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카드게임이 비디오 게임 이식에 소극적인 것과 대조적으로, 유희왕 프랜차이즈는 1998년부터 연간 2개꼴로 40여 개의 게임을 쏟아냈다. 마리오, 포켓몬스터, 건담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사골도 이런 사골이 없다.
그러나 만화, 애니메이션 원작 게임이 대개 그렇듯이, 유희왕 게임은 형편없는 퀄리티로 출시되었다.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카드게임의 재미조차 잘 살리지 못했다. 어느샌가 유희왕 게임은 동봉 카드를 구입하면 게임을 덤으로 주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꾼 것이 <유희왕 익스퍼트 2006> <유희왕 태그 포스>였다. <익스퍼트 2006>은 듀얼 시뮬레이터로서의 완성도가 놀라웠고, <태그 포스>는 애니메이션 팬층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작품이었다.
2021.07.14 - [게임 비평] - 유희왕 익스퍼트 2006 (2006)
그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대부분의 유희왕 게임은 썩 좋지 못한 퀄리티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심각했던 게 온라인 게임이었다. <유희왕 온라인, 2008>의 황당한 과금 체계는 유저들을 뜨악하게 만들었고, 서버 종료 순간까지도 믿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코나미는 신뢰를 잃었다.
코나미는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3세대에 걸쳐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진 회사였다.
<그라디우스>부터 <메탈기어 솔리드>까지, 게임 역사를 수놓은 게임을 몇 번이고 만들어낸 전설적인 기업이었다. 코나미는 연애 시뮬레이션, 메트로베니아, 잠입 액션, 리듬 게임의 창시자였고, 슈팅, 호러 게임의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을 연겨푸 출시했다. 코나미의 전환점은 <도키메키 메모리얼, 1994>(이하 도키메모)에서 비롯됐다. <도키메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코나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디어 믹스(원 소스 멀티 유스)로 돈을 쓸어담았다. 그러나 2차 창작물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코나미의 광폭 행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코나미는 상대가 대기업일지라도 소송을 불사하는 보기 드문 회사였다. 저작권은 지켜짐이 마땅하나, 코나미의 특허권 활용은 그 정도가 과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회사가 잘 나갈 때면 모를까, 비판 여론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상황에서 코나미를 옹호하는 의견은 점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021.08.30 - [게임 비평] - 도키메키 메모리얼 (1994)
<유희왕 듀얼링크스, 2016>(이하 듀링)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치가 낮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코나미의 감이 떨어졌다곤 해도 오프라인 유희왕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이 문제였다. 과거에도 유희왕 게임은 그저 그런 게임 투성이었다. 하물며 완성도와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현재, 코나미가 만든 유희왕 게임은 어떻겠는가.
2021.07.14 - [게임 비평] - 유희왕 듀얼링크스 (2016)
<듀링>은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코나미의 모바일 게임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듀링>의 성공은 향후 유희왕 게임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2021년에 이르러 새로운 트레일러가 등장했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이하 마듀)이 출시된다는 소식이었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 2022>(이하 마듀)의 출시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코나미의 행보는 그렇다 쳐도, 유희왕 오피셜 카드게임(이하 OCG)을 그대로 옮겼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OCG>를 네크로즈 발매 전에 그만두었고, 섀도르, 클리포트, 령수를 깔짝거리던 게 마지막이었다. 실질적으로 즐긴 마지막 환경은 진 육무중과 퀵 댄디의 시대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일이다.
게임을 그만둔 이후에도 <OCG>에 대한 풍문을 자주 듣곤 했다. 핸드 트랩의 득세, 전개를 막지 못하면 끝나버리는 게임, 10분 동안 전개하는 게임, 유저 간 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한 게임. 이건 내가 알던 유희왕과 달랐다. 블럭 제도(야생) 없이 20여년간 쭉 달려온 탓이리라.
카드게임은 마니아의 장르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덱을 구입하고, 카드 효과를 외우고, 플레잉 방법을 익히고, 상대가 사용하는 카드를 이해해야 비로소 카드게임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다른 카드게임은 어떻게 진입 장벽을 줄일까 고민하는데, <OCG>는 되려 거꾸로 간다. 방대한 카드풀, 복잡한 플레잉, 나날이 늘어가는 소환법... <OCG>의 자유로움은 타 카드게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마니아야 환장하는 요소지만 초보에겐 쳐다보기도 싫은 것들 투성이다.
어느 날 <마듀>가 스팀 상점에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매일조차 정해지지 않은 어느 날 급작스레 전해진 소식이었다. 정신이 멍해진 나는 부랴부랴 <마듀>를 설치했다. 어떤 덱을 할 것인지, 어떻게 배울 것인지 생각하는 건 뒤로 미루자. 밑져야 본전이니.
*이 리뷰는 <마듀>와 <OCG> 양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초 중의 기초만 알려주는 튜토리얼.
<OCG>에 적응하려면 튜토리얼 외에도 알아야 할 정보들이 많다.
어떤 덱을 선택해도 큰 차이가 없다.
이왕 하는 거 새로운 룰에 적응하기 위해 링크 제너레이션을 선택.
덱 짜고 듀얼하는 거야 당연한 거니 넘어가고,
문뜩 솔로 모드가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듀얼 스트래터지 항목에서 심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어쩐지 튜토리얼이 너무 짧다 했어.
<OCG>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비교적 쉬웠던 1~8기(1998-2014)면 모를까, 지금의 <OCG>는 방대한 정보량을 요구한다. 싱크로, 엑시즈, 펜듈럼, 링크 소환법을 익히는 정도로는 택도 없는 게임이 된 것이다. <OCG>는 예전에도 복잡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세부 룰(재정)이 복잡해서 그렇지, 게임의 흐름 자체는 중학생 정도만 돼도 이해하기 쉬웠다.
(*복잡한 룰의 예 : 심연의 암살자, 빛과 어둠의 용, 왕궁의 탄압, 레벨 조정 등)
9기는 <OCG>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남은 시기였다.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새로운 룰, 극단적인 전개(선공 빌드 날먹), 핸드 트랩의 비중 확대가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예전에도 선공 빌드는 있었지만 성공률이 낮았고, 기껏해야 *퍼미션을 1개 세울 뿐이었다. 대부분의 덱은 선공 빌드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퍼미션 : 상대 행동을 제약하는 행위)
*초동이 늘어나면서 첫 턴 빌드가 중요해졌다. 내가 준비한 플레이를 첫 턴부터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막는 자(선공 빌드)와 뚫는 자(후공 돌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라이트닝 스톰, 금지된 일적, 길항승부 같은 *후공 돌파 카드가 존재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집을 부수는 건 어렵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없게 방해하는 편이 후공 승률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마법도, 함정도 쓸 수 없는 상대 첫 턴에 뭔 수로 개입한단 말인가.
(*초동 : 덱의 메인 기믹을 활성화시키는 카드, 주로 원핸드, 투핸드 초동 같은 표현을 쓴다.)
(*후공 돌파 : 상대 빌드를 철거하고 후공 전개를 성공시키는 행위)
결국 후공 승률을 끌어오려면 *핸드 트랩(이하 핸트)이 필수적이다. 핸트는 패에서 발동하여 함정 역할을 수행하는 카드를 통칭한다. 옛 유저에게 친숙한 D.D. 크로우, 명부의 사자 고즈, 이펙트 뵐러 역시 핸트다. 당시의 핸트는 덱에 0~2장 넣는 카드였지만 유령 토끼, 하루 우라라 등의 파워 카드가 출시되면서 핸트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OCG>는 핸트가 난무하는 게임이 되었다. 혹자는 패 트랩 X망겜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핸트가 없었다면 <OCG>는 선공 *솔리테어 게임이었을 것이다.
(*핸드 트랩 : 패 유발, 패 트랩)
(*솔리테어 : 혼자 노는 카드게임)
덱 서치를 막는 우라라, 우라라를 막는 지명자(or 감마). 얼핏 단순해 보이는 구조지만 상대의 핸트를 예측하고 유도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핸트 발동 타이밍에 따라 상대의 급소를 찌를 수도 있고, 방해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면서 전개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과거의 <OCG>는 발동 타이밍이 뻔해, 특정 카드 몇몇만 신경쓰면 충분했다. 따라서 초보자와 숙련자의 간극이 크지 않았다.
누구나 핸트를 넣는 시대가 도래했다. 핸트를 사용할 수 있는 타이밍도 늘어났다. 상대의 약점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핸트를 사용해봤자 소용이 없는 시대다. 데스피아의 낙인 융합을 '하루 우라라'로 막아야 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전개가 훨씬 복잡한 덱을 상대한다면 어떨까?
전개를 효과적으로 방해하려면 상대의 취약점이 어딘지 알고, 내 패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기본이다. 핸트가 2장 이상 잡혔다면 어떤 카드를 먼저 쓸지 결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초창기 <OCG>는 제법 가볍게 입문할 수 있는 카드게임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게임은 유례없이 복잡해졌다. 실력의 변별력이 올라 좋아하는 사람, 게임이 너무 어려워져 포기하는 사람, 혼자 마구 전개하는 바람에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사람 갖가지다. 지금의 <OCG>는 상황별 대처 능력, 매치업 이해도, 전개법, 예측 플레이, 카운팅, 확실한 승리 플랜이 없으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됐다. 15년 전의 <OCG>와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OCG>는 모든 카드게임 중 인기 최상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OCG>의 유저풀은 탄탄하며, 그 중 절대다수는 라이트 게이머이다. 라이트 게이머는 왜 <OCG> 같은 하드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일까. 카드 수집, 애니메이션의 팬, 애니메이션의 재현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테마 덱의 공헌을 빼면 섭하다.
솔로 모드는 다양한 테마 덱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1~5기까지는 테마 덱의 개념이 약했고, 주로 종족, 속성, 굿 스터프(잡덱) 형태의 덱을 선호했다. 테마 덱의 유래는 2기 시절 스피릿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테마의 기틀을 잡은 최초의 덱은 묘지기였다. 묘지기는 공통 효과가 없고 카드군끼리의 시너지가 약해 테마 덱의 개성을 온전히 갖췄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것을 보완한 테마가 305에서 발매된 체스 데몬이다.
체스 데몬은 불완전한 덱이었다. 암만 킹 + 룩 + 만마전의 연계 플레이가 있다지만, 당시엔 서치가 힘들어 단독 성능이 강한 카드를 다수 채용했다. 동족감염 바이러스, 이차원의 여전사, 마도전사 브레이커 같은 것들 말이다. 묘지기와 체스 데몬은 테마 향을 가미한 불완전한 잡덱에 불과했다.
체스 데몬보다도 테마 덱의 향취를 풍긴 건 카오스였다. 카오스는 공통 효과랄 것이 없고, 카드 간의 시너지가 텍스트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카오스에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시너지가 있었다.
카오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움을 선보였다. 압도적인 폭발력, 덱 구성의 유연함, 에이스를 소환하기 위한 덱 구축까지... 카오스는 테마군이 아니었으나 명백한 테마 덱의 성질을 갖추고 있었다. 카오스는 여러 갈래로 퍼져 전성기를 맞이한다. 허나 거듭된 제재 끝에 종언, 개벽이 제한 리스트에 올라가면서 카오스는 평범한 스탠다드 덱으로 전락한다. 이래서는 체스 데몬 덱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분명 카오스는 겹겹이 제재가 필요할 정도로 지나치게 강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오스는 <OCG>의 대지에 테마라는 씨앗을 뿌렸다.
카오스 발매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암흑계, 히어로가 나왔지만 테마 덱이라고 보기에는 영 신통찮았다. 암흑계는 카드 간의 시너지보다 용병으로서의 쓰임새가 주목받았고, 히어로는 실전성 없는 콤보로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그때 등장한 게 보옥수다. 보옥수는 독특한 컨셉, 자신만의 승리 플랜, 테마 중심의 덱 구성이 주목받았고, 환경권에서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이후 코나미는 연겨푸 테마 덱을 쏟아 내었다. 그중 오래 활약하고 사랑받은 것이 라이트로드였다. 라이트로드를 기점으로 테마 덱은 '약해빠진 컨셉 덱'이 아닌, 명실상부 <OCG>의 아키타입이 된 것이다.
<마듀>는 솔로 모드의 테마 덱 체험에서 시나리오, 연습, 듀얼 모드를 지원한다. 시나리오 모드는 테마의 배경 스토리, 연습 모드는 테마 덱의 기초를 알려주고, 듀얼 모드는 덱을 렌탈해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다. 다만 테마 덱의 메커니즘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 단점. 전개 루트는 커녕 기초적인 콤보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테마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심화 과정을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유희왕 듀얼터미널, 2008>(이하 듀터)은 테마 덱에 이야기를 붙여 <OCG>에 독자적인 세계관을 불어넣었다. 웜과 빙결계, 젬나이트, 가스타의 이야기. 여러 테마들은 서로 협력하고 대립하며 얽히고설킨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다. 그간 <OCG>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카드를 카드게임에 맞게 리뉴얼하여 판매하는 전략을 취했다. 애니메이션을 카드를 팔기 위한 홍보의 장으로 사용한 셈이다.
유희왕 5D's 방영일자 : 2008년 4월 2일
*듀얼리스트의 태동 발매일자 : 2008년 4월 19일
(*유희왕 5D's에서 등장한 스타더스트 드래곤, 고요우 가디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듀터>는 애니메이션에 종속되지 않은 <OCG>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노멀 카드에 테마 설정(플레이버 텍스트)을 집어넣고, 효과 /마법 /함정 카드엔 일러스트를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설정과 일러스트를 보고 이야기를 짜 맞춰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다. <OCG>를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호평을 받으면서 코나미는 정규 부스터팩에 <듀터>의 설정을 옮기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출시된 게 9기의 섀도르, 클리포트, 테라나이트 같은 테마군이다.
다른 시나리오가 각 테마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성유물 시나리오는 특정 테마에 국한하지 않고 거대한 서사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다. 코나미의 사업 수완은 대단하지만, 코나미가 왜 성유물 스토리를 따로 게임화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코믹스, 영상화조차 되지 못했다.) 전에 *환상수호전 시리즈를 거하게 말아먹은 탓일까.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코나미는 항상 이런 식이다.
(*환상수호전 시리즈 : PS1 시절을 수놓은 명작 RPG 시리즈)
<마듀>의 스토리 모드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듀얼 모드는 플레이어, CPU 간의 덱 성능 차이가 심해, 전술과 숙련도가 아닌 운빨(시행 횟수)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이 강하다. 스토리 모드는 카드 일러스트와 짤막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고작이다. 듀얼 터미널 스토리는 <마듀>에서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성유물 스토리처럼 술술 읽히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연습 모드는 테마 덱의 핵심 플랜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OCG>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은 <마듀> 밖에 없다. 솔로 모드를 통해 각 테마의 스토리를 접하고, 뽕이 벅차올라 그 덱을 맞추기도 한다. 코나미가 노린 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원작 만화 <유희왕>은 지금도 회자되는 강렬한 캐릭터를 남겼다. 유우기, 카이바 등의 핵심 인물들은 물론, 카드게임의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캐릭터조차 모르는 이가 없다. (블랙 매지션, 블랙 매지션 걸, 푸른 눈의 백룡, 엑조디아, 오시리스의 천공룡 등) 유희왕 베이스의 게임은 태생부터 캐릭터 게임일 수밖에 없다. 원작과 크게 멀어진 현재의 <OCG> 역시 마찬가지다. 테마 덱은 매력적인 캐릭터, 이야기로 무장해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en.megahobby.jp/products/art-works-monsters-yu-gi-oh-dark-magician-girl
맛집 리뷰를 통으로 텍스트에 명시해 화제가 되었다.
군관이 플레이버 텍스트로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면, 카드 효과로 웃음을 주는 카드도 있다. 려봉은 여포를 모티브 한 카드로, 1번 효과는 여포의 압도적인 무력을, 2번 효과는 권력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 (연의에선 아비가 세 명이라고 까인다...) 쪼잔한 모습을 담았다.
덱 편집 모드도 살펴보자. 덱 편집부터 카드 제작까지 웬만한 기능은 다 구현되어 있다. 허나 *검색 기능은 썩 만족스럽지 않은 편. (속성, 종족, 카드 종류 등을 지정하는 게 고작이다.) 카드풀이 넓은 만큼 검색 기능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덱 코드 기능조차 구현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이게 최선이었나.
(*검색 : <익스퍼트 2006>은 덱 서치, 묘지 회수, 카드 되돌리기 등을 지정하여 검색할 수 있다.)
(*덱 코드 : 웹에서 덱 공유를 쉽게 할 수 있는 기능, 이게 없으면 일일히 카드를 검색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
<듀링>의 제작 기능은 제한적이었다. 교환할 수 있는 카드는 트레이드 가능한 카드뿐. <하스스톤, 2014>의 가루 시스템이 선녀처럼 보이곤 했다. 제작진들도 이런 비판을 알고 있었던 탓인지, <마듀>는 다를 것이라는 걸 출시 전부터 강조해왔다. 놀랍게도 코나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듀>는 잉여 자원을 활용하기 좋은 게임이다. UR 카드를 세 장 갈면 UR 카드를 하나 만들 수 있다. 카드깡(가챠)도 있고 스마트폰으로도 즐길 수 있어 모바일 게임의 성격도 갖췄다. 그간 모바일 게임의 과금이 얼마나 매웠던가. 잉여 자원이 쌓이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오는 게 모바일 게임의 현실이었다.
재화 수급은 일일 퀘스트, 듀얼 보상, 이벤트 듀얼로 충당한다. <마듀>는 일퀘만 돌려도 과금 부담이 적은 게임이다. <듀링>의 셀렉션 팩처럼 선행 발매 카드를 판매하지도 않는다. 비록 <마듀>의 과금 효율이 썩 좋진 않지만, 무소과금 유저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이다. 할인 젬만 구입해도 할 수 있는 덱이 많은 게임이다.
그렇다면 천장 시스템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좋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10팩에서 UR 카드를 못 얻으면 다음에 확정 UR를 받을 수 있지만, 픽업 카드가 많아 원하는 UR을 노리기 힘들다. 물론 천장이 없어도 제작으로 만회하면 그만이다.
<마듀>의 카드 팩 시스템은 독특하다. SR, UR 등급 카드를 얻으면 관련 시크릿 팩이 잠금 해제된다. 게다가 SR, UR 카드를 제작하면 딱 한 번만 관련 시크릿 팩을 무료로 준다. 처음에는 숨겨진 팩을 찾는 게 신선하고 즐거웠지만,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답답함도 커졌다. 어차피 잠금 해제된 시크릿 팩은 24시간 후에 닫히기 때문이다.
"가챠 게임은 뽑기가 제일 재미있다"고들 한다. 연예인, 스포츠 선수가 그려진 카드를 무작위로 뽑는 구조는 태곳적부터 있었다. 여기에 보드게임의 규칙이 더해지면서 TCG가 탄생했다. TCG는 수집형 카드이자 보드게임인 독특한 구조의 장르다.
갸차 게임의 핵심은 희소성이다. 희소성을 강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겉모습이다. 반짝이는 일러스트, 차별화된 구도, 독특한 포일 처리, 사인 카드 등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카드를 뽑았을 때의 만족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듀링>의 연출이 화려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듀링>의 카드는 일반, 윤광, 오색 세 가지 레어도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 뽑기 연출은 화려하지만, <듀링>의 레어도 표현은 영 탐탁치 않았다.
<OCG>의 화려한 레어 카드에 익숙해서일까. 윤광은 <OCG>의 슈퍼 레어, 오색은 패러랠 레어만 못하다. <듀링>의 오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의 수집욕을 자극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마듀>의 카드는 베이직, 샤인, 로얄 가공 세 가지 레어도로 나눠져 있다. 샤인 가공은 테두리에 은빛 윤기로 포인트를 주고, 일러스트에 광택을 부여하여 카드의 입체감을 살렸다. 로얄 가공의 다채로운 반짝거림은 실물 카드 특유의 느낌을 재현했다.
<OCG>의 아이돌 카드 '드래곤메이드 라도리'
괜히 레어도 높이려고 환장하는 게 아니다.
등장 연출은 또 어떤가. <듀링>이 애니메이션 재현에 몰두한 반면, <마듀>은 듀얼 시뮬레이터에 충실한 게임이다. 비록 <듀링>처럼 캐릭터 음성을 지원하진 않지만, 효과음, 사운드트랙, Live 2D 컷씬, 소환 시 카드가 흔들리는 표현 등 세세하게 신경 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게임이 노잼이면 다 부질없는 법. <마듀>를 이해하려면 우선 <OCG>의 양상을 알아야 한다. <OCG>는 자원이 풍족한 게임이다. 일소권을 제외하면 마나 개념이 없어, 한 턴에 소환을 10번이든 20번이든 할 수 있는 미친 게임이다. 험한 꼴을 안 겪으려면 선공 전개를 최대한 방해해야 한다. 그 어떤 게임보다도 첫 턴이 중요한 것이다. <OCG>의 첫 턴은 타TCG의 5턴 분량이 농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전개가 성공했을 때, 혹은 전개를 뚫었을 때의 뽕맛이 강렬하다.
선공은 덱 메이킹 단계에서 준비한 계획을 실행한다. 후공은 상대방의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킬각을 보거나, 방해를 걷어내고 자신의 준비한 집을 세운다. 이것이 <OCG>의 대략적인 양상이다.
<마듀>는 작년 <OCG>에서 겪은 환경을 재현한 게임이다. <마듀>는 <OCG>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환경이 조성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단판과 매치의 차이. <마듀>은 *단판으로 승패가 정해진다. 단판 특성 상 니비루, 길항승부 같은 사이드 카드를 메인 덱에 집어넣는 사람이 많다. 또한 체인 시스템의 한계로(아마도 경기 템포를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상대 핸트를 예상하기 쉽다. <OCG>에서 언제 니비루를 맞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단판 : <OCG>는 3판 2선승이며, 매치 도중에 사이드 카드를 투입할 수 있다.)
프랭키즈는 엘드리치에게 불리하지만, 프랭키즈가 선공을 잡고 로어곤을 띄우면 할 만한 매치업이 된다. 그런데 선공 로어곤은 상대가 엘드리치라는 걸 알아야 할 수 있는 플레이다. <OCG>는 3판 2선승이기 때문에, 두 번째 게임부터는 상대가 어떤 덱인지 아는 상태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마듀>는 단판이다. 단판인 이상 당연히 상대 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맞춤 빌드 대신 두루두루 통하는 '범용성 높은 플레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OCG>보다 대 엘드리치 매치업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단판전은 운이 매우 중요하다. <마듀>이 3판 2선승제였다면 라이트 유저를 유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OCG>와 주어지는 시간도 다르다. <마듀>는 첫 턴 300초, 이후 90초를 쥐어주는데, 전개가 복잡한 덱일수록 시간이 빠듯하다. 90초로는 운영 싸움과 킬각 양쪽의 사다리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단판제와 짧은 제한 시간은 온라인 게임 특성에 맞춘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여기까진 좋다.
<OCG>는 버그, 치트급 날먹이 즐비한 게임이다. 대표적인 카드가 왕국의 칙명과 배너티 스페이스다. 칙명은 마법 카드를, 배너티는 특수 소환을 틀어막는다. 메인 기믹만으로 칙명, 배너티를 돌파할 만한 덱은 거의 없다. 스킬드레인, 군웅할거, 센서만별, 어전시합, 차원장벽 역시 대응이 어려운 카드들이다. 몇몇 선공 빌드는 게임을 닫아버릴 정도로 강력한데, 안정성은 무지하게 높아 원성을 산다. (증G 착지점, 체인 꼬아 회피하기, 원핸드 초동 등등) 부모인 <OCG>가 이러니 <마듀> 또한 마찬가지다. 유희왕의 세계는 디메리트는 적고 메리트로 꽉 찬 미친 카드들로 가득하다.
상대 전개를 기를 쓰고 막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집이 지어지면 무너뜨릴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억까'의 상징 칙명, 배너티조차 전개 덱의 집 짓기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2022년 5월 분기는 전개 덱의 강세가 두드려졌는데, 가장 큰 요인은 용사 카드군의 발매와 말명자 무제한일 것이다.
<OCG>는 후공이 불리하다. 후공의 승리 플랜은 크게 두 가지인데, 가장 선호되는 대처법은 핸트로 집 짓기를 방해하여, 부실한 집을 유도하고 박살내는 것이다. 핸트를 1장 이상 잡을 확률은 83.19%. 즉, 16.81%는 손가락 빨면서 상대 전개를 지켜봐야 한다는 소리다. 핸트를 1장 쓰면 상대 전개가 멈출까?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예를 들어 LL, 드래곤링크 같은 덱은 공격권이 많아, 핸트 한 두 장 정도는 밟으면서 전개할 수 있다.
확률 계산 링크 : https://dskjal.com/statistics/chance-calculator.html#general
여기에 무명자, 말명자가 더해졌다. 지명자 시리즈는 상대의 핸트를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파워 카드다. <마듀>는 약 7개월 동안 무명자 & 말명자가 합계 5장인 환경이 지속되었다. 이 시점에서 전개 덱의 강세는 당연히 예상되었던 바였다. 그중에서도 무명자는 필수 카드로 여겨질 정도로 다재다능함을 자랑했다. 묘지를 활용하는 덱들은 대부분 무명자를 두려워했다.
그에 비해 말명자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말명자는 전개 덱의 에이스 카드였지만, 디피닉스 발매 이전에는 "쓰는 덱만 쓴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후공에서의 쓰임새가 애매한 데다, 탑 드로 싸움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피닉스가 발매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디피닉스는 퓨전 데스티니, 아나콘다와 결합되어 거의 모든 덱에 투입되었다. 퓨전 데스티니(이하 퓨데)를 못 막으면 게임이 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말명자의 채용률이 급속히 늘었다. 퓨데는 우라라, 아나콘다는 뵐러와 포영에 취약했다. 즉, 우/뵐/포만 막으면 퓨데를 안전하게 통과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최적화된 카드가 말명자였다.
말명자는 세트 카드로서도 일류였다. 말명자는 상대의 말명자, 무명자, 퓨데를 막아 승패를 결정지었다. 커뮤니티에서 디피닉스와 말명자에 대한 민심이 들끓었다. 하지만 말명자는 무제한으로 남았다. 그래야 디피닉스를 더 팔아먹을 것 아닌가. 여기에 용사가 더해지면서 <마듀>는 극단적인 선공 게임으로 거듭났다. (용사 천위, 용사 프랭, 용사 전뇌)
<마듀>에 파워 카드가 유독 많았던 것 또한 문제였다. <마듀>는 악명 높은 V.F.D가 7개월 동안 살아남았다. 하리파이버, 아나콘다, 유니온 캐리어는 언제 금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디멘션 어트랙터, 배너티 스페이스, 왕국의 칙명은 손도 못 쓰고 지는 불쾌한 게임을 조성했다. 이 모든 카드가 살아 있었다.
덱 빌딩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나로서는 이 환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플레이를 볼 때마다 하나같이 뭘 못해서 진 게 아니라, 그냥 후공 잡아서, 포영+니비루를 패에 못 잡아서, 다 막았는데 손 퓨데를 못 막아서 게임이 터진 거였다.
5-8월 분기가 끝나고 승률을 계산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전보다 4~5% 가량을 까먹었다. 발매 초에 심각했던 랜뽑 드트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실력과 상관없이 지는 판이 허벌나게 나온 것이다.
ⓐ 승률을 높이려면 우선 덱을 잘 골라야 하고, ⓑ 후공 승률을 높이고, ⓒ 운영 싸움에서 차이를 내야 한다. |
5월 환경은 ⓐⓑⓒ 모두 문제가 있었다.
유희왕은 캐릭터 게임이다. 티어 게임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테마로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마스터 듀얼>은 선택할 수 있는 티어 덱의 폭이 넓었다. 3티어로 분류되는 덱도 대회에서 종종 입상하곤 했다. 티어권 바깥으로 분류되는 덱조차 최고 등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메뉴가 많으니 내가 하고 싶은 덱을 고르는 것도 쉬웠다.
용사 환경은 ⓐ(덱 선택)부터 에러였다.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극단적으로 적었다. ⓑ(후공)은 답이 없었다. 그저 상대 패가 안 좋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고점 위주의 환경이 조성되면서 중장기전을 보는 ⓒ(운영)은 길을 잃었다. 카드게임이 좋아 시작한 사람, 유희왕 캐릭터가 좋아 시작한 사람, 실력을 올리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환경이었다.
<듀링>은 UR 카드를 제재하지 않는다. <듀링>에서 UR 카드가 제한 카드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그 카드를 세 장 만들었다면, 남는 두 장을 활용할 방법이 없다. 이용자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비싼 UR 카드를 제재할 수 없는 구조다.
사람들은 <마듀> 금제에서 <듀링>을 떠올렸다. "설마 비싼 카드라고 제재 안하는 거야?" 출시 후 7개월이 흘렀지만 UR 카드는 여전히 철밥통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밸런스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런 노선이 지속된다면 <마듀>엔 희망이 없다.
8월 금제가 뜨자 상황이 달라졌다. V.F.D, 칙명, 배너티가 금지로, 말명자가 제한 카드로 지정되었다. 금제 리스트가 단판 특유의 불쾌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다. 보상도 확실하다. 평소 카드를 갈면 10 가루만 주던 것이, 금제 카드로 지정되면 30 가루를 준다. 이게 게임이지.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전개 덱이 약화되었다곤 하나 여전히 용사는 제재가 없고, 낙인 융합은 아예 무제한으로 출시되었다. UR 카드 제재에 소극적인 건 2023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코나미는 신규 파워 카드를 한참 뒤에 제재하는 행보를 오랫동안 보여주었다. 이 기조는 앞으로도 안 바뀔 가능성이 크다. <OCG>라는 확실한 미래시가 있는 게임이기에, <마듀>가 앞으로 어떤 게임이 될 지 예상하기도 쉽다.
앞으로 스프라이트, 티아라멘츠, 이시즈, 크샤트리라가 나오는 환경을 견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로망덱은 커녕, 1-2티어 간 차이가 극심해져 2티어조차 힘든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결국 유저들이 기댈 곳은 코나미의 현명한 금제밖에 없다. 참 희망한 얘기다.
여전히 지속 함정, 디멘션 어트랙터 1장에 덱 기믹이 멈추고, 혼자 5분 동안 전개하는 솔리테어 게임은 변하지 않는다. 금제로 인해 '억까'의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
유희왕은 뽕을 채워주는 맛이 일품인 게임이지만, 당하는 사람의 불쾌감이 지독할 정도로 심하다. 당신이 카드 게임 마니아일지라도 <마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우선 텍스트가 무척이나 길다. 가뜩이나 카드 종류도 많은데 읽을 의욕이 뚝뚝 떨어진다.
복잡하고 차별화된 덱 기믹 덕분에 파고드는 깊이가 상당하나, 새로운 덱을 익힐 때마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임한다. 다른 카드게임들이 플레이어의 불쾌감을 줄이고 학습 난이도를 대폭 낮추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짚어본 문제들은 <OCG>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당연히 <마듀>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카드 한 장에 덱 기믹 전체가 부정되는 상황을 겪는다면, 열반에 든 석가모니라 할지라도 과연 참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표적인 카드 : 군웅할거, 어전시합, 센서 만별, 차원의 틈, 디멘션 어트랙터)
<OCG>는 예비 카드가 주어지고, 3판 2선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소위 '억까' 상황이 나오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있다. 대책 카드를 넣어 상대 전략을 카운터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듀>은 단판... '억까'로 지면 그러려니 해야하는 처지다. 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유형이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온갖 말도 안되는 상황에 직면해,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연패를 쌓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매칭을 돌려야 하는데, 첫 턴 전개에 10분이 걸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가 없다.
가벼운 단판전 게임인데, 정작 게임이 헤비해서 생기는 모순. 이뿐만이 아니다. 일일 퀘스트는 <마듀>를 꾸준히 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인데, 정작 달성하기 어려운 미션이 많아 귀찮다. 항복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해당 듀얼에서의 행위는 전부 말소되어, 미션 카운트가 일체 올라가지 않는다.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서, 미션을 깨기 위해 상대 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진다. 나는 빨리 일퀘만 하고 끄고 싶은데, 잘못 걸리면 1시간 반동안 미션을 못 깨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러모로 초보자가 발 붙이기 어려운 구조다.
<마듀>는 제법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한계는 뚜렷하다. 이제 좋은 시대는 이미 갔다. 칙명, 배너티, 하리파이버 등이 금지됐음에도 단판 특유의 불쾌감은 여전하다. 체급 자체가 다른 테마가 등장하면서 쓰는 덱만 쓰는 현상이 뚜렷하다.
블랙 매지션, 푸른 눈의 백룡을 쓰고 싶은 사람이 지금의 환경을 감당할 수 있을까. 스프라이트, 이시즈 티아라멘츠, 비스테드, 크샤트리라를 차례로 겪으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환경이 이 모양이면 게임의 완성도는 둘째 문제다. 고작 테마 몇 개 추가됐을 뿐인데 수백 가지 덱이 죽어버렸다. 이게 맞는 걸까.
듀얼이 재밌다면 어떻게든 합리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덱 쉐어는 나름대로 균형 있게 분포되어 있지만, 극단적인 듀얼 양상이 늘어나고, 수 싸움이 줄어들면서 재미가 크게 훼손되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평가 점수 ★★★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다루는 건 언제나 어렵다. 온라인 게임은 리뷰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이 글을 처음 작성한 시점은 2022년 9월이었다.) 이는 오프라인 카드 게임인 <OCG> 역시 마찬가지여서, 2004년 변이 카오스를 즐긴 사람, 2012년 머메일과 염성을 즐긴 사람, 2019년 오르페골을 즐긴 사람 모두 유희왕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이다.
<마듀>는 <OCG> 기반의 게임이다. <OCG>가 흔들리면 <마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코나미가 정신 차리지 않는 한 답이 없는 문제다. 결국 독자 금제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카드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최상위 경쟁 게임만이 아니다. 캐릭터 게임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있고, 수집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2티어 아래급 덱으로 티어 게임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게 하나둘씩 부정되고 있다.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앞으로 완화될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마듀>의 앞날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0/29/2023 추가)
스프라이트, 티아라멘츠가 대폭 약화되면서 차디찬 겨울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듀>의 금제 방향은 <OCG>와 다른 노선을 선택하면서 색다름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게 '티아라멘츠 키토칼로스'다. <OCG>에서 일찌감치 금지되었던 이 카드가 <마듀>의 세계에선 팔팔하게 살아숨쉬고 있다. <OCG>에서 제한 카드로 지정된 '티아라멘츠 메이루'는 금지 카드가 되어, 인스턴트 퓨전, 늪지대의 마신왕, 티아라멘츠 사리크의 제재와 더불어 티아라멘츠를 옥죄고 있다. 그 결과 티아라멘츠는 여전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저점이 불안정해 다른 덱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마듀>가 추구하는 금제란 불쾌감을 줄이고, 기존 덱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훼손하지 않으면서, UR 카드를 되도록 제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OCG> 환경에서 티아라멘츠와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크샤트리라는 발매와 동시에 전뇌수 디아블로시스의 금지로 덱의 고점이 크게 깎였다. 스프라이트는 떡 개구리, 유니온 캐리어가 금지된 상태로 출시되어 <OCG> 시절 만큼의 경쟁력은 갖출 수 없었다. <마듀>의 금제가 충분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정도면 내 예상보다 훨씬 선방한 결정이었다.
아직 날이 차지만, 겨울이 지나가고 새싹이 트는 계절이 다가온다. 과연 싹이 자라날 수 있을까. 조금 회의적이다. 뭣하러 몇 십, 몇 백 시간 이상 녹여야 재미를 붙이는 이 복잡한 게임에 뉴비가 투신한단 말인가. 어지간한 각오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유희왕을 즐길 요량이라면 <마듀> 입문보다 실물 카드 수집으로 출발하는 걸 권장한다. 카드게임이 하고 싶은 쪽이라면, 세상엔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카드게임이 수두룩하다. 방대한 카드풀은 초보자에게 덱 짤 엄두를 못 내게 만든다. 검증된 덱으로 입문한다 해도 덱의 메커니즘, 전개법,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이해도, 상대 덱의 메커니즘, 상대 덱의 취약점 등등 알아둬야 할 것 투성이다. 특정 카드, 특정 덱이 유행하면 그에 맞게 덱을 커스텀하는 능력도 기본 소양이다.
그렇다고 한 번 이해하면 편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유희왕은 플레이어에게 끝없는 학습을 요구한다. 무사히 입문에 성공하고,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유희왕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치자. 유희왕의 모순은 숙련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유희왕의 전개 덱은 짧게는 3분, 길게는 10분 이상 끊임없이 몬스터를 내며 튼튼한 집 짓기를 구사한다. 후공의 수단이라곤 핸트로 상대의 집 짓기를 방해하거나, 돌파 카드를 사용해 집을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다음 턴 탑 드로가 덱에 몇 장 넣지도 않은 '금지된 일적' '무한포영' '길항승부'이길 바라며 5~10분 동안 전개 쇼를 지켜보는 기분이란... 초보든 마니아든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상황이다. 유희왕은 승자는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하게, 패자는 불쾌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게임이다. 이런 이상한 메뉴를 뭔 수로 떠먹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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