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리얼리티(VR)는 게임계의 첨단 기술처럼 보이지만, 오래 전부터 대중들에게 다가간 기술이었다. 이게 얼마나 오래된 기술인지 거슬러 올라가면,
VR을 이용해 부엌 체험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정발명 : 세계의 미스터리 미스터리 조사반, 1992년)
국내 기사에서도 가상 현실, 버추얼 리얼리티라는 표현이 1992년부터 등장한다.
기사를 읽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얘기가 비슷하다.
오큘러스 퀘스트 이전에 대중들에게 다가간 3D 게임기가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한계가 뚜렷했고, 여러 문제가 얽혀 폭삭 망하고 만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Virtual_Boy
VR을 보는 우리네 인식은 2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상 현실 체험. 상상만 해도 설레이지만 정작 VR 게임기를 구입한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VR은 게임 메카닉이 단순하고 플레이타임이 짧다. 그렇다면 VR 기기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라이트게이머는 모바일, 닌텐도(동숲, 포켓몬 등), LOL 같은 게임에 익숙하고, 코어게이머는 보다 복잡한 게임에 익숙하다. VR은 라이트게이머든 코어게이머든 어느쪽에게도 딱 와닿지 않는 제품이다.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신기한 감각. 공간을 인지하고 몰입하는 즐거움은 특별하다. 그러나 VR 게임에 적응할만하면 눈과 머리가 고통을 호소한다. 3D 멀미도 자주 보는데 하물며 VR은 말할 것도 없다. 3D 멀미를 모르는 사람조차 VR의 고통에 몸서리친다. 멀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VR의 대중화는 요원한 일이다.
오늘 소개할 <모스>는 여태껏 해본 VR 게임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임이다. 여태껏 3D 멀미를 모르고 살아와 게임을 위한 축복받은 신체를 타고났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하찮은 자존심이 <모스>를 만나고 곤두박질쳤다. 30분만 해도 눈알이 얼얼해지고, 1시간 이상 하면 통증이 몇 시간이 남는다. 심지어 다음날까지도 영향이 있어, 총 8시간이 채 안 걸리는 게임을 3주에 걸쳐 클리어했다. 이런 게임은 처음이었다. 웬만하면 플래티넘 트로피까지 따려고 했건만. 결국 트로피 수집은 포기하기로 했다.
* 이 리뷰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게임은 스샷에 보이는 풍경이 거의 전부이지만, VR 기기를 착용하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시선을 후방으로 돌리면 보이지 않던 좌석이 쭉 늘어져 있다. 게다가 눈 앞에 있는 책과 병의 질감. 후진 성능으로 유명한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사용했음에도 언뜻 보면 내 앞에 '진짜 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VR 게임이 게임 내 스샷이나 동영상을 사용하지 않는지 이 장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스샷으로 보는데도 멀미가 날 것 같다. 속은 묘하게 나쁘고, 눈알은 <모스>를 플레이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그 기억이 워낙 충격적으로 남긴 했나보다. 그저 스샷만 봐도 그때 그 기분이 떠오를 줄은...
페이지를 넘기면 책 속에서 이야기가 그림동화처럼 진행된다.
책 속의 캐릭터가 "독자가 이미 선택을 끝냈구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
플레이어는 퀼과 한 팀이 되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하늘색 원으로 표시된다. 게임 속의 플레이어는 퀼이 움직일 수 없는 사물을 움직이거나, 퀼을 회복시키기도 하고, 하이파이브도 할 수 있다. 여러모로 퀼과 상호작용하는 맛이 쏠쏠하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모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플레이어와 퀼이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나간다는 설정을 슬기롭게 표현한 게임이다.
퀼은 용감하지만 연약한 생물이다.
평균 수준의 점프력으론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
이때 플레이어가 구조물을 잡아 길게 빼주면,
문제가 해결되자 퀼이 엄지를 치켜올린다.
무사히 건너가는데 성공한 퀼.
마치 박물관의 디오라마를 게임 속에 옮겨놓은 것 같다. 디오라마(모형)는 현실의 흉내인데도 그 자체로 매력이 있듯이, 모형을 흉내낸 모형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모스>는 플랫포머 액션, 퍼즐, 전투를 버무린 게임으로, 이 중 퍼즐 파트가 가장 큰 축을 차지한다. 퍼즐의 난이도는 무난하며 때때로 창의적인 퍼즐이 눈에 띈다.
전투는 피하고 때리는 단순한 액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투 파트를 늘렸다면 참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 때로는 절제가 미덕이다.
칼을 휘두르거나 구조물을 잡아당기는 정도의 조작은 쉬운 편. 다만 플레이어가 게를 붙잡아 장풍을 쏘게 만드는 퍼즐이 있는데, 이 조작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퍼즐을 풀지 못해 막막하게 느낄 때가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알아내긴 했지만, 조작법만 확실히 알려줬어도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멋진 장면들이 많았다.
체질에 안 맞아서 문제였을 뿐.
평가 점수 ★★★
<모스>는 평범한 VR 게임보다 훨씬 나은 마감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VR 게임을 추천한다면 열 손가락 안에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모스>는 단순한 퍼즐 플랫포머 액션 게임처럼 보인다. 그러나 VR 특유의 현실감, 멋진 아트 스타일, 퀼과 플레이어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나간다고 하는 게임 메카닉을 제시함으로써 단순한 플랫포머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VR 게임도 결국은 게임의 범주 안, VR 게임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진 못했다.
<모스>가 보여준 뛰어난 색채와 조형감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매우 단순한, 시커먼 배경의 VR 게임보다도 눈에 가해지는 압박감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로 부작용이 심한 VR 게임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어찌 <모스>만의 잘못이겠는가. VR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걸 <모스>가 잘 보여주었다.
VR 기기를 벗자니 게임의 장점이 미미해지고, VR 기기를 끼자니 기술이 인간을 따라오지 못한다. 체험판이 있다면 미리 경험해보고 이 게임이 나한테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체험판이 없다. 구입하자마자 쭉 플레이해보고 이상을 느꼈다면 즉시 환불하는 게 좋다. "사놓고 나중에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치기 쉽다. <모스>가 보여준 아름다운 아트가 순식간에 고통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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