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를 깨우러 온 사람들은 그를 만나기도 전에 죽어간다. 추격자에게 쫓기는 일행은 폐허 안쪽으로 움직이고, 시엘을 지키던 호위는 하나씩 쓰러진다. 간신히 도착한 곳에는 여러 장치에 연결된 제로가 잠들어 있다. 하지만 봉인을 풀 방법이 없다. 사이버엘프 팟시가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선 뒤에야 제로가 눈을 뜬다.


| This Korean-language review revisits Mega Man Zero (2002) through its mission design, combat, and life at the Resistance base. It explores how escorting allies and protecting resources change the way familiar actions are used, while weapon growth, Cyber-elf costs, and retry limits make experimentation harder. The review draws on a replay of Mega Man Zero/ZX Legacy Collection with Save-Assist enabled and comparisons with Mega Man X4. Please use your browser’s translation feature to read the article. Character and item names follow the Korean text used here and may differ from English localization. Major spoilers, including the ending. この記事は『ロックマン ゼロ』(2002年)を、ミッションの構成、アクション、レジスタンスの拠点での暮らしから振り返る韓国語のレビューです。仲間の護衛や資源の確保によって、使い慣れた操作がどう変わるのかを考察します。また、武器の成長やサイバーエルフの育成費用、再挑戦の制限が、新しい対処法を試す際の負担になる点も取り上げます。『ロックマン ゼロ&ゼクス ダブルヒーローコレクション』のアシストセーブを使用した再プレイをもとに、『ロックマンX4』とも比較しています。 お読みになる際は、ブラウザの翻訳機能をご利用ください。人名やアイテム名は本文で使用している韓国語表記に基づくため、日本語版と異なる場合があります。結末を含む重大なネタバレがあります。 |
깨어난 제로는 상황을 설명받을 틈도 없이 시엘을 구해야 한다. 거대한 골렘에게 붙잡힌 그녀를 구하려고 버스터를 쏘지만 피해는 미미하다. 전투 도중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세이버가 떨어진다. 그것을 집어 들어 베자 골렘이 쓰러진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깨운 전설의 힘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정작 제로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그 제로가 아니라면 어쩔 것이냐고 묻자, 시엘은 자신에게는 이미 제로라고 답한다. 두 사람은 레지스탕스 기지로 돌아간다. 나는 아직 이들이 왜 쫓기는지, 제로는 왜 잠들어 있었는지, 세이버를 건넨 목소리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어진 것은 분명하다.
《록맨 제로》의 초반 십 분은 도입부로서 대단히 강하다. 제로에게 걸린 기대는 그를 깨우기 위해 치른 대가로 먼저 전달된다. 기억도 힘도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골렘을 베는 단 한 번의 동작은 그 기대를 납득시킨다. 한때 어떤 전사였길래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제로가 서 있는 자리도 달라졌다. X 시리즈에서 그는 엑스와 함께 이레귤러 헌터로 활동하며, 인간에게 위협적인 레플리로이드를 처단하는 공권력이었다. 이제는 네오 아르카디아가 레플리로이드를 처분하려 하고, 제로 자신도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처분되려는 레플리로이드를 구했기 때문이다. 한때 심판을 집행하던 인물이 이번에는 심판받는 이들의 편에 선다. 제로는 왜 봉인되었고,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바뀌었을까. 익숙한 인물의 위치를 뒤집으며 생긴 의문은 이후의 임무를 따라갈 이유가 된다.
이 작품에서 좋았던 것은 도입부만이 아니다. 기지에서 부탁을 받고 나가 사람을 구하고, 에너지를 확보하고, 전에 점령했던 곳을 다시 지키러 간다. 대시와 벽차기, 검을 휘두르는 동작은 익숙하지만 그 동작으로 해야 할 일이 달라졌다. 물론 그 변화가 모두 깔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플레이하며 가장 많이 적게 된 것은 줄거리보다, 각 임무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가에 관한 메모였다.
※ 스포일러 주의: 결말을 포함한 《록맨 제로》의 주요 내용을 다룹니다.
보스를 쓰러뜨렸는데
초반 임무를 마치자 수송 열차 파괴, 실종 수송기 수색, 로스트 데이터 회수 같은 선택지가 나타났다. 다른 록맨이었다면 보스의 얼굴과 이름부터 살폈을 것이다. 여기서는 적의 보급을 끊을지, 실종된 동료를 찾을지, 내가 깨어난 유적으로 돌아갈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유적에는 제로에 관한 정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 과거에 관한 정보라니,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제로의 움직임은 X 시리즈에서 이어진다. 대시로 접근하고, 벽을 차고 올라가며, 공중에서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X4》에서 이미 익숙해진 근접 액션에 이번에는 버스터가 더해졌다. 장착한 두 무기를 오가며, 접근해서 베기 어려운 적은 멀리서 처리할 수 있다.
다만 빠른 캐릭터라고 처음부터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작은 화면에 적이 들어왔을 때는 이미 탄환이 날아오기도 했다. 초회에는 조심스럽게 나아가며 배치를 살펴야 했다. 위치와 공격을 조금씩 익힌 뒤에야 대시를 적극적으로 쓸 수 있었다. 대신 제로의 움직임은 유연해서, 모든 것을 외우지 않아도 눈앞의 상황을 보고 대처할 여지가 있었다.
유적의 보스 마하 가네샤리프에게서는 익숙한 습관부터 고쳐야 했다. 나는 적이 달려오면 대시점프로 크게 피하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몸을 말고 굴러오는 공격에는 제자리 점프가 더 안정적이었다. 구르는 도중에 위로 뿜는 폭탄의 타이밍도 고려해야 했고, 피한 뒤 구석에 몰리면 다음 공격이 어려워졌다. 반복할수록 회피 이후의 위치까지 보게 됐다. 반격할 때는 점프로 접근해 베고,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빠져나왔다. 관찰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제로의 조작성은 탁월했다.
보스를 쓰러뜨려도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자폭 장치가 작동했다는 시엘의 연락이 오고, 뒤에서 구조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려 도망쳐야 했다. 원작을 플레이할 때는 여기서 허둥대다 죽은 기억이 난다. 코끼리를 겨우 잡았는데 탈출하다 죽다니, 어찌나 억울했던지. 보스의 체력을 전부 깎았다고 패드에서 손을 뗄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수송 열차 임무에서도 목적이 바뀐다. 처음에는 적의 보급 능력을 약화시키러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기지에서 빼앗긴 사이버엘프가 열차에 실려 있었다. 시엘의 연락을 받은 뒤에는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 제한 시간 안에 그들에게 도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통과하는 장소는 그대로였지만,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가 달라지자 같은 길에도 전혀 다른 긴장이 생겼다.
보스를 쓰러뜨리면 스테이지가 끝난다는 익숙한 형식에서 벗어날 때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졌다. 이런 변화는 사건의 순서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을 구해야 하는 임무에서는 제로의 액션과 내가 지형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달라졌다.
사막을 되짚으면서
사막에서 보스를 쓰러뜨리고 생존자를 찾았을 때, 나는 그를 데리고 출발 지점의 게이트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왔던 길을 다시 걷는 데다 동행자의 걸음도 느렸다. 제로 혼자라면 대시와 점프로 넘어갈 곳을 훨씬 오래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 호위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사막에는 발을 끌어당기는 모래 지형과 덫이 있고, 지면에서 머리를 내밀어 탄환을 흩뿌리는 적도 있다. 혼자 갈 때는 뛰어넘거나 탄환만 피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돌아갈 때는 뒤따르는 생존자가 같은 공격을 맞는다. 내가 무사히 건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덫을 세이버로 제거하려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그동안 생존자가 다가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앞서갈 수도 없었다. 모래에 발이 미끄러지는 동안 어느 쪽에서 공격할지, 적이 나타났을 때 먼저 쓰러뜨릴 수 있을지 계속 살펴야 했다. 세이버와 버스터로 대응하기 까다로운 아래쪽 각도에서는 트리플 로드로 아래쪽 장애물을 부수기도 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탄환을 베었던 순간이다. 지면에서 나타나는 적을 바로 없애지 못해 탄환이 발사됐고, 나는 세이버를 휘둘러 그것을 지웠다. 제로 자신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서 지나가면 뒤의 생존자가 맞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나 자신을 지키던 동작을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는 공격을 막는 데 사용했다.

결과는 깔끔하지 않았다. 나도 생존자도 많이 맞았다. 보스는 쓰러뜨렸는데 돌아오는 길이 더 험했다. 그래도 동행자가 따라오기만 기다렸다는 기억은 없다.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된 느낌이었다.
비밀 기지에서 인질을 찾을 때는 달랐다. 감시를 피해 동료를 구하는 구간에서는 적의 시야에 들어가기 전에 버스터로 처리할 이유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인질이 있는 곳을 확인하려고 이곳저곳 오래 기웃거렸다. 호위할 때처럼 끊임없이 위험에 대응하는 시간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찾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소닉》에서는 앞의 지형을 살피며 위험한 곳에서 속도를 늦추고, 길이 뚫리면 다시 가속한다. 제로의 호위에서도 빠른 움직임을 상황에 맞춰 조절했다. 동행자의 위치를 확인하며 앞서 나갈 거리를 생각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먼저 적을 처리했다. 진행은 느려졌지만 계속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다.
기지로 돌아오면
기지에는 인간과 비슷한 로봇 레플리로이드들이 산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구출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비어 있던 에너지 창고에도 주민이 생겼다. 그중 한 명은 다시 이곳에서 일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지만, 방금 내가 구한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 여기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기지를 오가며 듣는 이야기도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노인의 모습을 한 앤드류는 인간 여성과 함께 살았던 일을 들려준다. 자신과 달리 늙어가는 연인을 위해, 자신도 늙은 모습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레플리로이드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이 한 사람의 사연으로 다가왔다. 전쟁의 설명만 듣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생활이었다.
《록맨 제로》는 미션과 상관없이 외부로 나갈 수 있다. 밖에서 실드 부메랑을 키우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다. 그런데 이동하다 보니 아는 장소가 나왔고, 트랜스 서버가 있겠거니 하고 더 나아가니 또 아는 스테이지가 나왔다. 내가 거쳐온 길이 기지랑 이어져 있었다. 지루하게 무기나 키우러 나왔다가 이 길을 발견하니 반가웠다.
그렇다고 탐험이 깊은 게임은 아니다. 새로운 능력을 얻어 막힌 길이 열리는 구조도 아니고, 진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시엘에게 받는 임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래봤자 지나친 아이템을 찾거나 무기를 키우는 쪽에 가깝다. 바깥에서 파밍하는 동안 반복해서 듣는 음악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곤했다.
그래도 점령했던 공장으로 돌아갈 때는 첫 방문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부족한 에너지를 확보하려고 그곳을 공격했다. 점령에 성공하자 당분간 버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 뒤, 적이 공장을 되찾으려 한다는 연락이 왔다. 한 번 돌파한 스테이지였지만, 내가 그곳을 빼앗자 적도 되찾으러 왔다.
《X4》를 할 때는 전쟁의 규모에 비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록맨 제로》의 기지는 작은 공간이고 주민의 반응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미션에서 구한 사람이 돌아오고, 확보한 자원을 지켜야 하며, 평소 오가던 기지가 공격받는다. 내가 수행한 임무가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감각이 뚜렷하다.
세이버를 내려놓자니
임무마다 대응이 달라지는 만큼 무기를 바꿔 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먼저 얻은 세이버가 강하고 편했다. 자주 쓰다 보니 연속 베기와 회전베기, 차지 공격 같은 동작이 차례로 열렸다. 제로의 힘을 되찾는 감각은 좋았다. 그런데 뒤늦게 새 무기를 얻었을 때는 그것이 부담이 됐다. 익숙하고 강해진 무기를 두고, 낯설고 덜 성장한 무기를 써야 했다.
트리플 로드는 여러 방향을 찌를 수 있지만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넓게 베는 세이버보다 방향을 정확히 맞춰야 했고, 사거리도 짧게 느껴졌다. 아래쪽의 적을 찌를 때는 유용했지만, 새로운 동작까지 배우려면 평소에도 이 낯선 무기를 계속 써야 했다. 세이버로 편하게 처리하던 적을 상대로 다시 무기를 익히려니 손이 가지 않았다. 트리플 로드가 익숙해지면 어떤 게 달라질지 확인하기도 전에 세이버로 돌아왔다.
버스터는 위험한 적을 미리 제거하는 보조 무기로 남았다. 실드 부메랑은 더 안전한 무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방어 중 대시를 할 수 없고, 공격하려면 차지가 필요해 답답함이 커졌다. 투척 궤도를 활용할 여지는 있어도 평소에는 버스터가 더 편했다. 무기마다 쓰임새가 있기는 했지만, 세이버와 버스터를 바꿀 기회는 생각보다 적었다.
사이버엘프는 하나씩 모으는 즐거움이 있었다. 같은 회복 능력을 가진 엘프라도 이름이 다르고, 설명도 자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직접 말하는 형태로 쓰여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이버엘프가 보이면, 무슨 능력인지 몰라도 두고 가기 아까웠다. 회복과 능력 강화, 특정 위험에 대처하는 기능까지 두루 갖춰 임무에 맞춰 준비할 여지도 있었다.
그런데 성장 비용이 높았다. 네오 아르카디아로 향할 무렵, 기지 밖에서 무기를 키우고 창고의 크리스털도 꾸준히 챙겼지만 당시 수중에는 1742가 전부였다. 보스 하나의 체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해머고의 육성에만 1,000이 든다.[주2] 다른 엘프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낮은 녀석은 750부터, 높은 녀석은 1,500이 소요된다. 성장 없이 쓰는 엘프도 있지만, 모처럼 모은 녀석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기에는 여유가 부족했다.


여기에 평가 시스템이 겹친다. 미션을 마치면 클리어 시간과 받은 피해량, 적 격파 수, 재도전 횟수, 엘프 사용 등이 점수에 반영되고, 누적 성적에 따라 제로의 레벨이 S부터 F까지 정해진다. 1편에서 레벨이 실제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A·S레벨에서는 일부 보스에게 공격 패턴이 추가되고, 기지의 일부 수집 요소에도 레벨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레벨이 낮다고 본편 진행이 막히지는 않으며, 후속작처럼 높은 레벨로 보스를 쓰러뜨려 EX 스킬을 얻는 구조도 없다.[주3]
처음에는 레벨이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지 몰랐다. 낮은 성적을 받으면 앞으로 얻을 기술이나 진행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구조를 알고 난 뒤에도 엘프를 쓸 때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임무에 맞는 능력을 골라 세팅했더니, 막상 도움을 받으면 점수가 깎였다. 준비한 엘프를 써보고 싶다가도, 조금 더 버텨서 쓰지 않고 끝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프는 사용하면 사라지지만 영구적으로 적용되는 효과도 있다. 최대 체력 증가 같은 강화는 계속 남고, 그에 따른 감점도 이후 미션에 이어진다.[주4] 크리스털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면서도, 앞으로 받을 점수까지 생각해야 했다.
공장 방어에서는 그 망설임을 접고 엘프를 써봤다. 준비해둔 것은 시간 감소를 늦추는 엘프였다. 제한 시간 안에 폭탄을 해체해야 한다면 이보다 어울리는 도움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어려웠던 것은 남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다시 배울 기회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보초가 보이지 않았고 분위기도 조용했다. 앞으로 나아가자 팬텀이 나타났다. 다른 스테이지였다면 마지막에 만났을 보스와 먼저 싸운 뒤, 공장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제한 시간 안에 여덟 개를 찾아 해체해야 했다.
전에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됐던 위쪽 공간에 폭탄이 있었다. 그것을 처리하고 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발판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올라온 순간 그 발판이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속으로 카운트를 세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구간에서는 셋까지 센 뒤 내려가면 발판이 돌아왔다. 숫자를 잘못 세거나 전기 장애물에 맞아 밀려나면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가네샤리프에게서는 상대의 움직임을 보며 점프와 대시의 타이밍을 바꿨다. 여기서는 내려갈 곳을 화면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다. 실패를 통해 몇 초 뒤에 뛰어내릴지 파악했고, 실패의 결과는 낙사였다. 보스를 이긴 뒤 새 임무가 시작되는 발상은 좋았지만, 이어진 지형은 그 변화를 즐기기에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낙사를 막아주는 엘프를 가져올 걸 그랬다. 제한 시간이 있다는 사실보다 떨어져 죽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스테이지에서 엘프를 임무별 대책으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은 봤다. 무엇이 필요한지 겪어본 뒤 세팅을 바꾸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더 가벼웠다면, 이 선택도 즐기기 쉬웠을 것이다.
원작의 재도전 구조는 그 과정에 인색하다. 실패하면 재시도 자원을 쓰고, 그 잔량은 세이브에도 남는다. 다 쓴 상태로 저장했다고 불러올 때 다시 채워주지 않는다.[주5] 그러니 미션 전에 저장해두고 실패하면 다시 세이브 데이터를 불러오게 된다. 어려운 구간을 더 해보고 싶은데, 그 앞의 준비부터 되풀이하는 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스팀판 《록맨 제로 & 젝스 더블 히어로 컬렉션》의 어시스트 세이브를 켠 상태로 플레이했다. 재도전 부담이 줄어드니 어려운 구간을 계속 시도하기가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장의 발판은 여전히 보기 어려웠고, 마지막 카피 엑스전은 반복 숙달해도 손이 쫓아가지 못했다.
최종전에서는 차지를 유지하면서 벽을 차고, 공격을 피하고, 대시점프로 날아가 반격해야 했다. 나는 버튼을 누른 채 다른 입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주 실패했다. 패턴을 알아도 손이 꼬였고, 긴 대화와 카피 엑스전을 연이어 치르는 것에 지쳤다. 어시스트로 재도전 부담을 줄이고도 반복이 버거웠는데, 원작에서는 남은 횟수까지 신경 써야 한다. 적을 관찰하고 내 방식대로 통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던 만큼, 막힌 부분을 다시 연습하러 가는 길은 좀 더 짧았으면 했다.
제로라는 이름
임무를 수행하며 만난 사천왕들은 자신들이 엑스를 섬긴다고 말한다. X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제로의 동료였던 그가 왜 레플리로이드들을 처분하는 체제의 중심에 있는가. 이 의문을 품고 도착한 네오 아르카디아에서는 익숙한 클래식 록맨의 향기가 풍긴다. 가시와 사라지는 발판을 통과하고, 이전 보스들과 다시 싸운다. 이때는 다양한 임무보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엑스의 정체가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그곳의 지배자는 시엘이 만들어낸 복제인 카피 엑스였다. 그는 인간에게 번영과 낙원을 가져다줬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곳을 봤어야 알지. 내가 아는 것은 그가 희생시킨 레플리로이드들의 처량한 신세였다. 평온한 인간의 생활을 삽화 한 장이라도 보여줬다면, 그가 만든 사회와 그 평화의 대가를 함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제로가 지켜온 이들의 사정은 분명했다. 동료가 처분당할까 두려워하고, 일할 곳을 되찾아 기뻐하고, 에너지를 확보해 안도했다. 이 작품은 세계 전체를 보여주는 데 여전히 빈틈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온 생활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시엘과의 관계도 미션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초반에는 제로의 힘이 필요해서 봉인을 풀고 위험한 일을 맡긴다. 나갈 때마다 미안해하면서 다음 부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끝내는 네오 아르카디아를 쓰러뜨리지 못해도 좋으니 살아달라고 부탁한다. 함께 도망쳐 살자는 말까지 한다.


카피 엑스를 쓰러뜨리면 제로가 엑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진짜 엑스는 언제나 고민하던 동료다. 제로는 바로 그렇기에 그가 영웅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세이버를 건넨 목소리의 주인도 그 엑스였다. 오랫동안 혼자 싸워 지친 그는 이제 제로에게 세계를 맡기고 조금 더 쉬고 싶다고 부탁한다. 자신의 완전함을 자랑하던 복제와는 끝까지 다른 모습이다.
제로 역시 자신이 정말 전설 속 인물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깨어났다. 과거의 기억도 끝내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임무를 거듭할수록 기지에서 마주치는 얼굴이 늘었고, 한 번 지킨 장소에서 다음 싸움이 이어졌다. 《X4》에서 제로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를 외쳤을 때는 나도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제로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수색 임무에서는 인질을 찾느라 같은 곳을 오래 헤매기도 했다. 새 무기를 익히려면 적을 반복해서 잡아야 했고, 사이버엘프의 도움을 받으면 평가가 내려갔다. 어려운 구간을 다시 연습하려면 그 앞의 준비부터 되풀이해야 했다.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런 불편까지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호위 미션에서는 패드를 쥔 손부터 평소와 다르게 움직였다. 내가 피할 수 있는 탄환을 뒤의 사람 때문에 베었고, 혼자라면 지나쳤을 적을 먼저 처리했다. 기지로 돌아오자 구출한 이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익숙한 록맨의 조작으로 전과 다른 일을 하고, 돌아와 그 결과까지 확인했다. 강한 도입부에서 생긴 호기심은 이런 임무를 거치며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
주석
[주1] 본문의 호위·폭탄 해체 움짤은 다음 플레이 영상에서 발췌했다. 호위 미션. 폭탄 해체 미션.
[주2] 해머고의 육성 비용은 E크리스털 1,000이며, 보스 한 명의 체력을 절반으로 줄인다. 1,742라는 수치는 이번 플레이 메모에 기록한 보유량이며, 한 회차의 총수입을 뜻하지 않는다. 5ch 록맨 제로 공략 위키: 사이버엘프.
[주3] 레벨은 누적된 미션 점수의 평균으로 정해진다. 1편에는 후속작처럼 고레벨로 보스를 쓰러뜨려 EX 스킬을 얻는 구조가 없지만, 고레벨에서 보스의 추가 공격이 나오고 기지의 일부 수집 요소에 접근 조건이 붙는다. 리절트 계산, 게임카탈로그: 고레벨 진행.
[주4] 최대 체력 증가·서브탱크 등 영구 효과를 주는 엘프는 사용 이후의 미션에서도 감점 대상이 된다. 일시적인 효과를 주는 엘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5ch 록맨 제로 공략 위키: 리절트.
[주5] 원작은 재시도 잔량을 저장하며, 잔량이 없는 세이브를 불러와도 기본 수량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일부 미션은 실패 처리 후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해당 미션의 보상과 이후 임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게임카탈로그: 특수한 잔기 시스템, 5ch 록맨 제로 공략 위키: 미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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