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이스트는 80-90년대 괴작, 수작을 넘나들며 양질의 게임을 뽑아낸 제작사였다. 비록 태반이 B급 정서를 담은 게임이었지만, 데이터 이스트가 추구한 B급은 그저 그런 B급이 아니었다. 데이터 이스트는 90년대 중반 부채가 쌓이면서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94~98년에 출시한 게임들을 보면 왜 회사가 망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 싸워라 원시인 3 주역은 역시 죠 & 맥 (1994)
* 죠 & 맥 리턴즈 (1994)
* 파이터즈 히스토리 다이너마이트 (1994)
* 덩크 드림 (1994)
* 덩크 드림 95 (1995)
* 매지컬 드롭 (1995)
* 스타디움 히어로 96 (1996)
* 매지컬 드롭 2 (1996)
* 매지컬 드롭 3 (1997)
* 통곡 그리고... (1998)
결과적으로 데이터 이스트는 2D 게임을 고집하다가 몰락한 꼴이 됐다. 그들은 네오지오(MVS) 기판을 애용했는데, 이 기판은 1990년 처음 가동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기판이었다. 덕분에 MVS 게임은 MODEL2, CVS3 기반 게임에 비해 저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은 90년대 초부터 100원 1코인 제도를 10년 이상 유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꼴랑 100원으로 임대료는커녕 전기세나 납부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PC방처럼 오락실에서 먹거리를 팔던 시기도 아니었다.) 이익을 내고자 저렴한 기판을 대량으로 들여왔고, 해킹, 복제 기판으로 단가를 남겨먹는 행위가 업계의 관행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 데이터 이스트가 주목받은 건 뛰어난 가성비, 보급률 문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인에겐 <덩크 드림>이라는 명칭보다 <스트리트 후프>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이는 내수판, 외수판 명칭이 달랐기 때문인데, 유럽에선 <스트리트 후프> 북미에선 <스트리트 슬램>으로 출시되었다. 심지어 언어만 다른 게 아니라 내용물도 조금씩 다르다. 다행히 플레이 감각은 동일.
A 버튼 슛, 블로킹
B 버튼 패스, 스틸
아케이드 게임답게 조작, 규칙이 단순하다. 격투게임의 승룡권(→↓↘ + P)처럼 복잡한 조작이 아예 없음.
농구 게임은 NBA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많다. <NBA 잼, 1993> <런 앤 건, 1993> 같은 게임과 달리 <덩크 드림>은 보스턴, 유타 같은 지역 팀이 아닌 국가대항전을 택했다. 이러면 농구의 본고장 미국이 너무 유리하지 않을까?
2022.07.19 - [게임 비평] - 런 앤 건 (1993)
덩크 드림의 득점 공식
아케이드 농구 게임이 흔히 그렇듯이, <덩크 드림>은 더블 클러치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 팀의 장기는 덩크 슛, 덩크 슛을 시도하는 이유는 뭔가, 공을 확실하게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블 클러치 성공률이 높다면 굳이 덩크 슛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미국 팀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런 앤 건>의 더블 클러치 성공률은 개개인의 능력치에 따라 결정된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같은 선수들이 쏘는 더블 클러치와 달리, 평범한 선수들의 더블 클러치는 성공률이 크게 떨어진다. 또한 덩크 슛 → 더블 클러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빈틈이 있어, 수비가 '덩크와 더블 클러치' 양쪽을 커버하는 타이밍에 블로킹을 시도하는 등 수비 선택지가 많은 편이다.
그럼 <덩크 드림>은 어떨까? 이 게임은 덩크냐, 더블 클러치냐 갈림길에서 양쪽 모두를 방어하는 게 불가능하다. 공격자는 상대가 점프(방어)하는지 보고 더블 클러치를 누를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그만큼 더블 클러치의 성능이 사기적이다.
더블 클러치만 좋은가? 3점 슛도 좋다. <덩크 슬림>의 난이도는 LEVEL에 비례하여 슛 정확도가 떨어지게끔 되어있다. 싱글 모드에서도 3점 슛이 잘만 들어가는데, 방해요인이 없는 대인전은 오죽할까. 3점이 들어가면 아나운서가 "쓰리 포인트 바스켓!"이라고 말해주는데 이게 참 기분이 좋다. 길거리 농구 + 힙합 브금 + 아나운서의 삼위일체. 망가진 밸런스를 컨셉 + 연출이 살린 거나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길거리 농구를 컨셉으로 잡아서 그런지 반칙이 없다.<런 앤 건>에서도 "이거 반칙이잖아" 싶은 플레이가 곧잘 나오지만, <덩크 드림>은 숨 쉬듯이 반칙을 범한다. 손바닥으로 사람을 때려 볼을 빼앗고,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해서 넘어뜨린다. 관중들의 야유만 들릴 뿐이다.
볼을 돌리면 공격권을 되찾는 것조차 버겁다. 농구의 기본적인 규칙인 바이올레이션도 없다. <런 앤 건>과의 비교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바이올레이션이 없다면 볼 돌리기 방지 시스템이 뭔가는 있었어야지.
SUPER SHOT 게이지가 충전되면 슈퍼 샷을 구사할 수 있다. 덩크 드림은 총 2쿼터, 쿼터 당 2분간 진행되며, 쿼터가 끝나면 SUPER SHOT 게이지가 초기화된다. 상대보다 먼저 슈퍼 샷을 쏜 뒤 상대의 슈퍼 슛 게이지를 못 채우게 막으면 상대는 최소 3점을 손해보게 된다. SUPER SHOT은 반드시 들어가는 슛이기 때문. 실력 요소는 커녕 심리적인 요소조차 없다.
가벼운 접근성 속에 숨겨진 아쉬움
능력치 해설 덩크 = 이 게임은 더블 클러치, 3점 슛에 의존하므로 우선도가 떨어진다. 3점슛 = 매우 중요. 스피드 = 4칸이면 빠른 이동속도, 5칸이면 매우 빠른 이동속도가 됨. 디펜스 = 덩크 슛을 견뎌내는 능력. 정작 덩크 슛을 안하니 별 필요가 없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3포인트 득점률이 높은 타이완을 선호한다. <덩크 드림>은 다른 사람이 고른 국가를 고를 수 없어, 대인전을 하면 타이완 쟁탈전이 곧잘 벌어지곤 했다. 3점슛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면 더블 클러치만 줄창 쏘는 것도 방법이다. 매번 득점하기 쉬워 SUPER SHOT를 쉽게 노릴 수 있기 때문. 팀의 개성 따위, <덩크 드림>에선 기대하지 말자, 누굴 고르든 3포인트 난사를 제외하면 비슷비슷한 체감을 보여준다.
앞서 많은 불평불만을 이야기했다. 더블 클러치가 왜 이렇게 사기냐, 3점 슛은 왜 이렇게 잘 들어가느냐, 방어자가 너무 불리한 거 아니냐, 반칙이 아예 없는 건 심하지 않느냐, 볼 돌리면 어떻게 해야하느냐 등등...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단점이지만 이게 꼭 잘못된 건 아니다. 더블 클러치, 3점 슛의 사기성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방어자 입장에서야 죽을 맛이지만 골은 시원시원하게 잘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게임 특유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 대인전은 아쉽다. 팀마다 개성이 뚜렷하지도 않고, 시간 끌기도 쉽고, 골은 너무 잘 들어간다. 수비측은 스틸과 인터셉트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본격적인 농구는 <런 앤 건>이, 길거리 농구는 <하드 덩크>가 더 잘 구현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덩크 드림>을 지나치게 폄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복잡함을 덜어냈기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평가 점수 ★★★
<덩크 드림>은 아케이드 취지에 딱 맞는 게임이지만, 수비측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게 아쉽다. 공격은 재미있고 수비는 재미없는, 이 시절 많은 스포츠 게임들이 범한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임이다.
대인전이 아쉽다고 썼지만, 파티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제법 재미있는 녀석이다. 길거리 농구의 자유로운 분위기,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적당히 즐긴다. 유튜브를 보면서 가볍게 꺼내먹기 좋은 간식과도 같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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