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리뷰

소닉 더 헤지혹 (1991)

by 눈다랑어 2022. 8. 13.

경쟁은 발전을 촉진시킨다.

닌텐도는 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더 이상 콘솔 시장에서 닌텐도의 적수는 없어 보였다. 닌텐도가 약진하던 무렵 세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세가는 1983년부터 콘솔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승승장구하던 아케이드 사업과 달리 콘솔 시장의 실적은 부진했다. 세가의 게임기는 서드파티의 부재로 흥행에 실패하고 있었다.

 

1988년 10월 29일, 패미컴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때에 메가 드라이브가 출시되었다. 메가 드라이브의 성능은 훌륭했지만 세가의 정책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집으로 배달하는 것 외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멀쩡히 내놓은 새 제품을 이번에도 말아먹은 것이다. 메가 드라이브는 합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잊히는 듯했다.

 

상황이 급변했다. 조용했던 메가 드라이브가 북미 시장에서 월척을 낚은 것이다. *제네시스의 성공은 마케팅의 성공이었겠지만, 따지고 보면 게임이 재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제네시스와 <소닉 더 헤지혹, 1991>(이하 소닉)을 번들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세가 북미 지사의 결단은 향후 콘솔 전쟁을 이끌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

 

(*제네시스 : 메가 드라이브의 북미판 이름)

 

플랫폼 장르의 역사에서 <소닉>이 갖는 위상은 각별하다.

장르 최대의 라이벌 <슈퍼 마리오>와의 대립, 플랫폼 장르의 폭발적인 인기를 견인한 게임, 혁신적인 마케팅 수법, 콘솔 전쟁의 서막...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게임이 바로 <소닉>이다.

 

이런 게 주인공?

고슴도치 소닉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까칠하고 쿨한 캐릭터.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뗴굴떼굴 굴러 박살 내버린다. 마리오와 전혀 다른 캐릭터에 사람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맹렬하게 가속하는 소닉 앞에 방해물은 없어 보였다.

 

호쾌한 액션이 발군이다.

<소닉>이 시도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메가드라이브는 슈퍼패미컴에 비해 동시 발색 숫자가 적었고, 구현 가능한 색상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한 콘솔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소닉>을 하면서 메가드라이브가 슈퍼패미컴보다 그래픽이 더 좋다고 느끼곤 했다. 그만큼 <소닉>의 색깔 배치가 탁월했다는 뜻이리라.

 

슈퍼패미컴 <슈퍼 마리오 월드, 1990>
슈퍼패미컴 <액트라이저, 1990>
슈퍼패미컴 <악마성 드라큘라, 1991>
물 속에 잠긴 색까지 표현한 <소닉>

물론 <소닉>과 슈퍼패미컴 게임의 단순 스크린샷 비교는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악마성 드라큘라>는 슈퍼패미컴의 확대 축소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입체감, 지형의 일렁거림을 표현했는데, <소닉>은 하드웨어의 빠른 처리 능력이 돋보일 뿐 3차원 공간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닉>은 태생적 한계를 적절한 색깔 배치와 속도감으로 감추는 데 성공했다. 어느 게임이나 단점은 있기 마련이지만, <소닉> 만큼 단점을 슬기롭게 극복한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닉 시리즈를 <소닉 2, 1992> <소닉  3, 1994>으로 접했다면 <소닉>이 이질적인 게임처럼 느껴질 것이다. <소닉>은 속도감, 쾌적함을 중시한 거의 스테이지가 없고, 군데군데 함정과 퍼즐이 배치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야 한다. 기존 게임에 비하면 충분히 빠른 편이지만, <소닉>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닉 시리즈 답지 않은 게임이었던 셈이다.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소닉>의 맵 디자인은 아기자기하다. 간단한 퍼즐, 이곳저곳 배치된 함정, 안 보이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적들, 미니카 트랙을 연상케 하는 원형의 주행 도로조차 드문 편이다. 클래식 소닉 중에서 <소닉>과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은 <소닉 & 너클즈, 1993>인 것 같다.

 

맵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느낌을 주었던 <소닉&너클즈>

분명 <소닉>은 후속작 만큼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닉 2>의 스핀 공격, 협동 플레이, 초사이어인에 열광했었던 것 같다. <소닉 3 & 너클즈, 1994>의 볼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소닉>은 내가 가진 최초의 콘솔 게임이었지만, <소닉 2> <소닉 3 & 너클즈>의 강렬한 인상에 밀려 해마 속 어딘가에 침전되고 말았다.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나이를 먹고 다시금 클래식 소닉을 정주행했다. 소닉 시리즈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은 초대작 <소닉>이었다.

 

<소닉>의 스테이지는 매번 새로운 기믹으로 가득차 있었고, 눈 앞의 전개가 기대되게끔 짜여져 있었다. <소닉>은 맵을 위 아래로 살펴볼 수 있고, 다양한 루트를 제공하며, 대충 해도 클리어할 수 있게끔 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게다가 초반 디자인은 어떤가. <소닉>의 1-1의 디자인은 튜토리얼 파트처럼 느껴졌다. 당시 게임의 주 연령층이 어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닉>의 적절한 난이도야말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딱 맞았다. <소닉>의 아기자기한 맵 구성은 두근거림이 가득한 모험으로 남았다. 이 모든 걸 1991년에 해낸 것이다.

 

게임 초반, 나무 속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무적 상자

 

시점을 위, 아래로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칠전팔기 끝에 성공!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재미가 있다.

 

통통 튀기기만 해도 즐거운 구조물

 

산소를 먹어야만 물 속에서 버틸 수 있다. (산소 기믹)

 

링을 하나만 갖고 있어도 안전하다.

<록맨> <마계촌> <닌자용검전> <악마성 드라큘라>...... 어린이들에게 비수를 꽂은 게임이 오죽 많았나. 옛날 어린이들이 RPG에 열광한 이유는 뭐였을까. RPG는 난이도를 노가다로 조절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통찰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RPG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소닉>은 적당히 플레이해도 깰 수 있는 게임이다. 맞으면 죽는 대신 링을 잃고, 사방에 흩어진 링을 다시 획득하여 목숨을 챙긴다. 게임 하나 깨기 힘든 시대에 <소닉>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게임이었다. 물론 1991년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클래식 소닉 시리즈 중에선 가장 어려운 게임이다. 

 

자비없는 사망 루트, 클래식 소닉 중 가장 매운 맛을 자랑한다.

<소닉>은 부조리한 패턴이 드물고, 슈퍼 소닉처럼 맵 디자인 전체를 부정하는 밸런스 브레이커가 없다. 보너스 스테이지가 부조리한 <소닉 2>, 슈퍼 소닉 달성이 너무나 쉬웠던 <소닉 3>와는 달리 차근차근 맵에 맞춰 가면서 진행하는 맛이 일품이다.

 

게임을 마무리하는 보너스 스테이지의 존재

보너스 스테이지는 <소닉>에 마침표를 찍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카오스 에메랄드를 다 모으려고 몇 번이나 재시도 했는지.

 

재차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는 <소닉>의 스테이지 구성

 

 

 

평가 점수 ★★★★★

플랫폼 장르의 변천사, 게임 산업을 이야기할 때 소닉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소닉 더 헤지혹>은 세가가 고심 끝에 만든 티가 역력한 게임이다. 알기 쉬운 재미, 쉬운 조작법, 넉넉한 목숨은 게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며, 적당한 자극을 받아 도전을 이겨냈을 때의 즐거움이야말로 <소닉>이 초보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메시지였던 것 같다.

 

얼핏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원 버튼 플레이, 링을 잃었을 때의 안전장치, 비선형적 디자인, 매 스테이지마다 달라지는 기믹, 보너스 스테이지 등등. 레벨 디자인 개념도 불분명하던 시절에 수많은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소닉>은 클래식 소닉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맵 디자인이 돋보이는 게임이다. 오래간만에 <소닉>을 하면서 세심하고 친절한 배려를 맛보았다. 옛날 게임에서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소닉>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게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터즈 히스토리 다이너마이트 (1994)  (0) 2022.09.11
소닉 더 헤지혹 2 (1992)  (0) 2022.08.19
런 앤 건 (1993)  (0) 2022.07.19
덩크 드림 '95 (1995)  (0) 2022.07.16
덩크 드림 (1994)  (0) 2022.07.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