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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 (2006)

by 눈다랑어 2024. 11. 19.

포켓몬 국내 팬들에게 4세대가 갖는 입지는 각별하다. 4세대는 프랜차이즈의 리부트였다. 2세대에서 명맥이 끊긴 프랜차이즈가, DS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약 5년 만의 쾌거, 게임보이의 저조한 보급률에 휘말려 아쉬웠던 <금·은>은 잊자. (그럼에도 꽤 많이 팔렸다.) 닌텐도 DS는 장동건, 이나영 같은 톱스타를 내세워 비(非) 게이머 층을 적극 공략했고, 콘솔의 불모지에서 DS가 남긴 성취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소프트웨어가 팔릴 시간이다.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은 새로운 세대의 팬들을 유입시켰다. 깐깐하게 따지면 <다이아몬드·펄> 대신, <디아루가·펄기아>가 이룩한 성과다. 대원씨아이는 <다이아몬드·펄>의 일본어 버전을 스티커 정발했고, 3세대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 후 한국닌텐도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상표권 분쟁을 우려해 <디아루가·펄기아>(이하 DP)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된다. 한국 팬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완전한글화 타이틀의 부활이었다.

전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닌텐도 DS

<DP>는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3세대 <루비·사파이어>가 이끈 변화를 토대로, <DP>는 물리, 특수공격을 분리하여 포켓몬 대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Wi-Fi 통신이 활성화되면서, 내 주변 환경이 중요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포켓몬 배틀에 대한 관심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매일매일 DS 두뇌개발 트레이닝>, 장동건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국내 팬들에게 4세대가 갖는 입지는 각별하다. 4세대는 프랜차이즈의 리부트였다. 2세대에서 명맥이 끊긴 프랜차이즈가, DS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하드웨어의 저조한 보급률에 휘말려 아쉬웠던 <금·은>은 잊자. (그럼에도 꽤 많이 팔렸다.) 닌텐도 DS는 장동건, 이나영 같은 톱스타를 내세워 비(非) 게이머 층을 적극 공략했고, 콘솔의 불모지에서 DS가 남긴 성취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소프트웨어가 팔릴 시간이다. 

 

삼색펀치는 더 이상 특수어태커의 특권이 아니다.

물리, 특수공격은 여태까지 타입별로 분류되었다. <DP>는 물리, 특수공격을 기술별로 분류하여, 번개펀치는 물리, 10만 볼트는 특수공격으로 나누는 혁신을 단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갸라도스처럼 수혜를 받은 포켓몬이 있는가 하면, 삼색펀치 후딘은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시스템적 혁신은 여기까지였다. <DP>는 3세대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으며, 비주얼과 스토리텔링, 유저편의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비주얼이다. 3D로 표현된 신오의 세계는 위화감 없이 2D에 녹아들어, 2D 같은 3D의 신호탄이 됐다.

 

3차원 배경에 익숙해질 즈음 여러 편의 요소가 눈에 띈다. <포켓몬스터>는 아이템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시리즈이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템 커서 기억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마지막에 쓴 도구'를 추가해 가려운 곳을 잘 긁어 주었다. 포획이 때로는 귀찮은 작업임을 인지하고 *퀵 볼을 추가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별 거 아닐지 몰라도, 러닝슈즈의 실내 사용 허가는 삶의 질을 바꿨다.

 

(*퀵 볼 : 배틀 진입 시 곧장 던지면 포획률이 높아지는 볼)

호흡이 긴 RPG인 만큼, 행보를 되돌아볼 시간도 필요하다. (저장 데이터)

 

 

* 신화와 포켓몬의 결합

3세대의 기조를 확장하다.

전설의 포켓몬과 메인 스토리를 버무린 플롯은 어느덧 시리즈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DP>는 3세대 블록버스터에 신화를 추가해, 초반부터 신비로운 신오 지방을 표현하는데 혁혁한 공을 올렸다. 

 

2024.08.05 - [게임 리뷰] -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 (2002)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 (2002)

포켓몬스터가 대성공을 거둔 1996년, 닌텐도는 가정용 콘솔 '닌텐도 64'를 발표한다. 90년대 중반까지 업계 톱이었던 닌텐도의 위상은, 스퀘어의 소니 이적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휴대

daisy1024.tistory.com

 

도서관에 자리잡은 신오의 신화

최근 게임프리크가 해킹 피해를 입으면서 다양한 설정이 공개되었다. 그중에는 블레이범, 발바로 설화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신오 신화의 원형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들도 있었다. (공식 설정은 아니나, 초기에 어떻게 설정을 구성했는지 참고하기 좋은 자료다.)

 

유출 내용을 보니 왜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지 납득이 간다...

 

아이템으로 세계관을 설명하는 참신한 시도가 엿보인다. (플레이트)

신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신화는 히어로 영화와도 같아서, 사람들은 신화를 따분한 학교 수업이나 학문의 일종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화는 온갖 미디어로 재창조되어 영웅적 서사시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타워즈> 같은 신화적인 이야기는 물론, <매트릭스>처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품조차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가, 추측컨대 주변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왜, 역사상 유례없이 합리적인 지금조차 신화적 상상력이 세상을 지배하는가. 사람들이 합리를 썩 좋아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미일 것이다. 신화는 흥미를 유도하는 장치로서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이며, 신오지방 특유의 오묘한, 신비로운 분위기는 포켓몬 신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플레이트의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일부 발췌)

그 두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분신으로서 세상에 보낸다.
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잇는 3마리의 포켓몬을 낳는다.
둘은 사물을 염원하고 셋은 마음을 염원하여 세계를 창조한다.

 

시간과 공간의 분신은 디아루가와 펄기아를, 3마리의 포켓몬은 아구놈, 유크시, 엠라이트를 의미한다. 사실 모든 플레이트를 공략 없이 찾아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보만 취득해도, 자연스럽게 "누가 이들을 만들었나"에 대한 의문이 싹튼다. 첫 번째 문장 "그 두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분신으로서 세상에 보낸다."는 넌지시 창조주의 존재를 암시한다. 훗날 유출로 밝혀진 신오의 설정은 신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화와 세계의 연결
・전설 포켓몬의 포지션
레이,아이,하이 3마리
사람·포켓몬·자연의 세 가지 존재의 상징.
인카운트 할 때마다 밸런스가 무너진다.
세계가 점차 변화한다 등.
그래서 이아, 에아가 출현하는 사태가 된다.
※아우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는다.

 

아우스(아르세우스)란 창조주를 의미한다. 아우스는 정신적인 개념에 가까운 존재이자, 밸런스가 완벽한 상태, 이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DP>는 물론, 완전판에 해당하는 <플라티나>(Pt 기라티나)조차 창조주에 대한 서술은 극히 제한적이다. <에메랄드>에서 그란돈과 가이오가의 싸움을 렉쿠자가 중재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물이다. 물론 아우스는 초창기의 설정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신오신화를 추측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아우스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구상은 처음부터 있었으며, 실제로 <DP>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분명 데이터 상으로 아르세우스는 존재한다. 배포 아이템을 통해 아르세우스가 강림하는 이벤트도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아르세우스를 얻을 방법이 없으며, 배포 아이템은 끝내 배포되지 않았다. 창조주의 이름은커녕 존재가 묘사된 순간도 극히 적다. 이러한 게임프리크의 신비 전략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오컬트와 신화, 세계관의 질적 향상이 눈에 띈다.

 

다양한 추측이 오간 숲의 양옥집 괴담

 

낮과 밤을 재구현하다.

<금·은>은 새벽, 낮, 밤을 구분하여 야생 포켓몬에 변주를 주고 세계를 생동감 있게 바꾸었다. <루비·사파이어>의 몇 안 되는 결함은 낮밤을, 적어도 그래픽 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석양에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를, 어둠 속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별의 아름다움을 탑 뷰 2D 그래픽으로 어찌 표현하겠는가. <루비·사파이어>의 맑고 청정한 이미지는 오히려 그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DP>는 낮밤을 구현하면서 비법 소스를 첨가했다. 낮에는 경쾌한 음악이, 밤에는 한 템포 느린 음악이 흐른다. 둘은 약간의 리터칭이 들어갔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음악이다. 음악은 세계를 구성하는 마지막 퍼즐과도 같다.

https://youtu.be/rXefFHRgyE0?si=THd0aJXS9RzLprL7

음악의 힘이 100% 발휘된 챔피언 결정전, 극적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다.

 

역대 최강의 챔피언을 마주하다.

 

흥미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유도했다, 결말이 문제지.

신오의 원대한 신화는 마지막 순간에 무너졌다. 힘차게 달려온 갤럭시단의 이야기는, 결국 목적과 동기가 실종된 채 생을 마감했다. <루비·사파이어>의 클라이맥스도 아쉬웠지만 호흡이 문제였지, 이야기 자체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랜 기간 떡밥을 흘려온 <DP>는 끝끝내 떡밥을 회수하지 못했다. 2% 아쉬웠던 3세대가 <에메랄드>로 완전해졌듯이, 4세대는 <플라티나>를 통해 부족한 서사를 메웠다.

 

태홍의 불완전한 서사는 <플라티나>에서 보완되었다.

 

배틀과 스토리텔링의 결합

스토리텔링의 발전은 의외의 장소에서도 관찰된다. 그동안 포켓몬 배틀과 스토리는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자신의 에이스 포켓몬이 필살기를 사용할 때도 트레이너는 침묵한다. 그동안 포켓몬 승부에서 줄곧 외면되었던, 트레이너를 강조한 첫걸음이 <DP>에서 시작되었다.

 

하드웨어를 활용한 기능들

처음 <DP>를 접했을 때, DS의 화면 분할 기능은 그리 눈에 차지 않았다. 그에 비해 터치펜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이게 뭐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버튼보다는 터치가 훨씬 편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보물찾기를 구현한 다우징 머신

놀라움은 계속된다. <DP>는 DS로 넘어오면서 화면 2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상시 맵을 확인할 수도 있고, 화면을 다우징 머신으로 맞추고 다닐 수도 있다. 그동안 다우징 머신은 어떤 존재였는가. 평소 자전거, 낚싯대를 등록하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린 비운의 아이템이었다. 획득 포인트가 예상되는 3세대(심해)를 제외하면, 길을 다니면서 다우징 머신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낭비와도 같았다.

 

터치펜을 이용해 숨겨진 아이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화면에 터치펜을 찍으면 레이더가 활성화된다. 주변에 아이템이 없다면 파장이 꺼지고, 있으면 화면에 위치가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레이더를 보고 예상 지점을 좁혀 아이템을 찾는다. 어쩌면 플레이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 개를 이런 방식으로 찾았다.)

 

모처럼 만든 기능을 안 쓰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게임프리크는 보물찾기 지역을 스토리 도중에 배치했다.  분할 화면을 잘 활용한 지역이었는데 디테일이 아쉽다. 맵이 조금만 짧았다면 어땠을까.

 

새롭게 추가된 꾸미기 기능

3세대의 새로운 컨텐츠였던 콘테스트는 한 층 발전했다. 제대로 초반부터 콘테스트에 입문할 수 있게 바뀌었고, 중간중간 미니게임이 추가되어 지루함을 덜었다. 콘테스트는 길고 긴 베타를 끝내고 상용화에 성공했다.

 

유저 편의를 신경쓴 티가 곳곳에 묻어난다.

 

 

 

* 확장된 세상

잠이 안 깬다...

WiFi가 도입되면서, <포켓몬스터>는 전례 없이 교류가 활발한 게임으로 변모했다. 대전에 대한 연구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오락실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정보가, 온라인 시대를 만나 전국,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리, 특수를 나눈 보람도 없이 배틀 환경은 퇴보했다. 고 스핏 포켓몬이 사용하는 최면술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DP> 시절 최면술은 명중률 70%, 2-5턴간 지속되는 사기 기술이었다. 유저들끼리 자체 룰로 상태이상을 일부 제한하는 일도 벌어졌다. 세상에 맙소사.

 

 

 

* 4세대의 치명적인 실책

왜 이리 복잡하게 설계했을까

칭찬은 이만하면 됐다. <DP>의 가장 큰 문제는 템포다. 우선 타운 맵을 확인 하자. 모든 마을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힌 곳이 많아 헤매기 쉽다. 발이 푹푹 빠지는 대습초원과 기나긴 216번 도로는 <DP>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입지호수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공중날기가 없다면 빙빙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DP>의 맵 구성은 역대 시리즈로 봐도 최악이다.

 

끊임없이 하품이 나온다.

배틀 템포는 4세대의 아킬레스 건이다. 상태이상, 디버프 등의 알림 메시지 간격이 유독 길고, HP 바가 감소하는 시간이 매우 길게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해피너스(Lv.100)를 단번에 쓰러뜨릴 때 걸리는 시간은 무려 40초에 육박한다. 

 

배틀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제 아무리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더라도, 배틀에 이만한 하자가 있으면 매 순간이 괴롭다. 야생 인카운터가 발생하면 포획하고 자시고 도망치고 싶다. 어차피 이제 와서 <DP>를 할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플라티나> 얘기도 짧게 덧붙인다. <플라티나> 또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They fixed the HP bar in Pokemon games after Diamond and Pearl" - YouTube

<플라티나>의 배틀 템포를 비교한 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BfPgLiNEXM

 

 

 

 

평가 점수 ★★★

일견 사소해 보이는 템포 문제가, 이 게임의 모든 장점을 퇴색되게 만들었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내게 <다이아몬드·펄>이란 그런 게임이다. 신오를 사랑했기에 정말, 정말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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