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리뷰

메타포: 리판타지오 (2024)

by 눈다랑어 2025. 1. 29.

기획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콜라보가 있다. JRPG의 양대산맥, 드래곤 퀘스트 & 파이널 판타지가 손잡고, 액션 만화의 거장 드래곤볼의 토리야마가 선봉장에 나선다.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이 기획은, 게임 역사를 새로 쓴 걸작을 탄생시킴으로써 현실이 됐다.

 

<크로노 트리거>의 제작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기획은 일찌감치 완성되었으나 <크로노 트리거> 팀은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 역량이 없었다. 결국 <파이널 판타지 6> <라이브 어 라이브>의 핵심 스태프가 긴급 투입된 뒤에야 제대로 된 개발이 이루어졌다. 서브 시나리오 라이터가 붙으면서 사이드 퀘스트는 훨씬 풍성해졌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콜라보를 넘어, 명작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꿈의 콜라보였다.

 

여기 새로운 콜라보가 있다. 무려 아틀러스 35주년 기념작이란다. 하시노 카츠라, 소에지마 시게노리, 메구로 쇼지가 뭉쳐 만든다는 이 게임. 꿈의 콜라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애초에 콜라보란 표현부터 이상하다. 다양한 작업에서 협업하던 사람들 아닌가. 물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기체 디자인을 맡은 야마시타 이쿠, <니어>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콘셉트 아티스트 코다 카즈마가 참여한 것도 빠뜨릴 순 없겠다. 그다지 신선하진 않은 것 같지만. 

 

이들이 뭉친 게임은 늘 먹던 국밥집의 맛이다. <메타포: 리판타지오>(이하 메타포)가 공개되었을 때, 굳이 이 셋을 내세워 홍보하는 이유가 뭘까 잠시 고민했다. 아틀러스는 내수 기업이다. 대표작 <진 여신전생>조차 내수용이다. (100만장 이상 팔아치운 타이틀이 거의 없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페르소나>를 앞세워 신작을 홍보한다. 하시노, 소에지마, 메구로 3인방을 내세운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드래곤 퀘스트 3>

사람들은 <드래곤 퀘스트>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나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림을 상상한다. 토리야마가 계약 문제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자, 에닉스는 토리야마 풍 그림 작가를 앞세워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드래곤 퀘스트>는 JRPG의 근본이다. 소년만화의 근본이자, 초대작부터 혁혁한 공을 세운 토리야마만큼 <드래곤 퀘스트>에 어울리는 인재는 없다. 

 

프랜차이즈의 리브랜딩을 이끌었던 <페르소나 3>

<페르소나>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매력은 추상적이다. 가장 유명한 소에지마, 메구로조차 토리야마에 비할 바는 못된다. 정통성도 미묘하다. 프랜차이즈의 역사도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페르소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JRPG로 부상했다. 내수에 갇힌 <드래곤 퀘스트>의 아성을 뛰어넘어, <파이널 판타지>와의 정면 대결을 꿈꾼다. 

 

<페르소나>는 감각적이다. 캐릭터 디자인, 사운드트랙, 트렌디한 UI에 이르기까지. 이런 요소들은 한 편의 팝 아트가 되어, 캐릭터를 띄워주는 조명으로 쓰였다. 세련된 디자인은 상품 판매로 이어졌다. 역대 게임들을 살펴봐도, <페르소나>보다 상품성이 높은 JRPG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만화적 연출을 적극 활용하는 컷씬

 

캐릭터와 UI의 균형감, 구도까지 완벽한 작품이 탄생했다.

https://youtu.be/mxNH6EPIH6o?si=qPrhaEt4Ll0UtF-v

눈이 소복히 오면 떠오르는 사운드트랙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그 자체로 멋진 디자인이 된다.

<메타포>는 <페르소나>의 정수를 담았다. 우선 메뉴 UI부터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색감이다. <메타포>는 선홍, 청록, 흰색을 즐겨 사용한다. 각자 개성이 뚜렷해 묻히는 색깔이 없고, 디자인 색채 배색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조합이다. 활자 배치는 더 세심하게 기획되었다. EQUIPMENT는 E, M, T가 유독 눈에 띄는데, 철자의 크기를 조절하여 균형감을 살리고, 단어가 한눈에 들어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여준다. 여기서 EQUIPMENT와 FOLLOWER는 서로 대칭을 이루며 돌출된 형태를 보여준다. SKILL부터 SYSYEM까지, 정성껏 배치된 단어가 왕관처럼 보인다. <메타포>의 제작진들은, 어쩌면 이런 점을 고려해 *적당한 단어를 찾은 것은 아닐까.

 

(* <페르소나>의 커뮤니티 시스템은 영어로 Social Link, Confidant로 번역된다. <메타포>는 이들을 멀리하고 Follower를 사용했는데, Equipment와의 대칭을 고려할 때, F로 시작하는 Follower가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왕의 자질에서 볼 수 있는 왕관 형태의 막대기.

메뉴의 왕관 형상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

 

<페르소나 3 리로드, 2024>는 아틀러스의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왼쪽의 전투 명령을 보면 PERSONA, ITEM, GUARD, ATTACK의 네 종류로 나뉘어 있으며, ITEM, GUARD의 글자가 유달리 작다. 사용 빈도를 고려하여 글자 크기에 차등을 두고, 디자인과 잘 어울리게끔 GUARD를 ATTACK 가운데에, ITEM을 PERSONA 가운데에 배치했다. 훌륭한 시도지만, PERSONA와 ITEM 글자 수 차이로 인해 균형감이 다소 떨어진다.

 

기능성과 균형감,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메타포>는 아틀러스 제작진의 정수를 갈아 넣었다. 아틀러스의 UI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짜인다. 배경과 캐릭터를 페인트 효과로 분리하고, 자주 쓰는 명령은 큰 글씨로 표시했다. ARCHETYPE, WEAPON, ITEM이 글자 수에 비례하여 역삼각형을 이루고, 사용 빈도가 높은 ARCHETYPE는 폰트를 키우고 여러 색상으로 강조되었다. 오른쪽엔 글자 수가 적은 순서대로 PASS, GUARD, SYNTHESIS가 배치됐으며, 왼쪽의 A-W-I 역삼각형 배치와 대조되어 균형을 이룬다. (SYNTHESIS와 GUARD는 다홍, PASS는 시안으로 표기한 것도 깨알같은 포인트)

35주년 기념작에 걸맞는 작품

<메타포>는 <페르소나>의 특징을 적극 수용했다. 커뮤니티(본 작은 팔로워로 표현), 전투와 커뮤니티의 결합, 게임 콘셉트, 한정된 시간 동안 스케줄을 관리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투만큼은 예외로, <메타포>는 악마합체가 없다. 전투는 오리지널 프레스 턴 방식을 따랐다. 전후열의 아이디어는 <세계수의 미궁>에서 따왔다. 변신하는 주인공, 스킬을 구입하여 커스터마이징 하는 개념은 영락없는 <아바탈 튜너>다. <메타포>는 <페르소나>를 세일즈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은 역대 아틀러스 게임의 총집편을 추구했다. 

 

페르소나는 아키타이프로 대체되었다.

<페르소나>의 주인공은 전투 중 페르소나를 교체(와일드)하여 다양한 상황에 대처한다. 때로는 힐러, 때로는 메이지가 되어 파티의 구멍을 메워주는 주인공.  와일드 시스템은 페르소나 합체(악마합체)와 연동되어 <페르소나>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타포>는 악마합체가 없다. 와일드는 파티원 전원이, 거의 모든 클래스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잡 체인지를 채택한 게임은 다양한 클래스를 강제한다. <메타포>는 경험치 손실분만큼 경험치 아이템을 퍼줘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매지션이 맘에 들면, 엔딩까지 매지션을 고집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시커의 '사이클로' 스킬을 매지션에 세팅한 장면

아키타이프를 해금하면 다양한 이점이 생긴다. 아키타이프를 마스터하면 스탯이 증가하고, 아키타이프로 배운 스킬을 포인트(MAG)로 구입하여 다른 아키타이프에 장착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아키타이프는 와일드의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 (아키타이프 교체는 비전투일 때만 가능) 임기응변으로 다양한 상황을 돌파하는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술이 중요한 턴제 게임에서, 굳이 멀쩡한 시스템을 쳐낼 근거가 어디 있나. 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페널티를 먹이면 그만 아닌가.

역동적인 턴제 전투

아틀러스와 액션은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페르소나 5, 2016>를 처음 봤을 때, 잠입과 액션 요소가 가미되어 큰 꿈을 품었더랬다. 현실은 차갑다. <페르소나 5>의 전투에서 액션이란, 선공을 위해 포지션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행위다. 은폐를 반복하여 적 뒤로 다가가, 상대방에게 매달려 가면을 벗긴다. 이 과정이 전부 원버튼으로 이루어진다. <페르소나 5>의 액션은 괴도 콘셉트를 위한 1% 첨가물이다.

종교 음악이 이렇게 신날 줄이야

<메타포>는 액션을 전투의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활용한다. 필드 액션의 승패에 따라 턴제 전투의 양상은 180도 바뀐다. 선공을 잡으면 대미지와 기절 공격이 들어가 전투를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있다. 그만큼 패널티는 무겁다. 적에게 선공을 뺏기면 큰 피해를 입고, 전투 지속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리스크가 두렵다면 얌전히 전투를 거는 방법도 있다. <진 여신전생> 특유의 극단적인 리턴&리스크 책정이, 필드 액션과 융합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이끌어냈다.

 

잡몹 전투는 훨씬 수월해졌다. 약한 적은 필드 액션으로 처치할 수 있어 진행이 한결 편해졌다. 마법사, 상인계열 필드 액션이 지나치게 좋긴 하지만 뭐 어떠하리. 재밌으면 장땡인걸.

노 대미지 킬이야말로 <메타포>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퍼즐형 전투)

 

일방적 콜라보의 기적

콜라보는 불현듯 찾아왔다. 중세 판타지와 히에로니무스 보스와의 콜라보. 인간의 갈등을 그린 이 작품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메타포>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했다. <메타포>엔 다양한 종족이 존재하며, 현실의 사람과 달리 첫눈에 구별되는 외면적 특징을 지녔다. (뿔, 뾰족한 귀, 날개 등등) 도시에는 종족의 스테레오 타입이 가득해, 그 종족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이해하기 쉽다. 현실 세계를 제삼자가 알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런 세상이 아닐까 싶다.

이 한 문장에 파리퍼스의 특징이 압축되었다.

 

순 뻥같은 얘기

현실과 판타지의 콜라보는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다가왔다. 주인공의 환상소설에서 인간계는 유토피아로 그려진다. 종족은 하나뿐이고,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고, 출신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 어디 그런 세계가 있던가. 환상소설의 이상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사회란 무엇인가. 허구는 현실에게 의문을 던진다.

루이 귀아베른

주인공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이는 루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출세가도에 오른 루이는, 왕자에게 저주를 건 혐의로 좌천된다. 그는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왕을 암살, 신성교의 포든과 대립각을 세우며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왕의 마법이 발동, 선왕의 유언이 전국민에게 전해진다. 국민의 지지를 얻는 자야말로 다음 왕이라는 것을. 루이는 신세계의 왕을 꿈꾸며 선거에 투신한다. 

 

루이의 해결법은 극단적이다. 정적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고 '인간'을 대중에게 공개한 남자다. 이 자를 냅두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고 신성교의 포든을 지지하자니, 루이가 깨끗해보일 정도로 큼큼한 냄새가 난다.

 

주인공은 왕자의 오랜 친구다. 그는 왕자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고, 왕자를 살리는 모험에 뛰어든다. 저주를 풀려면 술자의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 루이는 이제 유력 후보가 되어, 왕의 마법의 보호를 받는 귀한 몸이 됐다. 루이를 제거할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술자가 만든 저주 설계도를 찾아 저주를 푸는 것이다.

 

주인공은 설계도를 찾아 루이에게 접근한다. 루이는 그를 이용해 포든에 맞서려고 한다. 영악한 루이가 나를 의심하진 않을까, 미행이 붙은 게 아닐까, 불안한 나날이 이어진다. JRPG에서 이 정도의 빌런이 얼마만인지. 이 작품은 <파이널 판타지 6, 1994>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고, 그 중심엔 루이가 있다. 나는 루이에게서 케프카의 흔적을 보았다.

<페르소나>에 연애가 없어?

<페르소나>를 즐겼다면 누구나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육성하여 동료를 사귀는 이 시스템은 연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메타포>는 왕의 자질이란 이름으로 인간 파라미터를 구현했으나, 연애를 배제하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연인 관계가 되어봤자 바뀌는 건 없다. <페르소나>가 잘 보여주지 않았나. 그래서인지 <메타포>는 연애가 없다. 두근두근한 이벤트가 조금 있는 것뿐.

 

제작진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페르소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메인과 사이드 스토리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이드 스토리에서 류지는 남을 이해하고 자제심을 발휘하는 선한 청년이다. 그랬던 류지가 메인 스토리에선 화를 참지 못하고 타인과 부딪히는 역할로 그려졌다. 정말 같은 사람 맞나?

피바람의 예감

<페르소나>는 문어발 연애를 권장한다. <페르소나 4>에서 리세, 치에, 유키코와 동시에 사귄다고 가정해보자. 리세가 사귀는 티를 팍팍 내면, 파티의 다른 여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파티가 하나되어 눈 앞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페르소나>는 이러한 모순을 철저하게 외면해 왔다. 메인 스토리에선 동료로, 사이드 스토리는 연인으로 등장하는 게 그 증거다.

천진반형 히로인 유파, 이래봬도 히로인 후보 1순위다.

<메타포>는 내러티브 중심 게임이다. 과묵한 주인공을 버린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연인 관계를 남발하면 작품의 주제가 흐려질 수 있다. <메타포>는 한 술 더 떠 동료와의 인연을 축소시켰다. 스트롤 사이드 스토리는 스트롤의 주변인물만 등장하여, 동료 캐릭터가 나올 여지가 없다. <페르소나>가 메인 스토리와 별개로, 동료끼리 어울리는 장면을 끼워넣은 것과는 정반대다. 

 

인기투표를 보면 작품의 경향을 알기 쉽다. 유파(5위)는 <메타포>의 여성 캐릭터 중 가장 순위가 높았다. 투표 상위권은 스트롤, 루이, 주인공, 바질리오가 차지했다. 대체로 작중 비중이 높은 남성 캐릭터들이다. 비중이 높은 여성 캐릭터는 갈리카(6위)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내비게이터로서의 역할에 불과하다. (갈리카는 사이드 스토리가 없다.) 휠켄은 여성성과 거리가 있으며 비중이 꽤 적다. 유파는 천진반이 발목을 잡았다. 주나는 국민적 아이돌임에도 플레이어에게 충분한 매력을 전달하지 못했다. <페르소나>의 캐릭터에 매료된 사람은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른다. 

남성 캐릭터는 인기투표 상위권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훌륭한 사이드 스토리를 보여준 스트롤.

이쪽이 오히려 전통적인 주인공 상에 가깝다.

 

파라미터 이벤트의 진화

디테일은 <메타포>의 내러티브를 견고히 만든다. 파라미터를 올리는 이벤트에 불과했던 것들(공부, 알바, 식사 등)이 의미가 부여됐다. 타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작중 세계관을 설명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챕터 4를 클리어한 이후의 일이다. 나는 고성마을 말티라(챕터 2)로 돌아가 변두리의 무스타리족에게 말을 걸었다. 포용력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그는 챕터 4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가치관이 바뀌었음을 이야기한다. 이벤트 내용이 진행 상황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인데... 이런 디테일이 참 마음에 든다.

 

한편으로 스케줄 관리가 쉬워진 점이 눈에 띈다. <페르소나>는 다회차를 지원하는 게임이지만, 정작 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어 다회차를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히든 보스 제외하면 굳이?) 이런 사람들은 첫 플레이로 올 코옵을 달성하고 싶어 스케줄 공략을 참고한다. 누가 시키는 대로 플레이하는 게 무슨 재미겠냐만, 이 사람들도 좋아서 그리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메타포>는 이러한 고민을 깔끔하게 해소시켰다. 일정이 널널하다 못해, 1회차부터 올 코옵 + 파라미터 이벤트를 전부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것도 공략 없이. 덕분에 2회차를 플레이할 동기가 부족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코옵 말고 자잘한 이벤트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남는 시간에 이것저것 즐기지.

각양각색의 구성원

지난 수년간 게임업계를 뒤흔든 PC 논쟁에서, <메타포>만큼 영리하게 사회적 이슈를 담아낸 작품은 없었다. PC가 담고 싶은 의제(사회적 편견과 차별)를 던지면서, 유저들이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쁜 캐릭터를 배제하고 성별(인종) 할당제를 실시해봤자 게이머의 시선은 차갑다. 

 

<메타포>는 2024년을 대표하는 JRPG로 거듭났다. 아틀러스 게임 중 이와 비견될만한 게임이 얼마나 될까.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페르소나 5>냐, 종합선물세트를 선보인 <메타포: 리판타지오>인가. 어느 쪽이 우위인지 선뜻 답을 내기 어렵지만, 아틀러스가 자신들의 한계를 부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페르소나 5> 쪽을 더 높게 보는 편이다.)

스샷 한 장으로 땡치고 끝이라니...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조금 더 많은 자본이 들어갔다면 <메타포>는 불세출의 명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트 디렉션은 훌륭하나 텍스쳐는 낡았고, 장갑전차를 타고 여행하는 설렘은 기분으로 끝내야 했다. 마법학교는 떡밥만 뿌린 채 축소되어, 주나의 스토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한계를 노출했다. 칼라드리우스 잠입 파트는 허술하게 표현되어 "이러고도 루이가 모른다고?"란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러티브의 빼어난 완성도가, 구성과 연출의 허술함으로 왜곡되는 순간이다. 큰 뼈대는 참 좋은데...

 

* 엔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보기

알타베리에서 엔딩까지, 이 기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퍼즐을 푸는 메커니즘에 균열이 생긴다. MP 물약은 무제한에, 전투 초기화와 '광대의 장난' 스킬, 진테제 액세서리(합리주의자의 매뉴얼)의 압도적인 성능, 플레이타임을 늘리기 위한 던전 구성(재탕은 기본이다.)이 합쳐져 게임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린다. 아틀러스 게임은 다 이렇다지만, 고꾸라지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최종 보스를 물리친 후의 10분간의 엔딩은 <파이널 판타지 6>의 하이라이트다.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전개가 펼쳐지면서, 플레이어는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메타포>의 스토리는 구조적으로 보상이 불가능하다. 정치와 종교,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이니만큼 "악당을 무찔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같은 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 왕의 당선은 끝이 아닌 출발. 갈등이 산재한 세상에서, 새로운 왕은 어떻게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 이상적인 세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엔딩을 보고도 개운하지 않은 까닭은 아마 이런 연유 아닐까.

 

 

평가점수 ★★★★★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아틀러스의 현재를 보여준다. 또한 게임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현재의 고착화된 AAA 씬에서 개성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구조 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아틀러스 게임은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지녔다. 다른 회사가 판에 박힌, 한편으로 검증된 시스템을 가져오는 동안, 아틀러스는 자신의 개성을 오랫동안 연마해 왔다. 뻔한 아틀러스 작품, 그러나 타 작품과 차별화되는 시스템을 말이다. 아트, 사운드, 시스템의 하모니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즐거움을 준다. 중세 판타지와 불경, 사회 문제를 맛깔나게 버무릴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에선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