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6세대가 발매된 지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메가진화가 첫 등장한 이 타이틀은, 포켓몬 게임의 역사에서 중대한 변곡점을 차지한다. 메가진화 시스템, 풀 3D로의 전환, 학습장치 개편,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해외를 모티브로 삼은 첫 작품 등. 변화점이 너무나 방대해서 이질감이 들 정도다.
보통 이런 작품은 논란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포켓몬>은 변화를 추구하되, 메인 시스템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X·Y>(이하 XY)조차 메인 시스템은 '메가진화' 딱 하나만 추가했다. 그 덕택인지 6세대는 큰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가장 체감되는 변화는 단연코 그래픽이다. 같은 해에 <라스트 오브 어스>가 나온 마당에 이게 뭔 대수냐 싶을 수도 있으나, 기기 스펙이 딸리는 닌텐도 휴대기기에서 나왔다는 점, 2D의 상징처럼 보였던 <포켓몬>이 3D로 나왔다는 점, 포켓몬의 3D 모션이 상상 이상으로 자연스러웠다는 점 등이 놀라움을 자아냈다.



한때 포켓몬과의 교감은 뒷전으로 보였다. 그런 점에서 <포켓몬스터 피카츄>는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플레이어 뒤에 피카츄가 따라다니고, 친밀도에 따라 피카츄의 표정이 바뀐다. 이 작품은 '몬스터'로서의 포켓몬이 아닌, 귀엽고 친근한 내 친구 '포켓몬'을 표현한 첫 <포켓몬>이었다. 교감 콘텐츠는 알음알음 추가되다 <XY>에서 폭발하기에 이른다.
<포켓몬>에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줄곧 있었다. <루비·사파이어>는 아지트(비밀기지)를 마음대로 꾸밀 수 있었고, <DP>은 슈퍼 콘테스트에 치장 아이템을 도입, 포켓몬을 예쁘게 꾸며 콘테스트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XY>에는 아지트도, 포켓몬 콘테스트도 없지만,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내 분신을 마음대로 꾸미는 기능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각종 스탯이 붙어있는 여타 RPG의 장비와 달리,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은 순수한 치장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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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진화



레이팅에 즐비한 메가캥카를 보고, 혹자는 밸런스가 망가졌다는 비판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도 동의하지만, 메가진화의 매력, 배틀 중 1마리만이 메가진화할 수 있고, 모습과 스펙, 심지어 속성까지 바뀌는 변화는 가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메가진화가 화력 인플레의 선봉장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배틀 기믹이 나날이 생겨나는 요즘, 메가진화 만큼 뽕맛과 실용을 동시에 잡은 배틀 시스템은 없었다. 이보다 반응이 좋은 '캐릭터' 기믹이 어디 있겠는가. (설마 삭제될줄은 몰랐지...)
* 육성 편의를 추구하다

편의성 개선은 <포켓몬>의 유구한 전통이다. <XY>는 편의성에 진심이었으며, 두 가지 작은 변화를 통해 '게임의 경험' 자체를 바꿔놨다. 첫 번째는 포켓몬 포획이다. 그동안 '포획'은 '스토리 진행에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차피 잡아봐야 경험치 못 얻고(쓰러뜨려야만 획득 가능), 파티원 슬롯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포켓몬을 잡으면 경험치를 준다. 이 별 거 아닌 것 같은 변화가 미친 파장은 거대했다.

잡은 포켓몬을 활용할 기회 또한 많아졌다. 예를 들어 잉어킹은 공격 기술 하나 없는 나약한 포켓몬이다. 그런 포켓몬을 키우기로 결심했다면, 일단 잉어킹을 배틀에 내보낸 후, 주력 포켓몬으로 교체해 배틀을 끝마쳐야 한다. 이런 플레이를 수십 번 반복해야 몸통박치기를 배우고, 더 싸워 이겨야 갸라도스로 진화한다. <XY> 이전 세대 사람들은 다들 겪었을 상황이다.
꼭 잉어킹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포켓몬을 키우려면 교체 플레이가 강제된다. "<포켓몬>은 원톱 플레이가 효율적이다."는 말은 여기서 기인한다. (벤치 멤버 육성이 어렵다.)
학습장치는 이러한 구도를 깨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제작진도 이를 인지한 탓인지, 학습장치의 습득 시점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빨라졌다. <XY>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이제 *학습장치는 패시브로 남아, 모든 파티원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도록 개편됐다. <포켓몬>은 6세대에 이르러 비로소 '다양한 파티원을 키울 수 있는 게임'으로 거듭났다.
(*기존 효과 : 장착 포켓몬은 배틀 경험치를 절반 나눠 받는다.)
*학습장치의 명과 암

시도는 좋았다. <XY>의 가장 큰 비극은 충분히 테스트된 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벨 디자인은 논란의 중심에 선다. 별도의 파밍 없이 진행해도 내 파티의 레벨이 상대 레벨보다 5 이상 높다. 대결을 피하지 않고 모든 트레이너와 맞붙는다면, 포켓몬 포획에 진심이면 레벨 격차는 더 커진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충분히 있다. 바로 직전에 나온 게임들, <BW> <B2W2> 둘 다 초보자를 위한 게임은 아니었다.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는 <포켓몬>이 모토였다면 '쉬운 난이도'의 선택은 필연이 된다. 문제는 '난이도 선택'이 아예 없다는 데 있다. 기본 OFF 상태로 두되, 튜토리얼에서 클래식/공유 방식을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혹자는 "학습장치를 끄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세운다. 그런데 학습장치라는 게, 한 번 길들여진 사람은 끄기 어려운 기능이다. 별도의 공략을 안 본 상태로, 난이도를 '학습장치 끄기'로 조절해야 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 잠재력 가득한, 그러나 역대 최악의 도시가 된 미르시티



칼로스 지방의 중심에 미르시티가 있다. 포켓몬 세계에서 규모가 가늠이 안 되는 장소는 처음 보았다. 미르시티는 탑 뷰가 아닌 3인칭 시점을 선택하여, 도시의 규모를 한껏 키우는 데 일조했다. (3인칭 시점은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
사실 그런 점을 빼더라도 미르시티는 충분히 거대하다. 대략 도시 3-4개쯤 합쳐놓은 규모니까. 고고셔틀을 타고 마을을 둘러보거나, 미르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워프하는 등 이용자 편의를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게임프리크의 야심작 다운 마을이다.

그러나 미르시티 역시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도시 정전 문구는 마을을 탐사하려는 수많은 플레이어를 좌절시켰다. 이런 문구는 이동 - 암전 - 컷신 이벤트로 귀찮게 만들지 말고, 넘어갈 때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NPC의 말풍선으로 못 지나간다고 팝업창을 띄우면 그만이다.
정전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미르시티는 '동서남북 네 방향의 시점 전환만 제공'하며(좌우로 시점이 휙휙 돌기 때문에 어지럽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미세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등 대각선 이동이 불편하다. 3D 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미르시티를 견디기 어렵게 설계되었다. 맵은 넓은데 미니맵이 없어, 지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광장은 탑뷰를 채택했는데 캐릭터가 작게 표현되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간다.

https://youtu.be/aqZHsSxhZzk?si=1IHFZzQ3mJgrVAaD

나쁜 조작감은 칼로스 전역에 걸쳐 이어졌다. 방향키를 벽 방향으로 입력하면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판정이 생기는 게 일반적인데, 이 게임은 그런 게 없었다. (스샷 같은 상황에서 아래 방향키를 눌러봤자 미끄러지지 않고 딱 멈춘다.)
<XY>는 건물에 들어가는 아주 기초적인 동작부터 거슬린다. 이 문제는 본작의 주요 콘셉트였을 롤러스케이트와 합쳐져 역효과를 냈다. 걸핏하면 캐릭터가 미끄러져 세밀한 조작이 어렵기 때문.
90년대 중후반, 3D 전환기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카메라와 조작이다. <XY>는 미르시티를 통해 미숙한 카메라 워크를 선보인다. (동서남북 방향 전환) 프리즘 타워 주변에서, 캐릭터는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조작은 때때로 미끄러지는 느낌을 제공하고, 건물에 들어가는 동작조차 어렵게 설계했다. 3D 전환의 쟁점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마찰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마찰 관리)에 달렸다. 게임프리크는 노하우가 부족했고, 앞서 선배들이 겪었던 문제를 결과적으로 등한시한 꼴이 돼버렸다. 어설픈 3D 전환은 플레이 경험 내내 짐짝이 되어 <XY>를 괴롭혔다.
* 미묘한 캐릭터, 이해 불가능한 본작의 스토리라인



<XY>의 문제는 '3D 전환 실패'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배틀 장면은 <XY>의 평가를 깎아먹는 주범이다. 코르니에게 메가진화를 전수받는 중요한 장면에서, 코르니 '스탠딩 포즈 하나'로 퉁치는 전투 장면은 순식간에 몰입도를 흩뜨려 버린다.





체육관 배틀마저 이럴진대 일반 트레이너 배틀은 어떻겠는가.



불행 중 다행인지, 플레어단 전투는 정상 구현되었다.
개발 시간 부족을 이런 식으로 티 낼 줄은...


주인공은 라이벌, 사나, 티에르노, 트로바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티에르노는 춤을 좋아하고, 트로바는 도감 완성이 목표인 소년이지만 작중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메인 스토리는 주로 라이벌(칼름/세레나), 사나가 주도한다. 라이벌은 비중은 높은데, 클리어 전까지 메가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잘만 사용한다.) 이는 레벨 디자인 문제와 얽혀, 라이벌로서의 존재감을 흐리게 만들었다. 티에르노의 춤 에피소드, 트로바의 도감 에피소드 등이 서브 이벤트로 포함됐다면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 핵심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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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인 스토리 얘기를 해볼 시간이다. 플레어단의 행적은 광기 그 자체다.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해하려는 사람들. 플라드리는 시종일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낸다.










플라드리를 볼 때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곱씹어 보게 된다. 플레어단 이외의 생명들은 모두 죽어야 아름다운 세계가 탄생한다면, 플레어단 = 아름다운 존재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작중에서 묘사되는 플레어단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걸핏하면 빼앗고 싸우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전형, 플라드리는 왜 그런 존재들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가. (플레어단은 자신만의 미학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람의 행동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플라드리의 행동은 납득이 가는 면이 있다. 정신 나간 주장을 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XY>는 엄연한 상업 작품, "사람은 원래 그렇다" 같은 것 말고, 최소한 플라드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정도는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플라드리는 칼로스 지방의 명망 높은 인물로, 비뚤어진 사상에 심취해 갑자기 제노사이드를 저지르는 인물이다. 플라드리와 플레어단의 관계는 처음부터 짐작이 갔다. (행동거지, 이름, 복장 등) 작중에서 플라드리는 뭇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고 하는데, 플레이어에겐 플라타느 박사, 카르네 등과 얘기하다 급발진하는 인물로 보일 뿐이다. 작품 후반, 플라드리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나 사실 플레어단 보스고, 미안한데, 우리 빼고는 최종병기로 다 죽일 거야. 너희들은 아름답지 않아."
그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플레어단은 왜 살아남는지, 더러운 세계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왜 일말의 미안함을 내비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그냥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 아닌가. 애니메이션의 묘사는 훨씬 그럴듯하다. 플레어단으로서 꾸준히 쌓아온 빌드업, 과거 구호봉사단체의 일원이었던 행적이 겹쳐져, 악의 조직의 보스이자 한때 존경받던 인물 플라드리의 양면성을 그려냈다.
다시 <XY>로 돌아가자. 이 작품에는 '플레어단 보스 플라드리'가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그런데 플레어단과의 관련성은 분명하다. 학살 선언 장면에서 칼로스 사람들이 느꼈을 혼란을 우선시했다면, 플레어단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함구하는 편이 좋았다. 개연성을 우선시한다면 애니메이션의 묘사처럼 플레어단 보스로서의 빌드업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XY>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플레어단 보스로서의 행적을 감추고, 동시에 플레어단 사람임을 온몸으로 티 내는 모순적인 인물. 존경받는 기업인,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학살 선언~사건 종결까지 이어졌을, 패닉에 빠진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다. <그란디아, 1997>의 최종전을 앞두고 질 파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때가 떠올랐다. 이제 남은 목표는 하나뿐, 곧장 출발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를 시작했다. 역시나, <그란디아>의 거리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2022.03.04 - [게임 리뷰] - 그란디아 (1997)
그란디아 (1997)
때는 바야흐로 1997년, 플레이스테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무렵이었다. 스퀘어는 RPG의 황금기를 선도했고, 파트너를 소니로 갈아치우면서 비즈니스에서도 한 발짝 앞서가고 있었다. 스퀘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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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가 중요한 인물임엔 분명하다.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는 3m 거구의 부자를 어찌 엑스트라 취급하겠는가. 실제로 AZ는 플레어단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한 무서운 과거를 지녔다. 그럼에도 AZ는 비중도 적고, 플레이어와의 접점은 더 적게 노출되며, 현재의 이야기와 동떨어져 불필요한 캐릭터란 인상을 준다.
* 엔드 게임의 부재 속, 흙 속에서 피어난 2회차 스토리
<B2W2>는 방대한 콘텐츠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XY>는 그런 작품의 후속작이다. 당연히 콘텐츠가 많겠거니 어림짐작하다,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XY>의 엔드 게임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사실상 2회차 콘텐츠가 없다시피 하며, 프렌드 사파리 같은 분란을 조장하는 물건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전당 등록 2회차는 메가스톤 해금 퀘스트에 밀렸는지 사라져 버렸다. 2회차 플레이의 상당 부분은 전국에 흩어진 메가스톤을 찾는 여정이다. (단서 없음) 어렵게 메가스톤을 얻어도 포켓몬이 활약할 무대가 보이지 않는다.
2025.06.29 - [게임 리뷰] - 포켓몬스터 블랙 2·화이트 2 (2012)
포켓몬스터 블랙 2·화이트 2 (2012)
포켓몬 게임 티어리스트를 매길 때, 항상 상위권에는 기존 작품의 개선판이 꼽힌다. 크리스탈, 에메랄드, 플라티나, 하트골드·소울실버 같은 것들 말이다. 포켓몬 게임은 항상 차이가 거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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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샤토와 핸섬하우스 이벤트는 <XY> 최후의 보루다. 배틀샤토는 배틀을 통해 작위를 올려 다양한 트레이너와 대전할 수 있으며, 핸섬하우스 이벤트는 핸섬의 동지가 되어 미르시티의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핸섬은 사건을 쫓다 거리의 소녀 마티에르와 만나게 되는데...




평가점수 ★★
6세대는 <포켓몬> 게임의 전환점이었다. 3D로의 전환, 새롭게 탄생한 멋진 포켓몬들. 가슴이 웅장해지는 메가진화의 등장. 게임의 양상을 바꾼 학습장치의 공동화. 이 작품을 좋아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전환이 불완전했다는 것을. 이제 와서 결함을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본문에 다 언급했으니까.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든다. 결론을 적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메가진화, 포켓파를레가 있는데... 왜 포켓몬이 파트너 같지 않지?
이전 세대의 포켓몬 세계는 뚫고 지나가야 할 '험난한 자연'이었다. 그에 비하면 <XY>의 지형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관광지 여행객이 되어 칼로스를 누빈다. 프랑스 모티브 아니랄까봐, 칼로스의 배경은 아름답다. 도시에는 부티크가 있고, 다양한 카페가 산재한다. 친구들은 플레이어를 긍정하고, 관광 명소를 안내하듯 플레이어의 시선을 이끈다. 플라드리가 위험한 악당처럼 느껴지지 않고, 관광지의 분위기를 망치려는 민폐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으리라 본다.
각 명소에는 사진사가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사진 찍어야지. 관광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나.
그런데 이상하다. 왜 내 옆에 포켓몬이 없지?
포켓파를레는 '포켓몬과의 교감'을 상징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실상은 다르다. 포켓파를레는 필드/배틀 중에 일어나는 교감이 아니다. 포켓몬은 내 옆에 없다. 사육장 너머로 먹이를 주는 '관상용 펫'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메가진화는 '유대'를 말한다. 코르니도 그렇게 말했다. 정작 플레이어가 체험하는 건, 멋진 외모와 압도적인 화력이다. 트레이너는 관람객이 되어 멋진 돌고래 쇼를 감상한다. 유대는 플레이 루프에 스며들지 못하고 연출로 소비된다.
유기적인 생태계는, 적어도 <XY>에선 느끼기 어렵다. 지형과 환경과의 단절은 포켓몬을 생명이 아닌 데이터로 돌려 놓았다. 칼로스에서 포켓몬은 '랜덤 인카운터 박스' 안에 갇혀, 세계의 일부로 기능하지 못한다.
<XY>는 투어리즘의 시대를 열었다. 세상은 친절하고, 눈은 횡재하고, 포켓몬은 메뉴 속에서 재롱을 떨지만, 그 과정에서 느꼈어야 할 야생의 숨결은 거세되고 말았다. 게임프리크는 왜 <포켓몬>의 정체성을 교체했을까. 크게 네 가지 이유라고 본다.
` 프랑스 배경
: 포켓몬 사상 첫 해외 지역 모티브, 미와 관광의 도시
` 전세계 동시발매
: 라이트유저 포섭, 하드코어 요소 약화
` 3D 전환
: 방대한 작업량, 월드의 깊이를 다듬기에는 기간이 부족했다.
(플레어단 조무래기, 체육관 관장 등장 씬의 차이가 이를 말해주는 것처럼 보임.)
` 놀 거리가 너무 많은 시대,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
: 난이도 대폭 하락, 모험에서 관광으로의 전환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건 <XY>만의 문제가 아니며, 시대 전체의 변화다. 편의성은 진화가 아니냐." 충분히 동의한다. 게이머의 생태는 변했고, 예전 방식이 언제까지고 통용되지는 않는다. 거대 프랜차이즈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기록한다. 여기가 분기점이라는 것을. <포켓몬>이 장기를 적출하고 외모를 가꾸기 시작한 시대라는 것을. 너무 성공한 탓에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포켓몬>의 생존 전략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투어리즘의 시대는 6세대부터 9세대까지, 현대의 <포켓몬>으로 이어지는 초석을 닦았다. 게임프리크의 선택은 막대한 상업적 성공으로 돌아왔다. <XY>는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비견될만하다. 아니, 말이 지나쳤다.
적어도 <XY>에 자자 빙크스는 없다. 불쾌한 경험은 이제 사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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