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일보(정발명 : 더 화이팅)는 왕따 소년 일보가 프로복서 마모루를 만나면서 자신을 바꾸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려낸 복싱 만화다. 연재 중반까지만 해도 인기가 많았으나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지금은 인기, 평가 모두 크게 떨어졌다.
<시작의 일보 더 파이팅!>은 원작 만화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나약했던 일보가 "강함이란 뭘까"를 고민하며 복싱계에 투신, 챔피언 벨트를 따기 위해 고군 분투하는 과정을 그려낸 GBA 게임이다.
트레저는 <건스타 히어로즈, 1993> <가디언 히어로즈, 1996> <실루엣 미라주, 1997> 등 훌륭한 액션 게임을 만들어낸 회사였으나, GBA는 휴대기기였기 때문에 액션을 100% 활용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원작이 있는 게임이라니.
원작 기반 게임은 원작의 인기에 기대어 완성도가 형편없는 게임이 많았다.
이 게임은 어떨까, 트레저 이름값을 톡톡히 했을까?
* 확대 사진 화질이 떨어지는 점 양해 바랍니다.
우선 스토리 모드부터 살펴보자.
스토리 모드는 어디에서 몇라운드로 붙었다더라 정도만 나오고 시합 종료 후 간단한 코멘트가 나올 뿐이다. 원작 스토리대로 시합 상대가 정해지는데,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통 알 수가 없는 전개다. 인물들의 관계나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몰입할 것 아닌가. 여기까지는 캐릭터 게임이니 그렇다 치자. 더 파이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이 게임을 할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원작 팬들이 불타오를 연출을 보여주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이 게임은 격투게임처럼 공방을 주고받는 심리전이 핵심이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 2, 1991> 같은 2D 격투게임은 아니며, 스포츠에 충실한 시뮬레이션 게임인 것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격투게임으로 볼 수도 있고, 액션 게임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것 같다.
* 규칙 설명
ⓐ 게임 최상단의 검은색 큰 막대기 = 체력
ⓑ 체력 밑의 SPIRIT를 소모해 특별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음
ⓒ 가운데쪽의 빨간 표시선 이상으로 데미지를 받으면 다운됨
ⓓ 다운 시 10 카운트를 세서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패배
ⓔ 1라운드에 3회 다운되면 패배
ⓕ 모든 라운드가 끝나도 승부를 내지 못하면 판정승을 매김
ⓖ 좌측의 IPPO 밑의 회색 막대기는 상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표시
ⓗ 우측 하단의 R1 1:33은 1라운드, 1:33초 남았다는 것을 표시
원작에선 복싱 초짜 일보의 럭키펀치가 체육관 최고의 유망주 일랑의 턱 끝을 스치면서 TKO를 따내고, 이에 충격받은 일랑이 다른 체육관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라이벌리가 형성된다. 게임 내에는 그런 설명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원작 팬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스토리다.
시합이 끝날 때마다 코멘트가 나오며, 시합에서 승리하면 약간의 포인트를 준다.
모은 포인트는 커스터마이즈 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 원작에서 배운 기술들을 그대로 배운다.
마시바 전을 앞두고 리버 블로(간장치기), 볼그 전에서 가젤 펀치를 습득한다.
마시바는 리치가 길어 접근이 까다롭지만, 일보는 단 한 번의 접근 만으로도 핵 펀치를 꽂아 넣을 수 있다. 마시바에겐 접근하는 일보의 얼굴이 호러 무비처럼 보였을 것이다.
최대한 길게 플레이해도 12분이면 스토리 모드 엔딩을 볼 수 있다.
놀 거리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스토리 모드는 제쳐두고 시스템 얘기를 해보자. 노란색 대미지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회복되며, 빨간색 대미지는 영구적으로 누적되는 방식이다. 빨간색 대미지를 입히려면 보디 블로만한 게 없다. 작중에서 보디 블로를 필살기로 쓰는 캐릭터는 일보 뿐. 왜 일보가 접근전 특화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잽은 발동 프레임이 빨라 내밀기 좋지만, 빨간색 대미지를 쌓을 수 없고 위력이 약하다.
잽은 최대 2회까지 연달아 콤보로 넣을 수 있다. (일부 캐릭터 제외)
필살기는 R키를 누른 상태에서 상하좌우 B를 눌러 사용하며, 게이지(SPIRITS)를 소모해야 한다.
기술 커맨드는 대부분 공통 커맨드이므로 다른 캐릭터의 조작을 익히기가 매우 쉽다.
대전 액션 게임은 입력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이 게임은 입력이 상당히 편한데, 격투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선입력을 잘 먹는 데다가 *R키를 미리 눌러놔도 입력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즉, 조작이 상당히 편하다.
(R키 : 필살기를 쓸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키)
십자가드는 일반가드의 상위버전으로 [R + A + ←] 키를 입력하면 발동이 된다.
일반적인 격투게임이었다면 3키를 동시입력해야 기술이 나가겠지만, 이 게임은 미리 [R]키를 눌러놓은 상태에서 [A + ←]를 눌러도 기술이 나간다. 편하다 편해.
원작에서도 십자가드가 나오지만 이 게임에서는 십자가드가 일반가드의 완벽한 상위호환으로 표현되었다.
게임적 허용이겠지만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커맨드 리스트를 쭉 내려보면 콤보를 확인할 수 있다.
콤보는 잽 1~2타로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며, [B, B, ←B, →B, ↑B] 정도만 익혀도 큰 문제가 없다. *선입력을 잘 먹기 때문에 커맨드를 리듬게임 마냥 딱딱 타이밍 좋게 넣을 필요도 없다.
(*선입력 : 커맨드를 타이밍에 딱 맞춰서 쓰지 않고, 미리 입력하여 커맨드를 편하게 사용하는 입력 방식)
대미지를 세게 넣으려면 ←B, B, B, B, B 혹은 ←B, B, B, ↑B, B를 익혀두면 좋다.
이 게임이 잽 위주로 돌아가는 데엔 이유가 있다.
잽은 가장 발동이 빠르므로 동작이 큰 라이트 펀치보다 훨씬 안전한 선택지다.
또한 잽으로 시작하는 콤보를 써도 마무리를 필살기로 끝내면 대미지가 꽤 쏠쏠하다.
(*강제연결 : 모션을 캔슬하고 콤보를 넣는 대전격투게임 용어)
필살기를 사용하면 잠깐 컷신이 나온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가드가 되는 방식.
철권 시리즈의 가드 방식과 비슷하다.
가드 상태로 상대 공격을 막아내면 글러브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시뻘개지면 가드가 깨지면서 몇 초간 가드 불능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일정 시간 동안 대미지를 받지 않으면 가드가 다시 회복된다.
A키를 누르면 가드를 내리는 동작이 나오며, 잠시 회피 상태가 된다.
회피 상태에서는 상대 공격을 헛치게 할 수 있으며, 상대 공격이 회수될 때까지의 틈을 노려 확정 반격을 넣을 수 있다. (윕 퍼니시)
다만 연속으로 쓰기에는 틈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가드법은 아니다.
이 게임은 상대 공격을 가드한 후 *확정 반격하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가드를 해봤자 이득이 별로 없고, 계속 가드 당하면 가드가 깨지므로 공격적인 선택지를 골라야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회피를 사용하게 된다.
(*확정 반격 : 확정 반격 또는 퍼니시로 불리는 격투게임 용어)
이 정도로 빨간 대미지가 쌓이면 재기하기도 힘들다.
대미지가 회복되지 않아 가벼운 공격을 맞아도 다운되기 일수.
그로기 상태가 되면 *뎀프시롤을 넣을 수 있지만, 정작 일보의 펀치력이 너무 강해서 그로기 상태를 보기가 어렵다. 명색이 일보를 대표하는 기술인데 쓰질 못하니...
( *뎀프시롤 : 준비시간이 긴 필살기, 그냥 쓰면 아무도 안 맞아준다.)
토너먼트 모드에서 일보가 뎀프시롤을 하며 접근하는 모습.
저걸 맞으면 삼도천 가겠지만 일랑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뎀프시롤 첫 타가 나올 타이밍에 R+A+B를 입력!!
카운터는 일랑(미야타), 사와무라 둘 만이 사용하는 전매특허 기술이다.
그 중에서도 일랑이 사용하는 졸트 카운터는 게임을 반쯤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치고받는 공방도 잘 되어있고, 그래픽도 꽤 박력있게 표현되있고, 캐릭터 음성이나 필살기가 구현되어 있는 등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 물론 원작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기대했다면 제법 실망할 수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은 할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스토리 모드를 깨고 각 캐릭터별로 토너먼트 모드를 즐겨도 플레이 타임은 2~3시간 남짓. 캐릭터를 생성해서 플레이하는 커스터마이즈 모드가 있지만, 정작 커스터마이징 자유도가 거의 없어 기존 캐릭터의 업그레이드, 다운그레이드 버전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일랑과 마시바의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일랑을 베이스로 고르면 일랑이 배우는 기술만을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캐릭터를 육성해서 LV9를 달성하면 난이도가 급감하기 때문에 몇 대 때리면 알아서 눕는다. 캐릭터를 열심히 키워봤자 써먹을 데가 없어 허무함만 남을 뿐이다.
남은 건 VS모드에서 개사기 캐릭터를 사용하는 것 뿐인데, GBA는 대전을 즐기기가 어려운 게임기였다. 지금처럼 무선 인터넷이 아닌, 게임기끼리 케이블을 연결하여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그나마 포켓몬스터 시리즈처럼 정적인 턴제 게임이라면 모를까, 치고받는 액션 게임이라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이 게임은 5,500엔에 출시되었으며 당시에도 분량이 적은 축에 속했다. GBA는 출시 직후부터 에뮬레이터가 상용화된 희대의 게임기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싸고 애매한 게임을 구입하여 통신대전을 즐긴 플레이어가 얼마나 될까.
최근에는 GBA 에뮬레이터 기능이 발전해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대전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파이트케이드처럼 서버에 들어가서 편리하게 대전할 수가 없으며, 상대 ip를 입력하여 플레이하는 불편한 방식이다. 게다가 유저풀이 없어 상대를 구하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연유로 VS모드를 늦게나마 해보려고 하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해보지 못하고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다.
평가 점수 ★★★
게임 규칙이 간단하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다.
트레저에서 만든 게임답게 좋은 점이 있지만, 만들다 만 이 느낌을 어찌 말하면 좋을까.
<시작의 일보 더 파이팅!>은 아케이드 게임 같은 만듦새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오락실처럼 대전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즐길 싱글 모드도 빈약하다. 포지션을 애매하게 잡은 만큼 애매한 게임이 나온 것이다. 캐릭터의 무브 셋 또한 비주얼적인 차이만 있을 뿐, 각 캐릭터 별로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하기에는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더 파이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해볼 만한 게임이지만, 트레저 게임치고는 실망이 크다.
원작 팬이 아니라면 이런 게임도 있었구나 하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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