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 딘 호는 알 수 없는 파국을 맞았다.
주인공은 동인도회사의 보험조사원으로 진상을 파악하여 보험료를 청구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오브라딘 호에 남아있는 것은 싸늘한 주검뿐.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일 뿐, 현실에 대입하기 좋은 표현은 아니다. 오브라딘 호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대부분의 추리물은 피해자의 신원이나 사인을 초반부터 알려준다.
탐정은 증거를 수집하고 논리를 짜맞춰 사람들을 모아놓고 진상을 공개한다. 어떤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했는지, 어떤 증거물을 수집했는지, 어떤 이유로 범인을 주목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윽고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범행 수단과 범인이 공개된다. "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동기까지 듣게 되면 마무리. 이게 일반적인 추리물의 패턴이다.
이 게임은 그런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다르다. 피해자의 신원은 커녕 동기조차 알 수 없는 죽음이 산재해 있다. 드라마적 요소가 대단히 약한 것이다.
당신이 자동차 사고를 조사하는 보험조사원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사고를 조사해보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인간적으로 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보험조사원에게 사연은 사족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살펴보고, 과실을 따지기 위해 진상을 밝혀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브라딘 호의 귀환>(이하 오브라딘)은 그런 게임이다.
오브라 딘 호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총 60명.
플레이어는 사체 앞에서 회중시계를 사용하여 죽음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화, 행동, 인물 배치 등을 면밀히 관찰하여,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어 보고서에 기입하는 것이 게임의 주 목적이다.
음산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는 데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게 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다. 보통은 이런 것들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추리 게임이다보니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기 좋다.
시체를 발견하면 이 화면에서 사망한 장소, 시체가 발견된 장소 등을 알 수 있다. 사망 장소와 발견 장소가 다르다면 왜 시체가 옮겨졌는지 생각해보자. 사건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신원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면 얼굴이 뿌옇게 처리가 된다.
배에 탄 승객들의 신원을 모두 파악해 명단을 지워나가자.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살해되었는가.
주검 앞에서 회중시계를 사용하면 죽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치트급 아이템을 갖고 있는데도 진상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대화나 죽음의 상황만 봐서는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 대체 이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회중 시계로 과거의 장면을 재생하는 모습.
무언가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
일반적인 추리물이라면 사람이 많이 죽어봤자 세 네 명 정도가 고작. <오브라딘>은 배에 탑승한 인물 전원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얼추 계산해도 50여명이 넘는다. 기관총을 쏴갈긴 것도 아닐테니 한 사람의 범행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다. 각각의 사건이 독립적으로 발생했다는 얘긴가?
배 주인이 말하길 곧 폭풍우가 오니 떠나자고 한다. 플레이어가 원하면 언제든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돌려말한 것 같지만, 마치 시간제한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저 말에 속아 원치 않는 엔딩을 보고 말았다...
평가 점수 : ★★★★★
한 이야기에서 몇 가지 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사건들을 짜맞춤으로써 진상에 도달한다. 해답편이 끝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것이 일반적인 추리물이다.
<오브라딘>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우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드라마가 부실하다. 이야기보단 추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선내에서 수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각 사건은 독립적이지만 의외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등장인물이 배에 탑승한 사람들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어딘가에서 등장인물이 겹칠 때가 있는 법이다.
<오브라딘>의 초반은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허나 진도를 뺄수록 직접 증거가 줄어들고 간접 증거가 자리를 메운다. 플레이어는 초반 사건의 정보들을 토대로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추리게임은 문제를 찍어서 풀면 재미가 떨어지지만, 이 게임은 설령 때려맞추더라도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추리 어드벤처 게임의 지평을 한 단계 넓힌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바바 이즈 유>를 클리어하기란 쉽지 않다. 레벨 디자인이 비정상적으로 가파르고, 퍼즐을 못 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발이 떨린다. <바바 이즈 유>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조차 없는, 논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퍼즐게임이다.
<오브라딘>은 논리적인 추론을 요구하는 게임 같지만, 플레이어의 추론을 티나지 않게 유도한다. 정 안 되면 찍어서 풀 수 있게 만들어졌다. 퍼즐을 푸는 순서도 플레이어가 유도리 있게 설정할 수 있다. 찍기를 추리로 포장하는 것이야말로 <오브라딘>을 특별하게 만든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 난이도는 자비가 없다. 진행이 막히면 사건을 하나씩 검증해야 하는데, 검토해야 할 사건은 많고 연결고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진도가 안 나가니 참으로 답답하다. <오브라딘>은 마치 공략을 보라는 듯이 인내심을 시험할 때가 많다. 막히는 구간이 30분 정도면 괜찮지만, 1시간 내내 찾아도 진행이 전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오브라딘>은 단서가 너무나 은은하게, 지나치기 쉬운 형태로 표현되었다. 결국 두뇌회전을 멈추고 단순 찍기를 시도하게 된다. 그냥 때려맞추는 것과 추론을 통해(선택지를 좁히고) 찍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안전장치가 더 많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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