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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2015)

by 눈다랑어 2022. 1. 29.

전에 디 프로젝트 얘기를 하면서 좋은 디지몬 게임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은 제법 있지만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포교할 만한 디지몬 게임은 없다시피 하다. 사이버 슬루스는 디지몬 팬 사이에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사이버 슬루스를 제작한 반다이 남코는 '부실한 캐릭터 게임'을 만들기로 소문난 회사. 이번에야말로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2015>(이하 사이버 슬루스)

<사이버 슬루스>는 원작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애니메이션 팬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은 게임이다. 그동안 디지몬 프랜차이즈는 이상하리만치 설정 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원작과 애니메이션 설정이 충돌하다 못해, 아주 기초적인 설정조차 지키지 않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렇게 폭주한 결과물이 바로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다. 이 작품이 대박이 나면서 본가의 설정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이버 슬루스>는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괴리감을 최소화하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원작의 설정을 따르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녹여낸다. 원작, 애니 둘 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타이틀이다.

 

* 이 리뷰는 PC판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컴플리트 에디션'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가상 공간 EDEN

교류, 문화생활, 비즈니스, 은행 업무 등등 VR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사회.

개인 룸에 모인 사람들이 시답잖은 수다를 떨고 있다.

 

해커가 사용하는 위험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은 디지몬.

 

소문이 무성하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뜬금없이 운영자가 등장

 

비밀번호를 걸어뒀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호기심에 가보기로 한 앗키노 일행.

 

캐릭터를 고르는 시점이 인상적이다

VR 친구라고는 해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앗키노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른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잘 보여주는 장치.

 

닉네임은 알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걸 어떡한담.

 

무언가 벌어질 듯한 전개.

벌써부터 흥미롭다.

 

내비군에게 쿠롱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키워드 획득

 

키워드를 얻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

 

꼬리에 꼬리를 무는 키워드

쿠롱의 URL을 알아야 접속할 수 있다.

어디서 알아낼 수 있을까.

 

단서를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물쇠를 줄기차게 찾아다니면 됨.

 

애니메이션 연출

쿠롱에 접속하자 한 소녀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 겁 많은 소녀가 '앗키노'?

 

채팅의 이미지와 달라 혼란스러워 하는 노키아.

 

악성 앱이 깔려버렸다.

 

맘대로 삭제도 못 함.

 

눈 앞에 묘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얼떨결에 해커가 된 아미.

 

테리어몬, 팔몬, 톱니몬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포켓몬과 VR 공간의 짬뽕 같은 게임.

 

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했더니,

 

"디지몬을 만나면 스캔할 수 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 라는 뜻.

 

포켓몬스터처럼 벌레회피 스프레이가 있었으면 모를까.

2015년산 게임에 랜덤 인카운터를 도입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서브 퀘스트를 하려면 무수히 많은 적들과 마주쳐야 한다. 환장한다.

 

곧 로그아웃하려던 찰나 기묘한 괴물을 만났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라타, 곧바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눈 둘 곳이 없습니다 선생님.

 

기막힌 우연

 

전뇌공간 전담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쿄코.

급변하는 사회에서 틈새시장을 잘 노린 것 같다.

 

디지털 인간이 되어버린 아미.

 

목소리에 이끌려 전뇌 공간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생뚱 맞은 소리를 한다.

 

디지몬의 육성은 이곳에서 하면 된다.

 

퇴화를 반복하여 디지몬을 강화시킨다.

 

등장 디지몬이 제법 다양한 편.

 

EDEN에서 로그아웃하려면 아바타가 있어야 한다.

정크 데이터를 찾아 아바타를 복구하자.

 

이때부터 제법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백신, 데이터, 바이러스... 여기까진 좋다.

 

여기에 속성이 더해지자 문제가 한 층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알려주면 될 것을 너무 한꺼번에 주입시킨다.

종족과 속성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이콘으로 표시하는 게 많아 굉장히 헷갈린다.

 

크로스 콤보는 확률적으로 발동되며 디지몬 스스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바타를 찾아 탈출한 아미.

당분간 쿠레미 탐정 사무소에서 지내기로 한다.

 

베테랑 형사 마타요시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열혈 형사.

어렸을 때부터 쿄코와 알고 지낸 인연으로 전뇌 사건의 협력을 요청한다.

 

카미시로는 EDEN을 운영하는 세계적 대기업.

잘 조사하면 아미의 몸 상태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미시로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특별 병동.

그곳에 EDEN 증후군 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뇌체가 되어 커넥터를 넘나들 수 있게 된 아미.

 

통신 단말에 접촉해 다른 단말로 이동할 수 있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건을 수사하는 재미가 있다.

 

봉쇄를 뚫고 특별 병동에 침입하지만...

 

내가 누워있어?

 

그렇다면 지금 움직이고 있는 '나'는 뭐지?

 

전뇌탐정이 되기로 한 아미.

본격적인 '사이버 슬루스'가 시작되었다.

 

스토리 얘기를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다

게임 시스템을 살펴보자. 스킬은 6개의 사용스킬, 9개의 대기스킬, 합계 15개를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지 사용 스킬을 교체할 수 있다.

 

기능은 많은데 배틀 양상이 단조롭다

가드, 스킬, 체인지 등등... 얼핏 보기엔 포켓몬스터보다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기술의 스펙이 거기서 거기라 변수를 만들기 어렵다. 이 게임은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방어, 사이드 체인지, 트릭 룸, 탁쳐서 떨구기 같은 특이한 스킬이 전혀 없고, 파도타기, 냉동빔, 10만 볼트, 제비 반환 같은 단순한 스킬 위주로 돌아간다.

 

체인지

1턴을 소모하여 대전 디지몬을 벤치 멤버와 교체하는 시스템.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 (1997)

<사이버 슬루스>를 하면서 생각나는 게임이 있었다.

전뇌 공간 EDEN, 해커 주인공,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사람들...

아무래도 <소울 해커즈>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다.

그밖에도 아틀러스 게임과 유사한 느낌이 있는데,

 

반다이남코 게임인데 묘하게 아틀러스 게임 같다

주위에 둘러볼 것 하나 없고, 플레이타임을 무의미하게 늘릴 뿐인 던전.

페르소나 3(2006), 페르소나 4(2008)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페르소나 4 골든(2012), 앞으로 나아가도 맵의 풍경은 변하지 않는다

<페르소나 4>는 랜덤형 던전이고 <사이버 슬루스>는 고정형 던전이다.

엄밀히 따지면 다르지만...

 

<사이버 슬루스>는 어느 순간부터 상태이상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스전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즉 보스전을 공략하는 재미가 없다.

 

'나'만 당하는 상태이상

분명 같은 디지몬인데 어찌 상대만 떡내성을 갖고 있단 말인가.

 

<페르소나 3> <페르소나 4> 역시 마찬가지다

보스의 헛점을 찾아내는 즐거움은 없고 버프, 디버프에 의존하는 구성.

던전, 전투 파트에서 <페르소나 4>를 좋게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이버 슬루스>는 여기서 한 술 더 뜬다. 디버프조차 면역인 보스들, 페르소나 합성보다 전략성이 떨어지는 디지몬 육성 등등.

 

페르소나 시리즈는 심볼 인카운터 방식을 채택했다

페르소나의 전투는 약점을 찔러 '내 턴'을 이어가는 재미라도 있지, <사이버 슬루스>의 전투는 그마저도 없다. 심지어 랜덤 인카운터 방식을 채택해서 몹을 피해다니기도 어렵다. <사이버 슬루스>가 출시된 2015년은 <페르소나 4 골든>이 나온지 3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 많은 장점은 제쳐두고 왜 하필 단점만 쏙쏙 빼먹었을까. 베낄 거면 잘 좀 베끼지 열화판으로 만들면 어떡합니까.

 

혼자 다른 게임을 하는 '알포스 브이드라몬'

내성 떡칠은 기본에 계속 자기 턴만 진행하니 공략이랄 게 없다.

제발 공격 대신 다른 기술을 써달라고 기도할 뿐.

이게 정말 턴제 전략 게임인가?

 

잠시 포켓몬스터 얘기를 해보자. 다른 사람의 따라큐와 내가 쓰는 따라큐는 같은 개체다.

각자 개체값, 기술 배치가 다르겠지만 결국 몸뚱이는 같다. 따라큐의 스펙 한계는 정해져 있고, 플레이어는 전투의 흐름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따라큐를 쓰러뜨리려면 최소 2번 이상 공격해야 한다." 같은 것들 말이다.

 

반면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는 다르다. 내가 쓰는 포요몬과 상대방의 포요몬은 명백히 다른 개체다. 같은 포요몬인데 이쪽은 체력 500이고, 상대는 체력 5000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게 정녕 성숙기 디지몬의 멧집인가

<디지털 몬스터 디 프로젝트, 2002>는 달랐다. 플레이어의 그레이몬과 상대 그레이몬은 같은 개체였다. 스탯 차이가 있더라도 그 값은 그레이몬이 가질 수 있는 능력치의 최소값~최대값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규칙은 어느새 사회적 규칙처럼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이버 슬루스>가 이 노선을 선택해서 얻는 이득이 뭘까? 

내 궁극체는 체력 2천이고, 상대 위자몬(성숙기)은 체력 1만이다. 상대 디지몬이 훈련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면 납득할 수 있다. 당연히 게임 내에선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내가 쓰는 로얄 나이츠보다 적이 쓰는 성숙기 디지몬의 멧집이 더 튼튼하다. 세계관에 대한 몰입이 확 깨는 순간이다. 게임적 허용으로 넣을 거면 클리어 후 컨텐츠로 써먹던가, 토코몬, 위자몬 같은 약한 디지몬 대신 강적을 내보냈으면 될 일 아닌가.

 

2022.01.28 - [게임 비평] - 디지털 몬스터 디 프로젝트 (2002)

 

디지털 몬스터 디 프로젝트 (2002)

다마고치는 사회 현상이었다. 휴대폰이 아니라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 사이버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면서 키운다는 설정은 대단히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듬해 반다이는 캐릭터성을

daisy1024.tistory.com

 

미치고 팔딱 뛰는 진화 조건

재능 수치를 올리려면 레벨을 많이 올린 후 퇴화시켜야 한다. 수십 차례 퇴화, 진화를 반복해야 가까스로 재능 100%를 달성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별로였던 전투가 재능 시스템과 합쳐져 노가다를 강요하는 인상을 받았다. <사이버 슬루스>에서 육성, 도감 수집의 즐거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분실물 퀘스트는 거르는 게 좋다

랜덤 인카운터, 형편없는 육성 파트, 전략성 부재, 단순한 전투, 텅 빈 맵 등등. 온갖 것들이 합쳐져 환장의 시너지를 낸다. 서브퀘스트를 하러 던전에 들어간 나는 울화통이 터진다. 랜덤 인카운터는 계속 걸리지, 동선은 길지, 내용은 아무것도 없지, 평판 시스템 같은 것도 없지, 무의미한 서브퀘스트가 도처에 널려있다.

 

반면 인상적인 서브퀘스트도 있다.

 

스포 방지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기재하지 않음

 

전뇌공간, 디지몬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을 잘 살린 서브퀘스트.

 

부실한 퀘스트 로그

<사이버 슬루스>는 대화 로그를 다시 볼 수 없다. 메인 퀘스트의 로그를 보는 기능도 없다.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기능은 어설프게 구현되었다. 미니맵에 목적지를 표시하거나, 퀘스트 팝업을 띄워주는 기능이 없다. 오랜만에 접속하면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 로그를 봐도 진행도를 파악할 수 없는 퀘스트가 많다. 결국 외부 공략 사이트를 보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게 정상적인 흐름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디지몬 도감

<사이버 슬루스>는 흥미로운 설정을 내세웠으나, 정작 설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문서가 없다. 디지몬 도감은 디지몬 설명에만 충실할 뿐, <사이버 슬루스>의 세계관을 그려낸 문서가 없다. 설정과 이야기가 흥미로운 게임인데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저해할 때가 많았다.

 

과연 아미는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

 

 

 

평가 점수 ★★

게임 초반은 흥미로웠다.

<소울 해커즈>를 오마쥬한 설정,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 현실 세계에 디지몬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두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배틀 택틱스는 지나치게 단조롭고, 맵은 뭐 하나 볼 것 없이 쓸데없이 길게 느껴졌으며, 퇴화와 진화를 거듭하는 육성 방식은 플레이타임을 늘리려는 음모로 가득차 있었다.

 

평소 볼륨이 큰 게임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사이버 슬루스>처럼 단조롭고 반복적인 형식의 게임을 80시간이나 플레이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이래서는 모처럼 공들인 세계관을 느끼기 이전에, 짜증과 분노로 점철되어 이야기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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