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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하급생 2 (2004)

by 눈다랑어 2021. 11. 9.

후속작은 늘 이상한 얼굴로 나타난다. 그 게임의 후속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게임은 이미 반쯤 뛰어넘었다는 듯이 플레이어 앞에 선다. 곧 도착한다는 택배 예고 문자. 벌써부터 집에 가는 게 기다려진다. 패키지를 뜯자 영롱한 CD가 모습을 비춘다. 다시 한 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젊어질 준비를 시작한다.

 

<하급생 2>는 그런 종류의 작품이다. <하급생>이 남긴 공기, 푸른 화면 속의 수다, 한 번쯤은 진짜였던 설렘의 관성. <하급생 2>는 그 관성을 등에 업고 출발한다. 그러나 출발이 빠르다고 목적지에 잘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빠른 출발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속도를 증가시킬 때도 있다.

 

<하급생 2>는 숱한 논란을 낳은 작품이다. 어쩌면 원인이 게임 바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풍이 바뀌었고, 루머에 살이 붙고, CD를 반으로 갈라 올린 사진이 일종의 의식처럼 소비됐다. 분노는 과열됐고, 어느 순간부터 직접 플레이한 사람보다 '들은 사람'이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란이 <하급생 2>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급생 2>의 진짜 문제는 훨씬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이 게임은 전작보다 나아지고자 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고쳤다. 그런데 그 "나아짐"이, <하급생>의 심장을 멈추게 만들었다.

 

2021.11.05 - [게임 리뷰] - 하급생 (1996)

 

하급생 (1996)

elf는 이제 없다.슬슬 주름을 걱정하는 아저씨나 기억하고 있을 추억의 회사이지만, 많은 성인게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년 음지의 문화였던 성인게임이, 이제는 스팀

daisy1024.tistory.com

 

 

*친절과 감정의 대립

<하급생 2>는 전작의 단점을 성실하게 개선했다. 전화와 대화, 데이트 패턴이 늘어났고, 히로인 개개인의 볼륨은 훨씬 커졌다. 그리고 일정은 빡빡해졌다. 동시공략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전작처럼 '나쁜 남자'를 권장하는 느낌은 별로 없다. 이제는 한 사람을 오래 붙잡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분명 좋은 변화다. 정말로 좋은 변화인데, 이상하게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덜 움직인다. 뭔가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데, 남는 것은 적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찾던 것은 '완성도'가 아닌 '생기'가 아니었을까.

 

<하급생>이 기묘한 게임이었던 건 정돈되지 않아서다. <하급생>의 매력은 굳이 말하면 엉성함이다. 여름쯤 되면 대화 패턴은 한계에 도달하고, 이벤트는 반복되며, 어떤 순간엔 "이게 뭐지?" 싶을 만큼 엉성하다. 그런데 그 엉성함이 오히려 생활감을 만든다. 예상치 못한 충돌과 빈틈, 플레이어는 그 틈 사이에 자기 감정을 끼워 넣는다. 딱 떨어지는 루트보다, "오늘은 뭘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선명하다.

 

<하급생 2>는 그 빈틈을 메우는 쪽으로 움직였다. 게임은 친절해졌는데 사람은 멀어졌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 구조다. 게임이 친절해질수록 잔향은 줄어든다. 잔향이 줄어든 게임은 기억에 덜 남는다.

 

이게 첫 번째 비극이다. 고치려는 의지가, 살아있는 촉감을 지워버린다.

 

 

*온기가 빠져나간 골목

레이코 뒤로 마을의 풍경이 보인다.

<하급생>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히로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말로 기억 속에 남은 건 여자들 만이 아니다. 그 작품의 동네다. 길이 있고, 장소가 있고, 시간이 있고, "여기서 누굴 만날지 모른다"는 감각이 있다.

 

<하급생>의 연애는 단순한 이벤트 묶음이 아니라, 동네의 공기 위에 얹힌 생활이었다. 어떤 연애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기억에 남고, 어떤 히로인은 방치보다 공략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게 생활이기 때문이다. 생활은 늘 무언가를 놓쳐버리고, 놓친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다.

 

<하급생 2>에도 마을이 존재한다. 이 마을에서는 지도를 눌러 원하는 장소로 워프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편리함이 동네를 '탐색의 장소'가 아니라 '이벤트 호출기'로 만든다. 특히 치명적인 건 "세계의 소음이 줄었다"는 점이다.

 

조연 남캐는 약해졌고, 연적은 희미하며, 마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임팩트가 얕다. 살아있는 동네에서 연애는 늘 누군가와 부딪힌다. 경쟁과 소문, 불필요한 오해, 우연한 목격 등이 연애를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게 만든다. <하급생>에서 관계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산다는 것"에 가깝다.

 

마찰(소문/목격/연적)이 연애를 생활로 만든다.

<하급생 2>는 부딪힘이 적다. 연애는 부드럽고 게임은 친절하다. 연애는 이제 동네의 일부에서 벗어나, 시스템 위의 루트로 고정된다. 이 차이는 작지만 치명적이다.

 

<하급생>은 연애를 '생활'로 보았다. <하급생 2>는 연애를 '사건'으로 만든다. 사건은 기억되지만, 생활은 온기로 남는다. 우리가 <하급생>을 오랫동안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사건은 아닌 것 같다.

 

* 타마키 범인설

<하급생 2>는 왜 욕을 먹는가. 십중팔구 타마키 얘기가 담론을 지배한다. 남자친구가 있고, 데이트는 취소되고, 주인공은 관계를 비집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키워드가 한데 엉겨 붙는다.

 

그런데 나는 타마키가 '나쁜 히로인'이어서 문제된 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타마키는 <하급생 2>가 무엇을 잃었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다.

 

바람맞은 타마키

타마키의 상황은 꽤 현실적이다. 연애는 늘 동시에 끝나지 않는다. 가끔 "좋게 헤어졌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별에 그런 게 있었나?" 싶다가도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가 아니라 "다친 사람이 혼자 수습했다"가 아니었을까.

 

타마키 루트가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현실성을 감당할 만큼 게임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계가 작동한다면, 타마키의 망설임은 소문이 되고, 시선이 되고, 거리감을 만들었어야 했다. 주인공 역시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기 자신'을 드러냈어야 했다.

 

표정도, 의지도 없다.

하지만 <하급생 2>의 주인공은 놀랍도록 비어있다. 타마키는 흔들리는데, 주인공은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서사를 진행하는 편의적 장치로서 쓰인다. 그래서 플레이어의 감정은 상처가 아니라 절차가 된다. 타마키 루트의 가장 중요한 결함은 '타마키의 감정 변화'가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 부재'다.

 

타마키가 로마를 의식하는 장면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로마가 타마키를 의식하는 방식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명령 수행에 가까워 보인다. 그 결과, 타마키가 로마를 선택하는 순간조차 '재건'처럼 느껴지지 않고, 플레이어가 개입한 결과처럼 느껴진다.

 

타마키는 비극의 히로인이다. 그런데 비극이 되려면 세계가 함께 아파야 한다. <하급생 2>는 그 아픔을 '개별 루트'로만 처리한다. 그녀가 욕을 먹은 건 금기 때문이 아니고, 금기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세계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 표백된 글자들

이게 정말 숙부 맞나?

<하급생>의 텍스트는 기묘했다. 때로는 웃기고 짜증나고, 오글거리다가도 한순간 멈칫하게 만든다. 가끔은 속내를 지나치게 드러내고, 가끔은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 정돈되지 않음이 인간다웠다.

 

<하급생 2>는 훨씬 담백하다. 정보 전달은 매끈해졌고, 대화는 정돈되어, 전체적으로 '모나지 않게' 설계됐다. 감정은 적절한 과장과 불필요한 농담, 때때로 쓸모없어 보이는 '의외성'을 필요로 한다.

 

<하급생>은 문장이 소음을 만든다. <하급생 2>는 문장이 소음을 지웠다. 그 차이가 플레이어가 '살았다'고 느끼는 세계의 농도를 바꿨다. 이벤트가 많은데도 기억은 희미하다. 정리된 감정은 남지만, 체험된 감정은 덜 남는다.

 

 

*<하급생 2>가 남긴 것

그런데도 <하급생 2>를 쓰레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게임이 분명히 '어딘가'를 건드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몇몇 히로인의 심리 묘사는 전작을 능가할 만큼 섬세하다. 후미처럼 상대가 남자로 보지 않는 상황에서 관계를 끌어올리는 루트는 순수한 성적 판타지라기보다, 위태로운 감정 거래에 가깝다.

 

후미, 미카

현실의 고민을 가진 히로인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우리는 늘 게임이 현실을 외면해주길 바라지만 모든 게임이 그럴 필요는 없다. 어떤 게임은 한 번쯤 "그래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급생 2>가 가진 장점은 여기에 있다. 이 게임은 관계가 '끝'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히로인을 쟁취하고, 엔딩을 보고, 수집률 100%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의지 자체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존중과는 별개로 게임은 별 두 개다. 완성도는 미묘하고, 미니게임은 빈약하며, 동네는 얇팍하다. 무엇보다 <하급생>이 가진 '살아있는 동네의 기척'을 잃었다. 관계는 벌어졌는데, 관계가 동네에 남기는 흔적은 희미했다.

 

<하급생 2>는 전작의 단점을 대폭 개선했다. 그러나 전작의 특유한 재미를 캐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 게임은 어떤 의미에서 '좋아질수록 하급생이 아니게 된 작품'이 된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하급생 2>의 실패 이후, 많은 연애 게임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기 시작했다. 금기가 없는 장르에서 금기가 생겼다. 히로인은 더 안전하게 보호됐고, 상처는 현실 대신 소비의 불쾌함으로 전환됐다. 연애는 깨끗이 포장되어 식탁 위에 놓였고, 대가로 질문을 바쳤다.

 

그래서 <하급생 2>는 이상한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완성도는 불안정하고, 재미는 미묘하다. <하급생 2>의 실패는 시대의 문을 닫아버릴 정도로 큰 상처를 남겼다.

 

나는 이 게임을 미워하기보다 아쉬워한다. 더 나은 게임이 되고 싶었던 노력이, '하급생'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동네의 소음, 문장의 향취, 서로가 서로를 스치며 생기는 '살아있는 세계'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점수는 짜지만, 이 게임은 완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평가 점수 ★★

후속작은 본질적으로 전작의 변주에 불과하다. <하급생 2>는 어떤 의미에서 전작을 앞질렀으나, 창작의 원동력이었던 야성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하급생 2>가 끝까지 슬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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