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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 (2006)

by 눈다랑어 2025. 12. 13.

국내 팬들에게 4세대가 갖는 입지는 각별하다. 4세대는 프랜차이즈의 리부트였다. 2세대에서 명맥이 끊긴 프랜차이즈가, DS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닌텐도 DS는 장동건, 이나영 같은 톱스타를 내세워 비(非) 게이머 층을 적극 공략했고, 콘솔의 불모지에서 DS가 남긴 성취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소프트웨어가 팔릴 시간이다. 

 

<매일매일 DS 두뇌개발 트레이닝>, 장동건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은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켰다. 엄밀히 따지면 <다이아몬드·펄> 대신 <디아루가·펄기아>가 이룩한 성과다. 대원씨아이는 <다이아몬드·펄>의 일본어 버전을 스티커 정발했고, 3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훗날 한국닌텐도가 들어오면서, 상표권 분쟁을 우려해 <디아루가·펄기아>(이하 DP)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된다.

 

전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닌텐도 DS

<DP>는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3세대 <루비·사파이어>(이하 RS)가 이끈 변화를 토대로, <DP>는 물리, 특수공격을 분리하여 포켓몬 대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Wi-Fi 통신이 활성화되면서, 내 주변 환경이 중요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포켓몬 배틀에 대한 관심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삼색펀치는 더 이상 특수어태커의 특권이 아니다.

물리, 특수공격은 여태까지 타입별로 분류되었다. <DP>는 물리, 특수공격을 기술별로 분류하여, 번개펀치는 물리, 10만 볼트는 특수공격으로 나누는 혁신을 단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갸라도스처럼 수혜를 받은 포켓몬이 있는가 하면, 삼색펀치 후딘은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시스템적 혁신은 여기까지였다. <DP>는 3세대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으며, 비주얼과 스토리텔링, 유저 편의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비주얼이다. 3D로 표현된 신오의 세계는 위화감 없이 2D에 녹아들어 2D 같은 3D의 신호탄이 됐다.

 

편의성이란 이런 것.

3차원 배경에 익숙해질 즈음 여러 편의 요소가 눈에 띈다. <포켓몬스터>는 아이템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시리즈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쓴 도구'는 혁신이었다. *퀵 볼을 추가해 포획의 권태를 완화하고, 저장 데이터에 플레이 로그가 남도록 조치했다. 작은 변화가 플레이 리듬을 바꾼 전형적인 사례다.

 

(*퀵 볼 : 배틀 진입 시 곧장 던지면 포획률이 높아지는 볼)

 

 

* 신화와 포켓몬의 결합

3세대 전설 블록버스터의 기조를 확장하다.

전설의 포켓몬과 메인 스토리를 버무린 플롯은 어느덧 시리즈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DP>는 블록버스터에 신화를 도입해, 신비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다. 포켓몬 신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유출 내용을 보니 왜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지 납득이 간다...

 

신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신화는 히어로 영화와도 같아서, 사람들은 신화를 따분한 학교 수업이나 학문의 일종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화는 온갖 미디어로 재창조되어 영웅적 서사시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타워즈> 같은 신화적인 이야기는 물론, <매트릭스>처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품조차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왜 신화가 전해지는가, 추측컨대 주변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왜,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합리적인 지금조차 신화적 상상이 세상을 지배하는가. 사람들이 의외로 '합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원인일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순수한 즐거움이다. 신화는 우리에게 흥미와 영감을 제공한다. 신오의 맵 디자인은 <DP>가 신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운데 거대한 천관산을 배치하여 장엄함을 더하고, 천관산을 허브로 동서를 명확하게 나눴다. 천관산은 아주 은은한 형태의 환경 내러티브다.

 

오컬트와 신화, 세계관의 질적 향상이 눈에 띈다.

 

낮과 밤을 재구현하다.

<RS>의 몇 안 되는 결함은 낮밤을, 적어도 그래픽 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석양에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를, 밤하늘을 수놓는 별의 아름다움을, 어찌 탑 뷰 2D 방식으로 표현하겠는가. 그 어려운 일을 <DP>가 해냈다. 단순히 색상을 어둡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음악, 다른 리터칭이 세계의 깊이를 더해준다.

https://youtu.be/rXefFHRgyE0?si=THd0aJXS9RzLprL7

음악의 힘이 100% 발휘된 챔피언 결정전, 극적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다.

 

역대 최강의 챔피언을 마주하다.

 

흥미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유도했다, 결말이 문제지.

신오의 원대한 신화는 마지막 순간에 무너졌다. 힘차게 달려온 갤럭시단의 이야기는, 결국 목적과 동기가 실종된 채 생을 마감했다. <RS>의 클라이맥스도 아쉬웠지만 호흡이 문제였지, 이야기 자체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랜 기간 떡밥을 흘려온 <DP>는 끝끝내 떡밥을 회수하지 못했다. 2% 아쉬웠던 3세대가 <에메랄드>로 완전해졌듯이, 4세대는 <플라티나>를 통해 부족한 서사를 메웠다.

 

배틀과 스토리텔링의 결합

스토리텔링의 발전은 의외의 장소에서도 관찰된다. 그동안 포켓몬 배틀과 스토리텔링은 분리되어 있었다. 에이스 포켓몬이 필살기를 쓸 때조차 트레이너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동안 포켓몬 승부에서 줄곧 외면되었던 트레이너가 <DP>부터 강조되기 시작했다.

 

터치펜을 이용해 숨겨진 아이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처음 <DP>를 접했을 때, DS의 화면 분할 기능은 그리 눈에 차지 않았다. 그에 비해 터치펜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이게 뭐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버튼보다는 터치가 훨씬 편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놀라움은 계속된다. <DP>는 화면 2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맵을 상시 확인 가능한 것은 물론, 화면을 다우징 머신으로 바꿀 수도 있다. 화면에 터치펜을 찍으면 레이더가 활성화된다. 주변에 아이템이 없다면 파장이 꺼지고, 있으면 위치가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예상 지점을 좁혀 아이템을 찾는다. 보물찾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잠이 안 깬다...

WiFi가 도입되면서, <포켓몬스터>는 전례 없이 교류가 활발한 게임으로 변모했다. 대전에 대한 연구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오락실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정보가, 온라인 시대를 만나 전국,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리, 특수를 나눈 보람도 없이 배틀 환경은 퇴보했다. 고 스핏 포켓몬이 사용하는 최면술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DP> 시절 최면술은 명중률 70%, 2-5턴간 지속되는 사기 기술이었다. 유저들끼리 자체 룰로 상태이상을 일부 제한하는 일도 벌어졌다. 세상에 맙소사.

 

 

* 치명적 실수를 범하다.

'비전머신'과 '메트로이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다.

플레이 리듬은 <DP>의 가장 큰 실책이다. 이 작품에서 천관산은 허브다. 지도로는 모든 마을이 이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헤매기 쉽다. 발이 푹푹 빠지는 대습초원, 기나긴 216번 도로는 <DP>의 불편한 디자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전머신은 4세대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산맥과 호수, 동굴이 많은 구조는 필연적으로 비전머신과 맞닿아 있다. 플레이어는 천관산을 반복 방문하여 비전머신을 사용, 새로운 세계를 넓혀가는 체험을 경험한다. 이는 '메트로이드식' 설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실상은 어떨까.

 

<슈퍼 메트로이드, 1994>는 '메트로이드식' 설계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조작이 능숙할수록 능력과 상관없이 통과 가능한 우회 루트가 존재한다. 습득한 능력은 스킬 슬롯을 차지하지 않는다. <슈퍼 메트로이드>에서 새로운 능력은 플레이어에게 자유를 주지만, <포켓몬>의 비전머신은 플레이어를 구속시킨다.  

 

문제는 비전머신 자체보다 비전머신+슬롯 점유의 조합이다. 만약 비전머신이 기술 슬롯을 차지하지 않고, 배틀과 분리되어 있으며, 일종의 패시브 능력처럼 쓰였다면 이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메트로이드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능력을 어떻게 플레이 경험과 연결했는가"다.

 

이것이 비단 <DP>만의 잘못이겠는가. 1세대부터 6세대까지, 비전머신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소비자를 괴롭혔다. 그러나 <DP>가 '메트로이드식' 설계를 고민했다면, 유례없이 비전머신에 비중을 둔 이때야말로 '비전머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용자 경험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배틀 템포는 4세대의 아킬레스 건이다. 이 작품은 상태이상, 디버프 등의 메시지 간격이 유독 길고, HP 바가 감소하는 시간이 매우 길게 설정되어 있다. 해피너스(Lv.100)를 단번에 쓰러뜨릴 때 걸리는 시간은 무려 40초에 육박한다. 

 

배틀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제 아무리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더라도, 이만한 하자가 있으면 매 순간이 괴롭다. 메인 스토리 진행만 약 40시간, 그 중에 1/3은 맞딱뜨려야 할 난제다. 어차피 이제 와서 <DP>를 할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플라티나> 얘기도 짧게 덧붙인다. <플라티나> 또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플레이 리듬 문제는 4세대 전반을 괴롭히며 플레이어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They fixed the HP bar in Pokemon games after Diamond and Pearl" - YouTube

<플라티나>의 배틀 템포를 비교한 영상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BfPgLiNEXM

 

 

 

 

평가 점수 ★★

포켓몬 세계관의 기틀을 세운 작품.

 

일견 사소해 보이는 플레이 리듬이, 이 게임의 모든 장점을 퇴색되게 만들었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내게 <다이아몬드·펄>이란 그런 게임이다. 신오를 사랑하기에 정말, 정말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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