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G란 카드를 수집, 교환하여 덱을 만들고 경쟁하는 장르다. 장르의 선조였던 MTG가 탄생한 지 어연 30년, 아직도 잘 팔리는 장르지만 비디오게임으로 출시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비디오게임으로 만들면 서로 마주 앉아 웃고 떠드는 재미가 없으니까. 그나마 MTG, 유희왕 만이 꾸준히 비디오게임을 출시하곤 했다.
<포켓몬 카드게임>은 1996년부터 출시된 장수 타이틀, 그러나 비디오게임으로 출시된 사례는 한 손으로 셀 정도로 적다. <바이스 슈발츠, 2008>는 단 하나의 타이틀이 발매되었으며, <건담워, 1999>는 2011년까지 발매되었으나 비디오게임 출시는 한 번도 없었다.
회복 능력이 좋은 청색의 컨셉을 잘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 https://jp.mercari.com/item/m21737256196
TCG는 오프라인 출신 답게 구전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많다. SNS, 유튜브 시대가 열린 뒤에는 정보 공유가 훨씬 쉬워졌지만, 옛날 기록일수록 플레이 영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옛 카드를 구해서 플레이하는 것도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게 비디오게임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총 12개의 유희왕 비디오게임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짧은 개발 기간 탓인지 게임의 완성도는 썩 좋지 않았다. 캐릭터 게임으로 즐기기에도 애매하고, *<유희왕 OCG>의 재현도도 떨어졌다.
(*OCG : 만화 유희왕의 카드게임을 실물 TCG로 만든 게임, 만화 속의 카드게임과 다르다.)
왜 OCG의 재현도가 낮았던 것일까? OCG 룰이 너무 복잡해 구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희왕 OCG>의 입문 난이도는 생각보다 쉬운 편이지만, 파고들수록 알아야 하는 룰이 너무 많은 게임이다. <유희왕 OCG>를 해본 사람은 최소 한 번 이상 룰 사기를 당해봤을 것이며, 비슷한 효과라도 판정이 달라 외워야 할 룰이 많다.
이 복잡한 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이식하려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1998-2005 시절의 유희왕 게임들은 OCG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떨어졌다. 카드 수가 적었고 버그가 속출했으며, <유희왕 OCG>와 다른 룰로 진행되는 게임도 많았고 CPU의 듀얼 택틱스가 형편없었다.
2006년은 유희왕 비디오게임 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해이다. <익스퍼트 2006>은 GBA 시대 끝자락에 발매된 듀얼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 카드게임 <유희왕 OCG>를 제대로 구현한 최초의 비디오게임이었다.
엄밀히 말해 <익스퍼트 2006>는 TCG가 아니다. 이 게임에는 교환 기능이 빠져있기 때문. 게임 내 재화로 모든 카드를 얻을 수 있고, 실물카드의 일련번호를 입력해 카드를 획득할 수 있다. 교환의 필요성을 못 느끼니 자연스레 교환 기능도 빠진 것이리라.
TCG란 용어가 정착한지도 어연 30여년, Trading Card Game의 본뜻은 희미해지고, 어느새 장르를 대표하는 용어로 TCG를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흐름처럼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익스퍼트 2006>는 훌륭한 TCG다.
* 이 리뷰는 <유희왕 OCG>를 경험한 사람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리뷰보다는 당시 환경을 추억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익스퍼트 2006>의 스트럭쳐는 4기(2004~2006년) 때 발매된 실제 상품을 가져다 썼다. 캐릭터 덱(어둠의 유우기, 죠노우치, 카이바 등이 아닌 에이스 몬스터를 표지모델로 내세운 게 신기했다. 이런 기조는 쭉 이어져 현재 <OCG>의 표준 모델이 되었다.
기본 설정에서는 보유카드를 세로로 보여주지만,
덱 리스트를 한 눈에 보기 편하게 바꿨다. 기존 유희왕 게임은 여러 이미지를 한 번에 볼 수가 없어, 내 덱에 뭐가 들었는지 파악하고 바꾸는 과정이 매우 불편했다. 드디어 코나미가 제대로 된 유희왕 게임을 만들었군.
좋아하는 카드에 즐겨찾기를 할 수도 있고, 레벨 혹은 공격력 제한카드 순으로 나열하는 것도 가능하며, 드로, 서치, 묘지 회수, 몬스터 파괴 등 다양한 효과들을 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거기에 2000장이 넘는 카드 수록까지, 이게 내가 원한 유희왕 게임이지.
초기 자본금으로 3000DP를 주며, 총 11개의 팩 중에서 원하는 대로 뽑을 수 있다. 수록된 팩들은 일본판이 아닌 세계판 기준으로 국내 유저들에게도 친숙한 부스터 팩으로 구성되었다.
OCG 룰에 따르면 공격 선언 이후 데미지 스텝이라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평범한 카드들은 데미지 스텝에 발동할 수 없지만, 몇몇 특수한 카드들은 데미지 스텝에도 발동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수축'이다.
'수축'을 공격 선언 시에 사용했다면 '달의 서'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수축'을 데미지 스텝에 사용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달의 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수축 : 속공 마법 | ||||
①: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 1장을 대상으로 하고 발동할 수 있다. 그 몬스터의 원래 공격력은 턴 종료시까지 절반이 된다. |
달의 서 : 속공 마법 | |
①: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 1장을 대상으로 하고 발동할 수 있다. 그 몬스터를 뒷면 수비 표시로 한다. |
텍스트를 읽어봐도 달의 서는 왜 데미지 스텝에 사용할 수 없는지, 수축은 데미지 스텝에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유희왕 OCG>는 룰을 모르면 크게 손해보는 피곤한 게임이다.
기존의 유희왕 게임은 체인이 번거로웠다. 매 타이밍마다 수축을 사용할 것인지 팝업이 뜬다. 당연히 쓸 생각이 없어 "아니오"를 눌러도, 얼마 안 가서 다시 쓸 거냐고 물어본다. 피곤하다. 수축의 발동 타이밍이 지나치게 자유로웠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익스퍼트 2006>은 편의성을 대폭 개선, 확인 키를 꾹 누르면 체인할 카드가 있는지 물어본다. 취소 키를 꾹 누르면 체인을 물어보지 않는다. 더 이상 수축을 쓸 거냐고 귀찮게 굴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카드를 쓰기 편해진 것이다.
승부가 끝나면 듀얼 결과를 보여주며, 숨겨진 목표를 달성하면 더 많은 DP를 준다. 평범한 덱으로 승리하면 800 DP 정도, 특수 승리(엑조디아, 라스트 배틀 등)를 달성하면 2000~3000 DP 정도는 손쉽게 얻을 수 있다. DP는 부스터 팩을 구입할 때 사용하며, 다른 시리즈에 비해 돈벌이가 쉬워 노가다 요소가 좀 덜한 편.
CPU 대전은 레벨1~레벨5까지 총 25명의 상대가 있으며 순차적으로 해금된다. 해금 방식은 CPU 대전과 챌린지 모드를 진행하는 것. CPU는 크리보, 피켈, 전지맨 등 몬스터로 구성되며, 원작의 친숙한 캐릭터인 유우기, 죠노우치, 카이바(유희, 조이, 카이바)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캐릭터 게임을 기대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듀얼 시뮬레이터에 충실한 게임일 뿐.
듀얼 환경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다. 이때는 몬스터를 한 턴에 1~2마리 소환하던 시절로, 싱크로, 엑시즈, 펜듈럼, 링크 같은 소환법이 없었다. 또한 기동효과의 우선권이 살아있어 반란용병부대가 제한 카드로 지정되던 시기다.
사이버 드래곤은 <유희왕 OCG>의 전환점이었다. 현재의 시선으로는 왜 이 카드가 강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테마 덱은 2006년에도 있었으나 지금처럼 확실한 메커니즘을 가진 테마는 없었다. 따라서 주류 덱은 필수 카드와 고성능 카드들을 조합한 굿 스터프 형태를 띄고 있었다. 카오스, 제거 가제트 같은 것들 말이다.
제거 가제트의 전성기는 다들 폭발력이 약한 시절이었다. 파워 카드들이 연이어 금지, 제한화되면서 1:1 교환 카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지분쇄, 작렬장갑 등) 몬스터 효과로 어드밴티지를 늘리고 마법, 함정으로 상대 카드와 1:1 교환을 하는 것이다. (가제트, 전갈, 리크루트 등)
다만 모든 덱이 가제트 같았던 건 아니다. 후라호루스처럼 폭발력이 강한 덱도 있었고, 변이카오스처럼 교환비가 막대한 덱도 있었다. 4기까지만 해도 온갖 비전투덱이 판쳤는데, 얘네들은 째째하게 1:1 교환하는 카드를 쓰지 않고 어이없는 루프를 만들어 단숨에 게임을 끝냈다.
3기 시절(2005년 이전)은 훨씬 심하다. 카드 한 장으로 몇 장 이득을 봤는지 따져가며 플레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스펙이 막강한 카드들이 가득했다. 번개, 해피, 칙명, 짖쌍, 포드, 개벽, 종언... 최초의 금지 카드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익스퍼트 2006>의 최대 매력은 05~06년 환경뿐만 아니라 03~04년 환경을 지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정도로 다양한 금제를 지원하는 게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챌린지 모드(도전)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1) 퍼즐 듀얼
쉽게 말해 묘수풀이. <듀얼링크스, 2016> 같은 퍼즐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드 판매를 위해 명목상으로 마련한 퍼즐이 아니라, 고민이 들어간 제대로 된 퍼즐이다.
2021.07.14 - [게임 비평] - 유희왕 듀얼링크스 (2016)
2) 제한 듀얼
레벨 4 이외 금지, 공격력 1500 이상 금지, 리버스 금지 같은 조건이 붙는다.
3) 테마 듀얼
ⓐ 전투 데미지 누적 10000
ⓑ 반사 데미지 누적 4000
ⓒ 일반 소환 10회 이상
ⓓ 의식 소환 10회 이상
등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듀얼이다. 제한 듀얼 & 테마 듀얼은 CPU 대전에서 볼 수 없는 상대방과 겨룰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게 느껴진다.
4) LP 서바이벌
듀얼이 끝나도 라이프가 회복되지 않는다. 연승이 끝나거나 도중에 그만두면 끝.
분명 무진장 벌고 있지만, 팩 가격도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엔드 컨텐츠를 즐기기까지는 한참 멀었다.
2006년 게임들과의 플레이 타임 비교, Main + Extra 기준
(출처 : https://howlongtobeat.com/#search)
리듬천국 (8.5시간)
히트맨: 블러드 머니 (15.5시간)
사이렌 2 (19.5시간)
마더 3 (29.5시간)
진삼국무쌍 4 엠파이어스 (29.5시간)
유희왕 익스퍼트 2006 (34.5시간)
오오카미 (41시간)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 (46시간)
몬스터 헌터 2 (62.5시간)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86시간)
페르소나3 (94시간)
이 게임은 시뮬레이터 성격이 강한 게임이므로 실제 플레이 타임은 더 길게 느껴진다.
어떤 기준으로 측정했는진 모르겠지만, GBA 게임 분량이 34.5시간이나 된다는 것도 굉장한 것이다.
즐겨찾기 기능도 탑재. 각 카드별로 하트를 1~5개까지 매길 수 있다. 하트 3개 이상만 보이게 정렬할 수도 있고, 5개 이상만 보이게 정렬할 수도 있다. 덕분에 카드찾기가 훨씬 편해졌다.
CPU대전은 레벨 5가 마지막인 것처럼 보이기 쉽지만, 도전 모드 진행도에 따라 스페셜 단계가 해금된다. 자기 자신과 싸울 수도 있고, 자신의 덱 중 하나와 골라서 싸울 수도 있음. 듀얼 시뮬레이터로서 정말 좋은 기능이지만, 여기까지 해금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정도는 되야 모든 기능이 열린다. 어느 시점부터 진행이 안 되는 정체기간이 생기며, 지루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아무리 듀얼이 재밌어도 듀얼퍼즐 95% 달성은 무리수처럼 느껴진다.
OCG 환경의 변천사
유희왕 OCG는 6개월마다 한 번씩 금지, 제한 리스트를 지정하는데, 한때는 불규칙하게 금제를 바꾸던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2003년 9월자로 나온 금제는, 실제로는 2003년 7월자 금제를 복붙한 것이다.
종언은 2003년 7월자로 제한 카드로 지정되었다. 카오스는 풀 파워를 잃어버렸다. 카오스 이전에는 킬러 토마토 ☞ 검은 숲의 마녀 ☞ 사이코 쇼커, 야타가라스를 차근차근 가져오는 스타일이었다면, 카오스 이후에는 개벽, 종언, 혼흑 등 대형 몬스터를 한 턴에 2~3마리씩 꺼내는 형태로 변화한다. 신석기 시대에 기관총을 가져오면 어떡합니까.
지독한 스펙 인플레가 발생하면서 최초의 금지 카드가 지정되었다. 계속된 제재에도 불구하고 카오스는 건재했는데 바로 *제육감이라는 파트너를 찾았기 때문이다.
마법석의 채굴은 심연의 암살자와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왕립마법도서관을 낸 뒤 채굴로 자비를 가져오고, 자비로 암살자와 혼흑를 버리고, 암살자 효과로 암살자를 가져오고, 성매로 혼흑을 살려 묘지에서 자비를 가져온다. 자비로 마큐라와 성마를 덤핑하고, 이윽고 개벽과 종언, 파괴륜 등을 꺼내 승부를 매듭짓는다. 심연의 암살자 1킬은 구시대의 덱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테크니컬한 덱이었다. 그러나 제육감의 암흑시대에 밀려, 이 당시 덱들은 한꺼번에 흑역사로 치부되었다.
일반 함정 | |
자신은 1에서 6까지의 숫자 중 2개를 선언한다. 상대는 주사위를 한 번 굴려, 선언했던 숫자 중 하나라도 나왔다면 그 숫자만큼 자신은 카드를 드로우한다. 나오지 않았다면 나온 숫자만큼 덱 위에서 카드를 묘지로 보낸다. |
선언하는 숫자는 5와 6. 3분의 1 확률로 5~6드로를 할 수 있으며, 한 번 터지면 그대로 게임이 끝났다. 이 시기의 <유희왕 OCG>는 주사위로 승패가 결정되는 주사위 게임이었다.
"밸런스가 망가진 게 오히려 재미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카오스는 여태껏 볼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전개력, 유연함을 갖춘 테마였다. '사이코 쇼커'가 에이스로 여겨지던 때에 진정한 에이스 몬스터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유희왕은 카드게임이지만, 동시에 캐릭터게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카오스를 욕하면서도 여태껏 보지 못한 플레이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망가진 밸런스론'의 관점에서 봐도 제육감은 선을 심하게 넘어버렸다.
이때 카오스는 개벽, 종언을 한 장씩 넣은 스탠다드 잡덱 형태.
이걸 더 이상 카오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당시에는 싱크로, 엑시즈, 링크 소환법이 없어 메인 덱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브레이커, 여전사, 카이쿠우, 동족감염, 개벽, 종언 등등. 강력한 파워카드들을 쑤셔넣고 남은 공간에 뭘 넣을까 고민했는데, 파워카드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덱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때마침 4레벨 비트다운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죽음의 덱 파괴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돌고 도는 메타게임으로서는 괜찮은 시절이었으나, 결국 제육감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일이 태반이었다. 왜 제육감 금지 안 하냐고!!
이 무렵부터 <유희왕 OCG>는 진정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네프티스의 봉황신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쉽게 서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사이클론이 제한카드로 지정되면서 사클x 3, 악몽의 신기루 콤보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대안으로 나온 것이 비상식이었는데, 때마침 고블린의 변통수단이 출시되면서 사클, 비상식x 2, 악몽의 신기루, 고블린의 변통수단x 3 콤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 고블린의 운영실력 발동에 체인
ⓑ 사이클론, 비상식으로 운영실력을 지정
ⓒ 역순으로 사이클론, 비상식의 효과가 먼저 적용, 고블린의 운영실력이 묘지로 보내진다.
ⓓ 그 다음 고블린의 운영실력 효과 발동, 추가로 1장을 더 드로우한다.
우수한 카드였지만, 이듬해 준제한 카드로 지정되면서 사용률이 급격히 줄었다. 변통이 준제한으로 지정될 만큼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 판매량에 도움이 되는 SR, UR 등급으로 출시되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가진 않았을 텐데.
상대 공격은 틀어막고 나만 공격하는 내로남불 형태의 메커니즘을 지녔다.
비싼 카드여서 그런지, 치사한 공격법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는 쓰는 사람이 드물었다. 킬러 스네이크를 빠르게 묘지로 보내는 것이 핵심. 이후 탄압 어비스, 변이 어비스, 황천 어비스 등의 파생 덱이 등장했으며, 플레이가 불쾌감을 준 탓인지 빠르게 준제한 카드로 지정되었다.
재수 없으면 선공 첫 턴에 게임이 끝나는 덱들도 존재.
왜 이런 덱을 진즉 안 쳐냈는지 모르겠다.
얕은 무덤, 사자 전생으로 메타몰, 사이버 포드를 최대한 재탕한다.
여의치 않으면 수패말살 + 연속마법 콤보로 마무리하는 덱. 상당히 성공률이 높았다.
기어프리드, 엘마, 마력흡수 루프를 만들어 라이프를 무한대로 만들고, 종언의 카운트다운 & 빅뱅걸로 승리할 수도 있다. 참 어처구니 없는 덱이지만,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온갖 불쾌한 덱들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친선 게임 하다가 이런 덱 만나면 눈쌀이 확 찌푸려진다. 이런 덱은 *사이드 덱 없이는 잡을 수가 없는데, 친선 게임은 사이드 교체 없이 그냥 플레이할 때가 많아 아예 상대를 안 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사이드 덱 : 예비 카드로 교체하는 룰)
계속된 금제로 성공률이 떨어졌으나 여전히 강하고 불쾌한 덱이 많았다.
왜 이런 덱을 계속 냅두지?
2005년 3월 환경. 사이버 드래곤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어태커로 맹위를 떨쳤다. 돌연변이 ☞ 천안의 새크리파이스가 주력 전술로 사용되었던 때도 이때였다. 천안 새크리는 상대 몬스터를 흡수하고 공격을 봉쇄하는 전형적인 락 카드였는데, 츠쿠요미와의 시너지가 주목받으면서 지루한 게임이 속출했다.
대회 레벨에서는 대부분 변이 카오스를 선택했다. 당시 환경은 파워 카드의 금지로 락 카드가 성행했고, 듀얼 환경도 썩 좋은 편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결국 2005년 9월, 핵심 카드들이 금제 리스트에 대거 오르면서 변이 카오스는 자취를 감췄다. 뭐 당연한 일이지.
2005년 9월, 이 무렵이 <익스퍼트 2006>의 주요 무대이다. 대부분의 CPU가 2005년 9월 금제 리스트를 따르고 있기 때문. 막대한 어드밴티지를 버는 카드가 죄다 막히면서 1:1 교환비가 우수한 카드들이 주목받게 된다. 이때 빅토리 드래곤이 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빅토리 드래곤은 국내에서는 발매된 적도 없고, 일본판 유저들도 잘 사용되지 않은 카드였기 때문에 덜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이 카드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있을 정로 문제가 심각했다.
유희왕 OCG는 3판 2선승으로 진행되며, 2승을 하게 되면 매치 승리로 간주한다. 만약 빅토리 드래곤에게 매치 킬을 당하기 전에 항복을 선언하면 어떨까? 항복은 1패 취급이므로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유희왕 OCG의 항복은 상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다 이긴 상태에서 빅토리 드래곤으로 공격 선언만 하면 되는데, 미쳤다고 항복을 받아들여 줄까? 나라도 안 받아준다.
빅토리 드래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MCV (리버스 몬스터로 루프를 만드는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락 형태의 덱이다. 락 형태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 중 당하는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쁜 건 마력의 족쇄 버전인 것 같다.
(1) 레벨제한 B지구, 그레비티 바인드 등으로 상대의 공격을 봉쇄한다.
(2) 스캐럽 대군, 메뚜기의 군세로 상대 카드를 매 턴 제거한다.
(3) 상대의 대책 카드는 신의 선고, 천벌, 매직 재머로 카운터한다.
(4) 상대의 드로를 시간 봉인으로 봉쇄한다.
(5) 츠쿠요미, 어둠의 가면으로 카운터 함정, 시간 봉인 등을 재활용한다.
(6) 스캐럽이나 메뚜기 등으로 상대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7) 상대 라이프를 깎아놓은 후, 용의 혈족으로 빅토리 드래곤을 소환하여 매치 승리한다.
게임이 질질 끌리면 결국 상대 라이프가 500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이때 마력의 족쇄가 필드에 나와있으면 완벽한 락이 성립된다. 라이프가 500 이하이고, 마력의 족쇄가 나와있으면 카드를 사용할 수가 없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산 송장 상태에서 게임이 갈때까지 가면, 그제서야 빅토리 드래곤이 등장한다. 3판 2선승 중 딱 1판만 이런 상황을 만들면 된다. 생각보다 쉬운 조건이다.
빅토리 드래곤을 카운터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답은 대책 카드가 넣는 게 아니라 룰의 헛점을 찌르는 것에 있다. 반칙 행위를 저지르면 그 판을 끝내고 1패로 간주하게 된다. 이 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고의로 반칙패를 저지르게 된다.
빅토리 드래곤 사용자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거의 다 이겼는데 반칙으로 상황을 리셋한다고?" 당연히 언쟁이 생기고 사태가 험악해진다. 그동안 무수한 사기 카드들이 있었지만, 빅토리 드래곤 만큼 분란을 일으키는 카드는 이후에도 없었다. 밸런스가 망가진 카드는 아니었지만, 영원히 금지 카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빅토리 드래곤이 분탕치긴 했지만, 듀얼 환경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당시에는 제거 가제트, 리크루트 카오스, 사이 칼리버 등 평이한 스타일의 덱들이 주류권으로 올라왔고, 기존과는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덱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왕 덱부터 이야기해보자. 제물 자원을 확보하기 쉬워지면서 연거푸 제물소환을 하며 필드를 장악한다. 상급 몬스터를 덱에 10장 이상 넣는다는 발상은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익스퍼트 2006>에서는 제왕의 파워를 그 시절 그대로 느껴볼 수 없는데, 오류로 인해 댄디라이언이 식물족이 아닌, 전사족으로 둔갑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저 한글화 버전은 이 문제가 수정되어 있어, OCG 환경 그대로를 체험할 수 있다.
*유언계 카드와 마도잡화상인을 이용해 묘지를 쌓아, 탐욕의 항아리 조건을 충족시킨다. 덱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사이버 드래곤, THE 트릭키, 빙제 뫼비우스, 카오스 소서러 등으로 몰아치는 게 목표.
(*유언계 : 카드가 묘지로 보내졌을 때 다른 몬스터를 불러오는 카드, 리크루트로 부르기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파는 무명 카드였지만, 조금씩 채용률이 오르면서 눈도장을 찍게 된다.
옥에도 티가 있는 법
<익스퍼트 2006>은 듀얼 시뮬레이터로서의 가치가 높은 게임이다. 정작 중요한 카드들이 빠지는 바람에 김이 새서 그렇지.
*빠진 카드들 목록
군웅할거 : 매직 캔슬러, 타임 오브 데스(TOD)의 핵심 카드
왕가의 보물 : 종언의 카운트다운 덱에서 보험용으로 사용
내 몸을 방패로 : 명령 호루스, 프랑켄 호루스 등이 사용
왕궁의 탄압 : 탄압 어비스, 제거 가제트 등이 사용
* 창조의 대행자 비너스
패나 덱에 신성한 구체가 없다면 라이프를 지불할 수 없다. 그러나 이건 OCG에서의 얘기고, <익스퍼트 2006>은 룰이 다르게 적용된다.
<익스퍼트 2006>은 특수 소환할 수 있는 몬스터가 없어도 발동할 수 있다. 예전에는 OCG도 이 룰을 채택했지만, 이 게임이 나올 무렵에는 룰이 바뀐 상태였다.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룰이, 대역전 퀴즈와 조합되어 치트성 플레이가 성립되었다. 최대한 라이프를 지불한 후, 블랙 팬던트, 풍마수리검을 세트하고 대역전 퀴즈를 발동, 라이프가 역전되자마자 풍마수리검 데미지가 뒤늦게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라이프를 0으로 만든다. 이 덕분에 2006 월드챔피언십 GBA 부문은 대역전 퀴즈 덱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시에는 참 어이가 없었지만, 돌이켜 보니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CPU의 인공지능이 크게 향상되어, 아무리 컴퓨터라도 방심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다만 익숙한 카드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못하는 편. AI가 똑똑해지긴 했어도 가끔 돌대가리 같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 CPU에게 악몽의 신기루를 쥐어주면 사이클론으로 패널티를 상쇄시킨다. 그러나 비상식으로 패널티를 상쇄시키는 법은 모른다. 플레이어가 쓴 신기루를 패널티가 발동하기 전에 사이클론으로 치워줄 때도 있다.
느린 게임 속도 또한 발목을 잡는다.
연출 속도를 빠르게 하는 설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가 점수 ★★★★
유희왕 OCG 기반 게임 중 가장 혁신적인 게임. 기존 유희왕 게임과는 격이 다른 퀄리티를 보여줬으며, 향후 수많은 유희왕 OCG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 2004~2006년의 듀얼 환경을 재현하여, 과거 유희왕을 즐겼던 세대에게 어필한다. 퍼즐 듀얼, 테마 듀얼, 제한 듀얼 등 다채로운 컨텐츠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
유희왕 OCG의 팬에게는 훌륭한 게임이지만, 몇몇 중요한 카드가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프로그래밍 미스인지 댄디 라이언, 창조의 대행자 비너스 처럼 OCG와 다른 카드도 눈에 띈다. 모든 컨텐츠를 열려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또한 아쉽다. 어느 순간 게임이 정체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
유희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가 그랬다. 글을 쓰면서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게끔 일일히 다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아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자니,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심 끝에 3~4기 환경을 플레이해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알아듣는 암호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익스퍼트 2006>의 최대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유희왕 OCG 미경험자라면 이 게임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흔한 튜토리얼조차 없다. 대체 룰이 왜 이렇게 적용되는지 알 수도 없다. 어떤 심리전이 오가는지, 환경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덱이 강한 건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 게임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익스퍼트 2006>은 최고의 유희왕 OCG 기반 게임이다. 그러나 유희왕 OCG 기반의 게임은 "잘 만들어도 여기까지구나"라는 한계 또한 느끼게 해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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