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포켓몬은 약속이 단순했다. 풀숲에 들어가면 캐터피가 있고, 동굴 끝에는 뮤츠가 숨어있다. “여기엔 뭔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이 세계를 기억하게 만든다. 도시 이름이 아니라, 동선이 남는다. 포켓몬의 세계는 그렇게 외우는 게 아니라 새겨졌다.

그래서 오픈월드는 포켓몬에게 달콤한 제안처럼 들린다. 맵을 채우는 오브젝트가 포켓몬으로 바뀐다. 어디 그것뿐인가. 포켓몬은 종마다 행동이 다르고, 지형/날씨/시간에 따라 등장 포켓몬이 달라지고, 포획이 관찰-접근-실패-재시도의 리듬을 만든다. 오픈월드에서 포켓몬은 장식이 아니라 월드 시스템 그 자체가 된다. 이 조합은 치트키다. 포켓몬은 오픈월드가 늘 품고 있던 공허를 메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재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약속은 배신으로 바뀐다. <스칼렛・바이올렛>(이하 SV)의 세계는 오히려 친절하고, 편리하고, '할 일'이 많다. 문제는 플레이어를 존중하지 않는 데에 있다. 여기서 존중이란 그래픽, 최적화, 버그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세계가 반응하고, 그 반응이 기억으로 전환될 거라는 믿음이다. 많은 오픈 월드가 그래왔듯이, 그냥 넓은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발견의 밀도다.


<포켓몬>은 그러한 신뢰에 기반한 시리즈였다. 3세대가 특히 그렇다. 호연은 동선보다 ‘감각’으로 남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잿빛도시의 갈모매 울음소리, 쩌렁쩌렁 울리는 104번 도로의 트럼펫 소리.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마주하고, 갑자기 내리는 빗방울에 당혹감이 싹튼다. (심지어 전투에 영향을 끼친다.) 특정 지역에서 마주치는 생태의 규칙. “여기엔 이런 애가 산다"를 몸소 보여준 작품이다. 포켓몬이 데이터에서 생명으로 보이던 순간은, 사실 생태 그 자체보다 생태를 믿게 만드는 설계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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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세대 즈음부터 약속이 바뀐다. 세계는 점점 ‘관광지’가 되고, 포켓몬은 점점 ‘리스트’가 된다. 각 명소에 위치한 사진사는 이러한 경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속 내 모습에는 포켓몬이 등장하지 않는다.
<XY>는 편리하다. 학습장치 개편,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등이 대표적이다. 대신 기억도 변했다. 본디 <포켓몬>의 기억이란 장소, 동선, 감정으로 남는 것이었다. <XY>는 기억을 기능으로 전환한다. 또한 누구나 즐기는 <포켓몬>을 꿈꿨다. 포켓몬과 교류하는 포켓파를레도 있고, 배틀 기믹의 끝판왕 메가진화도 있다. 캐릭터성은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왜, 포켓몬이 주인공 같지가 않을까. 이 문제는 <SV>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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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는 보통 '선(善)'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편의가 과하면 어떻게 될까. 플레이어를 보호하려는 장치가, 내가 살아있던 경험을 얄팍하게 만든다. 얄팍한 경험은 세계를 얄팍하게 만든다.

얇아진 세계에서 오픈월드를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가 아니라 UI가 플레이를 이끈다. 빛나는 표식, 지도 아이콘, 레이드 기둥, “여기 가서 이거 해라”는 친절한 지시. 플레이어는 자율적으로 탐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극에 끌려다니는 동선을 반복한다. 오픈월드가 약속한 자율성이 습관 설계로 바뀌는 순간이다.
<SV>는 플레이어의 윤리를 배반한다. 플레이어는 “내가 선택했다”고 느끼지만, 선택은 대부분 UI가 만들어낸 최단 경로의 유혹이다. 유혹은 반복을 부르고, 반복은 기억을 지운다. 사실 반복은 나쁘지 않다. 포켓몬은 원래 반복의 게임이다. 문제는 반복이 노동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노동이 되는 반복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공간이 의미를 주지 못한다.
둘째, 보상이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

<SV>의 필드는 넓다. 포켓몬도 많다. 하지만 그 넓음이 “살아있는 세계”로 전환되지 못하면, 플레이어의 사고는 이렇게 바뀐다. “저 언덕엔 뭐가 있지?”가 아니라 “저 언덕에 가면 뭘 주지?”로.
이때부터 오픈월드는 세계가 아니라 재화 창고가 된다. 오토 배틀, 레이드 동굴도 마찬가지다. 레이드 동굴이 ‘탑’처럼 서 있지만, 탑이 세계를 여는 장치가 아니라 시간을 소모시키는 장치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견은 감탄이 아니라 절차가 된다.

<포켓몬 레전즈 아르세우스>(이하 PLA)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 게임이 한 일은 “오픈월드화”가 아니라 “연구”였다. 포켓몬을 잡는 행위를, 단순 수집에서 관찰로 옮긴다. 포획은 전투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레이어는 보고, 기다리고, 판단한다. 이건 단순히 재미의 문제가 아니다. 플레이어의 주의력과 시간을 다루는 윤리의 문제다.
겉으로 보기에 <SV>는 <PLA>의 계승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테일은 다르다. <PLA>는 포획을 관찰의 리듬으로 설계했고, 플레이어의 주의를 세계에 묶을 수 있었다. <SV>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플레이어의 주의가 포켓몬이 아닌, UI와 효율(필드, 아이콘, 파밍 루프)에 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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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SV>가 흔들린 건, 포켓몬이 오픈월드에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픈월드를 운영할 만큼 세계의 내구도가 없는데 오픈월드의 외형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내구도는 프레임만이 아니다. 내구도는 ‘세계가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소한 소음’이다.
당신은 <SV>에서 NPC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사건은 없고, 동네는 기능만 남았고, 장소의 개성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기에 뭔가 있을 것'이라는 신뢰. 이 신뢰가 약하면, 개발사는 결국 더 강한 UI로 플레이어를 끌고 가게 된다. 표식이 늘고, 보상이 빨라지고, 루틴이 강화된다. 팔데아는 열려 있는데, 내가 여는 건 세계가 아니라 루프다.

기억에 남는 장소는 없다. 기억에 남는 NPC도 없다. 어디에 무엇이 사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SV>는 포켓몬의 행동에 맞춰 지형을 만든 작품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SV>에 기억이 없는가? 아니다. <SV>는 사람, 관계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학교, 동료,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SV>의 친구들, 엔딩은 기억에 남는다.

<SV>는 이상한 작품이다. 오픈월드인데 내가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들지 않고, 수집과 효율에 목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필드와 포켓몬이 분리되지 않아 포켓몬인지 환경인지 구분이 안 간다. 차를 타고 가다 부딪히는 귀찮은 장애물들, "뭐지?"하고 살펴보면 포켓몬이다. 포켓몬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턴베이스 방식의 포획은 오픈 월드와 잘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플레이 리듬이 엉망이다.) 게다가 파밍은 어찌나 많은지.
<SV>는 편의가 부족해서 불편한 게 아니다. 오토 배틀도 있고, 맵을 지멋대로 횡단할 수 있고, 곳곳에 온갖 UI로 가득하다. 문제는 "편의를 어떻게 쓰느냐"다. 편의가 이상한 방식으로 들어가서 플레이어를 이상한 루프로 밀어넣는다. 예컨대 <PLA>는 이로치 출현을 소리로 알려준다. 플레이어의 주의를 감각으로 끌어내는 구조다. <SV>는 이로치를 눈으로 판독하게 만든다. 이 구조는 노동이나 강박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래서 '오픈월드와 포켓몬의 약속'은 배신으로 끝난다. 배신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세계를 믿게 만들 자신이 없을 때, 게임은 플레이어를 믿지 못한다. 플레이어를 믿지 못하는 게임은 친절을 무기로 삼고, 친절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노동이 된다. 그리고 노동이 된 순간, 포켓몬은 다시 데이터로 돌아간다. 많이 보았는데 남는 게 없다. 많이 달렸는데 기억할 길이 없다.
차기작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오픈월드를 버리라는 말도 정답은 아니다.
다만 약속을 다시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
- 세계를 늘리기 전에 좁은 구역 하나를 살아있게 만들 것.
- 포켓몬을 늘리기 전에 포켓몬이 행동하는 이유를 만들 것.
- 편의성을 늘리기 전에 세계의 소음을 복구할 것.
- 그리고 무엇보다, '할 일'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플레이어를 움직일 것.
오픈월드는 지도 크기가 아니라 신뢰의 장르다. 신뢰가 없으면, 세계는 넓어질수록 얇아진다.
포켓몬은 수집의 게임이 아니라 기억의 게임이었다. 기억은 도감의 숫자가 아니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약속은 배신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배신은 늘 친절한 얼굴로 온다.
평가 점수 ★★
<SV>의 자동화는 플레이어를 편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플레이어를 '관리자'로 바꿨는가?
왜 세계의 주인공은 '포켓몬'이 아닌가, '포켓몬'은 그저 배경에 불과한 존재인가?
서사와 캐릭터를 중시한 작품이, 왜 마을을 유령도시로 만드는가.
상호작용 없는 오픈월드를 오픈월드로 볼 수 있는가?
나는 계속 묻고 있는데 세계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공허한 메아리 속에서, 의문은 잦아들고 불신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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