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앤 슬래시(Hack and Slash)는 한계가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자르고 베는 것에 집중하면 게임 구성이 단조로워지기 쉽다. 결국에는 아무래도 폐지 줍기를 지향하다 보니, 나중에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디아블로, 1996>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단조로운 게임 구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후속작 <디아블로 2, 2000>는 본편의 성공을 멀티플레이, 엔드 게임으로 연결시켰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핵 앤 슬래시 (이하 핵슬)게임은 파밍 게임 노선을 지향하게 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명작이 전 세계적 메가 히트를 기록한 순간이었다.
<디아블로 2>의 성공은 장르 전체에 거대한 그림자를 덧씌웠다. 모든 핵슬이 <디아블로 2>의 노선을 탐닉한 결과, 사람들은 반복되는 플레이에 빠르게 지쳐갔다. 몹을 학살하는 노선은 액션 장르로 전파되어 <데빌 메이 크라이> <갓 오브 워> <베요네타> <니어 오토마타> 등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디아블로는 어떠했던가. 기껏해야 한 두 개의 스킬을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게임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디아블로 같은(Diablo-like) 게임은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장르 확장성도 크게 떨어졌다.
작년은 여러모로 뒤숭숭한 해였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이하 라오어 2)와 <사이버펑크 2077>가 소비자에게 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개발자와 리뷰어, 게이머 간의 괴리감이 극대화되었고, 무수한 논란 속에 <라오어 2>가 최다 GOTY를 달성했다. 심지어 게임 어워드에서 베스트 내러티브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내가 투표인단이었다면 어떤 작품에 표를 던졌을까, 2020년 최고의 게임은 무엇이었는가, 금세 답이 나왔다.
(이미지 출처 : https://f4.bcbits.com/img/0022033472_10.jpg)
핵 앤 슬래시 장르는 GOTY 라인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르다. 그들은 액션, 오픈 월드, FPS 만큼의 장르 확장성을 갖추지 못했고, 어느 게임을 해봐도 비슷한 인상을 주는 메커니즘을 갖췄다. 쿼터뷰 특유의 시점과 스토리텔링은 양립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GOTY 선정작 태반은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AAA 게임이다. 인디는 말 그대로 인디, 기존 게임에 비해 신선하다고는 해도,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엔 때깔이 좋지 않거나, 볼륨이 작거나, 홍보가 덜 되는 등 부족한 부분이 엿보인다.
<하데스>는 로그라이트이자 핵 앤 슬래시 게임이다. 또한 블리자드, 유비소프트, 너티독처럼 대기업이 만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하데스>는 특별하며, 2020년 최고의 게임으로서 손색 없는 자격을 갖췄다.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짜고짜 이 화면부터 나오니 기대치가 떨어진다.
말하는 폼새를 보니 하데스 같지가 않다.
하데스의 아들이 주인공인 걸까?
하데스는 (공격, 특수공격, 대시, 마법) 네 종류의 버튼을 지원한다. 패드가 있다면 패드 플레이를 적극 권장한다. 에임 보정이 있어 내가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 진동 덕분에 입체적인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
이상하게 생긴 것이 있어 가까이 가니 RB를 누르라고 한다.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신들
신들에게 은혜를 받아 특별한 능력을 취할 수 있다.
세 가지 은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됨.
전투는 빡센데 회복이 없다니,
대체 어떻게 회복하는 거야?
마법공격은 체력 옆의 1/1(빨간 원)을 소모해서 사용한다.
사용한 마법은 날아가서 적을 타격하며, 적 근처에 가면 마법을 돌려받을 수 있다.
체력 회복이 되질 않으니 금세 죽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만들어놨을까?
피로 물든 강속에서 부활한 주인공.
정신을 차려보니 하데스의 집에 와있다.
자그레우스는 하데스의 아들이었던 것.
대화 내용이나 대화톤을 들어봐도 부자 사이가 안 좋아 보인다.
닉스의 도움으로 올림푸스의 신들과 계약했던 것이다
타르타로스를 돌아다니면 어둠이 쌓인다.
어둠은 방에 있는 '밤의 거울'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자그레우스의 스펙을 영구적으로 올려주는 배틀 포인트라고 보면 된다. 첫 플레이에서 어떻게 체력을 회복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명도의 생명력'을 보고 이마를 탁 쳤다.
방을 나가면 다양한 무기가 있다. 열쇠를 사용해서 무기 잠금을 해제할 수 있음.
피 회복이 어렵다면 멀리서 쏘면 되잖아?
어쨌든 다시 탈출을 시도하자.
문 앞에 있는 건 천둥 모양.
역시 천둥=제우스였다.
어떤 은혜를 받느냐에 따라 전투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곧이어 아르테미스의 은혜를 받게 됨.
이 게임은 방을 클리어할 때마다 어떤 방을 고를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왼쪽은 제우스의 은혜를 받는 방, 오른쪽은 체력을 영구적으로 25 올려주는 방이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탐사할 곳을 잘 선정하도록 하자.
은혜 아이콘이 두 개 동시에 그려져 있는 방도 있다.
두 명 이상의 신들에게 은혜를 받으면 랜덤하게 출현한다. 여기서 아르테미스의 은혜를 선택했더니,
제우스는 화가 단단히 났다.
나를 버리고 감히 아르테미스를 선택해?
몬스터를 다 잡을 때까지 분노한 신의 공격을 받게 됨.
그래서 방 이름이 신들의 시험이었구나.
제우스는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나는 죽을 뻔했다.
신들의 시험은 난이도가 어렵지만, 전투가 끝나면 두 신의 은혜를 전부 얻기 때문에 보상이 좋다.
두 명 이상의 신에게 은혜를 받으면 듀오 은혜를 찍을 수 있다.
무기와 시너지가 맞는 듀오를 알고 있다면 이 게임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플레이해본 결과, 듀오를 잘 몰라도 메인스토리 진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법.
신들의 은혜는 랜덤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그렇다면 내가 받고 싶은 은혜를 골라 빌드를 만드는 플레이가 가능할까?
신들과 친분을 쌓으면 액세서리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액세서리를 끼고 플레이하면 해당 신에게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등급도 높아진다. 보스를 격파하면 악세서리를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1층 포세이돈, 2층 제우스 악세서리를 껴서 포세이돈, 제우스 조합을 노릴 수 있다.
<하데스>는 놀라운 시너지를 내는 은혜가 많다. 만약 시너지를 운으로 먹어야만 한다면, "이번 판은 글렀으니 빨리 죽고 재시도 하자"라는 식으로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데스>는 재시도를 해도 첫 은혜에서 나오는 스킬이 고정되어 있다. 또한 액세서리로 내가 원하는 빌드를 얼추 노릴 수 있다. 운이 나쁠 때, 무의미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잘 보완한 게 인상적이다.
해골이 그려져 있는 방(빨간 원)에는 보스급 몬스터가 등장한다.
처음 플레이할 때는 긴장하면서 들어가게 되는데, 나중에는 덤덤하게 들어가게 된다.
얜 뭐지? 아는 얼굴인가.
아버지의 청탁을 받고 자그레우스를 죽이러 온 것.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무서운 세상.
패드로 플레이하면 방향만 잡아줘도 얼추 맞춘다.
마치 나 자신이 잘하는 것처럼 느껴짐.
스틱스 강 물맛이 어떠냐?
티탄의 피는 무기 양상을 업그레이드할 때 쓰는데, 초반에는 얻기 힘든 귀중품이다.
하지만 보스를 물리쳤다는 기쁨도 잠시.
신들의 시련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스틱스 강으로 떠내려 온다.
눈을 뜬 곳은 하데스의 집. 다시 하데스에게 핀잔이나 듣는 신세다.
많은 게임이 죽음 = 게임 오버로 그려내지만, 이 게임은 죽음을 통해 주인공을 강화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죽음을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결합한 것이 흥미롭다.
빛은 하데스의 집뿐만 아니라 던전 곳곳에도 나타난다.
이를 조사해 보면,
몇 줄짜리 관련 스토리를 알려준다.
그리스 신화의 숱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이다.
비록 메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신화를 아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뒷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아스포델 초원 어딘가에서 에우리디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노랫소릴 듣고 싶어, 더 진행하지 않고 노래를 들을 때가 많았다.
지옥에서 에우리디케와 대화하고, 집에 돌아와(죽어서) 오르페우스와 대화하면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그레우스가 죽으면 지옥에서 얻은 은혜, 골드, 체력 증가 등을 잃어버린다.
탐험하면서 찾는 보상은 랜덤, 맵 구조도 랜덤, 만나는 적도 랜덤. 슬슬 익숙해진다 싶으면 예상치 못한 변화를 준다. 대화 패턴도 무궁무진하다. 매판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게임이다.
로그라이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죽음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초기화되어, 나 자신의 실력과 운을 믿고 도전해야 하는 하드코어한 장르.
로그라이크에서 죽음이란 좌절이다. 어떤 이는 좌절감을 딛고 일어난다. 좌절이 클수록 성취감도 커진다. 반면 어떤 이는 좌절에 부딪혀 포기한다. 이를 보완한 장르가 로그라이트이다. 로그라이트 또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똑같지만, 모든 정보가 완전히 초기화되진 않는다. 마치 RPG처럼 성장 요소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로그라이트'여도 죽음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완화시키느냐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 포인트다. <하데스>는 여기에 안전장치를 하나 더 달았다. <하데스>에선 죽음을 겪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죽음으로 인해 자칫 좌절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추가 요소가 해금된다. 호기심이 동한다.
처음에는 어려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몇 번 죽으면 어느샌가 성장하고 있다. 캐릭터가 성장하고, 나 자신의 경험이 쌓인다. 도저히 못 깰 것 같은 보스를 처음으로 깼을 때의 희열. 이런 구조의 게임은 많지만, 지나치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마냥 쉽지도 않은 수준의 난이도를 설정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만큼 적이 추가되고 패턴이 다양해진다. 뭔가 조금씩 해금되니 지루할 틈이 없고, JRPG에서 흔히 보이는 레벨지상주의가 만연한 것도 아니다. 독특한 방식의 레벨 스케일링이라 할 수 있겠다. <하데스>의 레벨디자인은 몇 번을 칭찬해도 아깝지 않다.
'무작위성과 영구적 죽음, 매번 새로운 게임이 되는 것'은 로그라이크의 특징이지만, 이 독특한 구조와 어울리게끔 스토리를 잘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데스>는 '로그라이크'가 아닌 '로그라이트' 장르의 게임이지만, 로그라이크 장르를 훑어봐도 이 정도로 내러티브가 훌륭한 게임을 찾기가 어려웠다.
주인공 자그레우스는 명계의 신, 몇 번을 죽어도 스틱스 강을 타고 내려와 되살아난다.
탈출 도중 에우리디케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가, 되살아나서 오르페우스에게 전달한다. 메인스토리 후반부에는 이러한 내러티브 디자인이 극대화된다. 자그레우스의 끝없는 죽음과 부활이 게임 메카닉과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캐릭터의 설정이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이 게임은 반쪽짜리 게임일 것이다.
핵 앤 슬래시 스타일에 몬스터 학살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팥 없는 찐빵 아니겠는가.
다이달로스 망치를 얻으면 무기의 특성을 바꿀 수 있다.
어떤 옵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180도 변할 수도 있음.
평소에는 로켓을 1발 쏘지만, 융단 폭격을 습득하면 위력이 30% 줄어드는 대신 로켓을 5발 발사한다.
변화무쌍한 것은 다이달로스뿐만이 아니다.
앞서 봤었던 '밤의 거울'을 바꿔서 변화를 줄 수도 있고, 양상을 교체하여 전투스타일을 확 바꿔버릴 수도 있다. [무기 x 무기 양상 x 다이달로스 망치 x 은혜]를 곱하면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효율 좋은 옵션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쁜 옵션을 골라도 충분히 깰 수 있는 게임이다.
20시간이 채 되기 전에 지옥을 돌파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를 편의상 챕터 1이라고 하자.
지옥을 돌파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리뷰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자그레우스가 이승으로 나가려고 애를 쓰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때부터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챕터 2가 시작된다. 챕터 2가 끝난 후, 스탭 롤이 올라가면서 '우리의 핏속에'가 울려 퍼질 때의 느낌은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챕터 1을 클리어하면 형벌 규약이 생긴다. 무기 양상을 강화하려면 대량의 티탄의 피가 필요한데, 형벌 규약을 진행하면 티탄의 피를 수급하기 쉬워 동기부여가 됐다.
형벌 규약은 오랫동안 이 게임을 붙들게 만들어 주는 효자 컨텐츠다. 어떤 옵션을 고르느냐에 따라 무기, 은혜, 플레이 패턴이 크게 달라진다. 많은 핵 앤 슬래시 게임들은 스토리를 깬 후 파밍에 뛰어들지만, 파밍은 단순 반복이기에 도전의 참 맛을 느끼기 어렵다. "좋은 템을 맞추고 싶다"라는 생각 외에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컨텐츠다.
<하데스>도 아이템 파밍이 있지만 비중은 적은 편이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2: 파멸의 군주, 2001>에서 레이븐 프로스트 링이나 수수께끼, 콜 투 암스 같은 아이템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다. 레이븐 링은 '얼지 않음' 옵션이, 수수께끼는 '텔레포트', 콜투암스의 '체력 뻥튀기' 등등은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아이템이 없다면 게임에 큰 지장이 생긴다.
반면 <하데스>는 빌드와 무작위성, 컨트롤이 중요하지, 파밍 요소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자기가 쓸 만큼의 재화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고, 특정 액세서리나 양상이 없다고 못 깨는 게임도 아니다. 핵 앤 슬래시에서 흔히 보는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드랍'한다는 개념조차 없다. <하데스>는 로그라이트 장르를 통틀어도 손꼽힐 정도의 성장 요소를 제공한다. 먼 옛날 레벨 노가다로 클리어하던 RPG 게임들이 떠오를 정도다.
로그라이크에서 죽음이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디아블로 2>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전격 도입하여, 매번 지형이 달라지고, 챔피언의 속성을 무작위로 부여하는 변주를 취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로그라이크다운 모드는 하드코어다. 수십, 수백 시간 공들인 캐릭터가 허무하게 죽을 때의 충격이란.
로그라이크는 죽음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가는 장르다. 로그라이크의 플레이 타임은 대체로 짧은 편이다. 비슷한 장소를 여러 번 반복하여, 때로는 운으로, 경험으로 헤쳐나가는 장르다. <디아블로 2>의 하드코어 모드는 한 판의 템포를 길게 가져가는 대신, 매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고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인안나(이슈타르), 기독교의 예수까지. 신의 죽음과 부활은 신화의 단골 소재다. 신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하데스>는 죽음과 탄생의 사이클을 게임 속에 눌러담았다. 마치 로그라이크에서 죽음이 당연한 것처럼, 자그레우스의 죽음 또한 필연이다. 지옥의 창에 꿰뚫린 자그레우스는 육체적 죽음을 털고 일어나, 스틱스의 붉은 물길 사이에서 부활한다. 플레이어는 탈출 시도를 반복하면서 게임 내, 외적으로 성장을 거듭한다. 어느새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플레이어는 로그라이크 최대의 장벽, 죽음(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된다.
우선 운명적 목록을 살펴보자.
아르테미스의 모든 은혜를 1번씩 받으면 달성하는 예언.
그리스 신화처럼 예언이 내려지고 자그레우스가 실행한다.
단순한 도전과제가 게임 속 세계관과 맞물려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등장인물들과 친해져 서브스토리를 볼 수도 있고, 모든 양상을 해금하여 다양한 무기를 써보거나, 높은 난이도의 형별 규약에 도전하고 타임어택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컨텐츠가 남아있다.
그냥 메인 스토리를 밀고 종료해도 되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 플레이해도 되고, 심심풀이로 한 두 판씩 플레이해도 된다. 어차피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기까지 길어봐야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평가 점수 ★★★★★
로그라이트, RPG, 핵 앤 슬래시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 꼭 해봐야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하데스>는 2020년을 대표할만한 자격이 있는 게임이며, 나아가 모든 로그라이트, 핵 앤 슬래시 장르 게임을 떠올려봐도 이 정도의 짜임새를 갖춘 게임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핵 앤 슬래시는 백이면 백, 스펙 업이 최우선 목표가 된다. 파밍 게임은 세팅을 맞출수록 스펙 업 기회가 줄고 게임 난이도가 하락해 긴장감이 결여된다. 마니아 층에서 하드코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데스>는 이러한 구조에서 탈피, 꾸준히 스펙 업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었다. 스토리를 밀고 파밍에 전념하는 기존 구조에서 스토리와 파밍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규약 시스템으로 인해 파밍으로 인한 난이도 하락이 덜한 편이다.
<하데스>는 장르의 표준을 제시했을 정도의 상식을 파괴한 작품이다. <하데스>가 인디의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데스>의 개발사 슈퍼자이언츠게임즈는 인디의 체급을 아득히 뛰어넘은 회사다. AAA 게임들의 구조가 다들 비슷해보이는 시대에, 사람들이 인디 씬에 바라는 건 독창성일 터다. 그런 의미에서 <하데스>는 완벽하게 인디게임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20년 전에 비하면 게임 기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어째 게임플레이와 내러티브의 융합은 갈수록 삐그덕거리는 모양새다. 평생 보물 탐사에 전념하는 사람이 총을 프로 군인처럼 능숙하게 사용하고,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이 잡졸들을 죄의식 없이 처치한다. 소위 AAA급 게임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장르 고유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게임메카닉, 내러티브를 조화롭게 융합한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데스>의 성취가 놀랍다.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 도중 단점이 눈에 밟히곤 한다. 사람들은 단점에 비해 장점을 찾는 걸 어려워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눈이 높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그런 까다로운 눈으로 봐도 <하데스>는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데스>에서 죽음이란 상실이 아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의 한 갈래일 뿐이다. <하데스>는 26,000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올해 게임계가 난조였기 때문에 하데스가 빛나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하데스>는 어느 해에 출시되었어도 높게 빛났을 별이다. 더 많은 상을 수집하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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