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는 캡콤과 더불어 아케이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었다.
세가는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가정용 콘솔로 출시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아웃 런, 버추어 레이싱, 버추어 파이터 같은 세가의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이식도를 보여주었다. <버추어 레이싱, 1993>은 많은 이식작이 출시되었지만, 제대로 된 이식작은 2019년에 와서야 출시되었다. 제 아무리 오락실에서 핫한 게임이라도 이래서야 답이 없다.
세가는 드림캐스트를 출시하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빠르게 이식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드림캐스트의 아케이드 라인업은 풍부했고 이식도도 높았다. <크레이지 택시>는 1999년 아케이드, 2000년 드림캐스트 버전이 1년 간격으로 출시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완성도와 관계없이 잘 팔리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나, <크레이지 택시>는 작품성, 대중성 양쪽 모두를 충족하는 걸작이었다. 레이싱 게임의 공식을 바꾼 게임, 대체 어떤 게임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 이 리뷰는 드림캐스트, 스팀판을 이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아케이드 버전과는 다소 그래픽 차이가 있습니다.
<크레이지 택시>는 따로 차를 고를 순 없고, 드라이버를 고르면 그에 딸린 택시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못해 플레이 방식이 달라질 정도.
액슬 : 평균적인 택시. B.D.죠 : 빠르지만 오프로드에 취약. 지나 : 가속과 핸들링이 뛰어나지만 충돌에 취약. 거스 : 느린 대신 충돌에 의한 감속을 어느정도 무시함. |
지나가다 보면 바닥에 $ 표시와 거대한 원이 그려져 있다.
그 안에 택시를 정차하면,
KFC로 가달라는 손님.
저 앞에 연두색으로 된 목표지점이 보인다.
빨리 데려다 주면 따봉도 받고 플레이 타임도 늘어나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 늦었다고 삿대질 하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차가 떠오르거나 옆 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면 승객이 잘했다고 팁을 준다.
아무래도 여기 사람들은 스릴에 환장한 것 같다.
잔디밭이고, 인도고 나발이고 이 세상에선 얄짤 없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다.
사람들의 비명이 펑크 록과 어우러져 유쾌한 느낌을 준다.
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크레이지 택시>는 레이싱 게임의 문법을 새롭게 정의한 타이틀이다. 더 이상 경쟁이 중요하지 않고, 레코드 라인을 따라갈 필요도 없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도 되고, 충돌해도 템포가 죽지 않는다.
승객을 목표지점에 빨리 내려주는 것은 레이싱의 본질과 닿아 있지만, 결국 총알 택시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크레이지 택시는 빠르게 도착하는 것 외에도 돈을 버는 수단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차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고, 점프하고, 드리프트를 선보인다. 굉장히 자유로운 형태의 사이드 퀘스트라 할 수 있겠다.
승객이 택시를 타려고 걸어오는 순간 남은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시간 손실을 줄이려면 승객이 걷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승객이 타기 편한 위치에, 유턴 없이 목적지점에 갈 수 있는 방향에 정차한다. 이처럼 별 것 아닌 플레이에도 파고들 건덕지가 많다. 이지 투 런, 하드 투 플레이. 이것이야말로 라이트게이머, 코어게이머의 숙원 아니던가.
드림캐스트의 아케이드 게임 이식률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은 다소 아쉬웠는데, 동시대에 남코라는 아케이드 초월 이식의 대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코는 PS판 <철권 2>에 격투게임 최초의 프랙티스 모드, PS판 <소울 엣지>에 밸런스 조정, 다양한 코스튬, 엣지 마스터 모드 등 새로운 모드를 추가하면서 가정용 출시가 기대되는 게임을 연거푸 뽑아냈다. 세가는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이식하는데 급급했을 뿐, 가정용 컨텐츠를 채워넣는 능력이 부족했다.
2022.01.06 - [게임 비평] - 겟 배스 (1997)
<크레이지 택시>의 오리지널 모드는 달랐다. 단순히 제한시간을 늘려 <겟 배스, 1997>의 토너먼트 모드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빌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된 <겟 배스>와 달리, <크레이지 택시>는 오픈 월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한 맵을 선보였다. 이 넓은 맵을 아케이드에선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것이다. 제한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오픈 월드는 진정한 의미의 오픈 월드가 되었다.
평가 점수 ★★★★★
레이싱 게임의 문법을 새로 써내려간 게임.
아케이드 시절부터 훌륭했던 게임을 콘솔 버전에서 더더욱 확장시켰다. 가벼워 보이는 게임성 속에 담긴 철학은 오롯이 게임의 재미만을 탐닉하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고 시대를 앞서 간 드림캐스트 시절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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