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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제노블레이드 2: 황금의 나라 이라 (2018)

by 눈다랑어 2022. 5. 12.

제노블레이드 2는 아픈 손가락과 같다. 욕 나오는 편의성, 길 찾기, 초반부의 재미없는 배틀 디자인, 내러티브와 게임메카닉의 부조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은 섹스어필까지. 재미있게 즐겼음에도 남들에게 선뜻 추천해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 미완성 같은 게임을 보면서 "신작이 나와도 예전만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05.06 - [게임 비평] - 제노블레이드 2 (2017)

 

제노블레이드 2 (2017)

제노블레이드 3 발매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신작 발매를 앞두고 전작을 돌아보고 싶었다. 제노블레이드 시리즈의 뿌리는 제노기어스에서 온 것이지만, 가벼이 다룰 수 없는 게임이라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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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블레이드 2: 황금의 나라 이라>(이하 이라)는 <제노블레이드 2>의 추가 시나리오다. 그동안 DLC는 본편 리뷰와 묶어서 이야기하곤 했다. <이라>는 DLC 임에도 독립된 게임으로서의 틀을 갖췄고, 본편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추가 시나리오만 즐길 수 있는 *패키지판도 출시되었다. 이 정도면 묶어서 리뷰하는 것보다 개별 게임으로서 다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판은 한국어 미지원) 

드디어 자동 저장이 생겼다.

자동 저장이 뭐 별건가 싶지만 <제노블레이드 2>는 그 기본조차 못 지킨 타이틀이었다. 자동 저장 미지원, 불완전한 최적화 등이 맞물려 좋지 못한 경험을 선사했고, 시종일관 데이터가 언제 증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라>는 달랐다. 모든 과제(사이드 퀘스트, 회합, 황금수)를 달성하는 동안 크래시, 프리징 문제를 겪지 않았고, 본편의 트리고 마을처럼 프레임 드랍이 심한 장소도 없었다. 다만 자동저장이 수시로 작동하지 않는 게 아쉬웠고, <제노블레이드 2>에서 하도 데인 탓에 30분마다 저장하는 버릇을 끝내 고치지 못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 이 리뷰는 <제노블레이드 2> 7장 및 <이라>의 사이드 퀘스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말 누설 없음)

무대는 본편으로부터 500년 전

몬스터에게 쫓기는 신과 라우라.

 

신 시스템, 리저브 HP

<이라>의 전투는 본편과 다르다. 우선 리저브 HP를 보자. 공격을 받으면 붉은 바가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적으로 붉은 바가 줄어들게 된다. 교체를 하면 리저브 HP가 회복되고 체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프로레슬링의 태그 매치나 <철권 태그 토너먼트, 1999>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신 시스템, 어태커 스위치

<제노블레이드 2>엔 '블레이드 스위치'란 시스템이 있었다. 블레이드를 교체하면 드라이버의 무기, 스킬 셋, 배틀 스킬 등등 많은 것이 바뀐다. 그러나 싸우는 주체는 드라이버다. 블레이드는 뒤에서 에테르를 공급하다가 필살기를 사용하면 그제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제노블레이드 2>에서 블레이드는 병기, 부하, 친구, 연인, 동반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인게임 전투에선 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버프 셔틀 정도로 표현되었다.

 

<이라>는 블레이드의 권한을 대폭 상승시켰다. 이라는 인간과 블레이드의 공존을 모색한 국가. 컨셉에 걸맞게 전투 시스템도 바뀌었다. '어태커 스위치'를 통해 블레이드가 드라이버 대신 싸우고, 인간이 블레이드 대신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본편에서 사장되었던 힐러의 역할도 커졌다.

 

함께 싸우는 장면이 크게 늘었다.

 

새롭게 생긴 스위치 시스템

스위치를 하면 스위치 아츠가 자동으로 나간다. 스위치 아츠는 다운, 스매시 같은 부가효과가 붙어있어, 교체를 하는 것만으로도 드라이브 콤보 연계가 가능하다. 신의 스위치 능력은 적을 다운 상태로 만드는 것, 라우라로 브레이크 상태를 만든 뒤 신으로 교체하면 상대를 다운시킬 수 있다.

 

신으로 교체했을 뿐인데 다운 공격이 들어갔다.

모노리스 소프트는 스위칭 액션이 들어간 게임을 여럿 개발해왔다. <이라>의 스위칭 액션은 그동안의 짬밥이 헛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데 <제노블레이드 2>의 스위칭 액션은 왜 그렇게 된 걸까?

 

<제노블레이드 2>의 블레이드는 굉장히 많다. <이라>의 스위칭 액션을 구현하려면 블레이드마다 모션을 추가로 7개는 만들어야 한다. (필살기 1234, 아츠123) 녹음 작업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파트너를 부르는 소리, 아츠 대사를 외치는 소리 등등) <제노블레이드 2>가 어설픈 완성도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이라>의 스위칭 액션을 구현했다면 도저히 기한 내에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작의 주요 시스템이었던 탤런트 아츠가 돌아왔다. <제노블레이드, 2010>의 탤런츠 아츠는 일반 공격 횟수에 비례하여 활성화되는 시스템. 그에 비해 <이라>의 탤런트 아츠는 느슨한 발동 조건을 갖췄다. 별도의 쿨타임 없이 HP를 절반 지불하여 탤런트 아츠를 쓸 수 있다던지.

 

쿨타임 없는 탤런트 아츠.

다만 탤런트 아츠의 효과가 지나쳐, 느슨한 발동 조건이 독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카스미의 '시간의 바람'이 대표적인 오버파워 스킬이 아닐까.

 

블레이드 콤보는 어떤 속성이든 연계할 수 있게 바뀌었다.

기존 블콤은 크리티컬 루트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시스템, 튜토리얼 정비

블콤 기준이 바뀌면서 초보자들도 쉽게 블콤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실수로 엉뚱한 속성 공격을 하는 바람에 대기시간 동안 블콤이 봉인되는 일도 없어졌다. 초보자, 경험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변경점인 것 같다.

 

심해진 그래픽 왜곡 현상

<제노블레이드 2>처럼 수시로 프레임 드랍이 일어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제노블레이드 2: 황금의 나라 이라> 또한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다. 캐릭터와 이펙트가 겹치면 형태를 구분할 수 없을만큼 그래픽이 왜곡된다. 비교적 프레임 방어가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까.

 

한결 편해진 채집

채집 포인트에서 무엇이 나오는지(광물, 물고기 등) 보여주고 소요 시간도 크게 줄어들었다. 본편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 받던 걸 생각하면 큰 개선점이다. 필드 스킬 역시 개선되었다. 정확히는 블레이드 인게이지 개념이 바뀌었다. 전처럼 블레이드를 장착, 해제하는 불편함을 겪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필드스킬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400% 개선된 길 찾기

본편의 길 찾기가 어려웠던 것은 지도와 나침반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부정확한 탓도 크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맵 배치에 있다. 지도는 2차원인데 겹겹이 쌓아올린 지형이 많아 z축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또한 필드스킬을 통해 진입하는 지형이 많아, 지도를 보고 어느 쪽으로 가야 길이 나오는지 알기 어려웠다. (워프 포인트가 너무 많아 지도가 의미가 없다.)

 

<이라>의 지형은 <제노블레이드>처럼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메인 스토리 진행에 필드스킬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헤맬 일이 거의 없다. 다만 채집 포인트 표기가 획일화되어 어디서 어떤 아이템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게 아쉬웠다. 한 번 채집한 장소는 어떤 재료가 나온다고 맵에 표시할 수는 없던건 걸까? (낡은 기계를 찾느라 제법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새롭게 생긴 캠프 기능

캠프의 핵심 기능은 아이템 제작이다. 아이템 제작은 본편의 권리서, 소모 아이템(파우치용) 두 가지를 지원하는데, 재료 수급이 생각보다 까다로워 채집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채집을 해도 그 아이템을 채집한 장소가 기록되지 않고, 아이템 소재를 메모하는 기능도 없다. 

 

레시피를 일일히 기억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책갈피 기능을 지원했다면 채집할 때 그 고생은 안 했을텐데...

 

엔드 컨텐츠 '황금수'

보스 전투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무한 블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좋지만, 블콤을 봉인해야 할 정도로 발광 패턴이 심해져 핵심 시스템 하나를 자체 봉인하고 싸워야 한다. '강력천 간달바'는 아군을 일격에 쓰러뜨릴 만큼 화력이 강하고, 전체 다운 공격을 구사하기 때문에 전투 양상이 운(회피)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상대 패턴을 관찰하지 않고, 드콤에 전적으로 의지해 수행하는 전투. 황금수와의 싸움은 보스전이 아니라 샌드백을 패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일반 적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적 패턴을 살펴볼 필요 없이, 언제나 했던 것처럼 드콤 한 사발을 먹여준다. 어떤 적을 상대하든 비슷하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시각적 표현만 화려하지, 적 패턴의 깊이는 느낄 수 없다. 만약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이었다면 이 부분이 큰 문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제노블레이드 2>의 히카리를 봐왔다면 <이라>의 히카리가 상당히 낯설 것이다. 히카리는 드라이버와 블레이드는 일심동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드라이버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행동하는 게 마치 사춘기 청소년 같다.

 

본편의 렉스, 니아 같은 캐릭터는 내면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그에 비해 호무라, 히카리 같은 메인 히로인은 처음부터 완성된 캐릭터처럼 보인다. 니아가 메인 히로인이었다면 납득이 되지만, 보이 미츠 걸 형태의 플롯에서 메인 히로인이 성장하지 않는 건 꽤나 이상한 일이다. 사실은 히카리가 성장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히카리의 성장 과정이 500년 전 이라 속에 파묻힌 것이다.

 

히카리 올챙이적 시절

 

조금씩 변화하는 히카리

 

500년 후의 굴라

이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된 계기는 굴라였다. 굴라는 광활한 대자연을 상징하는 장소다. 여기서 고백하자면, <제노블레이드 2>의 굴라는 내가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진한 색감 때문인지 빛의 사용이 서툴게 느껴졌다. <제노블레이드>의 가울 평원처럼 날씨를 잘 활용하지도 못했다. 좋은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진짜 풀밭이 아닌 인공 잔디를 보는 기분이었다.

 

굴라의 테마는 소년 만화의 두근거리는 모험을 연상케 한다. <제노블레이드 2>의 초반 컨셉을 고려하면 이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광활한 대자연을 표현하기보다, 푸른 새싹들의 꿈과 희망이 어울리는 작품일테니.

 

<제노블레이드 2> 굴라 BGM

 

<이라>의 굴라

달라진 풀밭의 색감.

 

전보다 빛의 사용이 능숙해졌다.

 

리뉴얼된 굴라 BGM

<제노블레이드>에서 가울 평원에 도착했을 때를 기억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는 광활한 평원과 함께 여정이 녹록치 않음을 암시하는 듯 했고, 이 거대한 월드 안에 무언가가 감춰져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음악과 배경의 환상적인 하모니는 마크나 원시림에서도 이어졌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절경, 폭포 위에 드리운 무지개, 쉼 없이 들려오는 새와 곤충의 소리. 광활한 대자연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새롭게 찾은 <굴라>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낯익은 BGM 속에 감춰진 야생의 풍미. 이윽고 퍼지는 재즈의 향기. 작중 시점이 어린 소년에서 성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필드의 칙칙한 색감 때문인지 맵 곳곳에 애수가 넘쳐 흐른다. 맵 디자인에서도 한 층 진화했다. 벌써부터 이 세계와 사랑에 빠졌다.

 

서브 퀘스트

리타와 카에데의 이야기.

 

 

 

 

 

 

 

<제노블레이드>의 인연 맵

<제노블레이드>의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시간, 날씨, 이야기, 심지어 사람들의 관계까지.

NPC들은 주인공 일행을 매개로 발전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확장되기도 한다.

 

<제노블레이드 2> 역시 인연을 강조한다. 그러나 <제노블레이드 2>의 인연은 주로 드라이버와 블레이드, 동료 간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세울 만한 시스템은 없었다. 가게의 오너가 될 순 있어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는 없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NPC의 인간 관계가 바뀌고, NPC가 성장하여 주변에 영향을 주는 일도 드물었다.

 

<이라>는 플레이어의 개입으로 주변의 작은 세계가 변화하는 노선을 추구했다. 회합은 NPC끼리 맺는 복잡한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모든 각본은 짜여진 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느낌 만큼은 <제노블레이드>의 그것과 흡사하다.

 

<제노블레이드 2>는 인연 맵 대신 서브퀘스트의 질을 높였다. <제노블레이드>의 인연 맵과 <제노블레이드 2>의 블레이드의 타협점이 회합이다. 평소 서브 퀘스트에 관심이 있고, NPC의 반응을 자주 체크하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제노블레이드의 세계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전작의 가려움을 이리 잘 긁어줄 줄은...

 

예고된 비극

<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라>는 작중 내내 사람들의 인연을 강조해왔다. 엔딩을 보려면 회합 랭크를 4까지 올려야 하는데, 메인 퀘스트 위주로 즐기는 플레이어에겐 버거운 과제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정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애착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압도적인 폭력에 산산히 부숴진다. 만약 <이라>가 독립된 게임이었다면 큰일났을 소재다. 앞서 <크로노 크로스, 1999>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2020>가 그러했듯이.

 

<제노블레이드 2>를 <이라>로 입문했다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이 세계에 애착을 갖도록 만든 건 제작진의 노림수였다. <이라>는 타인과의 교류를 피해 스토리만 즐기는 게 불가능하다. *황금의 나라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과 블레이드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처음부터 교류는 필연적이었다.

(*황금의 나라 : 전투 도중 인연 MAX가 되면 에테르 줄기가 황금색으로 변한다.)

 

<제노블레이드 2> 경험자는 <이라>의 결말이 비극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본편의 결말을 알고 보는 <이라>는 전혀 다른 향기를 풍긴다. 따라서 <이라>는 독립적인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시리즈의 마스코트, 노폰

파판의 마스코트가 모그리, 초코보라면 제노블 월드에는 노폰이 있다. <제노블레이드>의 노폰은 타고난 장사꾼이지만, 눈 앞의 이익에 영혼을 팔아먹는 놈들은 극히 드물다. <제노블레이드>의 기조는 <제노블레이드 X, 2015>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노폰의 귀여운 이미지를 줄이고 민폐 속성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노블레이드 2>는 한 발 더 나아가, 도대체 정상적인 노폰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막 나간다.

 

도와주면 사례한다더니 보수 한 푼 없이 도망가는 놈이 있질 않나, 요인 암살, 밀매 정도는 태연한 낯짝으로 저지르질 않나. 내 안에서 노폰에 대한 이미지가 한없이 추락한다. 별난 놈들이긴 해도 순수하고 귀여운 녀석들이었는데, 사기꾼에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놈들이 되어버릴 줄이야. <이라>의 노폰은 여전히 사고 치는 놈도 있지만, 대체로 순수하고 고마운 줄 아는 녀석들이 많다. <이라>의 등장인물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제노블레이드 2> 또한 인연을 줄기차게 강조한 타이틀이지만, 게임을 마치고 기억에 남은 건 호무라, 히카리, 니아 같은 히로인 캐릭터들이었다. <제노블레이드 2>의 인연은 협소하다. 인간과 블레이드와의 교류를 이야기하면서, 불필요한 블레이드는 가차없이 갈아버린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놓아주기'와 닮은 이 시스템은, 그나마 자연에 방사하는 것으로 포장한 '놓아주기'와 달리 블레이드는 삭제할 만한 배경적 근거가 부족하다. 

 

본편의 주인공 렉스는 '모두'를 이야기하나, 렉스의 세계는 주변 인물에 한정되는 한계를 갖는다.

NPC는 <제노블레이드> 시리즈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인연 맵은 초대작 <제노블레이드>의 핵심 시스템이었으며, <제노블레이드 X>는 서사를 줄여 NPC와 맵 탐색에 힘을 싣었다. <제노블레이드 2>는 시리즈의 뼈대는 유지하되, 모든 힘을 캐릭터에 쏟아붓는 독특한 노선을 취했다. 그 결과 <제노블레이드 2>의 NPC는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닌, 흔한 캐릭터 게임의 흔한 NPC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편이 놓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DLC의 책임 아니던가.

 

고젤의 이야기

본편의 아델은 후대 사람들에게 '영웅 아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아델은 모든 걸 해결하는 초인이 아니다. 카리스마 지도자 타입도 아니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소박한 인간이다. <이라>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파티를 포함, NPC조차 입체적인 인물들이 많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구성이야말로 세계에 현실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장치다.

 

 

 

 

 

 

 

 

리타와 카에데의 일상 대화

 

 

 

 

더보기

 

이런 감정선이 너무 좋다.

 

 

 

 

<이라>의 분위기는 본편과 다르다.

<제노블레이드 2>는 모에와 수집(블레이드) 두 가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라>는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모에까지 버린 건 놀랍다. <제노블레이드 2>는 캐릭터 게임으로서 훌륭하지만, 캐릭터가 돋보일수록 월드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이 세계에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전작에서 추구했던 감성이 여기 <이라>에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어느샌가 화면 너머 플레이어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평가 점수 : ★★★★

<제노블레이드 2: 황금의 나라 이라>는 단독 작품으로 봐도 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제노블레이드 2>의 스토리를 모르면 놓치는 포인트가 많다. <이라>를 먼저 즐겼다면 본편의 관점이 크게 달라질 우려가 있다. <이라>에 애착을 갖게 만들고 인정사정없이 박살내는 전개에 쌍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제노블레이드 2>의 프리퀄로서 접근하기보단, <제노블레이드 2>을 플레이하고 나서 해보는 걸 추천한다.

 

<이라>를 클리어하게 되면, 다소 이상하게 보였던 <제노블레이드 2>의 스토리가 곱씹을수록 매력적인 스토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보이지 않던 복선이 보이고, 작품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점도 달라진다.  

 

<이라>는 <제노블레이드 2>의 캐릭터와 설정을 가져오면서도 시리즈의 장점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제노 시리즈처럼 만들면 <제노블레이드 2>의 팬들이 떠날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존 시리즈와 <제노블레이드 2>의 노선이 달랐다. <이라>는 본편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면서, 시리즈 특유의 페이소스를 <제노블레이드 2>에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기존 시리즈 팬과 <제노블레이드 2>의 팬, 양쪽 모두를 사로잡으면서도 훌륭한 솜씨로 배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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