임보이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한다.
게임보이 판 <테트리스, 1989>는 북미, 유럽 시장에서 게임보이 런칭 타이틀로 선정되었고 총 3500만장이 팔렸다. <테트리스>는 패미컴 런칭작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985> 슈퍼패미컴 런칭작 <슈퍼 마리오 월드, 1990>와 함께 게임왕국 닌텐도의 위상을 공고히 한 타이틀이었다.
<테트리스>가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많은 낙하물 퍼즐게임이 출시됐지만, 자신만의 게임성을 인정받아 시리즈화에 성공한 게임은 흔치 않다. 시리즈화에 성공한 <컬럼스> <뿌요뿌요>는 연쇄 시스템을 도입하여 난이도를 높였다. 따라서 <테트리스> 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했다. 더 큰 문제는, 낙하물 장르에서 <뿌요뿌요> 이후 혁신적인 게임이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도 10년 넘게 쭈욱.
2000년대에 들어서자 <테트리스> 열풍은 사그들었다. 퍼즐 액션은 자기 살 길 찾아 떠났고, 낙하물 퍼즐은 쭉 정체 상태. 이때 <루미네스, 2004>가 등장했다. <루미네스>는 PSP의 런칭 타이틀로, 일본판은 <루미네스 -소리와 빛의 전광 퍼즐-> 영문판은 <루미네스: 퍼즐 퓨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루미네스>의 크리에이터는 미조구치 테츠야가 맡았는데, 그는 <스페이스 채널 5, 1999> <레즈, 2001> 등 기존의 리듬게임과는 다른 음악게임을 선보인 바 있었다. 그는 음악과 테트리스를 결합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라이센스 협상이 잘 되지 않아 <루미네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루미네스>의 블럭들은 모두 사각형으로 6가지 패턴이 있다. 같은 색상의 블럭이 2x2 형태로 쌓이면 사각형으로 합쳐지고, 타임라인에 사각형이 닿으면 소멸하게 된다. 타임라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멀스멀 움직인다. 말로 하면 어려운데, 막상 해보면 튜토리얼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쉽다.
블럭이 소멸되면 위에 쌓여있던 블럭이 내려와 연쇄를 일으키기도 한다. <뿌요뿌요>를 해보면 연쇄를 고려한 블럭 쌓기가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뿌요뿌요>가 4색, <컬럼스>가 6색이었던 반면, <루미네스>는 2색만 지원한다. 당연히 연쇄 부담도 훨씬 덜하다. 대신 게임이 단조로워지지 않을까?
블럭 속에 들어있는 녹색 알갱이를 체인 블록이라 부른다.
<테트리스>의 I미노(긴 작대기) 만큼이나 반가운 녀석이다.
녹색 알갱이를 포함해 2x2 형태로 만들면, 같은 색을 가진 붙어있는 블럭이 전부 소멸된다. I미노의 사용법이 다소 단조로운 반면, 체인 블록은 다양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 체인 블록이 터지면서 연쇄가 이어져 짜릿함도 크다.
<루미네스>는 빛과 소리를 이용한 게임,
움짤에서 볼 수 있듯이, 빛은 터질 때의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루미네스>에서 소리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
한창 오락실에 다닐 적에 사방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중에서도 유독 사운드가 풍성한 게임에 귀에 들어왔다. 어떤 게임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나와 리듬게임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좋은 리듬게임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사운드트랙이다. 그런 점에서 <루미네스>의 사운드트랙은 엉성하게 느껴진다. 곡을 의도적으로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소리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맞춰 풍성해진다. 플레이어의 개입으로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것이야말로 <루미네스>의 지향점이다.
블럭이 바닥에 닿으면 피아노 건반을 여럿 누르는 소리.
블럭을 수평으로 이동하면 "딱 딱" 하는 소리.
블럭을 빠르게 수평으로 이동하면 누군가가 "배스?"를 읊조린다.
블럭의 방향을 전환하면 "삑 삑" 하는 소리.
블럭이 결합되면 짧은 멜로디가.
블럭이 터지면 "삐롱삐롱" 하는 소리가 들린다.
<루미네스>의 효과음은 스테이지마다 다르며, 내 행동에 맞춰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다.
배경음악에 효과음을 입혀 나만의 음악으로 탄생시키는 즐거움. 정박, 엇박을 넘나들며 블럭을 쌓기도 하고, 일부러 블럭을 쌓지 않고 블럭을 회전시키고 이동하며 놀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놀다보면 클리어에 방해가 되긴 하지만, 퍼즐 게임 중 레고를 입맛대로 조립하는 듯한 느낌은 <루미네스> 만한 것이 없다. "게임을 이런 방식으로도 즐길 수 있구나"를 잘 보여준 것이다.
<루미네스>가 이런 형태를 갖춘 건 미조구치의 전작 <레즈>의 영향이 컸다. <루미네스>는 <레즈>의 메커니즘을 확장, 단순한 비트의 집합이었던 배경음을 음악으로 바꿨다. <레즈>의 효과음도 스테이지마다 다르긴 했지만, <루미네스>의 효과음은 매번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강렬한 개성을 갖췄다. 여기에 낙하물 퍼즐 특유의 중독성까지. 다양한 효과음을 음악과 어울리게 재단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2021.12.15 - [게임리뷰] - 레즈 (2001)
블럭을 빠르게 터뜨리면 상대가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이 좁아진다. 상대는 놓을 곳이 줄어들어 위기에 몰리고, 역전할 방법도 마땅찮아 스노우볼에 휘말린다. 재미있지만 태생적 한계가 느껴졌던 모드.
퍼즐 모드는 제시된 블럭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면 성공이다.
십자 모양을 정해진 시간 안에 못 만들어 실패함...
<루미네스 리마스터, 2018>는 루미네스 1+2를 하나의 게임으로 합친 게임이다.
저작권 문제로 <루미네스 2>의 음원이 일부 사라졌지만, <루미네스 2>의 다양한 모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2021.12.08 - [게임리뷰] - 루미네스 2 (2006)
<루미네스>의 부족한 게임 모드를 보완하면서 그래픽을 일신한 작품.
플레이 감각은 <루미네스> 그대로니 관심 있는 사람은 이쪽을 플레이하는 걸 추천한다. 한글패치가 없는 게임이지만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영어 못한다고 <테트리스>를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
평가 점수 ★★★★★
<루미네스>는 <테트리스>처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잡았던 것 같다.
가벼운 게임성을 지녔는데도 <루미네스>의 성취는 가히 혁신적이다. 정체에 접어든 낙하물 퍼즐 장르에 충격을 주었고, 리듬게임이 아니어도 음악을 소재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휴대용 게임기는 거치형 게임기의 마이너 버전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오래 전 <포켓몬스터>라는 좋은 반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내 편견은 PSP 발매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루미네스>는 훌륭한 단독 작품이었고, 휴대용 기기에 잘 맞는 게임성을 갖췄으며, PSP 진영에 다양성을 채워준 게임이었다.
비록 DS에게 시장에서 밀리긴 했으나, PSP는 충분히 멋진 게임기였다. <루미네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판매량, 인지도는 부족할지언정 <루미네스>의 완성도를 탓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빛과 소리를 내세운 게임 아니랄까봐, <루미네스>는 PSP를 빛낸 걸작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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