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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배틀 K 로드 (1994)

by 눈다랑어 2022. 6. 20.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무렵, 한 신생 회사가 격투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바로 소닉 윙즈 제작진이 독립하여 차린 회사, 훗날 슈팅 게임으로 명성을 떨친 사이쿄가 그 주인공이다. 사이쿄는 데뷔작 전국 에이스로 눈도장을 찍었고, 자사의 두 번째 게임으로 배틀 K 로드를 내놓았다. (자레코 제작, 사이쿄 퍼블리싱)

 

게임 얘기에 앞서 '좋은 격투게임의 기준'이 뭘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사실 격투게임 제작은 슈팅 이상으로 노하우가 필요하다. 싱글게임에게 있어 밸런스는 중대 사항이 아니다. 게임을 날로 먹는 버그가 있어도 진행에 치명적인 게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파이널 판타지 6, 1994>의 기계장비, 배니시 버그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될 정도로 치명적이지만, <파이널 판타지 6>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닝 일레븐 10

대전 게임은 다르다. 상대가 강한 캐릭터를 사용할수록 불합리함이 커진다. 실컷 깨질수록 캐릭터 교체를 고민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이기고 싶은 마음도 크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시티가 강하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팀을 제쳐두고 맨시티를 고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전 게임의 본질은 캐릭터와 밸런스의 균형이며, 이는 스포츠 게임이나 격투게임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격투게임의 한 축, 매력적인 캐릭터

 

드래곤 퀘스트 2

판타지 소설에선 주문을 외워 마법을 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반면 주문을 읊는 과정(스펠 캐스팅)을 구현한 게임은 많지 않다. 판타지풍의 RPG를 떠올려 보자. 드래곤 퀘스트로 대표되는 기존의 턴제 시스템으론 캐스팅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파이널 판타지 4, 1991>는 턴제에 실시간 요소를 도입,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주문을 읊는 과정을 구현하여 충격을 주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커맨드 입력을 게임의 핵심 재미로 승화시켰다.

90년대 초반에 흥행한 슈팅, 플랫폼, 액션 등등 그 어떤 대세 장르와 비교해봐도 조작법이 난해하다. 덕분에 격투게임은 조작 체계의 직관성을 잃었지만, 독특한 조작 체계 때문인지 '기술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스펠 캐스팅에 무사히 성공한 마법사가 받을 충족감을 엉뚱한 장르에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화려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뱀파이어

좋은 격투게임을 선정하는 기준은 뭘까. 우선 매력적인 캐릭터와 원활한 커맨드 입력을 꼽고 싶다. 우선 때깔이 고와야 잡숴볼 생각(넓은 유저풀)이 들 것이고, 기술이 잘 나가야 마음 먹은대로 행동할 수 있다.  대전 양상이나 밸런스는 그다음 문제다.

 

격투게임은 캐릭터를 표현하기 좋은 장르다.

2D 그래픽은 공간 표현이 제한되지만, 캐릭터를 조명할 때는 이만한 것이 없다. 

 

 

* 격투 게임의 평가 기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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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게임의 평가 기준은 시시각각 바뀌어 왔다. 한때 아케이드 게임의 100% 가정용 이식은 그림의 떡처럼 보였다. 슈퍼패미컴판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아케이드판의 다운 이식이었지만, 오락실 감각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또한 패드에 맞게 입력 난이도를 느슨하게 조정한 것도 호평이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팀 배틀 모드 추가, 최초의 연습 모드를 구현한 <철권 2>, 특별한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엣지 마스터 모드, 커스터마이징 지원, 다양한 버전의 OST 등 아케이드 버전에 없었던 컨텐츠가 대거 추가되었다. 곧이어 <철권 3>의 벨트스크롤 액션 모드(테켄 포스)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의 월드 투어 모드가 큰 인기를 끌었다. 

 

아케이드 시장이 축소되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몰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VS와 아케이드 모드만 딸랑 있는 격투게임을 원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싱글 컨텐츠의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모탈 컴뱃 시리즈가 북미에서 <피파> <콜 오브 듀티>처럼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싱글 컨텐츠를 신경썼기 때문이리라.

 

격투게이머에게 싱글 컨텐츠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충분한 유저 풀과 연습 모드, 리플레이, 네트워크 환경 같은 것, 결국 대전 환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라이트게이머는 혼자 놀 수 있는 싱글 컨텐츠를 중시한다. 코어 격겜러는 격투게임을 단돈 6만 원에 200시간 이상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4시간도 채 즐기기 어렵다. 가성비가 심하게 나쁘다.

 

따라서 격겜러와 대중이 선호하는 격투게임은 상당히 다르다.

마이너한 장르일수록 대중들의 기호에 맞추는 게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대중들의 기호에 맞추면 장르 특유의 재미가 거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투게임의 게임디자인이 낡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격투게임은 기본적으로 가위바위보 싸움이지만, 무엇을 내밀어야 바위이고 가위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액션 게임처럼 새로운 액션을 단계별로 익혀 자연스럽게 대처하게끔 유도하지 않는다. 다른 장르가 튜토리얼과 레벨디자인에 사활을 걸 때, 격투게임은 커맨드 간소화, 네트워크 환경에 신경 썼지, 싱글 컨텐츠엔 별 관심이 없었다. 웹진 리뷰에서 격투게임이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왔을 것이다.

 

또 하나, 격투게이머이자 리뷰어로서 아쉬운 게 있다. 바로 웹진 평점이다.

 

메타크리틱 기준

(중복 플랫폼은 발매 시기를 감안했으며, 최고점을 기준으로 함)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출시된 게임을 일부 선정)

(전통적인 의미의 격투게임만을 선정)

 

91점 : 모탈 컴뱃 11 얼티밋 (2020)

89점 : 스트리트 파이터 5: 아케이드 에디션 (2018)

89점 : 인저스티스 2 (2017)

87점 : 드래곤볼 파이터즈 (2018)

87점 : 길티기어 스트라이브 (2020)

86점 : 길티기어 이그저드 -레벨레이터- (2016)

86점 : 길티기어 이그저드 -레브 2- (2017)

86점 : 모탈 컴뱃 11 (2019)

85점 : 킹 오브 파이터즈 15 (2022)

84점 : 소울 칼리버 6 (2018)

84점 : 블레이블루 센트럴 픽션 (2016)

82점 : 스트리트 파이터 5: 챔피언 에디션 (2020)

82점 : 철권 7 (2017)

81점 : 사무라이 쇼다운 (2019)

80점 : 언더나이트 인버스 엑셀레이트 클레어 (2020)

79점 : 킹 오브 파이터즈 14 (2016)

78점 :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 (2020)

78점 : 언더나이트 인버스 엑셀레이트 에스트 (2018)

77점 : 스트리트 파이터 5 (2016)

77점 : 마블 VS 캡콤 인피니트 (2017)

77점 : 버추어 파이터 5: 얼티밋 쇼다운 (2021)

76점 :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 (2018)

76점 : 데드 오어 얼라이브 6 (2019)

73점 : 파이팅 EX 레이어 (2018)

 

평점을 보고 이해 못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격투게임 장르는 그 정도가 과하다. 예를 들어 메타스코어 91점에 빛나는 <모탈 컴뱃 11>은 대전의 저조한 완성도, 짧은 사후 지원으로 인해 액티브 유저가 급격히 줄어든 게임이었다. 이는 모탈 컴뱃 시리즈의 판매량이 '대전'에 초점을 두지 않음을 시사한다.

 

<모탈 컴뱃 11>이 최근 격투게임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뭘까. 결국 브랜드 파워, 멋진 그래픽, 영화 두 편 분량의 스토리 모드와 폭력적인 연출에 기인한다고 본다. 격투게임에 관심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 볼 때, <모탈 컴뱃 11>은 확실하게 돈값하는 게임이다. 멀티 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혼자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네더렐름의 방향성은 격투게임 업계 전체가 배워야 할 교범이다.

 

그러나 평론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전 격투 게임은 결국 '대전'을 버릴 수 없다. <모탈 컴뱃 11>의 스토리 모드는 AAA 게임의 연출을 보여주지만, 대전 환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며 사후지원이 짧은 편이다. 격투게임은 사실상 온라인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FIFA, 콜옵 시리즈는 항상 엽기적인 판매량을 보여주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탓인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탈 컴뱃 역시 마찬가지다.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선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그렇다고 장르의 기본까지 잊어버릴 필요는 없었다. 기본조차 못 지킨 게임에게 최고 평점을 매기는 게 합당한 일이었을까.

 

AAA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보디가드, 1992>는 4억 달러를 벌어들인 초 대박 영화였지만, 비평 분야에선 썩 좋지 못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영화와 달리 게임 분야는 주로 '오락'으로 소비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액션 게임이 필요 이상으로 고평가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비자와 평론은 다르지 않나. 게임 평론이 초기 판매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

 

모탈 컴뱃은 나름대로 고평가의 이유라도 있지, 하위권 평점은 훨씬 심각하다. 가장 이상한 부분은 <킹오브14> <킹오브15> <사무라이 쇼다운>이다. 앞서 격투게임의 한 축으로 캐릭터를 꼽았다. 캐릭터의 매력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때깔이다. 격투게임은 화면에 표현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인 대신, 캐릭터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 비주얼 쇼크급 게임이 격투게임 장르에서 많이 태어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 근래 SNK의 격투게임에 좋은 평가를 줄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래픽 외에 다른 문제는 없을까?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무라이 쇼다운, 2019>은 허접한 싱글 모드, 수시로 발생하는 네트워크 갈림 문제, 특허 출원 중이라고 언론 플레이한 고스트 모드 때문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더욱이 '고스트 모드'는 <버추어 파이터 4> <철권 5>에서 15년 전에 시도되었으며, AI의 완성도 역시 <사무라이 쇼다운>과 큰 차이가 났다. 그런 게임이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 <언더나이트 인버스>보다 고평가를 받았다는 건 대중적인 시선, 격겜러로서의 시선 어느 쪽으로 봐도 납득하기 힘들다.

 

발매 일주일 전에 카피를 받아보는 리뷰 방식, 장르 이해도가 부족한 리뷰 방식을 고집한다면 격투게임의 평가는 앞으로도 중구난방일 것이다. 격투게임은 마니아의 장르다. 그러나 현재의 게임 평론은 마니아들에게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웹진 리뷰는 좋은 격투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이 뭔지, 장르 마니아에게 어필하려면 무엇이 중요한 지 알지 못한다. 롤백 넷코드, 크로스 플레이, 입력 난이도, 플랫폼 간의 차이가 대단히 중요한 장르인데도 대전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는 것이다. 웹진이 아무리 대중적인 리뷰를 지향한다지만, 장르에 대한 몰이해가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방식은 격투 게이머, 라이트 게이머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다.

 

 

14인의 캐릭터

이제 본격적인 게임 얘기를 해보자. <배틀 K 로드>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가라데, 복싱, 삼보 등 무술의 달인들이 펼치는 꿈의 무대를 그렸다. 상하로 대칭되는 캐릭터들은 일부 기술만 바뀐 상태. 캐릭터는 많은데 정작 비슷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앤디 훅, 조지 포먼은 격투기를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봤을 법한 전설적인 선수. 그러나 <배틀 K 로드>는 현실의 선수에 만족하지 않고, T-800,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이들도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다.

 

현실 격투기에 터미네이터가 웬 말?

사람들에게 이소룡이 무술가인지 배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격투게임은 캐릭터 게임의 일종이며, 이소룡의 강렬한 개성은 캐릭터로 소비하기에 최적화된 소재였다. 이소룡을 모티브로 한 격겜 캐릭터가 어디 한두 갠가. 터미네이터의 참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될 것 같다. 

 

인간의 점프가 아니다

배틀 K 로드는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K-1의 컨셉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입식 격투기였던 K-1과 달리 잡기가 추가되었으며, 하늘에 붕 떠 점프 공격을 시도하는 등 초인적인 면도 보인다.

 

(*K-1 : 일본의 격투기 단체. 앤디 훅, 세미 슐츠, 미르코 크로캅 등이 활동했으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씨름계의 강자였던 최홍만이 K-1에 도전하면서 한국의 격투기 붐을 주도하기도 했다.)

 

울프의 타격 잡기

 

앗, 아아...

 

나름대로 격투기스러운 맛이 있다

그간 격투게임은 손에선 장풍이, 입에선 불을 내뿜는 초인적인 전투를 다뤘다. 비록 <배틀 K 로드>가 격투기를 제대로 구현한 게임은 아니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 리얼한 격투 포지션은 <버추어 파이터, 1993>가 선점했기 때문에 <배틀 K 로드>를 주목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배틀 K 로드>의 시스템

다운 시스템은 이 게임이 격투기 기반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다. 연타 공격 또는 큰 대미지를 주면 다운되는 듯한데, 다운시켜도 이득이 없어 경기 템포가 자주 끊긴다.

 

만약 스포츠 게임이라면  '다운'이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다운 시 중립 상태로 돌아가는 건 같겠지만 페널티도 확실했을 것이다.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쓰리 녹아웃으로 패배하기도 하고, 대미지가 누적될수록 스탯이 떨어지기도 한다. 전에 리뷰했던 태권도(1994)는 5번 다운되면 패배, 대미지가 누적될수록 움직임이 둔화되는 페널티가 있었다.

 

<배틀 K 로드>는 스포츠 컨셉을 따온 격투게임이다. 격투게임은 구석에 몰아넣었을 때 이득이 큰 장르다.

격투게임은 상대방을 다운시키면 선제 공격권이 주어진다. 상대방이 일어나는 순간에 벌어지는 '기상 심리전'은 격투게임의 꽃이다. 구석에 몰린 상대에게 공격 심리를 성공시키고, 다시 기상하는 상대를 압박하면서 공격을 풀어나간다. 격투게임에서 다운이란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이어가는 것이다.

 

구석똥창에 정신을 못 차리는 최번개, <킹 오브 파이터즈 96>

그러나 <배틀 K 로드>는 공격자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다운 시 필드 중앙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며, 격투게임에 흔히 있는 이득기, 콤보조차 없다. 따라서 단타성 공격과 *윕 퍼니시 위주로 플레이하게 된다. 기껏 구석에 몰아넣었는데 다운돼서 상황이 리셋되는 걸 보면 참으로 허무하다.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이겼다면 그만큼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윕 퍼니시 : 상대 공격이 헛치는 걸 노려 공격하는 것)

영상 이미지 출처 : https://youtu.be/BZw0G3Eye0Y

 

무릎 공격 (무적 없음)

콤보의 부재 또한 아쉽다. 콤보는 격투게임의 태동기부터 이어진 시스템이며 순식간에 빅 대미지를 뽑아 게임을 스피디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배틀 K 로드>는 콤보 없이 철저한 단타 싸움 위주로 흘러간다. <사무라이 스피리츠, 1993>가 대박난 걸 보면 <배틀 K 로드>가 단타 싸움을 지향한 게 납득이 된다. 그러나 <배틀 K 로드>는 기본기의 대미지가 낮고, 발동 프레임이 빠른 공격은 지나치게 성능이 나쁘다. 움짤을 보면 서서 약 펀치(5wp)로 상대 행동을 끊고 이쪽이 공격하려는 찰나, 상대의 회복 시간이 너무 빨라 큰 기술을 허용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격을 맞춘 건 난데 왜 우선권이 상대에게 주어지는 걸까?

 

다운 시스템과 콤보의 부재는 경기 템포를 늘어지게 만들었다.

단타 위주의 게임인데 기본 대미지가 약하게 책정되었고, 공격을 성공시켰는데도 방어자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상황. 밑강손을 맞추고 확정 반격이 들어온다. 이래서는 단타 위주로 만들 이유가 없다. 결국 장르의 재미만 반감시킬 뿐 아닌가. 

 

격투게임의 기본적인 커맨드 236, 626 (파동권, 승룡권)

<배틀 K 로드>의 완성도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기존 격투게임의 흥행 요소를 많이 쳐내기도 했다. 덜어낸 게 있다면 담은 것도 있기 마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맨드다. <배틀 K 로드>는 기존 격투게임의 236, 626 같은 커맨드가 일절 없으며, 강공격을 누른 상태로 방향을 정하고 버튼을 떼면 된다. 

 

<타오 타이도, 1993>

사이쿄 제작진이 전 직장(비디오 시스템)에서 <소닉 윙즈>를 만든 건 유명한 사실이다.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비디오 시스템의 <타오 타이도> 또한 사이쿄 제작진의 입김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타오 타이도>의 입력 체계는 버튼을 눌렀다 떼면 기술이 나가는 방식, 전문 용어로 음입력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채택했다. <배틀 K 로드>의 독특한 입력 체계의 기원은 <타오 타이도>가 아닐까 싶다.

 

<배틀 K 로드>의 커맨드는 입문자 친화적이지만 격투게임 경험자에겐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을 쓰려면 강공격을 쓸 생각이 없어도 강공격 버튼을 눌러야 하고, 모으기(ex 가일의 써머 솔트)처럼 커맨드 축적이 어려워 기술을 원하는 타이밍에 사용하기 어렵다. 차라리 강공격과 커맨드를 분리해서 버튼을 따로 할당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독특한 대미지 보정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가드 시스템이다. 중단, 하단 개념은 기존 격투게임과 유사하지만, 중단(overhead) 공격을 보고 반응할 수 없어 순전히 심리와 찍기로만 막아야 한다. 참신한 부분은 그다음부터다. '서서가드하면 하단에 털리고, 앉아가드하면 중단에 털린다' 는 2D 격투게임의 상식이다. <배틀 K 로드> 역시 마찬가지지만, 가드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받는 대미지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무분별한 스팸질 방지

세 번째 특징은 대미지 시스템이다. 이 게임은 같은 공격을 반복할수록 대미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성능 좋은 기술을 남발할수록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공격자는 다양한 기술을 섞어 쓰게 되며, 방어자 또한 여러 번 맞은 기술을 배제하는 등 <배틀 K 로드>만의 독특한 심리전이 굴러가게 된다.

 

충격적인 곰 스테이지

<배틀 K 로드>는 격투게임으로서는 드물게 2회차를 지원한다. 1회차 이지 난이도조차 보고 막을 수 없는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고, 걸핏하면 윕 퍼니시로 반격해온다. 꼼수 없이 2회차에 도전하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깝다. 깨라고 만든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

 

곰 스테이지 OST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공산이 크다.

지겹게 반복되는 음악에 기운이 다 빠질 지경.

 

티나 터너의 I Might Have Been Queen 인트로와 유사하다. 이 곡은 정말 좋은데, 곰 스테이지는 대체...

 

 

평가 점수  ★★
비록 커맨드 입력 체계는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가드 및 대미지 시스템은 요즘 게임에서도 보기 힘든 참신함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러나 참신함 만으로는 새어 나오는 악취를 지울 수 없으며, 격투게임으로서의 기본적인 것들이 빠지다 못해 맹숭맹숭하게 느껴진다. 그 후로 수많은 격투게임이 출시되었지만 <배틀 K 로드>의 참신한 시스템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대로 지뢰작, 괴작 취급 받으면서 묻히기엔 아깝다. <배틀 K 로드>의 아이디어를 잘 뽑아먹은 신작 격투게임이 나오면 좋으련만. 기술 스팸을 방지하는 대미지 시스템은 시대를 앞서간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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