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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2022)

by 눈다랑어 2023. 7. 30.

포켓몬은 매력적이다. 동물을 데포르메한 캐릭터, 온갖 취향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캐릭터, 귀여움과 멋짐이 공존하는 캐릭터. 어린 시절 동물과 공룡에 열광하던 내게, 포켓몬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이었다.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의 성공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투 트랙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굿바이 버터플 편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포켓몬스터는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며 SBS의 애니메이션 왕국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삼립의 국진이빵이 큰 성공을 거두자 샤니는 포켓몬빵으로 맞불을 놨다. 포켓몬빵은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플로피 디스크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이때 불티나게 복사되던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였다.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스핀오프작마저 흥행몰이를 했다. 문방구엔 온갖 포켓몬스터 용품으로 가득 찼고, 극장판 뮤츠의 역습이 개봉되기도 했다. 불법이 판치던 시기였음에도 정발판 포켓몬스터 금·은은 10만장을 팔아치우는 호황을 누렸다. 당시 포켓몬의 인기가 절정이었다는 방증이다.

 

포켓몬 게임은 빠와 까가 극렬하게 나뉘는 걸로 유명하다. 칭찬일색인 초창기 포켓몬 게임과 달리, 최근의 포켓몬 게임은 불평불만이 속출하는 프랜차이즈로 전락했다. 돌이켜보면 울트라 썬 문이 치명적이었다. 확장팩이랍시고 나온 타이틀이 거의 복붙 수준에, 심지어 풀 프라이스에, PvP 유저는 거를 수도 없게끔 구매를 강제했다. 위험 신호는 이미 전전작(XY), 전작(썬문)부터 감지됐으나 이 정도로 퇴보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음식을 먹는 모습, 이게 정녕 2022년 게임이란 말인가 (포켓몬스터 바이올렛)

포켓몬 브랜드의 성공가도와는 달리, 포켓몬 게임은 끝을 모르는 추락을 거듭했다. 등장 포켓몬은 60% 가까이 축소되었고, PvP 밸런스는 지하 땅굴을 개통했으며, 3세대 루비・사파이어 ~ 4세대 다이아몬드・펄 무렵에 만들어진 게임 플레이는 20여 년간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2023년을 기준으로 포켓몬스터의 기본 틀은 지나치게 낡은 것처럼 보인다. <드래곤 퀘스트 4, 1990> 같은 게임을 2020년대에 즐기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포켓몬은 캐릭터의 압도적인 인기에 힘입어, 고전 게임만도 못한 형태로 출시되었던 것이다.

 

이런 비판은 대개 마니아의 입에서 나왔다. 고릿적 1세대부터 알맞게 숙성된 5세대를 즐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절대 다수의 라이트 게이머에게 있어, 포켓몬은 약간 아쉬운 점은 있어도 괜찮은 게임이었다. 라이트 팬들의 욕구는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포켓몬 게임은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며, '게임'으로서의 평가는 이 프랜차이즈에 어울리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카테고리에 포켓몬을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다.

 

캐릭터 게임에서 팬심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낡은 게임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겟타로보, 건담, 가오가이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덕분에 이 시리즈는 여전히 생명줄을 부여잡았다. 반다이남코가 저질 캐릭터 게임을 양산하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 (나 또한 또 속는다.) 캐릭터 게임을 말 그대로 '게임'으로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팬심은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게임'으로서의 포켓몬은 DS 시절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오래된 스타일을 고집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오래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좋은 작품들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테트리스의 인기를 어찌 설명하겠는가)

 

6마리 엔트리, 4종류의 기술, 턴제 배틀은 포켓몬 배틀의 정체성이다. 밸런스가 형편없어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독특한 재미를 준다. 문제는 포장재다. 배틀이 재밌으면 뭐 하나, PvE에선 배틀이 재미있다는 걸 깨닫기가 어렵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점은 난이도다. 어린 팬을 신경 쓴 것 같지만 오랜 팬 입장에선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난이도를 세분화할 수는 없었던 걸까. 포켓몬 게임은 대대로 PvP의 느낌을 살린 PvE 컨텐츠가 있었다. 바로 배틀 타워다. 50연승, 75연승, 100연승을 가볍게 요구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좌절한 플레이어가 많다.  3세대(루비・사파이어)부터는 트레이너 카드에 별이 표시되는데, 전당 등록/전국 도감/콘테스트/ 배틀타워 진행도에 따라 랭크업이 되는 방식이다. 4성 트레이너 달성은 포켓몬 파고들기의 극한을 보여주는 컨텐츠다.

 

역사로 뒤안길로 사라진 포켓몬 뮤지컬, 점점 서브 컨텐츠가 줄어드는 추세다.

배틀 타워는 이제 없다. 뿐만 아니라 콘테스트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서브 컨텐츠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6세대(X・Y)부터 관측되었다. 8세대(소드・실드)에선 파고들기 요소가 더욱 줄어들어, 전국 도감 완성 외에는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게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DLC를 클리어하면 별이 하나씩 생긴다. 이게 무슨 꼴이람.) 줄어든 컨텐츠, 아쉬운 파고들기가 쌓여 마니아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포켓몬의 그래픽이 형편없다느니, 모션이 성의없다느니 하는 비판은 표면적이고, 실상은 게임으로서의 포켓몬이 퇴화를 거듭하는 현상에 대한 불만족이다.

 

앞서 포켓몬 게임은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게임프리크의 행보는 마니아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포켓몬이 마니아를 위한 게임이 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척을 질 이유도 없다. 포덕이 아닌 게이머로서의 시선으로 봐도 아쉬움은 매한가지다. 전 세계에 이렇게 돈을 쓸어 담은 프랜차이즈가 어디 있나. 돈을 벌었으면 어느 정도 게임에 재투자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어느샌가 게임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타이틀은 죽고, 매너리즘의 극치만이 남았다. 이렇게 만들어도 역대급 매출을 달성하는 타이틀이다. 외부 비판 따위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기나긴 정체의 터널을 벗어나다

 

긍정적인 변화가 포착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 2022>(이하 아르세우스)는 그동안 포켓몬이 간직해온 전통적인 가치를 대거 갈아엎었다. 오픈 월드가 되면서 정해진 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액션이 없다시피 했던 게임에 활기가 더해졌다. 시리즈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수많은 문제들이 개선되었다. (인카운터, 통신교환, 두 가지 버전으로 내지 않은 점 등)

 

오픈 월드와 포켓몬 월드의 조합.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거대한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고, 포켓몬의 생태를 엿본다. 독특한 습성을 이용해 포켓몬을 포획하고, 각지의 명소를 찾아다닌다. 오픈 월드는 드넓은 공간에 오브젝트를 어떻게 채워 넣느냐가 중요한데, 그 점에서 포켓몬만큼 유리한 타이틀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저 포켓몬을 필드에 골고루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오픈 월드의 절반이 채워진다. 남은 건 필드 위에서 포켓몬의 개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정도다. 동굴을 탐색하던 중, 삐삐가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름  도감 설명
삐삐 보름달 밤에 삐삐가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전해진다.
연꽃몬 물이 깨끗한 연못에 사는 포켓몬.
머리의 잎사귀에 탄 작은 포켓몬을 건너편까지 운반해줄 때도 있다.

 

도감의 묘사를 직접 마주할 기회. (New 포켓몬 스냅)

 

이상해씨를 태우고 헤엄치는 연꽃몬. (New 포켓몬 스냅)

2022.03.02 - [게임 비평] - New 포켓몬 스냅 (2021)

 

New 포켓몬 스냅 (2021)

비록 마감이 엉성하긴 했지만, 포켓몬 스냅은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게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포켓몬 게임이 출시되었으나 포켓몬 스냅의 속편은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필름, 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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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포켓몬 스냅>은 포켓몬의 생태를 가장 잘 보여준 타이틀이다. 그러나 레일 슈터로 보여주는 정해진 그림과, 직접 필드를 누비며 포켓몬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안타깝게도 포켓몬 월드를 탐색하고 생태를 관찰하는 게임은 본가 시리즈는 커녕 외전작을 포함해도 극히 일부 뿐이다. (그나마 포켓몬 스냅 시리즈가 근처까지는 갔다.)

 

<아르세우스>는 포켓몬의 생태를 미약하게나마 구현했다. 이는 후속작이자 정규 타이틀이었던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또한 마찬가지다. 포켓몬스터를 오픈 월드로 만들 때 얻는 강점이 무엇일까. 바로 탐험이다. 방대한 포켓몬 세계로의 탐험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이제 와서 낡은 배틀 시스템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탐험 및 포획 파트에서 액션을 구현하고, 세계 곳곳에 포켓몬을 적절히 배치하고, 포켓몬의 생태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르세우스>와 <스칼렛・바이올렛>의 사례로 보건대, 포켓몬과 오픈 월드의 조합은 치트키 수준이다.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해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칭찬은 여기까지. 게임프리크는 한 발작 더 내딛었어야 했다. 포켓몬과 오픈 월드를 조합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포켓몬을 오픈 월드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게임 얘기에 앞서 서론이 길었다. 얼마 전 포켓몬 게임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드 버전이 갓겜이지, 골드 버전이 갓겜이지 같은 소리는 골백번도 넘게 들었다. 그러나 그 게임이 왜 훌륭한지 이야기하는 이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게임으로서의 포켓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년에 출시된 최신작 <스칼렛・바이올렛>은 찬반이 극도로 갈리는 타이틀이다. 마감이 어설프다 못해, 정녕 거대 자본이 들어간 작품이 맞는지, 프로의 작품이 맞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다. 반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평도 많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 이 리뷰는 바이올렛 버전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는 <스칼렛・바이올렛>

<스칼렛・바이올렛>은 시리즈 최초로 캐릭터 생성 단계부터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다만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다양성을 바란다면 실망할 것이다. 고작 몇 가지 프리셋을 지원하는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반갑다. 오픈 월드의 노선과 잘 어울리는 선택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교복 외에는 입을 수가 없다...)

 

언제나의 클리셰

매번 그랬듯이 집을 떠나면서 시작되는 모험. 집을 떠날 때의 애틋함 따위는 없다. 어린 아이가 집을 떠나는데 어머니가 걱정하는 내색도 없고, 주인공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근거림 뿐, 불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리즈 전통답게 아버지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새삼 3세대 <루비・사파이어>가 얼마나 묘사가 잘 된 작품인지 실감이 난다.

 

<스칼렛・바이올렛>은 학교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작품이다. 학교는 팔데아 지방의 역사, 명소, 배틀 시스템, 희귀한 수집물 등 포켓몬 월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보여주는 장소로 쓰였다. 플레이어는 학생이 되어 커리큘럼을 듣고, 자율적인 목표를 수립하여 여행을 떠난다.

 

그레이프 아카데미의 명물 '보물찾기'

말이 자율 학습이지 큰 목표는 알아서 정해준다.

이 얘기는 잠시 미루도록 하자.

 

첫 등교 중에 전설의 포켓몬와 마주쳤다.

전설의 포켓몬은 포켓몬스터의 인기를 견인해온 일등 공신이었다. 게임프리크는 각 포켓몬의 출현 조건, 희귀도를 다르게 책정했고, 전설의 포켓몬은 특별한 던전을 만들어 감춰두었다. 바로 이 점이 포켓몬 흥행의 핵심이었다. 서식지, 진화 조건 등을 친구와 교류하고, 희귀한 포켓몬을 찾아 필드를 누빈다. 사파리 존에서 미뇽을 처음 발견했을 때, 쌍둥이섬의 퍼즐을 풀어 프리저가 있는 곳에 당도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루비・사파이어>는 전설의 포켓몬 그란돈, 가이오가의 대립을 메인 스토리로 풀어냈다. 숨겨진 요소, 덤 취급을 받던 전설의 포켓몬이 메인 스토리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포켓몬 스토리텔링 노선을 180도 바꿨다.

 

그동안 전설의 포켓몬은 시리즈 중후반부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존재였다. <스칼렛・바이올렛>은 이러한 구도를 탈피, 아싸리 처음부터 전설의 포켓몬을 제공하는 강수를 뒀다. <스칼렛>의 코라이돈, <바이올렛>의 미라이돈은 탈 것으로 변화하여 주인공의 충실한 발이 되어준다.

 

오도바이가 된 전설의 포켓몬

팔데아의 방대한 세계에는 수백 종류의 포켓몬이 살고, 플레이어는 전설의 포켓몬을 이동 수단 삼아 사방을 돌아다닌다.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기획이다. 처음부터 모든 곳을 쏘다닐 순 없고, 라이딩 스킬을 활용해 장애물을 돌파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젤다의 전설> <메트로이드> 같은 설계를 연상케 한다. 

 

어떤 스킬을 얻느냐에 따라 접근 방식이 아예 달라진다. (라이딩 스킬 : 활강)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안전 장치가 없는 건 아닌데...

너무 큰 자유를 준 댓가일까, 게임프리크의 오픈 월드는 불완전하다. 처음에는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길잡이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 시티에 도착하면, 학교에서 게임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개발자의 의도대로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플레이어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의외의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오픈 월드를 기획했다면 이 정도는 당연히 예측했어야 했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버그가...

팔데아 지방은 지나치게 넓고 어린아이의 걸음걸이는 더디다. 월드 구성을 억지로 잡아 늘려, 탐험할 곳 하나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장소가 쭉 이어진다. 오픈 월드라길래 기대했건만, 초반 진행을 강제하느니만 못하다. 1시간 정도 구석구석을 탐험한 뒤에야 테이블 시티로 향한 나는 연거푸 실망감을 토해냈다.

 

목적지가 불분명하다면 밝게 빛나는 곳으로 가보자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017>(이하 야숨)은 필드 곳곳에 탑을 배치해 포인트를 살렸다. 플레이어가 길을 잃으면 근처에 탑이 있는지 살펴본다. 주변에 흥미를 끄는 지형이 있다면 그쪽으로 향하고, 특별한 게 없다면 망원경을 사용한다. 사방을 둘러보고 싶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자. 무언가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스칼렛・바이올렛> 또한 <야숨>을 많이 참고했지만, 외양만 베꼈을 뿐 깊이는 털끝만큼도 배우지 못했다. <야숨>의 탑은 끝까지 등반하면 주변 지형 정보가 새롭게 갱신되고, 높은 지형이다보니 주변을 훤히 둘러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탑을 기점으로 자신이 나아갈 곳을 결정하는 것이다. <스칼렛・바이올렛>의 레이드 동굴은 <야숨>의 탑과 유사한 외형을 갖췄다.

 

사방에 보이는 빛 줄기 (레이드 동굴)

포켓몬 게임에서 "희귀한 포켓몬을 잡을 기회"는 대단히 값진 보상이다. 그러나 게임 시스템을 관통하는, 레이드 동굴이 맵 디자인에서 갖는 이점은 어디에도 없다. <야숨>에서 탑을 발견하면 대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탑을 찾음으로써 탐험의 경험이 확장되는 것이다. 

 

레이드 배틀

레이드 동굴은 세심히 배치되긴 커녕 무작위로 나열된 느낌을 받았다. 내용물도 아쉽다. 레이드는 약점을 찌르고 저항을 앞세우는 <포켓몬 GO> 방식의 배틀을 떠올리게 한다. 콘솔 게임의 주력 컨텐츠라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레이드는 비슷한 패턴으로 점철되어,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한 컨텐츠로 전락했다. 발견이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졌던 <야숨>의 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2021.08.08 - [게임 비평] - 포켓몬 GO (2016)

 

포켓몬 GO (2016)

2016년 포켓몬 GO는 전례 없는 대성공을 이뤘다. 포켓몬 GO는 직접 거리에 나가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다. 기존의 포켓몬스터 게임이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면 포켓몬 GO는 현실에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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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바이올렛>의 필드는 공허하다. 가끔 떨어진 아이템, 야생 포켓몬, 레이드 동굴, 트레이너, 어쩌다 마주치는 마을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저쪽엔 뭐가 있을까, 두근거림이 전무하다. 탐험은 일종의 도전인데, 이 게임엔 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NPC들이 팔데아 10경을 반복해서 언급하는데, 전혀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찾아봤자 실망감만 커질 뿐이다. 특별한 장소마저 이 모양인데 일반 필드야 어떻겠는가. 인상이 흐릿하다 못해 기억에 남는 마을조차 없을 정도다. 이 세계에는 생명력이 없다.

 

팔데아 10경에 이런 걸 기대했는데... (제노블레이드 디피니티브 에디션)

 

루비・사파이어의 잿빛도시

배에 몸을 싣고 무로마을을 떠나 도착한 곳은 어느 해변이었다. 해안가에서 팔자 좋게 늘어진 사람들. 뜨거운 운 태양 아래 기세 좋게 배틀을 걸어오는 사람들. 팡파레 풍의 BGM은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잿빛도시의 음악

팡파레 소리가 이윽고 갈매기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로 바뀌자, "이곳은 휴양지 같은 항구도시구나"는 걸 깨닫게 된다. 잿빛도시 서편엔 시장이, 동편엔 조선소와 과학박물관이 위치한다. 마을 북쪽엔 콘테스트 회장이 있어,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콘테스트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콘테스트 회장과 과학박물관은 전용 BGM이 있어 기억에 더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짝 낯설면서도 세련된,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스칼렛・바이올렛의 마리네이드마을

그에 비해 마리네이드마을은 어떤가.

같은 항구마을이라도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퀄리티는 준수하지만... 장소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마을 전경

경매장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마을. 변두리에 컨테이너 시설물 같은 체육관이 전부다. 사람들은 활기차게 말을 걸어오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없었다.

 

잿빛도시에서 지구제구리와 환경 이야기를 하던 노인장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포켓몬이 가끔 쓰레기를 주워온다며, 인간들의 무분별한 투기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부드럽게 경고하고 있었다. 지구제구리의 특성과 사이드 스토리텔링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셈이다.

 

떠들썩한 경매장 분위기와 사운드트랙의 묘한 부조화에 머리를 긁적이는 나. 영혼 없는 대사로 가득찬 사람들. 도시를 둘러봐도 볼거리가 단 하나도 안 보인다. 그나마 하나 있는 경매장은 20년 전 게임에도 없을, 무작정 입찰하는 게 정답인 허접한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마을의 인상 따위 흐릿한 게 당연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도 눈길을 끄는 장소가 없다.

포켓몬 포획은 컨텐츠의 일부일 뿐이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도감 수집과 스토리 모드 외에도 꾸준히 컨텐츠를 제공했다. <크리스탈 버전>의 배틀 타워, <루비・사파이어>의 콘테스트, <블랙 2・화이트2>의 월드 토너먼트 같은 것들 말이다.

 

<스칼렛・바이올렛>는 오픈 월드를 채택했다. 배틀 타워도 좋지만, 장르에 어울리는 새로운 컨텐츠가 꼭 필요했다. 땅에 떨어진 아이템과 레이드 동굴을 마구잡이로 배치할 게 아니라, 사람과 포켓몬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포켓몬이 팔데아 지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우파의 도감 이미지, 게임 속에서는 이런 광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민한 스라크를 뒤에서 포착하려는 모습.

포켓몬 뒤에서 습격해, 체력을 빼놓고 몬스터볼을 던진다. 버섯포자와 칼등치기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 패턴을 시리즈 내내 반복한 결과, 플레이어는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도감 수집에 열을 올린다. 몬스터를 잡을 때의 성취감을 느껴본 게 대체 언제적 일이었는지...

 

길을 지나가다 고블린에게 습격받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젤다 야숨)

<스칼렛・바이올렛>의 세계에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픈 월드는 정의가 모호한 장르다. 오픈 월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은, 오픈 월드는 '열린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여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오픈 월드의 핵심은 탐험이다. 날씨 변화에 따라, 밤낮에 따라 등장하는 이벤트가 바뀌고, 무심코 길을 걷다가 작은 발견에 기뻐한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가상의 세계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스칼렛・바이올렛>의 세계는 왜 이다지도 지루하고 뻔한 것인지...

 

기억에 아로새길 순간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찾기가 아닐까.

 

카메라 기능, 셀프 카메라를 지원한다.

보물찾기 여행이란 컨셉을 잘 살리긴 했는데, 당최 찍을만한 곳이 별로 없는 게 문제.

 

보물찾기 테마가 공허한 필드로 인해 흐지부지된 느낌을 받았다.

 

필드에 상호작용 하나 없이 눈요기로 충분한 오픈 월드도 있다. (제노블레이드 디피니티브 에디션)

꼭 이벤트를 넣지 않아도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스칼렛・바이올렛>에서 오픈 월드란 그저 마케팅적 수사일 뿐이다. 오픈 월드를 진정으로 탐구했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겠지...

 

결국 남는 것은 메인 퀘스트와 단조로운 도감 수집뿐이다. <스칼렛・바이올렛>의 메인 퀘스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포켓몬 시리즈의 전통적인 퀘스트, "8개의 체육관을 제패해 사천왕을 타도하고 챔피언이 된다."는 챔피언 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레이어는 각 체육관을 자유롭게 찾아가 도전을 신청한다.

 

명색이 체육관 관장인데 양학이랑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배지를 네 개쯤 모은 뒤에야 베이크 체육관을 찾을 수 있었다. 일부러 약한 포켓몬을 내보냈는데 레벨 차이가 거의 띠동갑 수준이다. 짐 리더는 도전자의 수준에 맞춰 플레이어를 시험한다는 설정이 있다. 다른 시리즈라면 모를까, 오픈 월드를 표방한 이상 레벨 스케일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체 어디 팔아먹은 건지.

 

스토리 텔링에 초점을 맞춘 스타더스트 스트리트.

스타더스트 스트리트는 팔데아 지방을 어지럽히는 스타단을 해산시키는 이야기를 그렸다. <스칼렛・바이올렛>은 루트를 하나만 골라 진행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오픈 월드로서의 장점 중 하나. 역시나 레벨 스케일링이 적용되지 않은 게 흠이다.

 

레츠고 배틀을 활용한 아지트 점령전

 

레전드 루트는 주인 포켓몬을 쓰러뜨리는 루트다. 결국 챔피언 로드, 스타더스트 스트리트, 레전드 루트 모두 누군가를 쓰러뜨린다는 점은 같다. 각 루트를 클리어하면 보상을 주는데, 그중에서도 레전드 루트의 보상이 유독 눈에 띈다. 라이딩 스킬은 레전드 루트가 아니면 얻을 수 없기 때문.

 

레전드 루트의 나비효과

파도타기도 어렵게 방문한 체육관은 순서상 7번째에 해당하는 베이크 체육관.

어째 야생 포켓몬들이 하나같이 강하더니만...

 

37레벨 vs 44레벨

이런 게 포켓몬 오픈 월드의 묘미가 아닐까.

 

 

캐릭터를 늘어놓는데 급급한 캐릭터 게임

 

캐릭터 게임은 돈이 열리는 나무와 같다. 작품의 팬층이 확고할수록,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점차 떨어지기 마련이다. <위닝 일레븐>(이하 위닝)과 <피파>가 처절하게 맞붙었을 때, <위닝>의 최전성기에도 <피파>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로스터였다. 라이선스 경쟁에서 밀려 아스날은 아제감, 리버풀은 리갈즈로 개명되었고, 클로제는 크노다, 필립 람은 로메로 표기되었다. 이래서야 게임의 완성도는 둘째 문제다.

 

<스칼렛・바이올렛>의 완성도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어떨까. 포켓몬 시리즈는 대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로스터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아픔을 겪었다. 유감스럽게도 <스칼렛・바이올렛> 역시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매력을 표현할만한 어떠한 컨텐츠도 발견하지 못했다.

 

포켓몬 게임에서 캐릭터란 단순히 포켓몬에 국한된 게 아니다. 이미 <레드・그린> 시절부터 웅, 이슬, 비주기, 목호 등이 인기를 끌었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전파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레드・그린>의 사천왕 칸나는 안경과 지적인 이미지 외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 인물이었다.

 

만화 <포켓몬스터 스페셜>은 칸나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어두운 과거와 특유의 잔혹성은 칸나를 얼음마녀로 재탄생시켰고, 많은 이들의 기억에 생채기를 남길 수 있었다.

 

칸나 (포케스페)

이후 포켓몬 게임은 등장인물들의 비중을 서서히 높였다. 목호는 <골드・실버>에서 로켓단 아지트 소탕에 한 축을 담당했고, 종길은 <루비・사파이어>에서 조력자이자 뛰어넘어야 할 부모로 등장했다. 3세대 리메이크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는 민진, 구열이 이미지 체인지를 하면서 게임 외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썬・문>의 릴리에는 진 주인공이 아니냐는 평을 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했다. (대신 안티도 많았다.)

 

포켓몬 게임의 핵심은 포켓몬이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매력적인 인간 캐릭터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포켓몬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포켓몬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광활한 오픈 월드. 소재만큼은 일류다. <스칼렛・바이올렛>은 최상급 와규를 프라이팬에 잘게 구워, 자취생이 즐겨 먹는 김치볶음밥으로 재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명 맛은 있겠으나 소재가 너무 아깝다.

 

챔피언 로드의 라이벌 네모

확실하게 건진 건 조연 3인방이다. <스칼렛・바이올렛>은 이야기의 힘을 빌어 라이벌을 훌륭한 조력자로 안착시켰다. 전작의 라이벌 호브, 마리, 비트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그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작 썬・문에 쏟아진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엔딩으로 가는 길

<루비・사파이어>를 기점으로 라이벌 캐릭터는 점차 조력자, 친구에 가까운 존재로 거듭났다. 포켓몬스터의 수많은 라이벌 중에서도 가장 친구 같은 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스칼렛・바이올렛>의 네모, 모란, 페퍼를 꼽겠다. 무언가 잃어버린 이들이 차츰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임팩트를 남겼다. 복수의 라이벌에게 이만큼 비중이 고루 배분된 작품은 여태껏 없었다.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더 홈웨이'는 <블랙・화이트> 이후로 소실됐던, 포켓몬 게임의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든 에피소드였다. 

 

학교라는 컨셉에 걸맞게 수업을 감상할 수 있다.

<스칼렛・바이올렛>의 수업은 꽤나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각 과목별로 전담 선생님이 배정되어 있고, 포켓몬 세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으며,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선생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개별 스토리는 교사들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마치 영세 회사의 연애 게임에서나 볼법한 만듦새가 실망스럽지만, 컨텐츠 자체는 <페르소나> 시리즈의 커뮤니티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

 

무성의한 연출, 분량이 아쉬워서 그렇지,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하다.

 

 

갈수록 퇴화되는 배틀 시스템

 

배틀 밸런스가 나빴던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나, 이번 작은 과해도 너무 과하다. 캐릭터성을 얻고 밸런스를 무너뜨린 메가진화, 다이제트의 정신 나간 성능으로 혹평을 받은 다이맥스보다 테라스탈이 갖는 구조적 결함이 훨씬 심각하다.

 

플레이어들은 상대가 어떤 속성인지 예측할 수 없어 찍기 싸움을 강요받는다. 지금의 포켓몬 대전은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이 할만한 컨텐츠가 아니다. 결국 코어 게이머만이 즐기는 컨텐츠인데, 실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게임이 운으로 결정되는 걸 혐오한다. 아무리 포켓몬이 운빨 게임이라지만, 명중률 80% 하이드로펌프가 빗나가는 상황과, 사이드 체인지로 단순한 찍기 싸움을 강요하는 건 전혀 다르다. (변수가 너무 많고, 게임이 간단하게 터진다.)

 

페어리 타입일 터인 플라제스가 에스퍼 타입으로 변했다.

<소드・실드>의 배틀 시스템 다이맥스는 포켓몬 대전을 체급으로 찍어 누르는 양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테라스탈은 한 술 더 뜬다. 드래곤은 특정 상성에 매우 취약한 대신, 스탯이 괴랄하기로 악명 높은 속성이었다. 테라스탈은 드래곤의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완전히 지워주는 역할을 맡았다. 망나뇽은 테라스탈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실패작인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내구성 / 약점 극복 / 신속(자속)을 모두 갖춘 망나뇽. 게임을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여기에 패러독스 포켓몬이 더해졌다. 메가진화와 달리 테라스탈은 모든 포켓몬이 가능하므로, 상대는 언제 테라스탈을 쓸지 모르는 불합리한 심리전을 강요받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한 턴이 소중한 포켓몬 게임에서, 한 턴을 가볍게 날리는 시스템의 존재는 끊임없는 쉐도우 복싱과 같다. 마이너한 포켓몬은 환경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포켓몬들이 환경에 득세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체급으로 찍어 누르는 대전이 돼버린 것이다. <스칼렛・바이올렛>의 대전 양상은 역대 최악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 

 

패러독스 포켓몬이 지배하는 대전 환경 (날개치는머리)

 

 

팔데아 기행을 마치며

 

오픈 월드로의 전환은 포켓몬 게임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다. 최상급 고기를 한 데 모아 김치찌개에 넣고 끓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그 밖에도 <스칼렛・바이올렛>은 다양한 문제점으로 가득하다. 닌텐도 게임은 출시 초부터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 법칙이 게임프리크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게임 크러쉬 등의 치명적인 버그는 경험하지 못했으나, 자잘한 버그를 몇 번이나 경험했을 정도로 마감 상태가 형편없었다. 꼭 버그가 아니더라도 부자연스러운 깨짐 현상이 흔히 발생한다. 바닥이 없어지거나, 시점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들 말이다. 이러니 세간의 평가가 낮을 수밖에.

 

이제 지루한 야생 배틀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필드에서 전투 화면으로 넘어갔다가 어렵게 포켓몬을 잡는 형태가 아니라, 필드에서 다이렉트로 몬스터를 잡는 방식이 오픈 월드에 적합한 방식이라 본다. 몬스터를 잡는 템포는 무척이나 더디다. 교배 노가다는 마니아도 학을 뗄 정도로 심하다. 고집 텅구리에 배북을 다는 간단한 행위조차도 라이트 팬에겐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온다. 노력치는 여전히 숨겨진 요소로 남아있으며, 플레이어의 편의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노력치 스탯을 모아놨다가 플레이어가 원하는 스탯을 찍을 수 있게 설정하면 그만인 것을...)

 

 

완성도를 의심케 하는 허접한 표현력.

 

닌텐도 게임이 이 정도로 미완성 상태인 건 오랜만이다.

 

멀리서 부자연스럽게 걷는 NPC

 

마을에 사이드 퀘스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성, "포켓몬이니까~"라는 NPC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평가 점수 ★★

한줄 평 :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낡은 시스템, 오픈 월드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캐릭터 게임으로써, 비디오 게임으로써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다. 완성도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가능성이 보이는 만큼 아쉬움도 크다.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던, 포켓몬으로 가득찬 거대한 세상이 이런 형태는 아니었을 터였다. 개발 기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뽑아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년 게임을 출시하고픈 욕망이 프랜차이즈를 병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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