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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팬저 드래군 (1995)

by 눈다랑어 2021. 7. 10.

젤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는 나쁜 게임을 언급해달라는 요청에 젤다의 전설 2를 꼽았다. 이유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결과물이 나와 아쉽다는 것.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새턴은 하드웨어다. 개발은 이미 최종 단계에 이르렀고, 콘솔의 개발 목적을 바꿀 정도의 변화는 불가능했다.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플레이스테이션을 보고 급작스럽게 3D 능력을 향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프로그래밍이 어려워져 서드파티가 진입하기 힘들었고, 3D 구현 능력조차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떨어졌다.

 

많은 이들이 새턴 vs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쟁에서 <파이널 판타지 7, 1997>의 파급력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새턴에는 콘솔 판매를 견인할 만한 게임이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를 들춰보면 처음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애당초 새턴 진영에서 좋은 게임이 탄생하는 게 어려웠던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세가가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 건 분명하다. 신나게 손가락질 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세가 같은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나?" 세가의 실책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실수이기도 하다. 

 

 

* 한국에서의 새턴

더보기

삼성 새턴이란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정발판 새턴은 보따리장수가 팔던 일본판 새턴보다도 2배 이상 비쌌으며, 북미판 새턴을 들여오는 바람에 일본판 게임들이 돌아가지 않았다. 당연히 팔릴 리가 없었다. 경쟁자가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는 점도 컸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었고 서드파티도 우수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불법복제 칩을 달아 저렴한 가격으로 수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다보면 이 얘기가 꼭 나온다. 다른 나라도 피해가 컸겠지만 한국에서의 플레이스테이션은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개인 경험이지만, 주변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가진 사람 치고 불법 복제 칩 없이 플레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품 CD는 CD 뒤쪽이 까맣다는 것도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로 남았다. 플스만 그랬나? 새턴도 마찬가지였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웃픈 시절의 얘기다.

 

 

3D에 취약한 콘솔에서 나온 3D 거장의 게임, 참 아이러니한 조합이다.

새턴은 2D 게임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세가가 가장 돋보였던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케이드 3D 게임이었다. 세가는 최첨단 3D 그래픽의 선두주자였으며 자사의 아케이드 흥행작을 가정용으로 이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 기묘한 조합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막상 뚜껑을 까보면 그래픽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프닝 무비만 7분 30초 정도. PS1판 <크로노 트리거, 1999>의 오프닝도 장대했지만, <팬저 드래군>과 달리 2D 애니메이션이었던 데다 3분 정도의 분량이었다. <팬저 드래군>의 오프닝 무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용을 타고 비상했다가 바다가 눈앞에 들어왔을 때의 감동.

지금 보기에는 조악한 그래픽이지만, 연출 자체는 훌륭하다.

 

캡처로 보니 볼품이 없다.

 

확실히 이 시대 게임은 스크린샷으로 이미지가 잘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3D 과도기이니 어쩔 수 없지만.

 

<스타폭스, 1993>는 3D 슈팅의 선구자였지만, 요즘 게임들처럼 조준점을 보정해주는 기능이 없었다.

<팬저 드래군>도 마찬가지다. 오토 에임 기능이 나온 건 1997년 이후의 일이다. 대체 어떻게 <팬저 드래군>에 오토 에임 기능을 추가한 걸까?

 

(1) 슛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슬라이드하듯이 조준한다.

(2) 조준한 곳에 하늘색으로 된 조준선이 생긴다.

(3) 버튼을 놓는다.

(4) 레이저가 발사되어 적을 격추한다.

 

대충 주르륵 긁고 발사하는 재미가 있다.

레이저 발사!

이것이 <팬저드래군>의 묘미.

 

우측 상단에 미니맵이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노란 점들은 바로 적 표시. 

적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알 수 있다. 

 

시점 변경은 전후좌우로만 가능하다

버튼 조작으로 시점을 바꿀 수 있다. 미니맵을 잘 보면서 시점을 바꿔 적을 격추한다. 지금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이 게임에서 시도된 개념들이 많다.

 

이게 정녕 3D 젬병 새턴의 게임이란 말인가.

 

새턴 3D 게임 아니랄까봐 불안정한 부분도 보인다.

스샷에 보면 녹색 대지에 허여멀건한 것이 미세하게 보인다.

처음엔 지형지물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앞으로 가니 비행기 같은 물체가 보인다.

 

바로 다음 장면

왼쪽에 포대 같은 것을 장착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적어도 적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야 쏠 거 아닌가. 배경과 적군기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구분이 안 되는 장면이 많다. <스타폭스>는 기체의 모습이 단순했기에 구별이 상당히 쉬웠다. <팬저 드래군>의 화려한 연출은 언뜻 매력적으로 보이나, 곱씹을수록 문제가 보인다는 단점도 있다.

 

암기해야 깰 수 있는 패턴이 존재

포탄 날리기는 적들이 곧잘 사용하는 패턴이다. 포탄을 공중에서 격추할 수는 있지만, 포탄을 빠르고 많이 발사하기 때문에 모든 포탄을 터뜨릴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포탄이 발사되자마자 아래로 쭉 내려서 피하고, 2차 포탄이 발사되자마자 위로 쭉 올라가야 피할 수 있다.

 

100% 클리어 영상, 36분 15초부터 (어레인지 버전)

"전에 포탄을 쏴서 대응했으니 이번에도 그대로 하면 되겠지"

그리 생각했다가 바로 얻어맞았다.

 

"아 이게 아닌가 보다, 피하자."

 

보고 피했는데 또 맞았다.

"어? 이게 아닌가?"

 

공략을 보니 아예 포탄이 발사되자마자 피해야 한다. 포탄이 날아오는 걸 보고 피하면 늦는다. 평면 상의 암기 패턴은 죽은 후에 "아 이건 암기형 패턴이구나" 인지하기 쉽다. 그러나 <팬저 드래군>은 이게 암기형 패턴인지 보고 피할 수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이런 식의 불합리한 패턴은 초대 <스타폭스>에서도 종종 보인다. 화면에 안 보이던 미사일이 어디선가 날아와 맞는다든지,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맞는다든지. 요즘 게임에 익숙해진 탓인지 화가 나는 디자인이다.

 

'몬헌어'처럼 '팬저어'라고 부르는 고유 언어가 있다

나름대로 세계관을 중시한 게임 같은데, 어떤 이야기인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아 감질맛이 난다.

 

플레이 타임은 1시간 정도, 당시 게임들이 분량이 적다는 걸 감안해도 상당히 짧다.

쉬운 규칙, 경쾌한 액션성, 짧은 플레이타임 등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아케이드 게임이다. 가정용인데 왜 아케이드 게임처럼 만들었을까? 재차 플레이해도 난이도 높이기, 격추율 100% 빼고는 노릴만한 게 없다. 추가 요소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케이드 게임이 가정용으로 *초월이식되는 것은 1995년에 거의 없는 개념이었다.

그전에도 SFC판 에어리어 88(1991) 같은 게임이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초월이식이 자리 잡은 건 PS1판 철권 2(1996), 소울 엣지(1996)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덕분에 PS1판 철권3(1998)는 알찬 싱글 컨텐츠로 무장할 수 있었고, 플레이스테이션 자체의 판매량을 견인할 만큼 대성공을 거둔다. <팬저 드래군>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선보였지만, 가정용 게임으로서의 혜안은 부족했던 것 같다.

 

(*초월이식 : 원판을 그대로 살리면서 추가 요소를 붙여 이식하는 것)

 

SEGA AGES 프로젝트

세가는 SEGA AGES라는 브랜드로 자사의 고전게임들을 이식하고 리뉴얼하는 작업을 해왔다.

SEGA AGES vol.27에서는 팬저 드래군이 발매되었으며 새턴, 어레인지 버전을 둘 다 플레이할 수 있었다. 어레인지 버전은 지금의 HD 리마스터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2D 슈팅 중에 벌레공주님(2004)이란 게임이 있다. <벌레공주님>은 2005년 어레인지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기본 규칙이 달라지고, 패턴에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시도가 엿보인다. 기존 <벌레공주님>의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것이다. 그에 비해 <팬저 드래군 어레인지>는 어떨까. 

 

난이도를 좀 더 세부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고, 에피소드를 골라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일러스트레이션(ILLUSTATIONS)에서는 설정화를 감상할 수 있음.

 

그래픽이 깔끔해진 것 외에는 장점이 없다

설정화에서 UI 표시를 끄는 기능이 없어 아쉽다.

'어레인지'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이게 왜 어레인지인지 보면서도 잘 모르겠다.

 

2020년 <팬저 드래군 리메이크>가 발매되었다.

선명해진 그래픽 덕에 사물을 파악하기 쉬워졌다.

 

요즘 게임치곤 어설픈 3D지만, '이 정도면 됐지' 라는 심정이었다.

여기까지는.

 

없던 걸 이것저것 늘려 배경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없으니만 못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원작 스테이지 1은 신비함, 허망함이 느껴지면서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나온다. 처음 팬저드래군 1 스테이지를 봤을 때 찌릿찌릿했던 감동이 없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새턴 vs 리메이크 비교 영상

그래픽은 직접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쓸쓸한 감성 만큼은 예전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이 느낌을 잘 재현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스테이지 만큼은 바뀐 게 낫다.

눈이 덜 아프고 적, 지형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음.

 

분명 사막인데 질감이 이상하다.

이게 정녕 2020년의 게임이란 말인가.

 

분명 물인데 푸딩이나 젤리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

게임의 분위기를 재현하기는 커녕, 아케이드 슈터로서의 즐거움도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밋밋하게 표현된 사물들.

 

동영상에서 표현된 사막

인게임 사막이 이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것을.

 

리메이크 작의 설정화를 감상할 수 있다

SEGA AGES 시절보다 볼 거리가 풍부해졌다.

 

설정화는 멋진데 구현 능력이 영...

 

관람 중에 그림자가 비친다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했는지 관람 기능이 형편없다. 우측 하단에 B RETURN 글자가 옅게 보이는데, UI 끄기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서 생긴 참사. 게다가 일정 시간마다 드래곤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림 좀 감상하겠다는데 방해가 왜 이리 많은 거야? 

 

판도라 박스 (치트키 활성화)

게임을 클리어하면 히든 커맨드를 알려준다.

커맨드를 입력하면 무적, 연사 등 치트 기능이 개방되지만, 잠깐 해보고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게임을 여러번 플레이하게끔 유도하는 컨텐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새턴 시절의 짧은 분량은 시대를 감안할 때 이해가 간다. 이 게임은 2020년에 나온 리메이크작이다. 추가 요소는 설정화 감상, 치트키 활성화, 촬영 기능뿐. 이런 걸 리메이크로 팔다니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걸까?

 

 

 

 

 

팬저 드래군 

평가 점수 ★★★★

<스타폭스>를 답습한 아류작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수작. 탁 트인 바다와 함께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시점 변경과 록 온 공격, 멋진 시네마틱까지. 레일슈터의 종합선물세트로 충분하다.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주긴 했지만, 플레이타임이 짧고 리플레이 가치가 낮다. 왜 하필 가정용 콘솔로 출시한 걸까.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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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군 리메이크

평가 점수 ★★

왜 레즈 인피니트(2015)를 참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은 리메이크, 레일 슈터라는 점에서 굉장히 흡사하지만, <레즈 인피니트>는 VR로 개발되었고 <팬저 드래군>은 시대를 역행하는 그래픽을 선보였다. VR이라면 그래픽이 열악하더라도 낮은 해상도로 감추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새턴판 <팬저 드래군>도 그랬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매우 조악하지만, 게임 플레이 도중에는 조악한 그래픽이라는 걸 잘 느끼지 않게 감춘 게임이다. 눈속임도 능력이다.

 

VR 게임이었다면 시점을 네 방향으로 제한할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보는 곳을 보게끔 디자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히 예상해보건대, VR이 없던 시절에 VR 같은 느낌을 주고자 네 방향 시점 변경 같은 궁여지책이 나온 것 같다. 원작 <팬저 드래군>의 감각을 현대화하려면 VR 게임으로 개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결과물은 보다시피 이 모양이다. 옛 팬, 현세대 게이머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타이틀이다. 이게 정녕 최선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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