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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파이터즈 히스토리 다이너마이트 (1994)

by 눈다랑어 2022. 9. 11.

격투게임은 오락실 업주들에게 사랑받는 장르였다. 싱글 플레이 20분, 대전 한 판에 걸리는 시간 최대 5분. 실력이 낮은 사람은 3분도 채 안 돼서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기존 장르에 비해 회전율이 월등히 빨랐던 것이다. 제작사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스파 2 클론을 만들어 게임을 편하게 제작하는 길을 택했다. 그만큼 격투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시절이었다.

 

파이터즈 히스토리, 1993

<파이터즈 히스토리>는 데이터 이스트에서 출시한 스파 2 클론 게임이었다. 사실 스파 2를 베낀 게임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중 가장 닮았던 것은 <월드 히어로즈, 1992>일 것이다. 그러나 캡콤은 <월드 히어로즈>가 아닌 <파이터즈 히스토리>를 타깃으로 삼았다. 왜 하필 <파이터즈 히스토리>였던 걸까. 당시 재직자들도 명확하게 모르는 것을 내가 어찌 알겠냐만은.

 

캡콤은 데이터 이스트를 고소했고, 데이터 이스트 또한 자사 게임을 스파 2가 베꼈다며 고소, 결국 양쪽 모두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스파 2 제작에 참가한 야스다 아키라는 훗날 트위터에서 데이터이스트가 캡콤의 프로그램 소스를 표절했다는 점을 호소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https://w.atwiki.jp/gcmatome/pages/1009.html

https://w.atwiki.jp/ksgmatome/pages/1419.html#id_b5d18627

 

<파이터즈 히스토리>는 스파 2의 파쿠리 게임으로 출발했지만, 대전 격투게임 최초로 연속 입력 시스템(ex 흡흡허)을 도입하는 등 선구적인 면도 있었다. 데이터 이스트는 이듬해 <파이터즈 히스토리 다이너마이트>(이하 FHD)를 발매, 수수하지만 맛깔난 게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13인의 캐릭터

<FHD>의 캐릭터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진 캐릭터의 수도 적은 편이다. 캐릭터의 생김새는 수수함을 넘어 괴상하기 짝이 없다. 과연 데이터이스트 다운 게임이다.

 

킥 공격을 무시하는 벌룬의 위엄.

데이터이스트의 마스코트, 카르노브의 스펙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벌룬을 쓰면 무적 상태가 되고, 벌룬에서 기본기가 이어져 콤보가 들어간다. 커맨드가 까다로운 것(632147 + 손) 외엔 단점이 없는 기술이다.

 

서서 A

/ 발생 2F 

 / 가드 시 +11F

/ 히트 시 +10F 

 

기본기의 스펙만 봐도 제 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s://wiki.supercombo.gg/w/Fighter%27s_History_Dynamite/Karnov

워프 버그를 사용하면 성능이 한층 흉악해진다.

벌룬이 두려워 거리를 벌리면 워프에 역 가드가 털린다.

 

막히고 안전한 무적기

 

잡히는 거리의 상태가?

저먼 수플렉스 후 시작되는 공포의 OX 퀴즈.

 

막히고 안전한 돌진기 *초 절초보법

 

가드 대미지 압박이 상당하며 순식간에 화면 끝까지 날아온다.

<FHD>의 캐릭터는 이런 불합리함으로 가득 차 있다.

 

(*초 절초보법 : 발동 9F / 가드 시 -1F / 히트 시 +4)

장풍을 점프로 피해봤자 어퍼에 격추당한다.

공중 잡기 이후 체인 콤보로 공격하는 레이. *체인 콤보 유행을 선도한 <뱀파이어, 1994>조차 *캔슬이 제한적인데, <FHD>는 캔슬 자유도가 높아 캐릭터를 조작하는 맛이 잘 살아있는 게임이다. 또한 체인 콤보에 *대미지 보정을 도입하여 빠른 결착을 줄이고 공방을 진득하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체인 콤보 : 기본기를 순서대로 눌러 콤보를 넣는 시스템)

(*캔슬 : 기본기 동작이 끝나기 전에 필살기로 연결되는 시스템)

(*대미지 보정 : 콤보 공격에 성공할수록 대미지가 줄어드는 시스템)

 

이래 봬도 FHD는 엄연한 *풋시 게임이다.

<FHD>는 점프 속도가 느리고, 대공 판정이 좋아 점프를 함부로 뛸 수 없다. 심지어 대시, 달리기도 없다. "대시 없는 풋시 게임?" 당연히 템포가 느릴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FHD>는 일반적인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풋시 : 필드에서 서로 기본기를 내밀며 대치하는 상황)

<FHD>는 공격 지향적인 게임이다. 가장 큰 이유는 기본기의 과도한 스펙 때문이다. <FHD>의 최약캐로 꼽히는 페이링조차 발동 2F / 히트 시 +6 / 가드 시 +7이나 되는 무지막지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 지속되는 압박에 개기는 건 고사하고 가드를 굳혀야 한다. <FHD>는 먼저 내밀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게임이다.

 

(프레임 데이터 출처 : https://wiki.supercombo.gg/w/Fighter%27s_History_Dynamite/Liu_Feilin)

막혀도 -1인 싱가폴 (정식명칭 티 카우 콘)

여기에 과도한 기술 스펙이 더해졌다. 강한 기술을 *스팸하며 가드 대미지(이하 가뎀)를 누적시키고, 기본기를 판정으로 찍어 누른다. <FHD>는 가드를 뚫기 어려운 게임이기에, 가뎀을 누적시키는 전술이 효과적이다.

 

(*스팸 : 기본기, 기술 하나를 반복적으로 쓰는 행위)

가드가 무척이나 유리한데도 공격자가 유리하다. 이 무슨 소린고.

가드를 뚫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잡기 대미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즉, 수비자가 방어 선택지에서 잡기를 배제해도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단 공격이다. <FHD>는 점프 공격을 빼면 중단(Overhead) 공격이 없다. 유일한 예외는 매트록의 오버헤드킥인데, 정작 캐릭터 성능이 나빠 중단의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 점프 공격이 빠른 게임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이 게임은 점프 궤도가 느린 편이다. 반응이 느린 사람도 보고 대공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즉, 극단적인 가위바위보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는 가드 판정의 유리함이다. 이 게임은 연속 가드 상황에서 첫 공격을 막으면 서서 막아도 하단 공격이 막아지게끔 설계되었다. 공격자는 기본기 사이에 살짝 딜레이를 줘야만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

 

네 번째 이유는 대시가 없다는 것이다. 걸어서 접근은 대시와 달리 보고 대처하기 쉽다.

 

점프 공격으로 약점 부위(머리띠)를 박살내는 장면

<FHD>의 모든 캐릭터는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자지는 머리띠, 카르노브는 목걸이, 마스토리우스는 신발에 약점이 있다. 약점 부위를 가격 당하면 대미지가 뻥튀기되고, 3번 공격받으면 약점이 파괴되면서 스턴 상태가 된다. 약점 위치에 따라 공략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상대 약점을 생각해서 심리전을 돌리는 재미가 있다. 약점 시스템은 <FHD>를 다른 격투게임과 차별화된 게임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FHD>가 진득한 풋시 게임이면서도 저 세상 게임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캡콤의 뱀파이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다.

<FHD>는 명백히 B급 정서의 게임이다. 데이터이스트 아니랄까 봐 그래픽은 투박하고, 캐릭터는 괴상하기 짝이 없다. 동 시기 발매된 <뱀파이어, 1994>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극명하다.

 

FHD의 얼굴 마담, 쌈차이 똠양꿍

전에 <배틀 K 로드, 1994>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캐릭터 게임이야말로 격투게임의 본질이다. 분명 <FHD>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 카르노브, 미조구치, 쌈차이 등등. 그러나 게임 내에 없다시피 한 서사, 허접한 엔딩, 괴상한 캐릭터들이 합쳐진 결과 <FHD>를 캐릭터 게임으로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뱀파이어 대전 영상 출처 : https://youtu.be/8d0Enkr2uvA

2022.06.20 - [게임 비평] - 배틀 K 로드 (1994)

 

배틀 K 로드 (1994)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무렵, 한 신생 회사가 격투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바로 소닉 윙즈 제작진이 독립하여 차린 회사, 훗날 슈팅 게임으로 명성을 떨친 사이쿄가 그 주인공

daisy1024.tistory.com

실시간으로 패치가 되는 요즘 게임과 달리 옛날 게임들은 패치에 제약이 많았다. 대규모 패치를 하려면 기판을 새로 제작해야 했다. <스파 2>는 다양한 버전 업을 통해 게임을 발전시켰고,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X, 1994>에 이르러서야 밸런스가 안정되었다.

 

<FHD>는 버전 업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다. 비록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90년대 격투게임 중에서 이 정도의 밸런스를 갖춘 격투게임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 시절 격투게임은 완성도에 치중하기보다 빠르게 신상품을 내는 데 급급했다. (특히 캡콤과 SNK의 라이벌리가 그랬다.)

 

자리 바꾸기의 수혜를 입은 두 캐릭터

<FHD>는 1p와 2p에 차이를 둔 게임이다. 1p는 자리 바꾸기가 쉽고, 2p는 공격이 1F 더 빠르다. 이 정도로 2p에 이득을 준 격투게임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의도된 사양인지 모르겠지만, '대전' 격투게임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리버설 타이밍이 대단히 빡빡하다. 리버설이 빡빡하기로 소문난 <길티기어 스트라이브, 2021>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리의 맹호경파산, 해괴한 커맨드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FHD>의 대전은 즐겁다. 1F 정도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술 스펙이 좋고, 빡빡한 리버설 타이밍을 제외하면 조작감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4, 6, 1, 3 A+C) 같은 해괴한 커맨드조차 순서대로 입력하면 손 쉽게 나간다. 대전 툴로서는 치명적인 단점 투성이인데도, 정작 대전 툴이 훌륭한 게임으로 남은 것이다.

 

 

 

 

 

평가 점수 ★★★★

격투게임에서 캐릭터를 떼놓으면 팥 없는 찐빵일 것이다. <FHD>는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매력이 부족하지만, 대전 툴로서의 가능성은 차고도 남았다. 훌륭한 조작감, 자유로운 콤보, 안정적인 밸런스, 미쳐버린 기술 스펙, 진득한 풋시 위주의 게임이면서도 럭키 펀치를 꽂아 넣는 화끈함. 겉보기와 달리 정말 괜찮은 녀석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격투 게이머로서의 시선일 뿐이다. <FHD>는 다수의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매력이 부족하다. 그나마 어필할 수 있는 건 쌈차이 똠양꿍, 자지 무하바(한국 한정)의 컬트적인 인기 정도일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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