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는 전신마괴의 후속작이며 전신마괴 2로 부르기도 한다" 라는 이야기를 십수년 동안 믿어 왔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인터넷에서 굉장한 이야기를 접했다. <가디언즈> 개발자와 직접 이야기한 결과 <가디언즈>는 <전신마괴>의 후속작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타이틀에 있던 전신마괴 2(파란 원, DENJINMAKAI)라는 글자는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한국의 해킹기판 업자가 임의로 집어넣는 문구였던 것 같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6212
링크에 나온 이야기가 공식은 아니지만, 읽어보니 그간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이 글에서는 저 내용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가디언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디언즈>는 예전부터 베일에 쌓인 게임이었다. 분명 게임 속 여러 요소들은 <전신마괴>에서 따온 게 뚜렷하다. 그러나 텍스트가 가득했던 <전신마괴>와 달리 <가디언즈>는 텍스트가 거의 없다. 후속작치곤 상당히 이상하다. <가디언즈>의 등장인물 길리안, 흑기사, 젤디아, 털크스, P.벨바는 전작에서도 등장한 바 있지만 생김새는 전혀 다르게 표현되었다.
단순 이미지 체인지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른 모습.
왼쪽이 흑기사인 건 이해가 되지만, 오른쪽이 흑기사라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전신마괴>는 아이디어가 멋진 게임이었지만, 정작 아이디어와 게임 간의 이음새가 형편없었다. 예산이나 개발기한이 부족했거나, 개발자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전신마괴>는 참담한 실패를 겪었고 후속작 개발에도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가디언즈>는 망해버린 <전신마괴>와는 별개의 게임으로 만들고자 했던, 퍼블리셔 반프레스토의 입김이 들어간 게임이다. 후속작을 만들고 싶었던 개발자들과 별개의 게임을 만드려는 반프레스토가 대립한 결과, 제목은 <가디언즈>지만 내용물은 <전신마괴>의 컨셉을 차용한 혼종이 태어난 것이다.
전작은 사운드의 품질이 안 좋을 지언정, 기합 소리는 녹음되어 있었다. <가디언즈>는 배경음악, 타격음은 구현되었으나 캐릭터 음성은 전혀 수록되지 않았다. 링크에 나온 이야기대로라면 저예산과 부족한 납기일로 인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94년 중순), 반프레스토는 미완성된 게임을 방치하다가 95년 12월이 되어서야 발매하게 된 것.
ⓐ 전작의 대실패, 미완성작.
ⓑ 풀린 기판(한국판이 아닌 정품 기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당시에도 일본 국내에서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게메스트 리뷰어의 회고.
ⓓ 홍보가 전혀 되지않음.
ⓔ 벨트스크롤 액션 장르의 인기가 사그라들던 시절.
이러고도 흥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앞서 <전신마괴>가 그랬듯이 <가디언즈> 또한 아는 사람이 없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망한 게임들은 다른 나라에서 싸게 들여올 때가 많았는데,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 답게 <가디언즈>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한국에서는 주로 문방구 앞에 있었던 게임이었으며,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정식기판이 아닌 한국판 복제기판이었던 것 같다.
<전신마괴>는 오프닝에서 세계관을 알려주지만 <가디언즈>는 텍스트가 거의 없다.
게임 내에서 주인공이 대체 왜 싸우고 있는 것인지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가디언즈>가 <전신마괴 2>가 아님이 밝혀지면서 <전신마괴>의 젤디아와는 다른 인물임이 판명되었다.
캐릭터 선택 화면에서 커맨드를 확인할 수 있으며, C 공격이 새롭게 추가. 그러나 여전히 커맨드를 눌렀다 떼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격투게임에 익숙한 유저에겐 조작방식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당시 아케이드 산업에서 격투게임은 메이저 장르였기 때문에, 그들과 다르다는 것 만으로도 단점이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해괴한 입력 방식은 적응하면 그만이다. 전작 <전신마괴>는 커맨드가 더럽게 안 나갔지만 <가디언즈>는 필살기 커맨드가 자유자재로 나간다. 비록 입력방식이 비직관적이긴 하지만, 조작감이 좋아진 것 만으로도 '필살기를 난사하는 비템업 게임' 이라는 컨셉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전신마괴>처럼 기를 소모하여 필살기를 쓰는 시스템.
가장 인기있었던 캐릭터는 선글라스 남자 길리언, 멋과 성능 모든 것을 갖췄다.
애니메이션 Z건담에 나오는 크와트로 바지나와 닮았다.
<가디언즈>는 온갖 상황에서 필살기를 연속기로 넣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심지어 벽에서 잘 때리면 무한 콤보를 넣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게임은 콤보보정이 있어 일정 타수 이상 때리면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무한 콤보라고 해도 적 캐릭터를 공처럼 갖고 노는 수준에 불과한 것.
위 스샷이 이상하게 찍혔길래 한 컷 더 찍어봤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킥을 먹이는 기술.
C버튼으로 특수공격을 사용할 수 있다.
길리언의 특수공격은 한쪽 손을 들어 레이저 빔을 쏘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멋있다.
전신마괴 시절보다 템포가 빠르고 화끈한 필살기 난사가 가능해짐.
비템업에서 메가크래시를 별 패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다니 꿈이여 생시여.
개발기간 짧고, 돈 안 주면 이래될 수밖에 없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 게임도 팔레트 스왑을 적극 사용하고 있다. 적극 쓰는 수준이 아니라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우려먹어서 문제.
적 캐릭터의 음성은 커녕,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짧은 기합조차 없다.
신나게 기술 난사하는 게임인데 흥을 돋울 사운드가 없다니.
평가 점수 ★★★
<전신마괴>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할 능력이 없었다. <가디언즈>는 <전신마괴>의 실패를 거울삼아, 필살기를 난사하는 게임메카닉을 만들었고, 더 많은 목숨, 더 나은 조작감을 제공하는 등 플레이어를 많이 배려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게임플레이의 진화와는 별개로 전작보다도 못한 면이 많다.
가장 아쉬운 건 설정의 부재다. <전신마괴>는 오프닝, 인게임, 엔딩 등 다양하게 텍스트를 보여줬지만 <가디언즈>의 스토리는 게임 속 어디에도 없다. 전작의 이요, 젤디아 설정 같은 인상적인 반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설정과 캐릭터 음성의 부재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덜 만들어진 비운의 게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게임. 여러모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1994)의 하위호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절대평가로 보면 나쁜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미완성 티가 풀풀나는 게임인데도 좋은 게임처럼 느껴질 정도다.
<가디언즈>를 해본 사람들은 이 게임을 그저 그런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덜 만들었다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게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즈 6000 아카데미 (1994) (0) | 2021.07.21 |
---|---|
데이트 퀴즈 GO GO (1998) (0) | 2021.07.21 |
전신마괴 (1994) (0) | 2021.07.21 |
범피의 아케이드 판타지 (1992) (0) | 2021.07.21 |
하데스 (2020) (0) | 2021.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