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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더스크 (2018)

by 눈다랑어 2021. 7. 27.

9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기술의 발달, 축적된 개발 노하우는 수많은 명작 게임들을 탄생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장르가 분화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 FPS도 이때 탄생하였다. 울펜슈타인 3D는 FPS 유행의 신호탄을 쏘았고, 둠의 등장으로 수많은 둠 클론 게임들이 탄생했다. 이를 고전FPS, 올드스쿨 슈터 등으로 부른다. 고전FPS로 분류하는 것은 단순히 시대적인 분류가 아니다. 고전FPS는 현세대 슈터들이 갖지 못한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

ⓑ 대충 조준해도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 무기의 특성이 뚜렷하다

ⓓ 적들은 보고 피할 수 있는 느린 투사체 공격을 자주 사용한다

ⓔ 스토리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 정해진 길이라는 게 따로 없다

ⓖ 스스로 길을 찾아야하며, 맵을 통과하려면 키가 필요하다

ⓗ 숨겨진 장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 현실과는 거리가 먼,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독특한 재미를 주지만, 시점이 휙휙 바뀌기 때문에 누군가는 하기 힘든 장르.

<더스크>는 올드스쿨 슈터의 특징을 잘 살린 2018년 게임이며, 그래픽마저 <퀘이크, 1996>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세대 게이머에게 고전FPS, 그것도 눈이 아플 정도로 조악한 3D 게임이 먹힐까?

 

게임을 구동하면 fake-DOS가 실행된다. 옛 향수가 느껴지는 장치.

 

고전 3D 게임 특유의 조악함이 섬뜩함을 배가시킨다.

피가 튀는 모습

코모도어 64, VHS, PS1... 80-9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겐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코모도어 64는 msx 시대에 사용되던 컴퓨터, VHS는 비디오테이프 규격의 표준, PS1은 2D-3D 과도기를 상징하는 게임기였다.

 

최근 들어 과거의 유산을 탐닉하는 호러, 미스터리 게임이 많아졌다. <FAITH, 2017> <여피 사이코, 2019> <머더 하우스, 2020> 등등. 영화 같은 표현이 가능한 시대에 왜 고대 유물을 꺼내오는 걸까? 공포는 막연함과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다른 장르가 개연성을 추구하고, 모공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표현하러 할 때, 호러 장르는 정 반대의 길을 걷는다. <더스크>가 퀘이크 시절의 그래픽을 재현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고전 FPS답게 열쇠를 모아 진입하는 장소가 많고,

열쇠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제법 긴 편.

 

한 창고에서 붉은 열쇠를 찾았다

누군가의 독백과 메모로 전개되는 스토리.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고전 FPS의 정체성인 게임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

 

새빨간 하늘과 으스스한 배경음악, 줄지어 놓여있는 묘비까지.

호러 게임은 행동에 심각한 제약을 둠으로서 공포감을 주는 장르다.

 

ⓐ시야를 가리고

ⓑ탄을 적게 주거나

ⓒ아예 무기조차 빼앗는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막연한 공포. 처음엔 거세게 저항하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남은 탄환은 20발도 채 남지 않았다.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도 모른다. 플레이어에게 남은 건 끔찍한 파멸 뿐이다.

 

<더스크>는 시야를 제한할지언정 탄은 넉넉하게 주는 게임이다. 적들을 혼자서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는 셈이다. <바이오 하자드>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탄 것이다. 이런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둠, 1993> <퀘이크>가 그렇듯이 말이다.

 

 

* 이하 내용은 호러 연출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스토리 스포일러 없음)

E2M5 플레이 영상

<더스크> E2M5 스테이지의 호러 연출은 소름이 쫙 돋는다. 첫 구동 시에 도스 화면에서 헤드폰 플레이를 권장한다고 쓰여있는데 왜 그런지 알겠다. 음향효과에 이렇게나 공을 들였는데, 헤드셋 안 쓰면 섭하지.

 

아트스타일이나 게임플레이는 <퀘이크>를 떠올리게 하고, 맵 분류(E2M5)는 영락없는 클래식 <둠> 판박이다. 그러나 게임을 하다보니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 2001>이 연상될 정도로 두려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

 

점프스케어를 자제하면서도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호러 게임에서 점프스케어(갑툭튀)를 쓰면 쉽게 놀래킬 수 있지만, 남발할수록 플레이어가 적응해 식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옳아매는 심리적 공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조악한 그래픽이기 때문에 미지의 공포가 더 잘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사용된 음향효과까지. 마마의 울음소리는 정말로 소름이 끼쳤다.

 

<더스크>의 심리적 공포는 <리틀 나이트메어>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마음 속에 응어리를 남겨, 에피소드 2에서는 억눌린 마음이 정점에 달한다. 요 몇년새 출시된 어떤 호러게임보다도 무섭게 느껴졌다.

2021.07.26 - [게임 비평] - 리틀 나이트메어 (2017)

 

리틀 나이트메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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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1024.tistory.com

 

열돔 현상에 지쳐있다면 <더스크>를 해보자, 더위가 어느 순간 잊혀질 것이다.

 

어둡고 진한 분위기가 감돈다.

에피소드 2를 끝내면서 "정말 끝내주게 만들었구나" 를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에피소드 3에서는 그만한 충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불편하다.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건지 맵을 못 찾겠다. 지금껏 클래식 슈터들을 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는 편이었는데, 이 게임은 기어코 유튜브 찬스를 쓰게 만들었다. 

 

고전 FPS에서는 길 찾기도 하나의 도전이다. 그러나 E3의 맵 디자인은 짜증이 솟구칠 정도로 알아보기 힘들다. 길 안내, 힌트는 일절 없고,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고전 FPS들은 맵이라도 열어서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 게임은 맵 보는 기능이 빠져있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제작자가 이를 의도한 것 같았다.

 

<둠 2, 1994>의 지도 확인 장면, 더스크는 이 기능이 빠져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공포감은 더해지고, 길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E1, E2에서는 그래도 좀 헤매다 보면 찾을 수 있었던 것이, E3쯤 가면 "젠장 대체 어디로 가라고" 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둠 이터널, 2020>이 딱 이랬다. 플레이가 만족스러웠던 게임이지만, 길 찾기 만큼은 좋은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더스크> 또한 <둠 이터널>과 크게 다르진 않다.

 

<둠>과 <퀘이크>를 처음 접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헤매진 않았던 것 같다. 길치의 의견이기 때문에 중립성은 보장하기 어렵지만, 평소 게임에서 길을 못 찾는 사람들이라면 고역일 것이다.

 

 

 

게임 평가 ★★★★★

<더스크>의 메커니즘은 전에 있던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둠>이나 <퀘이크>의 아류작에 익숙하다면, 이 게임 또한 그저그런 게임 중 하나로 생각되기 쉽다. 둠 클론들이 잘 나오지 않는 요즘, 고전 FPS는 요즘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게임은 아니지만, 고전을 취합하여 현세대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수직, 수평을 고르게 활용한 레벨 디자인은 인상적이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고전 FPS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타이틀이다.

 

그러나 이 게임의 호러연출은 그저 그런 게임과는 다르다. 플레이하는 내내 두렵고 억눌려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이 분위기를 즐기는 내가 있다.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몰입감. 클래식 슈터 답게 중독성도 강렬하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은 혐오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을 때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곤 한다. 그곳에는 손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형상을 보고 싶은 내가 있다. <더스크>는 그런 욕망을 재현한 것 같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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