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사이버 슬루스 이후 2년 만에 나온 후속작. 사이버 슬루스를 좋게 평가한 사람들조차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다. 전작에 실망한 탓에 플레이 시기를 놓치고 한참을 미뤄두었다. 때마침 플레이하던 게임은 미토피아, 아무리 재미없어도 미토피아보다 재미없을 수는 없다, 미토피아도 끝까지 버텼는데 해커스 메모리 정도면 선녀겠지.그런 맘에 해커스 메모리를 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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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치가 바닥을 치고 있었음에도 <해커스 메모리>에 대한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모래주머니(미토피아)를 풀었다는 기쁨도 잠시, <사이버 슬루스>의 따분한 던전 디자인은 후속작 <해커스 메모리>에서도 이어졌다. 이런 걸 60시간 이상 할 생각하니 현기증이 몰려왔다.
* 이 리뷰는 스팀판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컴플리트 에디션>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이버 슬루스>은 해커를 소재로 한 작품. 주인공도 해킹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사이버 슬루스>의 주인공은 해커보단 사이버 세계를 무대로 한 탐정에 가까웠으며, 해커들의 입장은 조연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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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메모리>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해커다. 해커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EDEN 계정을 빼앗기고 사회적 신용을 잃어, 오해가 거듭된 나머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미심쩍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 생각으로 해커 포럼에 방문한 주인공.
그곳에서 암시장에 있는 디지몬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데...
정의감에 불타 시비를 건 주인공.
낯선 해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EDEN 계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에게 더 이상 있을 곳은 없다. 주인공은 자신을 엿먹인 해커를 찾고자 류지의 팀 '후디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해커스 메모리>는 <사이버 슬루스>의 뒷 무대에서 벌어지는 해커들의 세계를 그렸다. 단독 작품으로 즐겨도 큰 문제는 없지만, 전작을 모르면 알 수 없는 파트도 있다.
노가다를 강요하는 육성 방식, 부실한 퀘스트 로그, 따분한 던전 디자인, 부족한 배틀 택틱스 등등.
이 부분은 전작 <사이버 슬루스> 리뷰에서 얘기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승리조건을 달성하면 이기는 땅따먹기 형식의 배틀.
갈수록 지루해져 다른 동영상을 띄워놓고 사무적으로 버튼을 누르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파트너와 동행하여 깃발 점령전을 즐기는 레전드 팀 배틀.
팀 배틀 자체는 별 게 없고 무료하지만,
배틀이 끝나면 파트너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량이 지독히 짧아, 없느니만 못한 인상을 받았다.
<해커스 메모리>는 아이템 즐겨찾기 기능이 없다. 던전, 거점 귀환을 하려면 아이템 목록을 일일히 훑어봐야 한다. 즐겨찾기 기능은 이미 <포켓몬스터 금·은, 1999>에서 사용된 바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거점 아이템을 쓰면 의뢰소 앞으로 가지 않고, 의뢰소가 있는 빌딩 앞으로 간다. 굳이 의뢰소까지 뛰어가게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제노블레이드, 2010>의 스킵 트래블처럼 공간을 편리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기능도 없다. 귀환 아이템 문제는 다른 단점에 비하면 사소하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면 큰 문제가 된다. 사이버 슬루스 2부작은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 있으며, 과거에서 배운 게 없는 것 같은 구시대적 디자인으로 가득차 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구색만 갖췄을 뿐<사이버 슬루스>에서 크게 변한 게 없다. 턴제 배틀인데 전략성이 낮고, 편의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으며, 세계관, 설정, 스토리에 힘을 준 게임인데도 연출이 지나치게 허접하다.
인게임 그래픽으로 표현한 장면도 적고, 만화적 컷씬으로 설명하는 연출도 거의 없다. 대부분 스탠딩 모션을 살짝 변형한 수준이며, 그냥 텍스트로 퉁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전작 연출과 거의 비슷하다.
글 몇 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파트.
식사 그림 한 컷 그리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
식사 장면을 인게임 모델, 혹은 컷씬으로 표현했다면 이렇게까지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지몬 ip와 설정을 빼면 남는 게 없는 게임인데, 정작 이를 잘 살릴 수 있는 연출 포인트가 없다.
게임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건 비주얼과 사운드트랙 만한 게 없다. 비주얼 문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사운드트랙을 묘사하는 건 글쟁이 입장에서 난감한 문제다. 단순히 "브금이 구리다" 라고 퉁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운드트랙이 왜 구린지 설명하는 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버 슬루스 2부작은 던전, 전투 BGM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해커스 메모리>의 볼륨은 메인 스토리 기준 40~50시간 정도로 꽤 큰 편이지만, 사운드트랙은 꼴랑 16개만 사용되어 텅 빈 느낌을 준다.
* 각 게임에 포함된 사운드트랙의 수 (RPG 장르)
오딘 스피어(2007) : 43개
페르소나 4(2008) : 52개
제노블레이드(2010) : 92개
매스이펙트 2(2010) : 32개
니노쿠니(2011) : 21개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 : 53개
디아블로 3(2012) : 66개
포켓몬스터 블랙 2, 화이트 2(2012) : 120개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014) : 22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2015) : 26개
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2016) : 99개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해커스 메모리(2017) : 16개
<해커스 메모리>는 전작 사운드트랙을 재탕했음에도 사운드트랙의 수가 다른 RPG 게임에 비해 월등히 적다.
JRPG는 스토리의 극적 연출을 위해 사운드트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르다. 그러나 <해커스 메모리>는 이야기에 공을 들인 '전형적인 JRPG'임에도 사운드트랙을 잘 활용하지 않았다. 사운드트랙의 퀄리티가 좋은 것도 아니다. 내 입장에서 <해커스 메모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억이 남지 않는 수준을 넘어, 귀에 거슬릴 정도로 듣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전투 밸런스는 여전히 나쁘다.
대충 봐도 130 이상 대미지가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아무리 플래티넘 워매몬이 호구라지만, 41레벨과 97레벨이다. 레벨 차이가 2배인데 대미지 차이가 엄청나게 심하다. 물론 오류우몬은 상성 공격(2배)으로 들어갔고, 플래티넘 워매몬은 일반 공격(1배)으로 들어갔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심지어 플래티넘 워매몬은 크리티컬도 터졌다.) 이래서야 관통 몬스터만 쓰지 않을까? 전작도 그러더니 후속작도 바뀐 게 별로 없다.
사이버 슬루스 2부작의 던전 디자인은 지루하다. 똑같은 배경의 텅 빈 필드, 다양한 오브젝트는 커녕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소도 없다. 퍼즐 파트가 조금 있지만, 눈치와 추론이 아니라 마구잡기 찍기를 강요한다.
<사이버 슬루스>는 랜덤 인카운터, 넓고 무의미한 필드, 분실물 퀘스트가 가득한 게임이었다. <해커스 메모리>는 쓸데없는 퀘스트를 줄이고 흥미로운 사이드 퀘스트를 늘렸으며, 이동 속도를 보완하는 등 쾌적함에 공을 들였다. 던전은 여전히 텅 비었지만 나아진 게 눈에 보인다.
전뇌공간, 범죄, 디지몬이라는 요소가 버무려진 사이드 퀘스트들.
이쯤에서 흥미롭게 본 사이드 퀘스트를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 스크롤 압박 주의
흥미로운 사이드 퀘스트는 후반으로 갈수록 자취를 감췄다. 뭣 때문에 단조로운 던전 구성, 배틀을 왜 견디어 왔는가. 독특한 세계관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보고 싶었던 것 아니었던가.
텍스트가 많은 게임에서 대사 자동넘김이 없는 건 왜일까.
<해커스 메모리>는 그 흔한 이벤트 스킵, 대화 빨리감기 기능이 없다. 물론 전작 대비 편의성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7년 전 게임(제노블레이드)보다 편의성이 떨어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단점이 있어도 스토리가 좋았으면 눈 감아줬을지도 모르겠다. <해커스 메모리>의 플롯은 불안정하다. 결말이 마음에 들었지만 세간에선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듯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좋았다.
<해커스 메모리>의 가장 큰 비판점은 주인공의 절친 '유우'가 아닐까 싶다. 분명 남성 캐릭터인데 주인공과 데이트 이벤트가 있질 않나, 주인공에게 이상하리만치 집착한다. 일본산 게임에서 이 정도면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집어넣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집어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시도였지만, 어설픈 동성애 코드는 오히려 반발감만 키운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유우가 발암캐, 고문관 정도로 표현되었다면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엔딩 문제는 내게 있어 별 문제가 아니었다. 허무하지만 나름대로 여운 있는 엔딩. 이런 방식의 매듭 짓기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에필로그가 시작되었다. 유우가 또 나온다. 스포일러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케이스케와 유우의 관계는 어느 순간 급변한다.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야 할 상황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유야무야됐다. 유우의 심리 묘사를 독자들이 따라올 수 있게 표현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에필로그에 떡하니 등장하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유우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캐릭터성에 국한된 것이 아닌, 메인 서사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후반부 전개를 납득하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가 점수 ★★
<해커스 메모리>의 몇몇 심각한 문제 때문에 사이버 슬루스 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비록 사이버 슬루스의 플롯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이드 퀘스트 진행, 새롭게 추가된 해킹 스킬 등 편의성을 고려한 티가 난다. 전뇌공간, 해커, 디지몬이라는 설정을 살린 흥미로운 사이드 퀘스트들은 이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PC판의 만족도는 영 좋지 않았다. 권장 사양으로 플레이했는데도 프레임 드랍이 잦았고, 하드 크래시도 2번이나 겪었다. PC판 최적화는 썩 좋지 았았으나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단되었다. <사이버 슬루스>에선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최적화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해커스 메모리>의 완성도는 불안정하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전작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평균 수준을 한참 밑돈다. 다른 RPG를 보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2년 동안 다른 게임들이 100m를 나아갔다면, 이 게임은 30m를 나아갔다. 발전하긴 했지, 근데 발전은 상대적인 것 아니던가. 어찌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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