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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런 앤 건 (1993)

by 눈다랑어 2022. 7. 19.

'마지막 승부'는 역대 스포츠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그 해 농구 대잔치는 허재,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등 걸출한 스타들이 모여 문전성시를 이뤘고, 당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치고 슬램 덩크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 시절,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농구'였다.

 

시카고 VS 클리블랜드, 동부 컨퍼런스 5차전에서... (The Shot, 1989)

물 건너 NBA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활약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해외 스포츠를 접하기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 조던은 국내에도 팬을 수출하며 놀라운 커리어를 만들어 냈다. 조던은 종목, 국적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선수로 받아들여졌고, 시카고 불스의 23번 유니폼은 거리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패션이 됐다. 그의 이름을 딴 에어 조던은 마케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nba.com/magic/michael-jordan-last-shot-nba-orlando-magic-photographer-fernando-medina-20200517

2 on 2 방식을 채택한 NBA 잼

<NBA 잼, 1993>은 오락실 게임 최초로 NBA 라이센스를 따낸 게임이다. 실제 선수가 등장하고, 실제 경기처럼 해설이 나오며, 경기 후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기록을 보여준다. <NBA 잼>은 리얼한 스포츠 게임으로서 스포츠 게임 역사에 이정표를 남겼지만, NBA를 제대로 구현했다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1993년 10월, 코나미에서 5 on 5 농구 게임 <런 앤 건>이 발매되었다. 일본 내수 명칭은 <슬램 덩크>. 유럽판의 제목은 <런 앤 건>이었다. 흥미롭게도 최초 발매는 내수판이 아닌 유럽판(10월 4일)으로 보인다. 평소 글을 쓸 때 원제를 중시하는 편이나, <슬램 덩크>를 그대로 쓰자니 혼란이 생길 것 같았다. 발매일자와 이름, 국내 인지도 등을 고려했을 때 <런 앤 건>으로 표기하는 게 나아 보였다.

 

총 16팀, 토너먼트 방식

<런 앤 건>에는 시카고, LA 같은 연고지가 등장하지만 불스, 레이커스 같은 이름이 없다. 실존 선수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선수 단 한 명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 시절의 스포츠 게임은 초상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실제 선수를 등장시키더라도 얼굴과 이름을 바꿔 내보내곤 했다.

 

<런 앤 건>은 총 4라운드로 진행된다. 1쿼터 당 4분, 총 4쿼터. 아케이드 게임의 볼륨으로는 굉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코나미는 누구나 1시간씩 즐기는 만만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3D 효과를 자랑하려는 듯 코트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

<악마성 드라큘라, 1991>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자글자글하다 못해 눈이 아프다는 사람도 보았다.

정지 화면의 그래픽.

스트라이트가 튀어 싸구려처럼 보이지만,

 

NBA 경기를 보는 것 같은 박진감

<런 앤 건>은 2D 게임답지 않게 입체감이 훌륭하다. 그러나 역동감을 얻은 만큼 잃어버린 것도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원근감이다.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또한 아래쪽 측면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대신 쿼터가 끝나면 자리를 교체하므로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비정상적인 난이도

CPU의 사기 행동

CPU가 하프라인에서 쏜 슛은 골망을 갈랐고, 동시에 2쿼터도 끝났다.

얼척없는 슛이 들어가다니 분통이 터진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어하기 카운트. <런 앤 건>은 주머니를 털어가는데 도가 튼 게임이었다. 동등한 조건에서 실력으로 졌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CPU는 남은 시간이 적을수록 스틸 능력이 좋아지고, 허구한 날 버저비터를 꽂아 넣는다. <런 앤 건>의 CPU는 사기꾼이다.

 

10점을 리드해도 어느 순간 내 골은 안 들어가고, 상대는 쉽게 골을 넣는 상황이 반복된다. 난이도를 조절하면 쉬울 것 같지만, 딥 스위치로 난이도를 낮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뒤로 갈수록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사킬 오닐을 가볍게 뚫어버리는 CPU

당신이 크게 리드한 상태라면 CPU의 덩크 슛을 수비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리그 최고의 센터 '샤킬 오닐'을 동원해도 어이없게 튕겨져 나간다. 점수차가 클수록, 시간이 적을수록,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이 현상은 눈에 띄게 발생한다.

 

CPU는 플레이어가 언제 슛, 블럭을 할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반응속도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인사이드에서 방어할 때 '덩크 슛, 덩크 패스, 더블 클러치, 페이드 어웨이, 페이크, 패스' 같은 다지선다에 직면한다. 사람은 보고 반응하거나 예측(찍기, 습관 파악)해서 막아야 하지만, CPU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칼같이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뛰는 CPU

1쿼터 10점차, 2쿼터에서 2점차, 3쿼터에서 8점차... 4쿼터에서 마지막 20초를 남기고 볼을 빼앗긴다. 0:00초와 함께 찾아오는 버저비터. 지고 있을수록, 끝이 다가올수록 CPU가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것이다. <런 앤 건>은 레벨 스케일링을 실시간으로 도입한 선구자적 게임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CPU가 관심법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완전무결할 것 같은 CPU에게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센터(C) 포지션은 대인 마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곤 해도 빡센 건 매한가지라서, 결국 득점 루트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센터와 슈터의 밸런스가 우수한 올랜도(샤킬 오닐, 데니스 스캇), 클리블랜드(브래드 도허티, 마크 프라이스)가 사랑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케이드 게임의 고질병을 털어내다.

블럭에 성공하는 시애틀의 센터. 마이클 케이지일까, 샘 퍼킨스일까.

<런 앤 건>은 그 시절 게임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멋진 시스템을 갖췄다. 그 시작은 맨투맨 마크다. 상대는 맨투맨 마크를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플레이어는 CPU가 맨투맨 마크를 하는 틈에 선수를 전환하여 즉각 대응한다.  아케이드 농구 게임 무적의 기술이었던 덩크 ~ 더블 클러치 심리전은 늦점프로 파훼할 수 있었다. 또한 반 코트, 30초 바이얼레이션 룰로 인해 볼을 돌리며 시간을 끌기 어려웠다. <런 앤 건>은 수비 친화적인 게임이지만, 시간 끌기에 유리한 게임은 아니다. 

 

<런 앤 건>은 확실한 원 패턴이 없는 게임이다. 공격 패턴을 단조롭게, 정해진 루트로 돌파한다면 막힐 수밖에 없다.  <런 앤 건>은 농구 게임이다. 농구는 템포가 빠르고 공격 기회가 많은 스포츠이다. 아무리 수비가 유리해봤자 기회가 많으면 결국 뚫리기 마련이다.

 

수비의 허술함을 반칙으로 감추는 고전 스포츠 게임 (가라가라! 열혈하키부)

그동안 스포츠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는 수비였다. 수비 CPU가 멍청해 좋은 위치를 선점하지 못했고, 선수 전환 컨트롤이 불편해 즉각 대응에 어려움을 겪꼰 했다. 무능한 CPU 때문에 골을 떠먹여주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흔했다. (골키퍼가 공중 볼을 펀칭하지 않고 멍 때리다 골을 먹는다던지)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공격은 재밌는데 수비할 때 무력한 게임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리얼한 스포츠 게임일수록 두드러졌다. 리얼함을 추구한 <런 앤 건>의 수비가 이 정도로 견고하다는 게 놀랍다.

 

이미지 출처 : https://youtu.be/bjztabPdXtc

시애틀 팀의 3점 쏘는 센터 (샘 퍼킨스?)

<런 앤 건>의 특정 센터는 외곽 플레이가 가능하다. 당연히 3점 슈터에 비해 득점 기대치는 낮은 편이지만, 공격 옵션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공격의 가짓수가 늘어난다. 시애틀은 썩 좋지 않은 팀이란 평가를 받지만, 샘 퍼킨스가 보여주는 특별함은 <런 앤 건>이 얼마나 팀 간의 차별화를 잘 꾀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약팀이어도 독특한 공격 루트가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3점 슛으로 15점, 도합 19점을 득점한 샘 퍼킨스. 샤킬 오닐로 해봐도 이런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각 캐릭터 별로 히든 스탯이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

 

클리블랜드의 포인트 가드(PG), 마크 프라이스

능력치는 그럭저럭이지만, 3점 슛이 기깔나게 잘 들어간다.

 

매직 존슨의 페이드 어웨이

<런 앤 건>은 1993년 로스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점에서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는 은퇴 상태, 그렇다고 이 둘을 빼기에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런 앤 건> 속의 LA에는 매직 존슨이, 보스턴에는 래리 버드가 있다. 여기에 조던, 피펜, 버클리, 드렉슬러, 올라주원, 유잉, 오닐까지 나온다? 이걸 무슨 수로 참아?

 

NBA 역사를 바꾼 두 남자

최고의 라이벌리를 보여준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그들이 없었더라면 NBA는 미국 내수용 로컬 스포츠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https://fadeawayworld.net/nba/larry-bird-vs-magic-johnson-how-their-bitter-rivalry-turned-into-a-great-friendship

게임 속 어드바이스 항목에서 3점 슛 성공률이 최대 50%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까운 거리일수록, 점프가 피크일 때 슛을 쏠수록 정확도가 올라간다.

 

 오클랜드(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몰 포워드, 크리스 멀린의 압도적인 기록.

3점 슛 6개를 포함, 도합 28득점을 꽂아 넣었다.

 

래리 버드(PF)야 그렇다치고... PG의 성공률이 심상치 않다. (아마도 셔먼 더글라스?)

매 쿼터마다 경기 결과를 수치로 보여준다.

다음 쿼터에 피드백하는 재미가 쏠쏠함.

 

현장감을 살리는 장치

2쿼터가 끝나면 치어리더가 춤사위를 선보인다. 싱글 플레이를 할 때면 이 장면을 넘기지 않고 종종 지켜보곤 했다. 비록 도트가 뭉개져 미인처럼 보이진 않지만, 저절로 춤을 따라하게 될 정도로 흥이 나는 장면이다.

 

풋루스 수록곡 (The Girls Gets Around), 런 앤 건의 음악에서 풋루스의 향취가 느껴진다.

NBA를 활용한 컨셉, 생동감 넘치는 뷰, 해설, 치어리더, 매번 달라지는 BGM까지.

<런 앤 건>은 <NBA 잼>이 시도한 것 이상으로 리얼함을 추구한 게임이었다.

 

리플레이

리플레이는 스포츠 중계라는 컨셉을 살리면서 자신의 짧은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 멋진 플레이가 나온다면 모를까, 보통은 스킵할 것 아닌가. 스킵을 하려면 1초 정도 기다려야 한다. 빠른 템포를 추구하는 농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리플레이가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종종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패한 이식작

 

<런 앤 건>은 분명 결함이 있는 게임이다. 아케이드 게임의 결함은 가정용 이식판에서 수정되는 것이 관례이나, 이 게임은 한 번도 이식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사실 딱 한 번 있긴 했다.슈퍼패미컴판 <NBA 실황 바스켓 위닝 덩크, 1995>, <런 앤 건>의 가정용 이식작이 맞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드는 이름이다.

 

모드 셀렉트 화면

아케이드, 시범 경기, 플레이오프, 시즌, 팀 에디트, 옵션. 있을 건 다 있다.

가정용에 맞게 <런 앤 건>에 부족한 부분을 잘 챙겼다.

 

비라이센스 신세를 벗어나다.

인게임에서 올랜도 매직, 시카고 불스 등의 이름과 로고를 확인할 수 있다.

드디어 라이센스 획득에 성공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HQW-oAbEFA&ab_channel=IDKG-IDon%27tKnowGames 

플레이 영상

<런 앤 건>과 달리 박진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플레이. 앨리웁 성공 장면(4분 18초)의 모션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수준이다.  이게 정말 <런 앤 건> 베이스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충돌 판정을 이용해 선수의 몸싸움까지 구현한 아케이드판

콘솔보다 아케이드 기판의 표현력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슈퍼패미컴판 <스트리트 파이터 2>처럼 원본의 그래픽, 플레이 감각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게임들도 있었다. <실황 바스켓>이 출시된 1996년쯤 되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원작을 뛰어넘은 초월 이식 소리를 듣는 게임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실망스러운 이식을 보일 줄이야.

 

<실황 바스켓> 이후 코나미는 한 번도 <런 앤 건>을 가정용으로 이식하지 않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다면 전국을 샅샅이 뒤져서 게임기가 있는 오락실을 찾던가, 해외 경매 사이트를 뒤져서 값비싼 기판을 구입해 플레이하거나, 에뮬레이터로 즐기는 수밖에 없다. 심지어 *파이트케이드에서 플레이할 수도 없다. 대인전이 재미있는 게임인데 정작 플레이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다.

 

(*파이트케이드 : 아케이드 게임 멀티플레이 플랫폼)

 

 

 

 

평가 점수 ★★★★★

현실과 아케이드, 판타지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걸작. <런 앤 건>은 사람들의 염원을 구현한 작품이다. 두 번 다시 이런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완성도 면에선 더 나은 게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드림캐스트로 출시된 <NBA 2K> 시리즈 같은 것들 말이다.

 

<런 앤 건>을 위대하게 만든 건 게임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런 앤 건>이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과 찰스 버클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프로 스포츠는 팀과 선수가 빚어내는 드라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포츠 게임의 종착역은 캐릭터 게임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내가 응원하는 팀, 내가 선호하는 자동차,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다루는 즐거움, 스포츠 게임은 애정을 먹고 자라는 장르다. <런 앤 건>은 NBA 팬들이 그리워하는 판타지의 정수를 담았다. 언젠가 이 게임이 가정용으로 이식될 날이 올까, 현재로선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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