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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팬시 월드 (1996)

by 눈다랑어 2021. 7. 23.

버블보블은 오늘도 오락실 한 켠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의 버블보블 사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락실 유행이 불과 몇 년만에 바뀌는 시대에, 버블보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90년대 말, 00년대 초반, 말... 심지어 지금도 살아있는 화석이다. 고정형 화면의 플랫포머에, 적을 가둬 무기로 사용하는 방식은 후대의 게임에도 영향을 끼쳤다. <스노우 브라더스> <텀블 팝>이 그 주인공이다.

 

<팬시 월드, 1996>는 버블보블 클론이다. 앞서 선배들이 그랬듯이, 단순히 <버블보블>을 베껴서는 안 된다. <스노우 브라더스, 1990>는 눈덩이를 굴려 차별화에 성공했고, <텀블 팝, 1991>은 고스트 버스터즈를 연상시키는 청소기 흡입에, 레버를 좌우로 흔드는 테크닉으로 신선함을 주었다. <버블보블>이란 고전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결과다. 그렇다면 <팬시 월드>는 어떤 해석을 내놓았을까. 

 

디자인이 스노우 브라더스와 닮았다.

 

공을 던지는 모습

<팬시 월드>는 <스노우 브라더스>의 눈뭉치와 달리,

적을 가두는 일 없이 적에게 공을 직접 맞춰 쓰러뜨린다.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무지성 카피하면 이렇게 된다.

<버블보블>은 거품으로 적을 가두고, <스노우 브라더스>는 눈을 던져 눈덩이를 만들며, <텀블 팝>은 적을 빨아들인다. 팬시 월드는 공을 직접 던져 대미지를 준다. 적을 모아 일거에 소탕하는 시스템도 없다. 이럴 거면 뭐하러 고정 화면으로 만들었는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악마성> <스트라이커 히류> 등 베낄 게임이 지천에 널렸는데 말이다.

 

미라클 어드벤처(수출명 : 스핀 마스터), 보블버블을 베낄 게 아니라 이런 게임을 참고했어야 했다.

 

허접한 월드 맵

세계를 누비는 컨셉은 마치 <팡> <텀블 팝>을 떠올리게 만든다. <팡>이 나왔던 1989년엔 이렇게 월드 맵을 퉁치고 넘어가도 충분했지만, <팬시 월드>는 무려 1996년작이다. 그 시절의 국산게임에게 <툼 레이더> <슈퍼 마리오 64> <퀘이크>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래도 8년 전 <버블보블>, 5년 전 <텀블 팝>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지 않았나. 벌써부터 실망감이 크다.

 

88담배라니, 연식의 상태가...

애들용 게임인 줄 알았는데 좀 놀랍다.

 

<팬시 월드>만의 요소들

녹색 병을 먹으면 혼란 상태가 된다. 혼란은 좌우 조작이 바뀌는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 풀릴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스테이지를 깰 때까지 혼란은 풀리지 않았다. 다른 게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상식 밖의 개념은 반발을 불러오기 쉽다. 결국 중요 포인트는 신 요소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느냐에 달렸다. 혼란은 패널티로 보기에는 너무 세고, 재미 요소로 보자니 헷갈려서 짜증을 참기 어려웠다. 대체 혼란에 어떤 감동이 있는가.

 

게임 속에 88담배, 소주병, 다보탑이 등장한다. 과연 국산 게임. (제작 : 유니코)

 

호박 보스가 구체를 던진다

처음에는 구체가 <스노우 브라더스>의 눈덩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구체는 시간이 지나면 폭발한다. 폭발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구체가 날아오는 궤적 및 구체가 놓여있는 곳'은 출입 금지 지역이다. 그러니 화면이 넓어도 막상 안전한 곳이 별로 없다. 여기서 졸병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스노우 브라더스>는 눈덩이를 굴려 한 번에 치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취했다. <팬시 월드>는 그런 것 없이, 패널티로 꽉 찬 세계에서 적을 일일히 패죽이는 도전에 직면한다. 뭐 이리 애로사항이 많담.

 

유독 보스전에 졸병이 많이 나온다.

<팬시 월드>는 대량 소탕이 불가능하다. 무적기나 필살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적이 떼거지로 달려들면 피할 길이 없다. <스노우 브라더스> <텀블 팝>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팬시 월드>의 시스템은 <팬시 월드>의 레벨 디자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체 뭘 보고 베낀 건지.

 

이번엔 클리어 특전을 볼 차례다.

사실 이게 <팬시 월드>의 유일한 메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일러스트를 보여줄 거면 제대로 보여주지, 꼭 메롱하는 사진을 붙여야만 했나. 참 이해 안가는 심보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는데 이미지가 너무 낯익다. 두 번째 사진(파란 머리)을 봤을 때까진 확신이 들지 않았는데, 세 번째 사진을 보고 무릎을 딱 쳤다.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의 치사토

이목구비가 매우 유사하나 표절이라는 증거는 없다.

 

<동급생 2>의 마이지마 카렌

이렇게 구도까지 베끼면 빼도박도 못한다.

 

<애자매>의 키타자와 토모코

약간 바꾸면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점점 역겨워지기 시작한다.

 

당당히 표기되어 있는 ALL RIGHTS RESERVED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 시절의 국산게임들은 저작권 개념이 희미했다. 90년대 한국은 표절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늦은 출발을 감안하면 아예 이해 못 할 행동은 아니지만...

 

2021.07.21 - [게임 리뷰] - 퀴즈 6000 아카데미 (1994)

 

퀴즈 6000 아카데미 (1994)

선아전자는 80년대 후반부터 게임을 만든 관록있는 회사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선아전자공업(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선아전자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daisy1024.tistory.com

 

형편없는 레벨 디자인

개성없는 시스템, 장르 해석 실패, 표절. <팬시 월드>의 부정적 키워드는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팬시 월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레벨 디자인이다. 무슨 놈의 레인지 유닛이 이렇게 많은지...

 

<스노우 브라더스> <텀블 팝>은 이런 식으로 만들지 않았다. 화면 끝에서 끝까지 공격이 닿는 적들은 극히 드물고, 원거리 유닛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팬시 월드>는 원거리 유닛이 사방에 널렸다. 한 방에 죽는 게임에서 전방향 원거리 공격에 대응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지.

 

<팬시 월드>는 <스노우 브라더스>처럼 무적판정으로 피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즉, 임기응변이 불가능하다. <팬시 월드>는 암기가 필수적인 게임이며, 성취감(적절한 보상)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작하자마자 점프 안 뛰면 죽는 스테이라니, 글을 쓰면서도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살다살다 뼈다귀를 3점사 하는 놈은 처음 봤다, 그것도 엉덩이로.

녹색 토끼는 창을 던지고, 멜빵 강아지는 엉덩이에서 뼈다귀를 발사한다.

 

멜빵 입은 불새가 불똥을 던지는 모습 (카르노브?)

<텀블 팝>의 소스를 그대로 쓴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평가점수 ★

유니코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이, 겉보기에만 신경 쓴 게임을 만드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이렇게 실속없는 게임은 오랜만에 보았다. 전투는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암기를 강요하고, 아무 생각없이 배치된 원거리 유닛은 플레이어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든다. 이런 건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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