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은 90년대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회사였다.
요즘 캡콤은 액션 명가로 통하지만, 슈팅, 플랫포머, 성인용 마작, 포커게임, 퀴즈, 호러, 어드벤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해온 회사다. 특히 벨트스크롤 액션과 대전 격투는 캡콤의 손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2와 함께 원더 3(수출판 : 쓰리 원더스)를 시장에 내놓았다. 원더 3는 "네가 원하는 게임을 셋 중에 골라서 해라" 라는 취지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 하나에 여러 게임을 담는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이렇게 들어간 게임들은 대개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합본 게임에 게임 3개 들어갔다고 개발 비용을 3배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예전 기억을 더듬어 봐도 합본 게임들은 제대로 된 녀석들이 없었다.
게임 수를 억지로 맞추는데 급급해 정상적인 실행이 불가능하다던가, 세이브 지원을 안 한다던가, 저작권 쌩까고 해적판으로 내놓는 게 대부분이었다. 엉망진창이라고 욕 무지하게 먹었던 <액션 52, 1991>도 그런 게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캡콤은 저질 합본팩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남들이 52, 64, 76개나 되는 게임을 팩 하나로 즐길 수 있다고 선전했을 때 캡콤은 꼴랑 3개의 게임으로 합본 게임을 내놓았다. 52개와 3개, 숫자만 보면 52개 쪽이 압도적으로 좋아보인다. 그러나 3개의 게임을 모두 준수한 수준으로 출시한다면 어떨까?
건 슈팅, 플랫포머, 액션 장르의 게임이다.
흔히 <원더 3>라고 하면 루스터스를 지칭하는 편이고, 개인적으로도 이 게임의 완성도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전진하면서 몹을 해치우면 되는 심플한 구성이다. <원더 3>에도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는데, 루스터스는 전편, 채리엇은 후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루스터스의 일본어 명칭은 루ー스타ー즈(ルースターズ)로 적혀있지만 루스타즈의 영문 표기가 Roosters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루스터스로 표시하기로 한다.
루스터스에서 승리한 주인공 일행이 채리엇을 손에 넣어 새로운 악마들과 싸움을 벌이는 스토리.
폭탄 개념이 없고 꼬리에 달려있는 스톡을 소모해(최소 3개 이상 활성화되어야 사용 가능) 파워 슛을 쏠 수 있다. 게임 자체는 준수하지만, 난이도가 높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래저래 루스터스와 비교되는 게임.
블럭을 밀어 슬라임이나 공룡 친구들을 압사시켜 버리는 무서운 퍼즐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세가의 <펭고, 1982>와 유사하며, 캡콤의 초창기 게임 <히게마루, 1984>를 떠올리게 한다. 채리엇 이상으로 난이도가 살벌하다. 후반부 스테이지로 갈수록 퍼즐보다 액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단히 괴로운 양상이 된다.
원제는 돈 프루(ドンプル)로 내수판 이름과 수출판 이름이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구도나루도(맥도날드)의 예로 알 수 있듯이, 일본어로 외국어를 표기하면 뭘 의도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글에서는 돈 프루 대신 돈트 풀로 표시하기로 한다. 이상으로 각 게임별 소개를 마치고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인트로 장면에서는 대략적인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의 소개를 보여준다.
신과 가이아의 싸움, 싸움 끝에 악마의 성에 봉인된 채리엇. 한 남자가 주인공 일행(루스터스) 앞에 나타나 채리엇의 봉인을 해제하려면 악마의 성 최상층에서 태양의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며 카드를 건넨다. 채리엇의 봉인을 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1P로 시작하면 루, 2P로 시작하면 시바로 시작한다.
OPTION이라고 적혀있는 걸 손에 넣으면 옆에 하수인이 생긴다. 처음에는 소형이지만, 한 번 더 얻으면 대형 하수인이 된다. 하수인의 종류로는 아카비, 코린, 시분이 있으며 각각 공격형태가 다르다.
공격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모으는 시분. 유도 공격이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연사 공격이 불가능한 유닛이지만 이 게임에선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아마 가장 좋은 하수인이 아닐까.
웍! 이라는 기합과 함께 공을 쏘는데, 잘 보고 점프하면 그만이라 쉬운 녀석이다. 루스터스의 보스들은 대부분 나사가 빠졌기 때문에, 오히려 보스에게 가는 길목을 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1-1에 비하면 어렵지만 난이도가 쉬운 편이다.
<원더 3>는 국내 기준으로 주로 문방구 앞에 설치되어 있어 초딩들이 즐겨 했는데,
대부분 스테이지 2 정도는 쉽게 깨곤 했다.
보스를 쓰러뜨리면 폭발하는 연출과 함께 카드가 흩뿌려진다.
카드를 100개 모으면 목숨 하나를 얻는다. 점수 벌이용 아이템 같은 허울뿐인 전리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리품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옛날엔 얘가 최종 보스인 줄 알았다.
중간 중간에 스토리를 보여줌.
명을 받고 힘쓰러 가는 부하들.
두 번째 스테이지는 수중 맵이다.
<소닉 더 헤지혹, 1991>처럼 물에 오래 있는다고 해서 숨이 막혀 죽는 일도 없고, 움직임에 큰 제한도 없다. 수중 맵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루 옆에 있는 하수인은 코빈이라는 녀석인데, 위에서 밑으로 공격을 깔아주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는 꽤 쓸모가 있다.
물 속에 잠겨있던 비행정이 급격히 부상한다.
물 바깥으로 나오면서 전투 시작.
두 명이 공격하기 때문에 다른 보스에 비해 까다로운 움직임을 보인다.
얘들도 두 명이지만 2-2보다 훨씬 쉽다.
스샷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루가 테일(부메랑)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무기는 반대쪽으로 튕기는 습성이 있어 쉽게 공략할 수 있다. 원더 3의 무기는 기본, 하이퍼, 바운드, 테일, 슈퍼 다섯 종류가 존재하며, 주로 바운드(바나나 무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겉보기엔 하이퍼가 강해 보이지만 연사 속도가 느려 그다지 좋지 않다.
땅이 무너져서 죽는 스테이지.
이어하기를 하면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가볍게 왔었는데 오랜만에 하니 동네 초딩보다 못하는 것 같다.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대검을 내리찍는 3-2 보스. 괴상하게 생겨서 그런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기서부턴 삐에로 박스가 등장해 사람을 열받게 한다.
강해보이는 인상과 달리 생각보다 약한 보스.
하늘에서 가시를 사방에 뿌리는 패턴만 피하면 완전 호구 같는 놈이다.
오른쪽 지구본이 신과 싸웠다는 가이아의 모습.
보통 가이아라고 하면 대지의 신, 자애로움, 풍요로움, 어머니 같은 이미지인데 이 게임 가이아는 완전 사악하게 생겼다.
1-2 보스의 재탕, 구덩이에 끼는 동작이 없어져 생각보다 어려워졌다.
멧집이 세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재탕 보스가 연이어 나오니 다소 성의없어 보인다.
이 시대에는 이런 게 흔하긴 했는데, 제작사가 캡콤이라 기대치가 높았나 보다.
가이아와 최후의 대결.
태양의 카드를 사용해서 채리엇의 봉인을 해제하는데 성공.
나무로 변한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루의 여자친구 세라를 나무형벌에서 구해냈다.
저렇게 한쪽 팔을 잡고 날아가면 팔이 빠지지 않을까?
루스터스는 쉬운 난이도와 재미있는 게임플레이로 명성을 떨쳤지만, 안타깝게도 몇 가지 하자가 보인다.
첫 번째는 레벨 디자인이다. 스테이지 4에서 스테이지 5로 넘어갔을 때의 난이도 상승이 과도하게 느껴진다. 게임 자체가 쉽다보니 스테이지 4까지 가는 꼬마들도 심심치 않게 봤던 게임인데, 스테이지 5를 깨는 꼬마는 본 적이 없다. 쉬운 게임이라는 게 후반 스테이지에서 독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스테이지 5에서 재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전에 등장했던 적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다보니, 후반부에는 단조롭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세 가지 게임을 하나의 게임으로 개발하다보니, 제 아무리 캡콤이라도 타협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치고는 제대로 된 엔딩 연출이 나온다는 것도 흥미롭다. 어쨌든 이렇게 루스터스 편이 끝났다. 이제 채리엇을 타고 새로운 악마를 사냥할 시간이다.
꼬리에 용수철 같은 게 붙어있는데, 잠깐 있으면 꼬리에 알아서 스톡이 쌓인다.
이 스톡을 3개 이상 해방해서 강력한 공격을 날린다. 스샷 우측 상단의 파란 에너지파, 아래쪽의 빨간 원이 바로 스톡을 해방해서 쏘는 파워 슛이다.
채리엇의 무기는 두 종류가 있다.
빨간 무기)
일반 공격 : 넓은 범위
파워 슛 : 좁은 범위
초록 무기)
일반 공격 : 좁은 범위
파워 슛 : 넓은 범위
루 앞의 작은 적녹색 공을 먹으면 꼬리 스톡이 늘어난다.
스톡이 늘어나면 재사용 대기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DPS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꼬리에 스톡이 차 있는 상태에서 적이 닿으면 데미지를 입는데, 이걸 이용해서 뒤에 있는 적을 처리할 수 있는 게 재미있다.
파워 슛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초보자 친화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긴 하지만, 겉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속은 그렇지 않다. 초보자는 커녕 웬만한 슈팅 경험자도 원 코인으로 깨기 힘들다.
채리엇에서는 별자리 보스가 많이 등장한다.
첫 인상은 간사하게 웃는 것 같은데,
싸우다보면 악마같은 몰골로 변한다.
루스터스의 스테이지 4 보스.
채리엇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시 낙하 패턴을 사용한다.
적 재탕은 여전하다.
루스터스를 하고 와서 그런진 몰라도 재탕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몇몇 맵에서 채리엇을 보호하는 배리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나마 최종 보스는 재탕하지 않았다.
이것까지 재탕하면 선 넘지.
악마에게 납치된 여왕을 구출하는데 성공
채리엇은 난이도가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다.
물론 코인 러시를 하면 깨겠지만, 패턴 이해 없이 깨면 게임의 설계 의도,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힘들다. 게다가 중간중간 맵이 휑하니 느껴질 정도로 배경과 적군과의 조화가 상당히 아쉽다. 난이도에 학을 뗄 때쯤 재탕 몬스터까지 나오는 건 덤.
보스 러시가 많다는 걸 빼면 전반적으로 무난한 슈팅 게임이다.
<그라디우스> <알타입> 같은 게임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는 퀄리티지만 합본 게임에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도 저질 합본 게임에 데여서 그런가,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Don't Pull을 확인해보자.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블럭을 밀어서 직선상의 모든 적을 압사시키면 된다. 꽤 재미있는 방식 같지만 모티브가 있는 게임이기에 창의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오히려 플레이의 즐거움만 놓고보면 <펭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펭고>는 적이 끊임없이 젠되며 ☆ 모양의 블럭을 세 개 연이어 늘어놓는 것이 목표. 단순하게 모든 적을 없애는 것보다 블럭을 잘 움직여서 ☆☆☆(별 3개를 이어붙이는) 상황을 만드는 게 더 퍼즐 게임 답긴 하다.
캡콤은 <펭고>와 비슷한 게임으로 <히게마루>를 만들었는데, 블럭을 들고 다니면서 던질 수 있게 만들어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편해졌다. <펭고> <돈트 풀>은 구석에 몰리면 답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시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안타까운 점은 <돈트 풀, 1991>이 <펭고, 1982> <히게마루, 1984>보다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분명 그래픽은 깔끔하고 예쁜데...
적이 많고 빠르며 승리조건이 다양한 게 특징.
주로 모든 적을 처치하거나 제한시간까지 버텨 클리어할 때가 많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전개는 기대하기 힘든데, 적들의 속도가 플레이어 캐릭터보다 월등히 빠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이 다가오는 걸 보고 블럭 뒤로 돌아가서 압사(블럭 밀기)를 노리는 게 굉장히 어렵다.
15 라운드까지 클리어하면 모든 라운드를 클리어했다고 나온다.
계속 죽으면서 지루한 틈에 잘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듯한 엔딩도 없는 데다 추가로 보너스 스테이지가 있고, 20스테이지까지 끝냈지만 끝이 보이질 않자 멈췄다.
어이없는 게임이지만 시스템이 글러먹은 것 같진 않다. 플레이 방식은 <펭고> 그대로지만 승리 패턴을 다양하게 추가했다는 것 만으로도 다채로운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형편없는 레벨디자인과 안전 장치 없는 시스템은 제대로 테스트를 해보고 출시한 건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 게임의 난이도는 살벌하다. 적들이 나와 같은 속도로 따라오면 적을 뿌리칠 방법이 별로 없다. 그나마 <펭고>는 벽을 밀어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지만, 돈트 풀은 그마저도 없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점점 적들이 빨라진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제한시간을 견디면 클리어하는 시스템이 있는데도 써먹기 힘든 것이다. 덕분에 장점은 묻히고 단점은 도드라진다.
돈트 풀은 맨홀을 밟아 적이 못 나오게 막거나, 폭탄 블럭을 터뜨려 주변을 스턴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다만 폭탄 블럭은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좋은 안전장치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쫓아오는 적을 대응하기도 어렵고, 맨홀에서 나오는 적을 밟아서 막자니 적이 너무 많이 나온다. 맨홀을 밟아도 일시적으로 적 등장을 늦출 수 있을 뿐, 적을 해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후반 스테이지엔 적이 20마리, 26마리씩 튀어나오는데 하나같이 너무 빠르다.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만약 맨홀 밟기를 이 게임의 개성으로 생각했다면,
맨홀을 밟아서 적을 없앨 수 있게 하던지 적의 이동속도가 떨어지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감에 쫓겨 테스트 과정을 생략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아쉬운 게임이다.
평가 점수 : ★★★★
<원더 3>는 세 가지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게임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루스터스만을 이야기한다. 루스터스가 단독 게임으로 나왔더라도 꽤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비록 돈트 풀의 완성도가 아쉽긴 하나, 합본 게임에 들어간 모든 게임이 준수한 퀄리티를 선보인다는 것은 요즘 게임의 시각으로 봐도 어려운 일이다. <돌아온 마계촌, 2021>도 나오는 판에 이 게임도 잘 다듬어서 내주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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