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낚시 게임의 발전사는 스포츠 게임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초창기에는 비현실적이고 아케이드성이 강조된 타이틀이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아케이드와 현실성이 융화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는 타이틀이 등장한다. 현실 낚시와 게임을 조합하려는 시도는 90년대에 활발히 일어났으며, 90년대 후반에는 제대로 된 낚시 시뮬레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시절 얘기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국산게임들은 세계 시장과의 괴리가 컸다. 만약 이 시기에 명작 게임들이 한글화로 동시발매되었다면 거의 모든 국산게임들이 초토화됐을 것이다. 수많은 명작게임들을 제 때 즐길 수 없었던 것이 그때 한국 게이머의 현실이었다. 한글화 타이틀이 매우 적었고 언어 장벽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게임 가격도 매우 비쌌다.
이 틈을 타 국산 게임이 뿌리를 내렸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뒤쳐진 국내기업이 세계 유명 게임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표절이 만연했다. 이걸 잘했다고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게임 선진국 일본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아웃런, 1987> <골든 액스, 1990> <더 슈퍼 시노비, 1991> 등등... 유명 게임들조차도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만큼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지금처럼 잡혀있지 않은 시대였다.
안타까운 점은 2000년대에도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에서 조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차피 표절해도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극소수, 원본 게임들이 국내 시장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제 때 들어오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특징을 지닌 국산게임이 없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표절이 만연한 시장에서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리얼한 낚시게임의 조상님은 누구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배싱 블랙 배스, 1994>(bassin's black bass with hank parker)를 꼽고 싶다. 그 다음은? 타프시스템의 <낚시광>은 어떤가?

과중한 업무에 치여사는 회사원.

<파이널 판타지 6, 1994>처럼 웅장한 인트로는 없지만,
은근히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낚시광>

A~D 중 한 곳을 누르면 그 장소로 이동한다. 당시 컴퓨터들은 마우스 없이 키보드로만 조작하는 게임이 많았다. 컴퓨터는 있는데 마우스는 없는 집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게임사조차 마우스 조작 노하우가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낚시광>도 마찬가지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마우스 조작감을 보여준다. 시대적 한계이니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싶다면 적응하는 수밖에.

기존의 낚시게임들이 아케이드 요소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 성격을 극대화함으서 현실의 지식을 게임에 써먹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찌를 직접 달 수 있고, 찌의 위치를 세세하게 위아래로 조정할 수도 있다.

바늘의 크기는 8가지로 나뉜다. 바늘의 종류는 외바늘, 쌍바늘, 가지바늘, 세바늘이 있으며, 경우의 수를 종합하면 4(바늘) x 8(크기) = 총 32가지의 패턴이 존재하는 셈.

먹이는 지렁이와 떡밥 두 종류가 있으며, 지렁이는 크기별로 네 종류가 존재하고, 떡밥은 배합에 따라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그동안 현실 낚시를 구현하려는 게임은 더러 있었지만, <낚시광>의 디테일은 평범한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준비 됐으면 마우스를 밀면서 좌클릭을 해보자.
강물에 힘차게 낚싯대를 드리울 것이다.

낚싯대를 던지면 대개 이런 꼴이 날 것이다. 왜 낚싯대가 제대로 강물 속에 꽂히지 않는 걸까? 바로 찌 위치를 잘못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왜 이렇게 된 건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낚시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당황했으리라. 요즘 게임에선 당연한 튜토리얼조차 없다.

찌를 바꿔보던지, 위치를 조정해보도록 하자.
계속 시도하다 보면 제대로 찌를 드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과연?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낚시게임은 리얼함을 잡으면 그래픽이 받쳐주지 못했고, 그래픽을 잡으면 리얼함이 받쳐주지 못했다. 이 게임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배싱 블랙 배스>를 제외하면 이 정도의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낚시광>은 찌 확대 화면을 제공한다. 기존의 낚시게임들, 예를 들어 <TNN 배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 <배싱 블랙 배스>는 찌를 움직여 물고기를 유인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리운 찌를 확대할 필요가 없었다. <낚시광>은 민물낚시를 기반으로 한다. 무대가 다르면 게임플레이도 달라지는 법이다.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 새가 지나가고 있다.
강물에 반사된 새까지 표현하는 섬세함이 인상적이다.

찌가 상하로 요동치면서 입질이 올 때가 있다. 바로 끌어올리지 말고, 고기가 제대로 미끼를 문 순간을 포착해 잡아당기는 게 중요하다. 어떤 물고기는 간만 보다가 미끼를 다 뜯어먹고 가버린다. 이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타이밍을 잘 찾아봐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입질이 없다면 미끼가 털린 것이니 단념하고 낚싯대를 회수하는 편이 좋다.

걸렸다!

끌려오는 물고기.

씨알이 영 별로다. 대상 어종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므로,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재미가 있다.

특정 키를 누르면 뜬금없는 그래프가 나온다. 마치 업무를 보는 중이라고 선전하는 듯한 그래프. 의외로 이런 기능을 지원하는 PC게임들이 꽤 많았다.

민물낚시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붕어 아니겠는가.
붕어는 밤에 활발하니 밤을 노려 월척을 노려보도록 하자.

잉어를 잡기 위해서는 떡밥을 배합을 신경써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합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낚시광>은 채비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이다.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낚시광>의 컨텐츠는 대충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스토리나 대회 같은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민물낚시를 떠나는 낚시꾼의 평온한 마음이 잘 느껴지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앞서 등장한 수많은 낚시게임들조차도 이 정도의 디테일(특히 초반 준비과정)과 현실감 물씬 느껴지는 표현력을 동시에 잡지 못했다.
대부분의 낚시게임들은 민물낚시가 아닌 루어낚시였다. 당연히 <낚시광>이 보고 배울만한 게임도 거의 없었을 터다. 한국의 열악한 게임산업 속에서도 <낚시광>의 그래픽은 꽤 그럴싸하게 보인다. <낚시광>만이 할 수 있는 테마(한국의 민물낚시)를 잘 선정하였고, 민물낚시에 맞는 게임스타일을 추구한 본격 체험형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평가 점수 ★★★
"이렇게 하면 고기가 물어줄까?" 라는 느낌을 잘 구현한 게임, 그 느낌을 너무나 잘 표현했기에 게이머 입장에선 대단히 낯선 게임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낚시광>은 '게임'일까? 나는 게임의 형식을 빌린 낚시이지, 낚시의 형식을 빌린 게임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낚시광>은 낚시를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많다. 볼륨이 작고 불친절해 대부분의 게이머는 외면할만한 게임이다. 그러나 낚시게임의 역사를 집필한다면, 극 사실적 시뮬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꽤 비중있게 다뤄야 할 게임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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