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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낚시광 (1994)

by 눈다랑어 2021. 7. 9.

요즘 낚시게임들은 낚시 시뮬레이션 성격이 강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형태는 아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낚시의 컨셉만 따온 게임들이 많았지만, 90년대부터 현실 낚시를 게임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90년대 중후반에는 리얼한 낚시 게임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리얼 레이싱 게임의 원조 그란투리스모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리얼한 낚시게임의 조상님은 누구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배싱 블랙 배스, 1994>(bassin's black bass with hank parker)를 꼽고 싶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국산게임들은 세계 시장과의 괴리가 컸다. 냉정한 얘기지만, 만약 이 시기에 명작 게임들이 한글화로 동시발매되었다면 거의 모든 국산게임들이 초토화됐을 것이다. 수많은 명작게임들을 제 때 즐길 수 없었던 것이 한국 게이머의 현실이었다. 한글화 타이틀이 매우 적었고 언어 장벽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게임 가격도 매우 비쌌다. 

 

이 틈을 타 국산 게임이 뿌리를 내렸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뒤쳐진 국내기업이 세계 유명 게임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표절이 만연했다. 이걸 잘했다고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게임 선진국 일본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아웃런, 1987> <골든 액스, 1990> <더 슈퍼 시노비, 1991> 등등... 유명 게임들조차도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만큼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지금처럼 잡혀있지 않은 시대였다.

 

아이비의 MV <유혹의 소나타, 2007>, <파이널 판타지7 AC, 2005>를 표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타까운 점은 2000년대에도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에서 조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차피 표절해도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극소수, 원본 게임들이 국내 시장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제 때 들어오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특징을 지닌 국산게임이 없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표절이 만연한 시장에서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타프시스템의 <낚시광>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과중한 업무에 치여사는 회사원.

 

바로 이 화면으로 연결된다. 바쁜 삶에서 잠시 낚시로 떠나라 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낚시광은 <파이널 판타지 6, 1994>처럼 웅장한 인트로가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충분히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인트로를 선보이고 있다.

 

불편한 마우스 조작

A~D 중 한 곳을 누르면 그 장소로 이동한다.

당시 컴퓨터들은 마우스 없이 키보드로만 조작하는 게임이 많았다. 컴퓨터는 있는데 마우스는 없는 집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게임사조차 마우스 조작 노하우가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낚시광>도 마찬가지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마우스 조작감을 보여준다. 시대적 한계이니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싶다면 적응하는 수밖에.

 

기존의 낚시게임들은 아케이드 요소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 성격을 극대화함으로서 현실감을 부여했다.

 

찌를 직접 달 수 있고, 찌의 위치를 세세하게 위아래로 조정할 수도 있다.

 

바늘의 크기는 8가지로 나뉜다. 바늘의 종류는 외바늘, 쌍바늘, 가지바늘, 세바늘이 있으며, 경우의 수를 종합하면 4(바늘) x 8(크기) = 총 32가지의 패턴이 존재하는 셈.

 

먹이는 지렁이와 떡밥 두 종류가 있으며, 지렁이는 크기별로 네 종류가 존재하고, 떡밥은 배합에 따라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그동안 현실 낚시를 구현하려는 게임은 더러 있었지만, <낚시광>의 디테일은 평범한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준비 됐으면 마우스를 밀면서 좌클릭을 해보자.

강물에 힘차게 낚싯대를 드리울 것이다.

 

대개 이런 꼴이 날 것이다. 왜 낚싯대가 제대로 강물 속에 꽂히지 않는 걸까?

바로 찌 위치를 잘못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왜 이렇게 된 건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낚시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당황했으리라. 요즘 게임에선 당연한 튜토리얼조차 없다.

 

찌를 바꿔보던지, 위치를 조정해보도록 하자.

계속 시도하다 보면 제대로 찌를 드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과연?

 

찌가 제대로 서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낚시게임은 리얼함을 잡으면 그래픽이 받쳐주지 못했고, 그래픽을 잡으면 리얼함이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배싱 블랙 배스>를 제외하면 이 정도의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찌 확대보기를 지원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TNN 배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 <배싱 블랙 배스>는 찌를 움직여 물고기를 유인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리운 찌를 확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낚시광>은 민물낚시를 기반으로 한다. 무대가 다르면 게임플레이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 새가 지나가고 있다. 

강물에 반사된 새까지 표현하는 섬세함이 인상적이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찌를 주시하다 보면, 찌가 상하로 요동치면서 입질이 온다.

이 때 바로 끌어올리지 말고, 고기가 제대로 미끼를 문 순간을 포착해 잡아당겨야 한다. 대부분 타이밍이 눈에 보이지만, 어떤 물고기는 간만 보다가 미끼를 다 뜯어먹고 가버린다. 이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타이밍을 잘 찾아봐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입질이 없다면 미끼가 없어진 것이니 낚싯대를 회수하도록 하자.

 

걸렸다!

 

끌려오는 물고기.

 

월남붕어

씨알이 영 별로다. 대상 어종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므로,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재미가 있다.

 

월급루팡을 배려한 시스템.

특정 키를 누르면 뜬금없는 그래프가 나온다. 마치 업무를 보는 중이라고 선전하는 듯한 그래프. 의외로 이런 기능을 지원하는 PC게임들이 꽤 많았다.

 

낮밤을 바꿔 플레이할 수도 있다.

 민물낚시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붕어 아니겠는가.

붕어는 밤에 활발하니 밤을 노려 월척을 노려보도록 하자.

 

가장 희귀한 어종, 잉어

잉어를 잡기 위해서는 떡밥을 배합을 신경써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합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낚시광>은 채비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이다.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낚시광>의 컨텐츠는 대충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스토리나 대회 같은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민물낚시를 떠나는 낚시꾼의 평온한 마음이 잘 느껴지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앞서 등장한 수많은 낚시게임들조차도 이 정도의 디테일(특히 초반 준비과정)과 현실감 물씬 느껴지는 표현력을 동시에 잡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낚시게임들은 루어낚시였지, 민물낚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낚시광>이 보고 배울만한 게임도 많지 않았다. 90년대 한국의 열악한 게임산업 속에서도 <낚시광>의 그래픽은 세계 시장에 크게 뒤쳐있지 않았으며, <낚시광>만이 할 수 있는 테마(한국의 민물낚시)를 잘 선정하였으며, 민물낚시에 맞는 게임스타일을 추구한 시대를 앞서 가는 게임이었다.

 

 

 

 

평가 점수 ★★★

이렇게 하면 고기가 물어줄까? 라는 느낌을 잘 주는 게임이지만, 그 느낌을 너무나 잘 표현했기 때문에 게이머 입장에서는 대체 뭘 어찌 해야 되나 하는 막막함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는 것조차 어려운 게임이지만, 민물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다.

 

고기를 잡을 때도 보면 단순히 낚싯대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한 템포씩 쉬면서 리드미컬하게 끌어올려야 제대로 된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당시 도스게임으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손맛을 꽤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국산게임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창의적인 게임이지만, 낚시를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많다. 볼륨이 작은 게임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게이머의 기준에서 봤을 때는 미묘한 게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낚시게임의 역사를 집필한다면,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꽤 비중있게 다뤄야 할 게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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