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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다이나 브라더스 (1992)

by 눈다랑어 2021. 7. 15.

패드가 아닌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PC 게임. 조작 방식이 달라지면 개발 노선도 달라진다.

그 중 유독 PC게임에서 발전한 장르가 있었다. 바로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이다. 유닛을 드래그하여 공격 명령을 내리고, 스크롤을 빠르게 내려 맵 전체를 둘러본다. 키보드, 마우스로 하면 별 것도 아닌 조작이 패드로 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유명 RTS 게임이 죄다 PC에서 나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콘솔로 나온 RTS가 없었던 건 아니다. 비록 장르에 적합하지 않은 플랫폼에 담겨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아이디어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공룡과 외계인이 싸우는 전략 게임 <다이나 브라더스> 이야기다.

 

다이나 브라더스 (1992)

(사진 출처 : https://www.mobygames.com/game/dyna-brothers/cover-art/gameCoverId,273381/)

 

벽화 밑에 새겨진 글을 읽고 있는 탐험가 공룡의 모습.

공룡과 우주인의 대립을 벽화에 새겨놓았다. 배경 설명이 인상적이지만 몰라도 상관 없는 내용들.

 

실시간 전략 게임

<다이나 브라더스>의 난이도는 연습, 보통, 어려움 세 종류가 있다.

노멀 모드는 시작할 때 1000 PW를 준다. 난이도 별로 주는 PW가 다르고 사용 맵도 전혀 달라진다. 말이 연습, 보통, 어려움이지 실제로는 챕터1, 챕터2, 챕터3로 부르는 게 더 와닿을 것 같다. 여기에 이면, 덤 등 숨겨진 스테이지를 추가하면 70개. 매판 30분으로 잡아도 다 깨는데 35시간이 걸린다. 볼륨 만큼은 미친 수준.

 

초식 공룡 = 일꾼

스테고의 알은 300 PW로 뽑을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부화하여 알아서 움직인다. 공룡들은 자동 이동이 기본이지만 수동으로 위치를 유도할 수도 있다. 초식 공룡은 풀을 먹고 체력을 유지한다. 주변에 먹을 풀이 별로 없으면 체력이 깎여 폐사하게 된다. 화면에 공룡 체력을 표시해주지 않아 공룡이 어떤 상태인지 체크하기도 어렵다. 예전 게임이니 어쩔 수 없긴 한데,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우산

스테고가 지나간 자리는 풀이 자란다. 땅에 우산 커맨드를 사용하면 풀이 성장한다.

풀을 키워 초식공룡의 먹이를 부족하지 않게 마련하자.

 

적 기지를 신나게 터는 티라노와 피짱.

육식 공룡은 티라노(파란색), 알로(빨간색) 두 종류가 있다.

알로는 보초병이지만 티라노는 적 진영으로 쳐들어 갈 때 좋다. 티라노의 체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주변에 아군 초식공룡이 있으면 티라노가 잡아먹어 버린다. 팀킬하지 않게 서로 떨어뜨려 놓자.

 

피짱(녹색)은 전투능력이 없는 대신 이동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이동해서 알을 먹고 튄다.

이 게임은 생산 외에도 번식이 있어, 공룡들이 간헐적으로 주변에 알을 낳을 때가 있다. 피짱 입장에선 생산 기지의 알을 터는 게 좋지만 보초병이 지키고 있어 쉽지가 않다. 따라서 번식으로 낳은 알이 피짱의 주요 표적이 된다.

 

<다이나 브라더스>는 수동 이동이 매우 까다롭다. 패트롤 기능이 뛰어난 게임도 아니다. 분명 보초병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하도 멍청해서 피짱이 알을 훔쳐먹는 걸 보고만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뭐지? 저혈압 치료하라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가?

 

<파퓰러스, 1989>처럼 신 게임 같은 요소가 존재.

플레이어는 초식 공룡을 통해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뽑거나 천재지변을 일으켜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대량의 알을 뽑은 상태에서 번개 능력으로 즉시 부화시키는 전법도 가능하다.

 

 

* 천재지변 소개

 

번개 

한 번에 대량의 유닛이 필요하다 싶을 때

적 알 빼먹는 놈이 기지 주변에 나타날 때 쓴다

 

가뭄

적의 공격로나 보급로를 차단할 때

약간의 체력 우위를 갖고 싶을 때

 

지진

적의 대량 생산을 차단하는 용도 (생산 중인 알이 전부 깨짐)

 

해일

전멸 마법

 

메테오

지형지물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천재지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초토화시킨다

 

게임이 길어지면 빙하기가 찾아온다.

빙하기가 되면 초식 공룡들은 소멸하고, 모아둔 자원과 육식 공룡 만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잡아먹을 먹이가 없으니 남은 것은 멸종 뿐, 빙하기가 왔다면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보자. 적으로 등장하는 유닛은 공룡이 아닌 외계인, 빙하기가 와도 외계인은 끄떡없다. 버텨봤자 파국이다. 

 

적 진영과 붙어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멀리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유닛을 일일히 컨트롤하기엔 너무나 귀찮고 어려움이 많다. 고생하면서 먼 길을 돌아가는 것보다 적당한 병력을 뽑고 메테오를 갈겨,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를 불태워서 하드코어 러시를 하는 게 편할 정도다. 그만큼 이 게임의 수동 컨트롤은 매우 불편하고 시종일관 신경을 써줘야 한다. 

 

해일로 적을 쓸어버리고 티라노를 소수 모아서 바로 메테오를 갈기고 쳐들어갔다.

돌아가는 지형이 있으면 아군 유닛들이 계속 헤맨다. 눈 앞에 물이 있어도 멍청하게 발을 딛는다. 물 속에 빠지면 퐁당~ 물 속에 공룡이 빠져 죽는다.

 

AI가 멍청한 게임에서 물 웅덩이는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야?

몇 번의 시도 끝에 빌드를 최적화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고전게임 답게 스테이지를 패스워드로 들어가게끔 해놨다.

<다이나 브라더스>는 진행 중인 스테이지를 보존하는 기능이 있지만, 가끔 초기화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진행 상황이 초기화된 걸 보고 깜짝 놀라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봤다. 다행히 패스워드는 네 자릿수로 매우 짧은 편이다. 경험 상 패스워드가 쓸데없이 길면 대개 구린 게임이었다. 다행이야 패스워드가 길지 않아서.

 

메테오가 떨어지는 모습

메테오가 떨어지면 유닛이 사망하고 대지에 불이 붙어 기껏 만든 풀밭을 불태워버린다.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상대도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고, 하나같이 굉장한 효과를 갖고있어 "언제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는 재미가 있다.

 

노멀 난이도 최종 스테이지(20)

공략법을 몰라 헤맸던 스테이지.

적과의 거리가 멀고 유닛들이 지형에 막혀 허우적거린다.

 

 

* 최종 스테이지 공략법 보기

 

더보기

처음부터 일꾼을 찍지 않고 티라노 1기를 뽑는다.

티라노가 나오자마자 좌 or 우 방향으로 유도하면, 체력은 걸레짝이 되지만 상대방 진영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티라노가 적 진영에 무사히 넘어간 순간 게임은 끝났다.

 

 

 

지금 플레이하기엔 편의성이 매우 안 좋은 게임이다. 랠리 기능이 부실하고 수동 조종을 해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잘 안 간다. 수동 조종이라기보다는 '유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18 스테이지가 참 어려웠는데, 일본 웹 공략을 봐도 원론적인(교과서에 충실하세요 같은) 공략만 써놔서 애 좀 먹었다. 여기서부터 타일이 어둡게 바뀌면서 풀 재배가 어려워진다. 스테고가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 일이 부지기수. 비를 꾸준히 내려서 풀을 키우고, 수동으로 티라노를 유도해서 적진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직접 해보니 정말 "교과서에 충실하세요" 수준의 공략이다.

 

캐주얼한 이미지에 비해 의외로 보급로의 개념이 매우 탄탄한 게임이다.

다른 RTS들이 보급을 '합류하는 유닛을 노려 끊어먹는 식'으로 구현한 것과 달리, <다이나 브라더스>의 보급로는 말 그대로 '군사 도로'다.

 

공룡은 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다. 초식공룡을 키우고자 풀을 많이 재배한다면 상대방 공룡이 들어올 루트가 많아진다. 무턱대고 영토를 늘릴 게 아니라 길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방어 요점을 만들고, 공격 루트를 유도하고 공격을 밀집시킨다. 이것이 <다이나 브라더스>의 보급로 개념이다.

 

<다이나 브라더스>의 보급로 개념은 다른 RTS보다도 훨씬 직관적이고 중요하다.

자동 이동이 매우 중요한 만큼 보급로를 정교하게 만들수록 유리한 것이다.

 

 

 

 

평가 점수 : ★★★

약육강식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초반에는 재밌었지만, 점점 지형이 복잡해지면서 게임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내가 너무 요즘 게임의 편의성에 익숙한 탓이겠지만, 확실히 요즘 할 만한 게임은 아닌 것 같다. 고전게임을 할 때는 편의성을 잘 따지지 않는 편인데,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시대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았다.

 

성공한 RTS 게임 태반이 콘솔이 아니라 PC에서 나온 이유가 있다. 우선 맵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마우스로 화면을 휙휙 넘나드는 것과 패드로 스크롤을 내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유닛을 대량으로 드래그하여 공격 명령을 내리는 쉬운 행동조차 패드로 구현하면 느리고 복잡해진다.

 

<다이나 브라더스>는 실시간 전략의 토대를 세운 듄 2(1992.12)보다도 먼저 나온(1992.5) 게임이다.

보급로의 개념, 아기자기한 캐릭터, 코믹하게 약육강식을 표현한 방식 등등. 멋진 아이디어가 많은 게임이지만, 기종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의 조작 체계를 만들진 못했다. 잘 다듬으면 지금도 충분히 먹힐 만한 게임인 것 같은데... 시리즈의 명맥이 끊겨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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